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의 N회차 인생
2024년 04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1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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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2988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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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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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이 소설에서 중심 이야기가 아니다. 결말에 이르러 이 소설만의 온기를 느낄 수도,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 있지 않다. 어떤 면에서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에는 사회가 청소년에게 부여한 이미지와 규범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적당히 착하거나 적당히 나쁜. 일탈은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가정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규범에 관한 질문들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벌레와 곤충의 차이는 뭔지. 벌레는 살려줘야 하지만 왜 치킨은 시켜 먹어도 되는 건지. 벌레와 닭의 차이는 뭔지. 모기는 죽여도 되지만 왜 고양이를 죽이면 사이코패스가 되는지. 인간과 인간쓰레기의 차이는 뭔지.”
규범에 관한 질문이 꼭 이런 직접적 질문을 통해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미람은 필리핀 혼혈 여고생이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필리핀인. 미람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답지 않게 주눅 들어 있지도, 정체성을 고민하지도 않는다. 미람은 단지 냄새 나는 아저씨들을 싫어하듯이 자기 아버지를 싫어하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려줄 쿠션팩트 없이는 외출하지 않으며, “금발 백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안 부르면서(‘국제결혼’이라고들 한다), 꼭 못사는 나라 사람이랑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다문화’라는 말을 붙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할 뿐.
“미람아. 이번 생이, 그러니까 ‘세르게이의 삶’이 나에게 다섯 번째 인생인 거 알고 있니?”
그것은 다른 주인공, 세르게이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완벽한 한국인(“완벽한 한국인이라는 건 간단히 말하자면, 김치 없이 밥을 못 먹는 녀석이라는 뜻이다”)으로 자란 세르게이는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첫 번째 삶에서 두 번째 삶으로, 두 번째 삶에서 세 번째 삶으로, N회차 삶으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생은 흔히 웹소설에서 주인공이 일종의 도약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지난 삶에서 저지른 잘못을 수정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계기 말이다. 하지만 (이미 짐작하다시피) 이 소설에서 그런 예상은 번번이 어긋난다.
이 기묘하고 더없이 독특한 소설은 농담과 진실이, 동문서답과 우문현답이, 헛소리와 진심이 뒤엉켜 있다. 안개가 덮은 풍경처럼, 경계선 없이. 이 날것의 소설이야말로 진정 청소년을 위한 소설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제멋대로 지워 버리고 수정하고 왜곡한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짜 맞춘 듯한 ‘청소년다운’ 주제가 없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웃을 수 있을 만큼 웃기다. 한 번 비극을 말하기 위해 만 번을 희극적으로 말하는 소설, 그게 바로 《세르게이의 N회차 인생》이다.
2장 못과 우럭에 대한 감각
3장 세르게이의 편지
4장 “길드에 들어오실래요?”
5장 운명의 수레바퀴
6장 명성황후와 시 혐오자들
-부제: 인생의 묘미는 만남에 있다
7장 동굴 할아버지와 임플란트
8장 감상적이고 현학적인 시급 9620원의 깡패
9장 도둑을 위한 도서관
10장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11장 용서할 순 있어요, 잊지는 못해요
12장 노루발장도리
13장 자주는 아니고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작가의 말
“다문화가정? 웃기시네. 나는 저 ‘다문화’라는 말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문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구석에 무슨 놈의 다문화인지. 그리고 금발 백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안 부르면서(‘국제결혼’이라고들 한다), 꼭 못사는 나라 사람이랑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다문화’라는 말을 붙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_10쪽
“거짓말이다. 나는 머리가 좋지도, 착하지도, 밝지도 않고 친구도 없다. 나는 어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는 어둡고 뒤틀린 아이가 되었다. 나는 내가 이 어둠을 직접 선택한 것이라고 믿어야겠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그렇게 믿어졌다. 그러자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며 밝은 아이가 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두운 아이는 옳지 않은 걸까? 친구가 없으면 잘못된 걸까?” _11쪽
“내 첫 번째 삶은 말이지, 개미였어. 나는 일개미였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일개미로서의 삶에 회의감이 드는 거야. 맨날 얼굴도 본 적 없는 여왕개미한테 갖다 바칠 먹이나 구하러 다니고. 일이나 죽도록 하고. (…) 그런데 거기서 더 큰 문제는 뭐였냐면, 어느 순간엔가 여왕개미의 삶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거야. (…) 난 깨달았어. 그냥, 개미로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라는 것을.” _31쪽
“꿈속에서 나는 그런 세르게이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다가가서 나 미람이라고, 나를 기억하냐고, 예전에 한국에서 너랑 친구였다고,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꿈에서 깬 나는 울었다. 내가 한심해서 울었다. 나는… 영어를 못했다.” _60쪽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런 걸 바라고 물었다. 나는 세르게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성황후를 한심하게 여길 것도 없었다. 나 역시 세르게이가 불쌍하다고 소리 내서 말하지 못했으니까. ‘불쌍하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세르게이의 인생이 정말로 불쌍해질 것 같았다. 말이라는 것에는 이상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_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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