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사커
2024년 04월 01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10월 15일 출간
- 오디오북 상품 정보
- 듣기 가능 오디오
- 제공 언어 한국어
- 파일 정보 mp3 (163.00MB)
- ISBN 979113576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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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분 163.00MB
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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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랑의 가능성
“김선오의 시는 사랑이 끝났다고 집요하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사랑의 불가능을 파괴하려 하는 것 같다.” -황인찬 시인
김선오의 『나이트 사커』가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김선오 시인은 이번 첫 시집을 통해 44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신예다. 김선오의 시는 집요하다. 그의 시선과 문장은 쉬지 않고 이동하는 대상을 좇아가며 기록한다. 추천사를 쓴 황인찬 시인에 따르면 이 집요함은 존재하지 않는 ‘너’를 영원토록 존재하도록 만들기 위한 고투이다. ‘너’가 존재하고 나서야 아직 없는 ‘우리’가, 즉 우리의 세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선오는 하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이 폭력의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고 아직 오지 않은 우리를 감각하려 한다. 사랑이 끝난 뒤 찾아오는 새로운 사랑의 세계, ‘사랑 없음’의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다.
폭력이 은폐된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기
담담한 목소리로 그려내는 감각적인 이미지는 김선오의 특장이다. “흰 방의 완벽을 위해 창밖에도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 풍경 속에서 김선오는 집요하게 관찰하고 반복한다. 그의 집요한 시선은 캄캄한 와중에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 대상과 함께 운동한다. 이 반복 운동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이 세계가 가진 부정성이다.
특히나 육식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대한 부정은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부록으로 실린 산문에서 김선오 시인은 “고기라니, 너무 이상한 말이다. (…) 양파는 팔리기 전에도 양파라 불리고 땅 속에서도 감자는 감자이며 바닷속에서도 미역은 미역이다. 그러나 돼지나 소나 닭은 식재료가 되고 나면 이름 뒤에 고기라는 말이 붙는다.”라며 육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언어와 세상에 의문을 표한다.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은 생명이라는 인식은 고기를 인간의 자리에 두는 여러 시편들을 통해 드러난다. 주어 ‘나’의 위치에 ‘고기’를 넣어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내는 「비와 고기」, 하나의 거대한 살점과 이를 잘라내는 칼에 관한 꿈을 그린 「냉동육」, 몸에 박힌 수십 개의 이빨에 관해 집요하게 말하는 「미디엄 레어」 등등 다수 시편들은 동물이 겪는 폭력을 인간의 위치에 놓아 이 일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의 형태는 하나뿐이며, 이와 다르면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믿음을 통해 만들어진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김선오의 시에서 이러한 세상은 부정되고 사랑은 종료된다. 김선오는 하나의 사랑에 관해 말하는 대신에 ‘사랑 없음’이 왔다고 말하는 시인이다. 그는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사라진 ‘너’를 집요하게 호명한다. 이러한 부름을 통해 “너는 빠르게 늙고 느리게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 너를 통해 ‘우리’라는 세계가 재시작된다. 이 새로운 사랑의 세계는, 사랑 없음 또한 사랑의 다른 가능성인 세계일 것이다. 김선오는 이런 보이지 않는 사랑의 다른 형태가 있다고, 혹은 이미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네가 쓰던 시나리오를 이어 쓰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뭘 했더라
나는 흰 방에 갇혀 있기로 한 모양이야
미간을 찌푸린 채 연필을 쥐고
눈을 가늘게 뜨면, 흰 방의 완벽을 위해
창밖에도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사랑 없음 입장하세요」 부분
로비에는 세 종류의 팸플릿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두어 개 있으면
타지에서도 고요가 잘 없다
고대의 뼈들을 지나친다 나로서는
그것들이 아직도 이렇게 희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자연사 박물관」 부분
다음 그림의 앞으로 걸어가면서
너를 나의 왼쪽에 남겨둘 수 있었지만
너는 너의 뒤통수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곳은 아주 아름답다고
텅 빈 벽 앞에서 눈을 감았다
나의 바깥이 나를 넘나들었다
-「출구는 이쪽입니다」 부분
공을 높게 찼다 공 맞은 가로등에 불이 꺼졌다 고개를 꺾고 하늘을 보고
공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발등 위로 새가 떨어졌다
톡톡 새를 찼다 얼룩무늬 새는 나의 발동작대로 힘없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발등에 머무르기를 반복했다 공은 어딨니 공을 데려와 새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프니 눈 좀 떠봐
-「나이트 사커」 부분
손들은 조금 전까지
내 몸에 박힌 수십 개의 이빨을
빼내려고 애쓰던 중이었다
이 많은 이빨이 다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미디엄 레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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