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연대의 경제학
2024년 04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0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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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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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내내 과소평가된 무급 돌봄 노동이 가족 내부와 경제 전반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득력 있게 파헤친다. _〈커커스〉
가부장제와 경제, 사회 및 정치의 복잡한 교차점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필독서. _자야티 고시 인도 자와할랄네루대 경제연구및계획센터 의장
야심 찬 기획에 숨이 멎는다. 이 책으로 교차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열겠다는 폴브레의 담대한 시도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다. 대단한 역작이다._하룬 아크람-로디 캐나다 트렌트대 교수
다양한 이론적 전통, 역사와 현대 생활의 증거로부터 추출한 핵심 통찰을 능숙하게 엮어 가부장제의 부상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 그 쇠락에 대한 담대하고 탁월한 해설을 제시한다. _나일라 카비어 런던정경대 교수
2023년 노벨경제학상이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의 주요 요인을 발견한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에게 돌아간 것은 시대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파 경제학과 이 대척점에 있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경제적으로 환산하지 않았던 여성의 비시장 노동을 경제학의 연구 대상으로 끌어들인 페미니스트 경제학의 성과에 대해 최초로 노벨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주도권을 거머쥐기 전과 후 모두 여성은 참정권만큼이나 경제적 권리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다. 여성은 주로 이전에 가사노동으로 불렸던 집안일에 특화되어 있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하고 공장이나 다른 허드렛일터에서 여성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자 여성은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야 했다. 여성의 일이 남성의 일보다 덜 중요하거나 부수적이어서가 아니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와 경제사학자, 여성학자에 의해 경제사 혹은 인류 역사 내내 여성은 젠더화된 경제 위계질서 안에 위치지어져 있었음이 밝혀졌다.
의미 있는 수상 소식이 답지한 즈음에 출간되는 낸시 폴브레(Nancy Folbre, 1952~) 메사추세츠대 경제학과 교수의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은 골딘에게 노벨상을 안긴 학술 업적보다 급진적인 주제를 다룬다. 골딘 교수가 노동시장에 참여한 여성의 저평가된 임금노동을 연구했다면 폴브레 교수는 초기부터 자신이 ‘돌봄 노동’으로 개념화한 여성의 비시장 노동을 연구해 왔다. 페미니스트 경제학 발전을 이끌고 돌봄경제학을 이론화한 낸시 폴브레 교수의 이번 책은 ‘교차정치경제학’이란 명칭으로 기존 경제학 이론과 도구 들을 종합하면서도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학 이론의 필요성을 제시하며 그 틀과 내용을 선보이는 의미 있는 저술이다. “마르스크주의 정치경제학, 신고전파 경제학, 제도학파, 행동주의 경제학, 게임이론 등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제학자로서, 문화의 영향, 시민사회와 정치 제도의 중요성, 집단 갈등과 전략적 행동, 이타주의와 의무/헌신 등 규범적 요소를 아우르는 전체론적 접근을 취한다.” 제도에 기반한 여러 차원의 사회적 불평등과 집단 갈등이 젠더, 인종/민족, 시민권, 계급 중 어느 한 축의 원인으로 환원되지 않으므로 교차적 접근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왜 가부장제 체제를 분석해야 하는가
가부장제 체제란 “가부장적 권력 구조가 다른 집단권력 구조와 역사적으로 고유한 방식으로 중첩되고 교차하는 체제를 뜻한다.”(21쪽)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동안 사회 분열이 극심해졌다. 생물학적 여성도 단일한 젠더 정체성으로 묶이지 않으며 근래에는 노동자 집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개인과 집단은 다양한 제도에 기반한 복수의 집단 정체성을 띠고 상호작용한다. 그 복잡다단한 협력과 갈등의 동학에서 가부장제 체제는 뚜렷한 부상과 쇠락의 궤적을 그렸고, 최근에는 재부상의 조짐마저 드러내고 있다.
가부장제는 이데올로기와 문화 규범을 형성하므로 집단권력 구조의 쇠락이라는 장기 추이와는 무관하게 변화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오늘날 부동산과 금융을 통해 양극화된 경제자산에 대한 통제력은 여전히 젠더화되어 있고 이 자산은 다시 권력을 지속시킨다. 가부장제는 약화되고 변화했지 망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역량에 투자하는 사람들의 권한을 박탈하고 특히 여성에게 불이익을” 안기다는 공통점을 가진 가부장적 제도와 자본주의 제도가 다시 결탁해 특권을 공고히 하려는 길을 차단해야 한다. 교차정치경제학은 약자 집단들이 이러한 불평등의 연쇄를 재생산하는 구조물의 생태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폭넓은 동맹을 조직하기를 돕는 이론적 도구를 자처한다. 99퍼센트를 위한 페미니즘을 넘어 99퍼센트를 위한 정치경제학이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절실한 때임을 일깨운다.
누구를 위한 이론인가
1부는 교차정치경제학을 위한 이론적 재구성 작업으로 이론화에 필요한 주요 개념들을 정의한다. 기존 이론들의 개념을 재정의하여 확장하기도 한다.
이론화의 첫 단계는 경제적 불평등이 지속되는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즉 개인(행위성)과 사회(구조) 중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는가에 관한 기존 학설의 주장을 뜯어보고 이론과 현실의 불일치점에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한 후대의 연구들을 검토한다. 아무래도 신고전파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자주 비교되는데, 이 두 학설은 그 지위에 비해 한계가 매우 뚜렷하다. 전통적으로 신고전파 경제학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행위자가 가득한 세상”, 즉 개인에 주목하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하나의 유해한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세계”, 즉 구조에 주목한다. 전자는 시장에서 교환을 통해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인간’의 이익 추구 행위가 비합리적 차별을 일삼는 고용주를 불리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도태시킬 거라 낙관한다. 하지만 개별 행위자의 행동을 결정한 ‘선호’가 제도 구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후자는 젠더 불평등이 오로지 계급 불평등에서 파생되었다고 설명하기 때문에 다른 제도 구조에 기인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때문에 남성이 남성의 집단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기만 하면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매도당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로서 두 이론의 기존 통찰을 포용하면서도 구조와 행위성의 상호작용을 보는 시야를 확대하는 이론적 혼성을 받아들인다. 실제로 오늘날 마르스크주의 학자들은 전통 이론에 부재하다고 여겼던 기술, 젠더, 생태에 관한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현대자본주의도 단순하지 않다. 북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가의 자본주의가 있으며, 신자유주의 정책 출현 이후로 여성 임금노동자가 증가한 현상 등은 자본주의 동학의 결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위치한 전문가-관리자 계급의 등장은 노동자 계급도 계층적으로 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윈주의의 다수준선택설은 개인과 집단의 동학에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행동경제학, 고도로 수학적인 접근법을 사용하는 게임이론과 협상 모델, 기술 변화와 사회 규범의 상호작용 등도 기존 이론을 보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행위성과 구조는 각기 교차적이며 서로 중첩된다. 개인과 사회는 나란히 간다. 이 사이의 인과관계는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개인은 젠더와 연령, 섹슈얼리티, 인종/민족, 시민권으로 정의된 집단 정체성을 가지며, 고용 형태나 자산 소유라는 범주에 사회적으로 배정된다. 이런 범주 중 일부는 상당한 경제적 결과를 낳는다. 이해관계와 정체성도 나란히 간다. 이와 같은 복잡한 정체성과 교차성은 일찍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로 하여금 현실에 보다 정합적인 이론틀을 개발하도록 이끌었다.
집단 갈등의 복잡성은 교차정치경제학을 추동했다. 교차정치경제학은 ‘경제적인 것’에 대한 더 큰 그림을 그릴 것을 주문한다. 이런 요구 앞에 우선적으로 재점검되어야 하는 영역 혹은 개념이 ‘재생산’이다. 저자는 재생산을 “인간 역량의 생산과 유지”로 정의하며, “신체뿐만 아니라 체화된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역량의 생산”을 뜻하는 ‘사회적 재생산’과 밀착되어 있다고
1부 이론적 도구
1장 교차정치경제학
협동과 갈등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우리 이야기
2장 가부장제 정의하기
누가 혜택을 받는가?
가부장적 권리와 규칙
가부장적 규범과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자산
3장 젠더와 구조, 집단 행위성
구조 대 행위성
구조와 행위성 중재하기
집단 행위성
경제적 이해관계 대 정체성 정치?
4장 전유, 재생산 그리고 생산
과정과 장소
누가 돌봄 비용을 지불하는가?
사회적으로 재생산된 불평등
생산을 넘어서
5장 위계 구조와 착취
경쟁, 협력, 조정
효율성과 불평등
협상과 착취
생산양식 대 위계 체제
2부 서사의 재구성
6장 가부장제 전사(前史)
가부장제의 역사
사회적 진화
혼종 위계 구조들
가부장적 식민주의
7장 자본주의 궤적
시너지
이주
재구성
상황이 복잡해지다
8장 복지국가 긴장
왜 복지국가인가?
자본주의적 발전과 가족의 변화
복지가 벽에 부딪히다
서사 바꾸기
9장 젠더와 돌봄 비용
가족 돌봄의 비용
유급 노동의 돌봄 불이익
공공 정책과 돌봄 불이익
돌봄의 미래
10장 분열과 동맹
판도 뒤집기
자본주의?
동맹 전략
부분적 승리
주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사회 전반의 불공정한 불평등을 이해하려면 가족 내의 불공정한 불평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 분할이 전적으로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거라면 때로 왜 그렇게 많은 사회제도가 이를 폭력적으로 강제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녀나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이야기his history로서 역사history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에 제도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가축이나 토지 같은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는 대체로 평등하다는 마르크스의 가정에 도전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제기한 보다 기본적인 원칙은 여전히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착취적 제도는 집단 내에서 이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더라도 집단 전체에게 이득이 되도록 잉여를 빼앗거나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_1장 교차정치경제학, 30쪽
전통적인 여성다움 규범은 여성에게 비용과 위험을 부과한다. 남녀의 분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만 양쪽을 동등하게 취급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법적, 문화적 경계가 허물어지면 여성은 남성 영역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다. 여성다움은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종은 보수가 낮고, 임금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은 무급 노동을 행하는 남성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늘었다. 가족을 직접 돌보는 남성 비중보다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여성 비중이 더 빠르게 증가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남성이 돌봄 노동을 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돌봄을 전담하는 것은 즉각적이고 확실한 경제적 보상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_2장 가부장제 정의하기, 59쪽
대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는 여전히 인간이 외부적으로 결정된 제약 아래서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양식화된 의사 결정 모델을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그러나 이제 주류 경제학 학회지에서도 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접근 방식이 나타나서 합리적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거나 전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견해에 도전한다. 기후변화가 끔찍한 비용을 유발하고 경제적 불평등이 급격히 증가하자 시장 교환이 초래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관심이 커졌다. 그리하여 시장 교환이 항상 효율적이라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확신은 훼손되었다. _3장 젠더와 구조, 집단 행위성, 88~9쪽
사회적 재생산은 계급의 사회적 재생산을 훨씬 넘어선다. 금융자본은 집단에 기반한 경제적 이점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다. 가치 있는 숙련을 개발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회 연결망에 결합할 수 있는 기회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촉진하여 오래 지속되는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가족과 지역사회, 국가와 기업은 인간 역량의 생산과 인간 지식의 발전,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이점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파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_4장 전유, 재생산 그리고 생산, 127쪽
꼭대기 승차자 문제의 중대성은 무임승차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고 다양한 형태의 권위주의적 위계 구조의 유사성은 위계 구조의 공진화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인류 역사에서 집단 갈등의 뿌리 깊은 유산은 쉽게 극복할 수 없지만 망나니 아빠와 망나니 고용주, 망나니 지도자의 권위를 박탈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민주적 협동과 평등한 기회, 상호 원조의 이상은 가부장제를 포함한 많은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에 성공적으로 도전했다. 더욱이 여성의 세력화는 더 큰 규모로 민주적 지배구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예고한다. _5장 위계 구조와 착취, 169쪽
다른 형태의 집단 갈등이 없는 상태에서 여성을 체계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을까? 젠더와 연령만을 기반으로 한 단순한 위계 구조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끊임없는 갈등과 협상에 취약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 복잡하고 교차하는 위계 구조는 그런 비용을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어서 여성 억압을 묵인할 만한 중첩된 동기를 만들어낸다.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권력을 가진 전제적인 통치자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역량에 가장 쉽게, 많이 접근할 수 있었다. 여성도 미래의 자녀를 위해 그들의 요구에 응했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의 권위에 종속된 남자들은 아마도 여성과 어린이에 대해 권위를 행사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집단권력 구조는 미묘하면서도 오래 지속되는 형태의 종속을 강제한다. _6장 가부장제 전사, 187~8쪽
21세기에 걸쳐 세계경제는 노동력의 수요 부족보다 공급 과잉으로 더 큰 고통을 겪었다. 국가주의의 부활과 전염병으로 국경이 폐쇄되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현재의 정치적 경향에 관계없이 역사적 기록은 자본주의적 팽창이 출산율 감소를 부추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임금노동의 증가와 시장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가족에 기반한 생산의 감소는 상대적인 양육비를 증가시켰다. 저출산으로 향하는 인구학적 변화는 인적 자본과 금융자본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다. 19세기 유럽과 영어권 국가에서 공중 보건의 혁신과 일부 지역의 임금 수준 향상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났는데 이는 재생산 노동의 생산성을 높였다. _7장 자본주의 궤적, 230쪽
국민소득계정은 공공 지출을 소비 지출로 지정하고 실제 지출한 금액만을 가지고 의료와 교육 같은 돌봄 산업 서비스의 가치를 평가한다. 인적 역량에 대한 민간과 공공의 지출은 모두 막대한 편익을 창출하지만, 이 편익은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소득계정에 들어가지 않는다. 복지국가가 공공 지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데 이는 가정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무급 돌봄을 평가절하하는 관행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_8장 복지국가 긴장, 251쪽
사회 프로그램에 대한 민주주의적 지지는 지출 삭감을 막았지만, 이익을 내는 기업과 엄청나게 부유한 자들에 대한 과세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재정 압박에 시달린 복지국가는 더 이상 지출을 확대할 수 없었다. 자본 이동성이 증가하고 역외 탈세가 쉬워졌으며 이런 위협으로 인해 과세 부담은 소득이 정체된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 복지국가에 대한 또 다른 압박은 끈질긴 가부장적 편향에서 비롯했다. 국가가 아이를 양육하는 비용을 양육자에게 별로 지원하지 않으면서 그 아이가 내는 세금으로 양육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에, 출산율은 대체 수준 이하로 떨어졌고 세대 간 이전의 지속가능성은 위태로워졌다. _8장 복지국가 긴장, 272쪽
타인에 대한 투자는 규범적 압력과 감정적 헌신으로 강화되어 양질의 돌봄을 보장하지만 돌봄 제공자의 협상력을 약화시킨다. 전략적 딜레마는 치킨 게임과 유사하다. 이 게임에서 두 선수는 다른 선수가 굴복하기를 바라면서, 다른 차를 정면으로 박아버리거나 아기의 더러워진 기저귀를 내버려두거나 아무튼 뭐든 하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아기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 더러워진 기저귀를 내버려두겠다고 말하는 위협이 가장 위협적이지 않다. 결국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은 아이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다. _9장 젠더와 돌봄 비용, 289~90쪽
여성이 남성보다 타인에 대해 관심을 더 갖는 타고난 성향이 있는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조건화되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그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돌봄 불이익이 커질수록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돌봄은 줄어들 것이다. 선한 행위를 벌하면 결국 선한 행위는 줄어든다. 이전 장에서 설명한 다수준선택의 진화론적 이론은 왜 이타적 행동에 제도적 강제가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여성에게 이타적 행동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면 타인에 대한 돌봄에 가치를 부여하고 보상하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헌신을 강제할 제도가 필요하다. _9장 젠더와 돌봄 비용, 306쪽
경제적 부의 편중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몇 년 전 우리 대학을 방문했을 때 한 대학원생이 그에게 왜 계급투쟁보다 조세 제도를 강조하는지 물었다. 그는 조세가 계급투쟁의 한 형태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다. 하지만 과세는 여성과 유색인종,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국가에 사는 사람과 미래 세대의 상대적 복지를 잠재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공적 투자에 지출되는 비용의 분배를 둘러싼 투쟁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차하는 집단 갈등의 드라마를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제 이론들은 이런 투쟁을 대체로 감추어버린다. _10장 분열과 동맹, 339쪽
5장에서 설명한 협동적 갈등의 논리에 따르면 집단은 협동에서 얻는 이익의 몫이 불평등해도 그들이 인지하는 차선책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위기와 그에 따른 경제적 충격은 글로벌 불평등의 주요 단층면을 드러낸다. 인류 역사 초기에 나타난 가부장적 권력 구조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자본주의적 권력 구조도 당연하고 불가피한 귀결로 보이지만 난공불락은 아니다. 자본주의 편익이 일부에게만 쏠리고 건강과 환경 비용이 누적된다면 이 체제도 구부러지고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민주화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_10장 분열과 동맹, 345쪽
작가정보
(Nancy Folbre)
매사추세츠 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같은 대학 정치경제학연구소(PERI)에서 운영하는 ‘젠더와 돌봄 노동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으며, 바드 대학교 경제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돌봄경제학 분야의 선구자로, 인류 역사 내내 거의 여성이 수행해 온 무급 돌봄 노동, 비시장 노동, 재생산 등의 연구에 헌신한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이기도 하다.1998년 각 분야에서 탁월한 독창성과 헌신을 보여준 인물에게 수여하는 맥아더상을 받았다. 대중경제학센터 상임경제학자, 호주국립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사회정치이론 프로그램 객원교수, 맥아더재단 가족경제연구네트워크 부회장, 세계은행 국제노동기구 인구협의회 자문위원, 세계여성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뉴욕 타임스〉 기고와 블로그 ‘CARE TALK’ 운영을 통해 대중적 소통도 활발하다. 2001년 저작 『보이지 않는 가슴』이 우리말로 번역되었고, 『누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지불하는가?』 『자녀의 가치: 가족 경제 다시 생각하기』 『탐욕, 욕망, 젠더: 경제 사상의 역사』 등을 지었다.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여실히 드러난 돌봄 노동, 재생산,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역사적 맥락과 주요 경제 이론을 폭넓게 활용해 교차적으로 분석한 역작이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공부한 후, 매사추세츠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여성주의 가족경제학과 돌봄 노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위원을 지냈다. 『보이지 않는 가슴』을 우리말로 옮겼고 여러 권의 여성주의 저작을 함께 옮겼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열 가지 당부』가 있다. 돌봄 노동/경제, 젠더 불평등에 관한 여러 논문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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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기한내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소멸됩니다.) - 무제한 이용권일 경우 열람권 선물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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