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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이가라시 다이 지음 |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24년 04월 19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4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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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54.40MB)
ISBN 97911698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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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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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작가 이가라시 다이가 농인 어머니의 삶을 취재해서 쓴 에세이이다. 1950년대에 가족 중 유일한 농인으로 태어난 어머니가 언어를 갖지 못한 채 보낸 유년 시절부터 수어를 배워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된 농학교 시기, 농학교에서 만난 아버지 고지와 결혼해 주변의 우려 속에서 자신을 낳기까지 30여 년에 걸친 시간을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와 당대 농사회의 현실을 엮어 복원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들리지 않는 사람들’과 ‘들리는 사람들’이 차이에 갈등하면서도 공생의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온 날들, 일본 농사회와 농교육 현장이 걸어온 길, 장애인의 출생을 막는 우생보호법이 존재하던 시기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그들을 지원하며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한편 이 책은 농인 부모의 언어인 수어를 충분히 익히지 못해 자라는 내내 외로웠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수어를 다시 배우고 농인의 역사를 공부하며 어머니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무런 소통 수단 없이 고립되었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온 세상과 불화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포개어보며, 또한 다른 언어를 가진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족과 이웃, 사회가 각자의 자리에서 했던 노력들을 알아가며 비로소 과거와 화해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과거로부터 받은 소중한 것을 가지고 어떤 미래를 꾸려가야 할지 그 실마리를 찾는다. ‘차이’를 넘어서는 첫걸음은 ‘물어보는’ 것이다. 용기 내어 묻고 답한다면, 과거가 남긴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힘차게 손을 내미는 책이다.
프롤로그
주요 등장인물 소개

1장 어린 시절
시오가마에서 태어나다
첫 귀성
첫 취재
‘들리지 않는 아이’가 되다
일반 학교로 진학하다
농인의 역사 ⸺ 모리 소야 씨에게 듣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각

2장 두 언니
첫째 사치코
“걱정했지”
둘째 유미
“걱정은 안 했어”
통역자로서

3장 모교로
입학 ⸺ 수어와의 만남
요코자와 씨와 오누마 선생님
미야기현립청각지원학교
작은 교실
진학과 관련된 선택
‘구화’에 관하여

4장 어머니의 은사
추억과 후회
은인
구화와 수어 사이에서
청각 활용의 한계
정면으로 부정하다
‘적절한 교육’이란
“사에 짱 같은 아이들 덕분에”

5장 아버지(고지)와 결혼하다
짝사랑
부모님에게 소개하다
아버지의 과거
“항상 방글방글 웃으라고 했어”
‘선의’의 반대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한다”
우생보호법 재판 ⸺ 후지키 가즈코 씨와 함께
2022년 3월 센다이고등재판소

6장 어머니의 출산
사랑의 10만 인 운동
무엇을 빼앗겼는가
가해자의 자손
새로운 생활
내 이름 ‘다, 이’
“내 귀는 들리지 않아”

에필로그
후기
참고문헌
인터뷰 시기와 횟수
옮긴이의 말
추천사

집에 돌아오니 평소 내가 얼마나 소리에 둘러싸여 지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도쿄에서의 생활은 정말로 시끄러웠다. 이제는 시끄러운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을 텐데도 이렇게 조용한 공간에 들어오면 확실히 나는 안심하고 만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작은 한숨이나 눈 깜박이는 소리마저 들릴 듯이 조용한 공간. 이 세계에 들어오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이제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 27~28쪽

언어를 빼앗기는 것은 권리를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는 그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빼앗은 이는 누구인가? 어머니에게 수어를 가르치지 않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였을까?
〈반드시 가족이 나빴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적 억압이 강한 시대였습니다. 수어를 사용하면 ‘한심해 보이니’ 하지 말라고 하던 시대였으니까요. 그중에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을 ‘동물 같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47쪽

“그때 내 마음을 알아챈 거야, 사에 짱이. ‘유미 짱은 귀도 들리고 아무 장애도 없는데 왜 죽으려고 해? 나는 귀도 안 들리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지만 죽으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단 말이야!’라고 야단을 쳤어.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단다. 그러니까 다이 짱의 엄마는 실은 아주 강한 사람이야.” - 66쪽

“코로나의 영향으로 두 달 동안 휴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모두 친구를 만나지 못해 외로웠을 거예요. 휴교가 끝나자 학생들이 엄청난 기세로……. 교사 입장에서는 ‘너희 그렇게 서로 달라붙으면 안 돼’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요. 정말 겨우 친구와 만나서, 딱 달라붙어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 학교는 머무를 수 있는 소중한 장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농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는 항상 즐거워 보였다. 수어라는 언어와 친구를 얻은 이곳은 어머니에게 몹시 커다란 의미를 지닌 공간이리라.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건 정말로 중요한 일이지요.” - 97쪽

“수어를 사용해 소통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서로 주고받더란 말이지요.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모두 즐겁게 수어로 수다를 떨거든요. 거기에는 교사가 낄 수 없을 정도지요. 들리지 않는 아이들에게 시각적인 소통은 그만큼이나 편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인 거예요. 하지만 수업 시간이 되면 교사들은 구화로 수업을 합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농교육계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헛발질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113쪽

〈중등부 때까지는 모두 사이가 좋아서 정말 즐겁게 지냈어. 하지만 고등부로 진급하고 나니까 고고타 분교에 다니던 학생들도 이쪽으로 와서 같이 다니게 되었거든. 성격이 안 맞는 아이도 있었고, 험담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도 있었지. 그래서 조금씩 학교가 싫어졌어. 그만 다니고 싶었지.〉
사에코가 학교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때는 고등학교 3학년 1월이었다. 한두 달만 더 다니면 졸업이었는데 그 정도를 기다리는 것조차 싫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고지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그만둘까 싶은데.〉
그러자 고지가 놀라운 제안을 했다.
〈그럼 나도 그만둘게. 도쿄에 같이 가자. 거기서 살자.〉 - 134쪽

나에코는 사에코에게 “결혼을 하려면 꼭 귀가 들리는 사람이랑 해”라고 말했다. 농인끼리 결혼하면 고생할 것이 불을 보듯 확연하니 들리는 사람과 결혼하여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한다면 나와 같은 농인이 좋다고 생각했어. 나는 들리는 사람이 하는 말을 몰라. 하지만 농인끼리라면 수어로 서로 이해할 수 있잖아?〉
(…) 단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바라는 미래를 빼앗기는 건 정말 싫다고 사에코는 생각했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사에코는 결심했다. 고지와 결혼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이는 내가 키우겠다고 말이다. - 142~143쪽

“들리지 않는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친척들이 모두 어머니를 비난했습니다. 장애인을 낳았다면서 차별했어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았기 때문에 저는 제 스스로가 아이를 갖는 게 무서웠어요. 정신적으로 불임 수술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우생보호법 피해자를 못 본 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변호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만약 남동생과 제가 태어나는 순서가 바뀌었다면 저는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에 낳는 아이도 귀가 들리지 않으면 어떡할 거야?’라는 의견이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회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장애를 이유로 당사자와 가족이 억압받는 것은 이제 끝내고 싶습니다.” - 150~151쪽

1957년에 의료, 복지, 교육 관계자들이 총동원되어 ‘미야기현 정신박약아 복지협회’가 설립되었다. 행정 기관까지 하나가 되어 ‘사랑의 10만 인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 모임의 취의서에 따르면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우생 보호 사상을 널리 알리고 미야기 현민의 자질을 높인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전성 정신박약아의 증가를 막기 위해 철저히 우생 수술을 실시할 것’이라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생 사상에 기초한 정책으로 유명한 것 가운데 효고현에서 실시한 ‘불행한 아이 낳지 않기 운동’이 있는데요. 이 운동이 실행된 것은 1966년이니 미야기에서는 조금 더 이른 시점에 비슷한 운동을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미야기현에서 강제 불임 수술이 감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162~163쪽

“할아버지가 한 일이 밝혀진 뒤에 ‘가해자 측 자손’이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에 ‘사회복지사로서의 나’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먼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나가려 합니다. (…) 우생보호법 재판을 계기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말로 옳은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모두가 지닐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 173~174쪽

지금은 들리지 않는 부모의 들리는 아이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아버지와 지내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으니까. ‘차이’는 넘어설 수 있다는 것. 전제 조건부터 완전히 다르다 해도 상대방과 마주 보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엉키고 끊어질 듯 보이는 실도 이어질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184~185쪽

들리지 않는 부모의 들리는 아이, 코다
부모와 다른 아이로 자란 긴 외로움의 시간을 뒤로하고
힘차게 써 내려간 ‘엄마의 역사’, 농인과 농사회 이야기

한국의 독자들은 코다 창작자이자 이 책의 추천사를 쓰기도 한 이길보라 작가의 글과 영화를 통해 수어를 모어로 익히고 농인 부모와 청인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하는 코다의 남다른 경험 세계를 접해왔다. 그러나 모든 코다가 수어를 익히고 농문화와 청문화 사이를 오가며 경계인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일본의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는 간단한 수어 몇 마디를 익혔을 뿐 철저히 청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장애를 가진 부모를 원망하고, 가족은 물론 학교 친구나 선생님과도 불화하며 외톨이로 성장한 그의 이야기는 코다 내부의 다양성을 짐작하게 한다.
저자는 농인 부모의 외아들이지만 수어를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한집에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가까이에 살며 친밀하게 교류하던 이모들까지, 즉 어머니의 원가족 모두가 수어를 배우지 않았기에 그것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부모와의 내밀한 소통이 불가능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뿐이었다. 공통의 언어를 찾기보다 유일한 농인인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는 쪽을 택했던 이 가족의 역사는 20세기 중후반 일본 농인들이 경험한 소외와 몰이해의 시간이기도 하다. 저자의 어머니, 아버지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 일화들에서 드러나듯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사회는 귀를 고치는 수술, 남아 있는 청력을 활용한 교육, 엄격한 구화 훈련에 몰두할 뿐 들리지 않는 상태로 계속해서 살아가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였나? 아버지, 어머니랑 밖에 나갈 일이 있었거든.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신이 나서 차를 탔지. 그랬더니 얼마 후에 커다란 병원에 도착한 거야.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하니 어머니가 이러더라고. “여기에서 귀를 고쳐줄 테니까 내려라”라고 말이야. 그게 무섭고 또 무서워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랑 어머니도 체념을 했는지 결국 병원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어.〉
거의 같은 시기에 지바의 고모도 “수술하지 않을래? ”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머리를 여는 수술을 하면 들릴 거라고 했어. 하지만 수술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서 눈물을 펑펑 흘렸지. 고모는 내 귀가 안 들리는 게 못마땅했던 거야. 그러니까 수술을 하라고 했겠지.〉 - 36쪽

언어를 습득하고 교육받을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농인들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농밀한 소통의 세계에도 진입하기 어려웠다. 저자의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채 방글방글 웃기만 하는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수어를 배웠다. 언어를 가진 뒤에야 비로소 친구를 사귀고, 공부를 하고, 훗날 남편이 될 고지와 연애도 할 수 있었다. 농학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던 것은 그곳에서 배운 수어와 함께 어머니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어머니의 인생을 알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어를 다시 배우는 것이었다. 두 살도 되지 않은 아들에게 〈내 귀는 들리지 않아〉라며 자신이 농인임을 밝히고 수어를 가르쳤던 어머니처럼, 이제는 자신이 공통의 언어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하나의 온전한 언어로서 수어가 지닌 특성과 농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따로 공부했다. 수어는 농인에게 소통 수단일 뿐 아니라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수어로 묻고 답해 기록한 어머니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농인과 농사회의 역사가 되었다. 이 책은 1954년생 농인 여성의 일대기를 통해 청인 중심의 공적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청각장애, 수어와 농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공생의 방법을 찾아간 사람들

어머니 사에코의 원가족이 수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어머니를 방치하거나 함부로 대했던 것은 아니다. 청각장애, 수어와 농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진심을 다해서 어머니를 대했다. 야쿠자 출신에 무섭기만 한 줄 알았던 할아버지 긴조는 알고 보니 딸의 손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한 음, 한 음 또박또박 말을 가르치던 다정한 아버지였고, 할머니 나에코는 딸의 귀가 낫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신앙인이었다. 두 사람은 딸과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아 사에코가 중학생이 될 무렵에야 농학교에 보내는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사에코가 농인인 고지와 연애를 하고 결혼과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딸의 편에 서주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동생에 대해 “걱정했지”라고 말하는 첫째 이모 사치코와 “걱정은 안 했어”라고 말하는 둘째 이모 유미 또한 방식은 달라도 사에코를 도우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특히 둘째 유미는 수어는 몰랐지만, 사에코의 모든 말을 알아듣고 가족에게 전하는 통역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농교육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정답을 몰라 더듬어 찾아가며 가르치던 시대였습니다”(122쪽)라는 어머니의 은사 오누마 선생님의 말처럼 다양한 교육법을 시도하며 암중모색하던 시기였다. 1930년대 초까지 수어로 교육을 하던 일본의 농교육계는 구화법을 중시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휩쓸려 한동안 수어를 무시하고 배척하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야 다시 수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 농학교에 입학한 사에코는 수어로 공부하고 소통하며 빛나는 청춘을 보냈지만, 그 시기에도 농교육계는 구화법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남아 있는 청각을 활용해 언어를 획득하게 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1995년 “농인이란 ‘일본수화’라는, 일본어와는 다른 언어를 말하는 언어적 소수자이다”라고 주장하는 「농문화 선언」이 발표된 후에야 농인에게 음성언어를 강제하는 것은 농인의 문화와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저자는 어머니가 졸업한 농학교에 방문해 교원들을 만나고, 오누마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 끝에 농교육계에서 마련한 여러 선택지와 들리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물심양면의 노력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는 여러 수단을 준비해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역의 일반 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수어를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고등부 때부터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구화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도 수어와 구화를 다 사용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또 사회에 나갔을 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필담과 UD토크(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서비스) 같은 것을 활용한 소통 능력도 길러주어야 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들리지 않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곤란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다양한 소통 수단을 익힐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해놓았을 것이다. - 95~96쪽

“예전에는 청각 활용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수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때 저를 전면적으로 부정해준 보호자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 저 같은 게 뭐라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저야말로 고맙지요. 젊은 시절에 저를 교사로 키워준 사람이 바로 사에 짱을 비롯한 농학교 아이들입니다. 그렇게 천진한 아이들이 유소년기에 말을 빼앗기고 소통의 기회를 잃어버렸던 것이지요. 그렇게 교육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도 바로 사에 짱처럼 자라난 아이들을 목격한 덕분입니다. 그 경험으로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한다면 제가 해야 합니다.” - 116~122쪽

이처럼 어머니의 인생에는 분명 차별과 배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더 나은 공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시도하고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짐작과 달리 어머니와의 대화는 늘 유쾌하고 따뜻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학창 시절을 추억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어머니는 정말로 풍요로운 청춘을 보냈구나 싶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85쪽) “어머니가 이야기해준 것은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행복한 순간들뿐이었다.”(181쪽) 그러므로 이 책은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차이’를 맞닥뜨린 사람들이 개인 차원에서, 또 사회 차원에서 기울인 노력과 그 성과를 미래로 전하는 작업이라고 봐도 좋겠다.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한다”
우생보호법이 빼앗은 것과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사람들

어머니 사에코는 농학교에서 만난 고지와 결혼해 무사히 아이를 낳아 키웠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결혼을 하려면 꼭 귀가 들리는 사람이랑 해”, “만약 들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나면 어떡할 거야?”, “두 사람이 결혼해서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는 내가 대신 키워줄게” 같은 말들로 사에코를 힘들게 했다. 물론 이는 ‘선의’로 한 말이었지만, 사에코는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는 ‘우생 사상’을 떠올린다.
1948년 일본에서는 우생보호법이 성립했다. 패전 이후 인구 증가를 억제하면서 부흥을 꾀하지 않으면 나라가 붕괴될 것이라는 공포가 일본 사회를 휩쓸었고, 그 결과로 “우생상의 견지에서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우생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의해 유전성 질환, 한센병, 정신장애, 신체장애 등 56가지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합법적으로 강제 불임 수술을 당하게 되었다. 1996년 모체보호법으로 개정되기 전까지 국가에 의해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피해자는 1만 6500명을 웃돈다(본인의 동의를 받은 수술까지 포함하면 약 2만 2500명). 이들이 당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2018년 센다이에 사는 한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래로 전국 각지에서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 피해자 가운데는 당연히 농인도 있다. 저자는 어쩌면 자신도 국가에 의해 태어나기 전에 ‘살해당했을’ 수도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이를 만들 수 없는 몸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낀다.
이 일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저자는 우생보호법의 피해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변호사, 활동가, 연구자들을 차례로 만난다. 우생보호법 재판도 방청하고, 관련 공부 모임에도 참여한다. 뜻밖에도 우생보호법을 실행한 사람의 자손, 즉 자신의 할아버지가 보건소 소장으로서 지역의 강제 불임 수술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밝힌 아키 씨를 만나기도 한다. 이들 모두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이 취재의 과정은 저자에게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 책을 쓴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런 법이 50년 가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정책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일이니까, 남들이 다 찬성하니까, 장애는 없는 편이 좋으니까’라며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눈감았던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우생보호법이 계속해서 이어졌던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 국회에서 우생보호법이 성립되었을 때, 그리고 이후 오랜 시간 이 법이 유지되는 동안 우리는 이를 문제라고 보지 않았잖아요? 재판이 끝나더라도 이런 소수자 차별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같은 역사를 반복할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생 사회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 155쪽

우생보호법은 없어졌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출생 전 진단 기술로 생명 선별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지금도 우생 사상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저자는 우생보호법의 생존자로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라 여겨졌던 코다로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일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작가정보

五十嵐大
1983년 일본 미야기현 출생. 들리지 않는 부모의 들리는 아이, 즉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로 성장했다. 2015년부터 작가로 활동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취재, 인터뷰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망한 가족』,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내가 들리는 세상과 들리지 않는 세상을 오가며 생각한 30가지』, 『에피라는 수영 안 해』 등이 있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철학으로 저항하다』, 『아이들의 계급투쟁』, 『여자들의 테러』,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책의 길을 잇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구원의 미술관』, 『만년의 집』,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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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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