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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는 맛

최민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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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4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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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2.36MB)
ISBN 979114160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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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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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쓸쓸하면서 온기가 느껴지거나
애틋하면서 서늘한 묘한 지점에 도착하게 된다.”_문지혁(소설가)

평범한 일상의 틈새로부터 빛나는 서사를 이끌어내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최민우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힘내는 맛』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등단 당시 “이토록 강력한 실감과 생기 넘치는 인물들을 만난 건 몹시 오랜만”(소설가 권여선)이라는 평을 받으며 범상치 않은 작가의 등장을 알린 최민우는 핍진한 현실 묘사와 정감 가는 인물들, 그리고 반전이 있는 환상적 장치들을 통해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왔다. 이번 소설집은 훨씬 더 능숙하고 대담해진 최민우의 서사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범한 듯 보이는 일상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과 고요한 풍경 이면에 숨어 있는 반전이 돋보인다.
이번 소설집에 엮인 일곱 편의 소설에는 공통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업사원, 번역가, 계약직 사원, 자유기고가, 연구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특출한 능력을 가졌거나 높은 급여를 받는 인물들이 아니다. 이들은 코로나 때문에 직장에서 무급 휴직을 당하거나(「변함없는 기분」) 함께 일하던 후배가 그만두는 바람에 마음의 동요를 겪거나(「가을의 곡선」) 출장지에서 일어난 해프닝에 곤란해하는(「힘내는 맛」), 우리가 출근길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인물들이 겪는 실패와 좌절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우리가 그렇듯 인물들 또한 그들이 마주한 벽을 드라마틱하게 넘어서지는 못한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슬픔을 과장하지도 회복을 단언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최민우는 우리에게 뜻밖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몫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평범하지만 분명한 위로를 주는 그 진실을 말이다.
우주의 먼지 _007
보라색 사과의 마음 _037
변함없는 기분 _063
가을의 곡선 _095
보호색 _127
요시히로의 자리 _157
힘내는 맛 _189

해설 | 이지은(문학평론가)
무뎌지는 맛 _221

작가의 말 _243

“저는,” 한철이 말했다.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 땐 저 자신을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그랬어요. 지난번에 수업을 빠진 것도 사정이 좀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우주는 아주 넓고 지구는 우주에 비하면 무척 작은데, 먼지는 더 사소하잖아요. 정말로 커다란 공간에 수많은 것들이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이 돼요.”(「우주의 먼지」, 21~22쪽)

대본을 읽다가 고개를 들자 구석에서 어떤 남자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흘리며 한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는데, 그 순간 한철은 시선이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생물 앞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그게 뭔지 설명은 못하지만 그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다. 한철은 들떴다.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 채 줄곧 원하던 걸 방금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지금껏 답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흙에서 막 고개를 내민 새싹처럼 올라와 파릇하게 흔들렸다.(「우주의 먼지」, 29쪽)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그가 남긴 모든 것은 수수께끼가 된다.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지극히 당연했던 것들,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들 전부가 해명을 기다리는 것으로 변한다. 남은 사람들은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까지고 그 수수께끼를 붙든다.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되어버린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 단서도 남아 있지 않은 고대의 문자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해독이 불가함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비석을 쓰다듬는 사람처럼.(「보라색 사과의 마음」, 51쪽)

우리는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타인을 추측할 뿐이다. 박쥐의 경험을 상상할 수 없듯 좀비의 내면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라는 집에 연금된 죄수인데, 이 집에는 문도 창도 없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당신은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모른다. 우리는 오로지 언어라는 가느다란 실을 통해서만 연결되어 있는데 언어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러니 묻겠다. 당신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당신은 어떻게 우울한가? 어떻게 즐거운가? 어떻게 슬픈가? 혹은 어떻게 슬프지 않은가? 당신이 감각하는 슬픔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혹시 나의 기쁨과 같은가? 아니면 나의 평정과 같은가? 우리는 어떻게 자아라는 껍데기를 부딪치는 것 이상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나?(「보라색 사과의 마음」, 52쪽)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제게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저는 침식을 잊고 슬픔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치 슬픔이라는 쇠사슬에 묶인 광인처럼 몸부림을 쳤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그렇게 정신없이 슬픔에 빠져들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것이 결국 어느 정도는 행운으로 작용했던 듯합니다. 저는 슬픔 속에 제 상실을 흘려보낼 수 있었지요. 흘려보내지 못했다면 슬픔은 결국 단단한 칼이 되어 저를 계속해서 찔렀거나, 혹은 갑옷이 되어 저를 세상으로부터 차단시켰을 것입니다. 당신의 경험과 현재의 처지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저는 당신에게도 그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필요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책을 번역하는 것보다 그 일이 우선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제 책을 계속 번역해주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글에 공명하는 번역자를 만난다는 건 저자 입장에서 대단한 행운이니까요.
물론 인간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오래전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설사 우리가 끝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무리 희미할지언정 어떤 식으로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종이컵에 실을 이어 만든 장난감 전화로 속삭이는 어린아이들처럼.(「보라색 사과의 마음」, 58~59쪽)

“저는요, 사람들이 사과를 하지 않는 데 지쳤어요.”
윤미 선생이 말했다.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아요, 아무도.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요.”
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윤미 선생이 콧등을 누르며 마스크를 고쳐 썼다.
“그러니까 제 행동의 이유를 따지려 하지 마시고, 해결 방법만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변함없는 기분」, 88쪽)

“네. 흔히들 그러잖아요.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고. 저는 긴쓰기가 그 생각에 기반을 둔 기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련의 흔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거죠. 하지만 도로 고친다 한들 더는 아무 쓸모 없어진 존재에게 시련이란 무얼까요? 더러워진 골판지 상자를 긴쓰기로 수선한다 해도 누가 거기에 물건을 넣을까요? 그럴 때도 시련이 가치를 갖는 걸까요? 어쩌면 시련을 극복할수록 더 엉망이 되지 않을까요?”(「가을의 곡선」, 118쪽)

“이제부터 할 얘기는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네.”
“다음에 전화가 걸려오면 꼭 받으세요. 제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전화를 하셨어요. 그 전화를 받지 않은 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요. 후회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 잊을 수는 없을 거예요. 돌에 새겨진 글자처럼.”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 보이던데요.”
“제 문제가 뭔지 모르잖아요.”
“물론 저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에요.”
크리스티안이 이어서 덧붙였다.
“하지만 모른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네요.”(「가을의 곡선」, 125~126쪽)

인터뷰는 오후 세시가 넘어 손님이 뜸해지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원조 막국수’의 주인은 수더분한 인상에 팔뚝이 유난히 굵은 중년 남자로, 연하씨의 페이스북 친구에 따르면 후처의 자식이었다. 대를 잇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아버지가 물려준 비법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내가 묻자 주인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아버지가 특별히 가르쳐준 비법은 없고 자기도 물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입맛이란 세월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라 계속 개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수받는 비법 같은 건 사람들의 생각만큼 중요하거나 본질적인 게 아니라면서. 그래도 자기가 아버지에게 배운 게 있다면 매일 아침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가게문을 여는 마음가짐이라고, 솔직히 말해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마음가짐만큼은 확실한 사람이었다고, 사실 그 자세야말로 장사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가르침이라 생각한다고 차분히 말했다.(「보호색」, 154~155쪽)

일을 마친 뒤 컴퓨터와 전등을 끄고 방문을 닫으려는데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교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잔불처럼 깜박였다. 흡혈귀. 좀비. 수직과 수평. 설사 인간이 그런 괴물이 된다 한들 뭐가 문제일까?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누군가 꾸며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위안을 주려고 창조되었는지도 몰랐다. 여기 아닌 어딘가에 지금과 이어지는 다른 삶이 있을 거라는, 설사 험악하고 두렵고 컴컴해도 어쨌거나 삶이 있을 거라는 위안.(「요시히로의 자리」, 175~176쪽)

상아씨는 끌려다니기 싫다는 말을 자주 했다. 상아씨에게 유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훨씬 뒤로 튕겨나간다는 것을 뜻했다. 왜냐하면 고무줄에는 탄성이 있으니까.(「힘내는 맛」, 208쪽)

상아씨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둘 다 분명히 알았다. 준비고 방법이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있어야 할 때 그 자리에 있는 것, 떠나야 할 때 그 자리를 떠나는 것, 때로는 그게 전부라는 것을.(「힘내는 맛」, 209쪽)

고단한 어제와 오늘을 지나 새로운 마음으로 내일을 시작하기 전,
잠시 앉아 마음을 돌보며 한 잔 들이켜는 재충전의 맛

소설집의 문을 여는 「우주의 먼지」는 영업사원 한철이 우연히 연극을 배우면서 시작된다. 거래처 직원로부터 표정이 딱딱하다는 지적을 받은 한철은 그걸 고치기 위해 연극을 배우게 되고, 뜻밖에 연극 수업을 받는 동안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행복을 느낀다. 평소 회사일과 가족에 얽매여 살아온 한철은 연극을 하며 무대 위에는 자신뿐임을 인식하고 비로소 자유롭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는 연극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결심까지 하지만, 공연장에 가족들이 찾아오면서 그의 꿈은 산산히 부서진다. 한철은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즉 “자기가 가질 뻔했던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34쪽)아챈다. 달콤하기만 했던 한철의 꿈이 현실의 침입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가족이라는 족쇄에 얽매인 인물은 또 있다. 표제작인 「힘내는 맛」의 경완은 인문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동료이자 연인인 상아와 함께 유학을 가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경완이 유학 자금으로 모아둔 돈으로 형을 도와야 한다고 다그”(208쪽)치면서 경완의 꿈 역시 흩어져버린다. 유학을 포기하고 상아와도 멀어진 뒤 복잡한 마음으로 출장길에 오른 경완은 먹고 싶지 않은 점심 메뉴를 먹게 된 상황에서 “스스로의 의지에 관계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때”(207쪽)가 있다고 자조하는데, 이는 가족이라는 족쇄에 묶여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억누르는 경완의 현재 상황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말일 것이다.
「보라색 사과의 마음」 속 은영 또한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출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은영은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 무너져버린 부모님 대신 “상황을 파악하고, 장례를 치르고, 공판에 참석하는”(43쪽) 일들을 처리하고,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울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은영에게 “어느 순간 댐이 무너지듯 슬픔이 밀려올 거라고”(44쪽) 말하지만 은영에게는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동생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해서 되짚으며 수수께끼로 남아버린 단 몇 분의 상황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은영은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약도 처방받아 먹는 아버지와 달리 이 슬픔을 극복할 수 없다. 슬픔을 느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을의 곡선」의 진송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진송은 자신과 절친했던 동료 혜진의 갑작스러운 이직 통보에 서운함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부인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 모든 것이 이유일 수도 있었지만, 그중 어떤 것도 아닐 수 있었다”(104쪽)며 자신이 느끼는 서운함을 외면한다. 코로나로 무기한 휴직을 당한「변함없는 기분」 속 상진도 그렇다. 상진은 휴직중 회사 대표의 연락을 받는다. 회사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의 진행자였던 윤미 선생이 자신의 SNS에 회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면서, 윤미 선생에게 그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라는 것이다. 상진은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대표의 부당한 요구를 전하기 위해 윤미 선생을 찾아가 그녀를 설득한다. 불편한 자리에서 돌아온 상진은 “외로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닌 기분”(93쪽)을 느낀다고 말하는데, 상진의 막막한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는 지금 외롭고 슬프고 괴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진을 비롯한 인물들은 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걸까.
이들은 모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무감해지려고 함으로써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도된 무감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디기 위한 방어기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절망을 절망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이들의 평안한 일상에는 균열이 생긴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아무렇지 않다는 거짓 감정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반복되는 삶에서는 매일 같은 맛이 난다.
좀더 ‘맛있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가 하면 자기 자신의 본질까지 억누르려는 사람들도 있다. 「보호색」의 ‘나’는 선배의 부탁으로 사진관 주인을 인터뷰하러 나갔다가 그와 갈등을 겪는다. 처음에 ‘나’는 사진관 주인이 별 이유 없이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유에 대해 전혀 짐작하지 못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나’가 이전 직장에 있을 때 악연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가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하고 자신의 신변을 철저하게 감춘 탓에 그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관 주인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모종의 이유로 이전 직장과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둘은 각자의 과거를 숨기고 자신만의 보호색을 두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시히로의 자리」의 ‘나’는 조금 더 특수한 경우에 처해 있다. ‘나’와 아내 정화는 오래도록 비어 있던 옆집에 입주할 예정인 일본인 ‘요시히로 씨’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요시히로 씨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나’는 그의 집 바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걸 보게 된다. 더욱 수상한 건 시간이 흘러도 요시히로 씨는 이사를 오지 않고, 정화의 행방이 갑자기 묘연해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가 회사에서 횡령을 저질러온 사실이 밝혀진다. 경찰에 쫓기게 된 ‘나’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신분을 숨긴 채 생활하고, 한 골목에서 시비가 붙자 자신을 일본에서 온 ‘요시히로’라고 거짓말하기에 이른다. 요시히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의 집에 난 구멍은 대체 무엇일까. ‘나’와 요시히로는 어떤 관계일까. 중요한 것은 ‘나’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겨왔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본질을 숨기는 것만이 평온한 일상을 이어나가는 해결책일까. 인물들의 곁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물들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다시 볼 일 없”(207쪽)는 타인들이다. 「힘내는 맛」의 고승재, 「보라색 사과의 마음」의 이소벨, 그리고 「가을의 곡선」의 크리스티안이 그렇다. 「힘내는 맛」의 경완은 출장지에서 만난 승재에게 그간 자신이 억눌러온 감정을 표출해 보인다. 승재는 그에 응답하듯이 경완에게 자신의 복잡한 가정사와 막막한 진로에 대해 털어놓는다. 「보라색 사과의 마음」의 이소벨은 은영이 번역하는 책의 저자로, 은영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은영에게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제게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58쪽)다고 고백한다. 「가을의 곡선」 속 크리스티안도 혜진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는 진송에게 자신이 스승과 갈등했던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모른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126쪽)다고.
이소벨은 은영에게 보내는 메일의 말미에 이렇게 적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무리 희미할지언정 어떤 식으로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59쪽) 다시 볼 일이 없기에 서로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털어놓는 이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각자 다른 경험을 했지만 그 경험이 어느 정도 닮아 있음을 인식하게 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경완이 승재가 ‘힘내는 맛’이라며 건넨 음료를 받아드는 장면이나 은영이 마침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고 상처를 극복해내야만 제대로 사는 것일까. 최민우의 소설은 한 가지 방법이 옳다는 식으로 우리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않는다. 「가을의 곡선」에 등장하는 미술가는 “깨진 부분을 감추는 게 아니라 더 돋보이게” 만드는 수선 기법인 ‘긴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련이 가치를 갖는”다거나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118쪽)한다는 낙관적인 말들에 의문을 표한다. “어쩌면 시련을 극복할수록 더 엉망이 되지 않을까요?”(119쪽) 이 말은 작가 최민우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말로 읽히기도 한다. 시련을 극복하는 것만이 삶의 정답은 아니라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도 괜찮고 회피해도 괜찮다고, 어떤 방법이든 자신의 마음과 삶을 지켜낼 수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좋다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나는 당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당신은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모”(「가을의 곡선」, 52쪽)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종이컵에 실을 이어 만든 장난감 전화로 속삭이는 어린아이들처럼” (「가을의 곡선」,59쪽)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경험을 갖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서로 닮은 경험을 지닌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힘내는 맛’ 음료를 건넬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집의 제목인 ‘힘내는 맛’을 들여다보자. ‘힘나는 맛’도 아니고 ‘힘내는 맛’이라니.「힘내는 맛」 속 경완이 지적했듯이 이 음료는 엉터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최민우가 우리에게 건네는 일곱 편의 『힘내는 맛』은 힘이 저절로 솟아오르게 하는 마법의 약이 아니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잠깐 한숨 돌리며 마시는, 다음 발걸음을 떼게 할 에너지를 주는, 그리하여 우리가 직접 힘을 낼 수 있도록 어깨를 툭툭 치는 매력적인 맛임은 분명하다.



맛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세상에는 두 가지 맛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맛있다’와 ‘맛없다’. 하지만 경험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그 ‘맛있다’와 ‘맛없다’ 사이에 존재하는 맛이 실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맛 역시 하나의 좌표계이자 스펙트럼이기 때문이다.
최민우 소설의 맛은 복합적이다. 소재와 관심사가 다양한데다 지적인가 하면 유머러스하고 사실적인가 하면 환상적이고 서사와 플롯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를 불쑥 깨뜨린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번번이 쓸쓸하면서 온기가 느껴지거나 애틋하면서 서늘하거나 울 수도 웃을 수도 그렇다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어떤 묘한 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하나로 축약할 수 없는 맛, 달고 짜고 쓰고 맵고 떫은 다양한 맛이 적절한 균형과 조화로 한꺼번에 느껴질 때 우리는 단순히 맛있다거나 맛없다는 납작한 말 대신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깊은 맛이야. _문지혁(소설가)

우리가 각자의 수조에 갇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처럼, 아무리 구차하고 지질한 것이라 해도 각자의 인생은 모두 각자의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겪어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수인囚人으로서 견뎌야 한다는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또 하루를 맞이하는 것.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면, ‘견디는 삶’은 동어반복일지 모른다. 견딤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힘내는 맛』은 이 견딤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를 과장 없이 거짓 없이 발견해내어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물론 웰컴 드링크는 준비되어 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게, 무심한 듯 다정하게, 그렇게 당신은 초대에 응하면 된다. _이지은(문학평론가)

작가정보

저자(글) 최민우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 장편소설 『점선의 영역』 『발목 깊이의 바다』가 있다. 제3회 이해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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