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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아브람 알퍼트 지음 | 조민호 옮김
안타레스

2024년 05월 03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4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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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2.03MB)
ISBN 979119174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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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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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구는 계속 잘살고 누구는 계속 못살까? 그 이유가 정말로 개인의 ‘능력’에 있을까? ‘경쟁’에서 이겼거나 졌기 때문일까?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는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는 책이다. ‘잘남’과 ‘탁월함’을 강제하는 사회 체계가 모든 ‘불합리’와 ‘불평등’의 궁극적 원인이며, 이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의 수동적 가치관이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요컨대 모든 원흉은 ‘위대함’이다. 내가 위대해지지 못하면 타인의 위대함에라도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서글프고 무서운 사고방식. 이 책은 이 보편적 착각을 ‘철학’의 힘으로 깨부순다.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은 실패했을뿐더러 이후 오히려 ‘위대함’에 더 적극적으로 굴복했다.
이 책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는 인간 본성과 인류 역사를 왜곡하고 굴절시킨 주범이 소수의 ‘위대함’을 추구한 데서 비롯한 능력주의와 시장주의의 ‘낙수 효과’라는 희망 고문임을 증명하고, 이를 바로잡아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절대다수의 ‘충분함’을 밑바탕으로 한 참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려면 개인의 세계관 변화가 절실하므로, ‘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를 논증한 뒤 위대한 삶이 아닌 충분한 삶이 왜 ‘우리 자신’과 ‘우리 관계’에 좋은지, 나아가 어떻게 ‘우리 세계’와 ‘우리 지구’에도 이익이 되는지 철학적으로 설득해나간다. 설득당한 독자가 많을수록 ‘모두에게 충분한 세상’이 가까워질 것이다.
들어가며_충분한 삶이란 무엇인가


제1장_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
충분함의 철학적 기원|위대함을 넘어서려는 오랜 역사|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물질 경제와 지위 경제|잃어버린 아인슈타인들|번아웃을 막는 길|춥고 외로운 할렐루야|모두를 위한 충분한 삶

제2장_우리 자신을 위하여
태초에|바보야, 경제만 문제가 아니야|덕의 귀환|능력주의, 위대함 이데올로기|위대함을 뛰어넘는 덕|있는 그대로의 세상|보장되지 않는 만족|투쟁에서 탄생한 철학

제3장_우리 관계를 위하여
낭만적인 이야기|순환의 여행|웃음 이론|선한 사마리아인의 역설|천국으로 또는 낚시터로|장자와 혜자 이야기|어디 두고 봅시다|이 정도로 충분하다면|충분한 관계의 정치

제4장_우리 세계를 위하여
핀의 길|노예의 길|충분한 전환|이기적 박애주의|충분한 세상을 위한 계획|지위 경제의 한계|롤스의 사고 실험

제5장_우리 지구를 위하여
두 마리 유인원|적자생존의 진실|충분함으로의 진화|위대한 녹색 혁명의 위험|적은 것으로 더 많이 vs. 적은 것에서 더 많이|부담과 보상의 공유|자연과의 충분한 관계|충분한 숭고함

나오며_충분한 삶을 위하여


찾아보기

어떤 이들은 너무 많이 갖고 어떤 이들은 너무 적게 갖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이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다 느끼고, 현재 상황에 우울해하며, 동료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낀다. 이 감정은 경쟁심을 유발해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위대해지는 것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p. 9

충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위대해질 필요는 없다. 삶이 가치 있으려면 뭔가에 능숙하고 탁월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사회는 우리가 충분히 좋은 삶을 누릴 가능성을 무너뜨린다. 위대함의 이데올로기는 우리 자신, 우리 관계, 우리 세계, 우리 지구를 훼손한다. 이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고 해서 충분함이 위대함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함의 종착지는 위대함도 완벽함도 아니다. 그래서 충분함에는 끝이 없다. 충분함은 늘 여지가 있고 늘 차오르는 상태다. 채우기만 하면 위대하고 완벽할 것 같은 그 여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다. 충분한 삶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부드럽게 포용하고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면서 모두의 충분함을 헤아린다.
---p. 69

개인의 솜씨나 우수함 사이에도 차이가 있고, 위대함이나 최고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실력은 누군가 잘하면 누군가 못하는 제로섬이 아니다. 누구든지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가 될 수 있다. 굳이 가장 뛰어난 한 사람 또는 소수에게 최고라는 영예를 부여하고 보상할 까닭이 없다. 마이클 왈저의 발상처럼 ‘영역’을 나누고 그 경계에 ‘좋은 울타리’를 친다 한들 영역 내에서도 차별이 일어날뿐더러, 물질 경제를 지양해도 지위 경제는 그대로 남아 있기에 불평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가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춘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물질적이든 지위적이든 보상을 해줘야 할 소수를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실제로는 뛰어난데 경쟁을 잘하지 못해 최고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pp. 94

현실에서 실제로 더 재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존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들보다 나을 게 별로 없으나 더 많은 관심과 존중을 받는 사람들을 목록으로까지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권력이나 특권 덕분에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정치인들은 그저 “잘생겼거나 키가 크거나 매력이 있다는 이유”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 선거에서 이겼을 수도 있다. 그 어느 쪽도 실제 재능이나 능력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 똑같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칭찬을 퍼붓기보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누군가가 훨씬 더 뛰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앞으로의 사회·경제·정치·문화 등 가치 체계에 반영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pp. 110-111

세상 자체를 나아지게 해서 모두가 충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우리도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삶은 그렇게 세상과 어우러져 순환한다. 불교 철학의 이 미묘한 세계관은 우회 경로로 욕망을 실현하고자 정면으로 마주하는 욕망은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꼼수를 써도 우리 삶에서 불만족스럽고 불충분한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은 우리 개인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유지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세계관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미묘한 세계관이 더 필요하다. 다름 아닌 모두가 충분한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타인에게도 관심을 쏟는 ‘신경 쓰기의 기술’이다.
---p. 137

우리는 스스로 최고의 부모, 친구, 동료, 연인이 아니라고 생각함으로써 우리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우리가 최고, 완벽함, 위대함, 탁월함 같은 것들만 생각하지 않으면 최악으로 전락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의 관계는 그냥 충분하면 된다. 우리는 우리를 왕자나 공주로 떠받들어주는 엄마나, 언제나 “다해줄게!” 부모나, 아주 이따금 축구 연습장에 데려다주는 아빠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친구와 2년에 한 번씩 연락 줘서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대해질 아무런 까닭이 없다.
---p. 156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막대한 불평등이 초래되긴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시민의 일반적인 생활 수준은 향상된다는 논리는 ‘쿠즈네츠 곡선(Kuznets curve)’으로 뒷받침됐다. 이 모델에 따르면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할 때는 불평등이 증가하나 선진국으로 올라서면 특정 지점에서 고점을 찍고 감소하다가 안정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경제 성장이 지속해도 불평등은 증가하지 않는다. 쿠즈네츠 곡선은 존 F. 케네디가 1963년 10월 연설에서 차용한 다음 문구로 상징된다.
“밀물이 모든 배를 띄웁니다.”
그러나 광범위한 데이터가 확보되자 이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밀물이 모든 배를 띄우기는 했다. 문제는 요트나 군함은 그 밀물 덕분에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었지만, 가족용 고무보트나 개인용 카누는 뒤집혔다는 사실이다.
---p. 221

진화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가장 강하고 위대한 것만 살아남으리라는 생각은 더이상 들지 않을 것이다. 진화는 오히려 충분함의 철학에 걸맞은 개념이다. 문제가 해결책을 만들고, 해결책이 문제를 만든다. 삶의 복잡성과 환경적 상호 작용은 완벽한 적합이란 없음을 보여준다.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p. 320-321

위대한 소수가 정말로 내 삶을 나아지게 했는가?
누구는 너무 많이 갖고 누구는 너무 적게 갖는 우리 시대의 역설


2019년 브루클린 공공도서관 철학의 밤 콘테스트 우승작
2022년 파이낸셜타임스 비평가 선정 올해의 책
2022년 넥스트 빅아이디어클럽 최고의 행복도서
2023년 초이스 우수학술도서상


우리는 한마디로 ‘위대함(greatness)’을 강제당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잘나지 못하면 도태하고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내가 능력 없고 내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기에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른바 ‘능력주의(meritocracy)’ 이데올로기가 너무나도 강력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분명히 똑같은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능력이 모자란 탓’이라는 자기반성만 남을 뿐이다.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성공하고 행복할 자격을 잃더라도 할 말이 없다. 그 중심에 ‘위대함’이 있다. 위대해져라. 경쟁하라. 능력을 펼쳐라. 이기면 보상을 받으리.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정의’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조차도 능력주의의 폐해만 파고들었을 뿐 사전적 의미의 능력주의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기회균등’은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을 합리화하고 게임은 늘 ‘승자독식’으로 끝난다. 지독한 ‘제로섬(zero-sum)’이 계속된다. 좀 서글프긴 하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있어도 딱히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렵다. 제로섬 게임이 초래한 불평등은 어설픈 ‘복지’로 입막음한다. 그렇게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된다.
‘능력주의’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라는 기막힌 경제 개념과도 쌍을 이룬다. 천생연분이다. 능력이 탁월한 ‘위대한 소수’가 성과를 내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 대다수가 그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역시 매우 강력해서 주류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됐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일찍이 ‘위대함’의 타락을 봤지만, 사리사욕 추구를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이라고 판단하고 파우스트식 거래를 성사시키며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만을 남겨놓았다. 그에 따르면 ‘보이는 손’이 사회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려는 욕망을 부추겨 우리를 망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의 도덕적 품위는 회복된다. 소수의 뛰어난 자들이 ‘위대함’의 부담을 오롯이 떠맡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위대해지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괜찮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낙수 효과’를 일으켜 마침내 내게도 이득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의지하고 응원하라.

-‘위대함’ 지상주의가 모든 것의 원흉
세상은 그렇게 성장했다.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가 더 풍요롭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범유행을 거치면서 경제 상황이 열악해졌다고는 하나, 오늘날 세상은 확실히 이전보다 월등히 풍요롭다. 누구 덕분인 것 같으냐고 하면 떠오르는 ‘위대한’ 사람들도 꽤 있다. 엄청난 부를 이루고 그것을 나누면서 이타적으로 사는 ‘위대한’ 사람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황은 종료됐어야 한다. 이런 질문이 더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세상은 왜 불평등한가?”,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왜 누구는 계속 잘살고 누구는 계속 못사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능력과 재능에 따른 경쟁의 결과다. 받아들여라. 그런데도 불만의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그냥 투정일까? 콤플렉스일까? 화풀이일까? 그동안 수많은 학자와 사상가들이 이 문제를 분석해 ‘능력주의’와 ‘낙수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경쟁이 공정하지 않았고, 낙수 효과에 따른 분배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았단다. 따라서 정의와 복지만 손보면 해결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The Good-Enough Life)』의 저자 아브람 알퍼트(Avram Alpert)가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이다. 그는 이 부분을 바로잡지 않으면 누구는 너무 많이 갖고 누구는 너무 적게 갖는 우리 시대의 역설을 영원히 풀 수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질문에 대한 답을 질문에서 찾지 않고 그동안 답이라고 제시된 것들만 되풀이하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즉, 능력주의와 낙수 효과가 오용되는 행태가 아닌 그것들 자체가 문제다. 거짓이다. 허상이다.
그가 제시한 올바른 답은 ‘충분하지’ 않아서다. ‘그럭저럭 괜찮은’이 아닌 ‘충분히 좋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충분함(good-enoughness)’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여전히 소수의 ‘위대함(greatness)’만을 추구해서다. 그렇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위대함’이 아닌 ‘충분함’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했다. 계속 이런 식이어야 할까? 누구는 그저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누구는 최고가 되고자 앞서 나가고, 누구는 그런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그런 삶이 바람직할까? 내가 위대해지지 못하면 다른 이들의 위대함에라도 기대서 살아야 하는 그런 세상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까?
세상이 아무리 풍요로워져도, GDP가 올라도, 우주 경제를 논할 수준에 이르러도, 모두가 충분하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로 해소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충분함’은 상대적 충분함이 아니다. 모두가 충분하지 않으면 아무도 충분할 수 없다. 비교우위가 생기는 ‘충분함’은 ‘위대함’과 ‘열등함’으로 무한 분열할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누구는 넘치는데 누구는 부족하거나, 누구는 행복한데 누구는 불행해서는 안 된다. 보편적으로 충분해야 한다.

-완벽한 ‘충만함’이 아닌 그저 ‘충분함’
충분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면서 우리는 ‘충분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편차가 심한 개념이라서, 어떤 때는 꽉 찬 것을 충분하다 하고 어떤 때는 좀 모자라도 충분하다고 한다. 분명한 사실은 100% 완벽한 건 충분한 삶이 아니라는 점이다. ‘충분함’을 철학 용어로 사용하기로 한 이상 저자는 그 개념을 먼저 정의하고 논지를 이어나간다. ‘충분함’은 늘 여지가 있고 늘 차오르는 상태다. 다 채우면 완벽하지만, 결코 채울 수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충분한 삶’이란 누가 봐도 괜찮다고 할 만한 물질적·지위적 충분함을 누리면서도 삶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모든 나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삶이다. 이런 삶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배터리가 다 채워지면 위험해서 80% 정도를 완충 기준으로 세팅하듯이, 채울 여지가 남아 있되 절대로 전부 채울 수는 없는 불완전과 미완의 충분함이다. 이 충분함으로 우리는 상호 의존적인 인간관계와 자연과의 연결 고리를 망각하지 않게 되며, 삶에서 기꺼이 실패를 감내하고 희로애락을 온전히 느끼면서 목적의식과 도전정신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독자가 책을 읽는 중간중간 헷갈릴 줄 예상한 듯이 주의를 환기하면서 이 개념을 명확히 한다. 이처럼 공을 들여 ‘충분함’의 본질을 강조하는 까닭은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더 복잡한 것처럼, ‘위대해져야 하는’ 이유보다 ‘충분해져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충분함’을 떠올리면서도 자꾸만 ‘위대함’처럼 느껴지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위대함’에 깊숙이 매몰돼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충분함’을 마냥 좋기만 한 것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독서의 막바지에 이르면 모든 게 정리되고, 세계관이 바뀌었거나 바뀌려고 하는 경험을 마주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 또한 ‘충분함’의 일부다.

-내 삶과 우리 세상은 충분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위대함’에 기반을 둔 사회 체계를 ‘충분함’으로 바꾼다는 게 얼핏 말도 안 되는 이상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로 지금껏 우리 세상은 개인의 변화한 생각이 사회의 요구로 확대돼 거대 담론을 형성하고 정치를 움직임으로써 바뀌어왔다.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그 어떤 것도 모두 그렇게 발전했다. 관건은 개인의 생각 변화를 이끌 처음의 정리된 생각이 얼마만큼 공감과 지지를 받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충분한 삶’은 이 정도면 누구나 만족하는 삶이다. 소수의 위대함에 존중을 표하거나 열광할 수 있어도 거기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삶이다. ‘충분한 세상’도 마찬가지로 이 정도면 누구에게라도 괜찮은 세상, 비교나 경쟁에 매달릴 이유가 없는 세상이다. 이 책을 읽으면 확인할 수 있듯이 마치 진리인 양 회자하는 ‘능력주의’와 ‘낙수 효과’의 실효성을 주장한 이론, 즉 소수의 탁월한 사람들이 나머지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이론은 단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다. 엘리트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 이용됐을 뿐이다.
사실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것들이 허구임을, 심지어 정치계에서조차 그런 논리를 기반으로 추진해오던 ‘경쟁 교육’이나 ‘낙수 경제’가 더는 정책 기조가 될 수 없음을 안다. 표를 얻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본 소득’과 ‘보편 복지’ 같은 정책 의제가 매번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다. 더욱이 일부 진영이 꼬집던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비난도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되레 비슷한 공약을 내건다. 시대 흐름이 바뀐 것이다. 이 책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는 이 흐름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이론적 토대다.
모두가 충분한 삶, 모두에게 충분한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다. 실제로도 그렇게 가고 있다. 다만 ‘충분함’의 개념이 가리키는 것처럼 당연히 실패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으므로 천천히 변화할 것이다. 그래도 반드시 바뀐다. 그것이 충분함의 한계인 동시에 무너지지 않는 힘이다. 위대함이 아닌 충분함을 추구할 때 우리는 ‘적은 것으로 더 많이(more with less)’ 얻을 수 있다. 위대함을 추구하면 지금처럼 어떻게든 ‘적은 것에서 더 많이(more from less)’ 얻으려고 할 것이다. 행복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충분함’으로 달라져야 한다. 위대한 소수보다 충분한 다수가 행복해야 나 자신도 행복하다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충분함을 추구하는 세계관을 확립하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물질적 삶과 더불어 정신적 삶도 향상할뿐더러 사회적 결속력도 굳고 단단해진다. 충분한 삶이야말로 그동안 늘 입으로만 내세워온 ‘자유’, ‘평등’, ‘정의’라는 이상에 가장 잘 부합한다. 모두가 충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정의로울 수 있을까?

-‘위대한’ 유토피아가 아닌 ‘충분한’ 현실을 위해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는 우리 안에서, 서로 안에서, 세상 속에서, 자연 속에서, 과연 무엇이 좋은지, 충분한지, 불완전한지 모든 것을 다시 평가하는 철학적 논증이다. 철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근원적으로 관련이 있다. 철학만이 ‘충분한 삶’이라는 개념을 전방위적으로 확립할 수 있다.
충분한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삶의 오류와 실패는 계속되겠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라는 집단의 힘으로 완충함으로써 인간의 가치와 품위를 유지하는 사회다. 충분한 삶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부드럽게 포용하고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면서 모두의 충분함을 헤아릴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다른 인간과 연결돼 있기에 부정적 감정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세상이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만든다. 나만 충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모두가 충분하지 않으면 개인 역시 충분한 삶을 살 수 없다. 충분하지 못한 타인들의 삶이 돌고 돌아 결국 우리 삶을 불충분하게 만든다.
최고, 완벽함, 위대함, 탁월함 같은 것들만 생각하지 않으면 최악으로 전락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저 충분하면 된다. 충분하기만 하면, 모두가 다 충분하기만 하면, 모든 게 평화롭고 정의롭고 평등하고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대해질 아무런 까닭이 없다. 그 대신 전혀 다른 목표를 서로에게 권유할 수 있다. 서로 좋고, 행복하고, 어떤 때는 나쁘고, 어느 때는 함께 슬프고, 그러다가 다시 좋고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현실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이다.

작가정보

Avram Alpert
작가이자 교육자.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철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21세기 인간의 조건, ‘민주주의의 미래’, ‘사회적·경제적 변혁’이라는 세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정책을 제안하는 더뉴인스티튜트(The New Institute)의 일원이다. 유대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청년 시절부터 평등주의에 입각한 다인종·다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인종주의에 극렬히 저항하면서 불교 철학, 노장 철학, 이슬람 철학, 아프리카 철학 등 전세계 다양한 사상을 학계와 대중에 전파하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다문화 평론지 「쉬프터매거진(Shifter Magazine)」를 공동 편집했고, 2018년에는 다인종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작품을 소개하는 잭샤인먼갤러리(Jack Shainman Gallery) 내에 학제 간 예술 및 이론 프로그램(Interdisciplinary Art and Theory Program)을 신설해 고문으로 활동했다.「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가디언(Guardian)」 등 여러 매체에도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근대적 자아의 세계적 기원, 몽테뉴에서 스즈키까지(Global Origins of the Modern Self, from Montaigne to Suzuki)』(2019), 『부분적 깨달음: 근대 문학과 불교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완벽하지 않은 채 잘 사는 법(A Partial Enlightenment: What Modern Literature and Buddhism Can Teach Us About Living Well Without Perfection)』(2021)이 있다. 다음 책으로 “철학적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역설한 아프리카계 독일 철학자 안톤 빌헬름 아모(Anton Wilhelm Amo)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안타레스 대표.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단행본 출판 편집자로 일하면서 인문 및 경제경영 분야 150여 종의 책을 기획·편집했고 저작권 에이전트로도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지루할 틈 없는 경제학』(2022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과학이 권력을 만났을 때』, 『이코노믹 허스토리』, 『세네카가 보내온 50통의 편지』,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15분 만에 읽는 아리스토텔레스』, 『리더십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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