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자들
2024년 05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19년 01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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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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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의사결정자들은 자국을 최우선하는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자신의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결코 전망하지 못했다.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 저자는 『몽유병자들』에서 특정한 개전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또 하나의 가설 또는 관점을 내놓기보다는 전쟁을 불러온 핵심 행위자들의 결정을 시간순으로 차근차근 따라가는 접근법을 택해 그들 간 상호작용의 연쇄를 면밀히 추적한다.
이 책은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반목하다가 전쟁에 불을 붙인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라예보 암살사건 전야까지 두 나라의 상호작용을 따라간다. 2부에서는 서사를 중단하고 4개의 장에 걸쳐 ‘유럽은 어떻게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양극화되었는가?’,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을 어떻게 수립했는가?’ 등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3부에서는 사라예보 암살로 시작해 핵심적 결정 중심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검토하고, 위기 고조를 위한 계산과 오해, 결정을 조명하는 등 7월 위기 자체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감사의 말
1914년 유럽 지도
서론
1부 사라예보로 가는 길들
1장 세르비아의 유령들
베오그라드 암살사건 | ‘무책임한 분자들’ | 심상지도 | 결별 | 격화 | 세 차례 튀르크 전쟁 | 대공 암살 음모 | 니콜라 파시치, 대응하다
2장 특성 없는 제국
갈등과 평형 | 체스 선수들 | 거짓말과 위조 | 기만적 고요 | 매파와 비둘기파
2부 분열된 대륙
3장 유럽의 양극화, 1887~1907
위험한 관계: 프랑스-러시아 동맹 | 파리의 판단 | 영국, 중립을 끝내다 | 늦깎이 제국 독일 | 대전환점? | 벽에 악마 그리기
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
주권을 쥔 의사결정자들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 파리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 베를린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 에드워드 그레이 경의 불안한 우위 | 1911년 아가디르 위기 | 군인과 민간인 | 언론과 여론 | 권력의 유동성
5장 얽히고설킨 발칸
리비아 공습 | 발칸 난투극 | 갈팡질팡 | 1912~1913년 겨울 발칸 위기 | 불가리아냐 세르비아냐 | 오스트리아의 곤경 |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발칸화 | 속도를 올리는 파리 | 압박받는 푸앵카레
6장 마지막 기회: 데탕트와 위험, 1912~1914
데탕트의 한계 |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 보스포루스의 독일인들 | 발칸 개시 시나리오 | 남성성의 위기? | 미래는 얼마나 열려 있었나
3부 위기
7장 사라예보 살인사건
암살 | 사진처럼 기억된 순간들 | 수사 시작 | 세르비아의 대응 | 무엇을 해야 하는가?
8장 확산되는 파문
외국의 반응 | 호요스 백작, 베를린에 파견되다 | 오스트리아가 최후통첩을 보내기까지 | 가르트비크의 죽음
9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프랑스인들
드 로비앙 백작, 열차를 갈아타다 | 푸앵카레, 러시아행 배에 오르다 | 포커게임
10장 최후통첩
오스트리아, 요구하다 | 세르비아, 대응하다 | ‘국지전’이 시작되다
11장 경고사격
강경책의 우세 | “이번에는 전쟁이다” | 러시아의 사정
12장 마지막 날들
낯선 빛이 유럽 지도로 내려오다 | 푸앵카레, 파리로 돌아오다 | 러시아, 군대를 동원하다 | 어둠 속으로 뛰어들기 | “뭔가 오해가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 폴 캉봉의 시련 | 영국, 개입하다 | 벨기에 | 군화
결론
주
찾아보기
서론 (29쪽)
1914년 여름 위기의 경과를 읽는 21세기 독자라면 필시 그 생생한 현대성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 위기는 자살폭탄 테러단과 자동차 행렬로 시작되었다. 사라예보 폭거의 배후에는 희생과 죽음, 복수를 찬양하는 자칭 테러조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조직은 뚜렷한 지리적 또는 정치적 소재지가 없는 치외법권 조직이었다. 정치적 경계를 넘어 세포조직 형태로 발칸반도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았으며, 어떤 주권 정부와의 연계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분명 조직 밖에서는 알아채기가 극히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1914년 7월 위기는 1980년대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가깝다고, 더 또렷하게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냉전이 끝난 이래 안정적인 세계 양극 체제가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러 세력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 와중에 제국들이 쇠퇴하고 신흥 국가들이 부상했다(이는 1914년 유럽과 비교해보고 싶은 국제 정세다). 이런 시각 변화는 유럽이 전쟁에 이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자극한다. 이 도전에 응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는 천박한 현재주의를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바뀐 관점에서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과거의 특징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론 (33~34쪽)
이 책은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반목하다가 전쟁에 불을 붙인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라예보 암살사건 전야까지 두 나라의 상호작용을 따라간다. 2부에서는 서사를 중단하고 4개 장에서 다음 네 가지 질문을 한다. 유럽은 어떻게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양극화되었는가?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을 어떻게 수립했는가? 발칸반도(유럽에서 권력과 부의 중심지들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 지역)는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위기의 무대가 되었는가? 데탕트 시대로 들어서는 듯했던 국제 체제는 어떻게 전면전으로 치달았는가? 3부에서는 사라예보 암살로 시작해 핵심적 결정 중심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검토하고, 위기 고조를 위한 계산과 오해, 결정을 조명하는 등 7월 위기 자체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이 책의 중심 주장은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걸어간 길들을 밝혀야만 1914년 7월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쟁에 앞서 연달아 일어난 국제 ‘위기들’을 단순히 재론하는 수준을 넘어 그 사건들이 어떻게 경험되었는지, 인식을 구조화하는 서사에 어떻게 엮여 들어갔는지, 어떻게 행위를 추동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럽을 전쟁으로 이끄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고, 상황을 그렇게 바라보았을까? 수많은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인들의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은 흔히 바로 그 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오만하고 허풍 떠는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알바니아 문제와 ‘불가리아 차관’ 같은 전쟁 이전의 이국적 특징들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했고, 또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파악되었을까? 의사결정자들은 국제 정세나 외부 위협을 논할 때 실질적인 무언가를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들 자신의 두려움과 욕구를 적에게 투영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나의 목표는 1914년 여름 이전과 여름 동안 핵심 행위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매우 역동적인 ‘결정하는 위치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 (302~303쪽)
국왕이나 황제는 서로 별개인 지휘계통들이 수렴하는 유일한 점이었다. 군주가 통합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이를테면 헌법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못하면, 체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일관성 없는 결정을 내릴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대륙 군주들은 대개 이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부터 그런 역할 수행을 거부했다. 집행부의 핵심 관료들과 따로따로 거래하는 방법으로 체제 내에서 주도권과 우위를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결국 정책수립 과정에 악영향을 끼쳤다. 담당 각료가 내린 결정이 동료나 경쟁자에 의해 번복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환경에서 각료들은 대개 “자신의 활동을 더 큰 그림에 어떻게 맞출지” 판단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그에 따른 전반적인 혼란은 각료, 관료, 군 지휘관, 정책전문가로 하여금 각자 자기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정책의 결과를 책임질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도록 부추겼다. 그와 동시에 군주의 환심을 사야 한다는 압박감은 경쟁하고 아첨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한결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위한 부처 간 협의를 저해했다. 그 결과는 1914년 7월에 위험한 결실을 맺을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修辭)의 문화였다.
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 중 ‘권력의 유동성’ (381~383쪽)
설령 전전 유럽 강국들에서 통일되고 일관된 목표를 추구하는 응집된 집행부가 외교정책을 구상하고 관리했다고 가정할지라도, 그들 사이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은 벅찬 과제다. 어떤 두 강국의 관계도 나머지 모든 강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1903~1914년 유럽의 현실은 ‘국제관계’ 모델이 시사하는 것보다도 더 복잡했다. 각료들의 약한 결속력이 특징인 체제에서 군주의 종잡을 수 없는 개입, 모호한 민군 관계, 핵심 정치인들의 적대적인 경쟁으로 인해, 그리고 여기에 더해 안보 문제로 때때로 위기가 발생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비판적인 대중언론의 선동으로 인해, 이 기간 동안 국제관계의 불확실성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그 귀결인 오락가락 정책과 헷갈리는 신호 때문에 역사가들뿐 아니라 전쟁 직전의 정치인들도 국제 정세를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국제 정세에 주목하는 견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모든 복잡한 정치 집행부는, 설령 권위주의적인 집행부라 해도, 내부 갈등과 변동을 겪는다. 20세기 미국의 외교관계를 다루는 문헌들은 정부 내 권력투쟁과 음모에 대해 길게 서술한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관한 탁월한 연구에서 앤드류 프레스턴이 보여준 대로, 린든 B. 존슨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개전을 꺼렸고 국무부에서 대체로 개입에 반대했음에도, 의회의 감독 밖에서 운영된 더 작고 더 기민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측에서 참전을 강하게 지지하며 사실상 전쟁을 피할 수 없을 때까지 베트남에 대한 대통령의 선택지들을 줄여나갔다.
그렇지만 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의 상황은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달랐다(그리고 더 나빴다). 내부에서 어떤 갈등이 벌어진다 해도 미국 집행부는 (입헌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외교정책에 대한 집행 결정의 궁극적 책임이 명백히 대통령에게 있는, 권한의 초점이 아주 분명한 조직이다. 전전 유럽 정부들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 정부의 경우, 과연 그레이 외무장관에게 내각 또는 의회와 상의하지 않고서 외국 정부에 약속할 권리가 있는지 계속 의문이었다. 실은 이런 의문이 워낙 강했기에 그레이가 자신의 의도를 명확한 성명으로 밝히지 못했던 것이다.
프랑스 상황은 더욱 불분명했다. 외무부, 내각, 대통령 사이의 주도권 균형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었으며, 능수능란하고 단호한 푸앵카레마저 1914년 봄에 그를 정책수립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노력에 직면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그리고 그보다 덜한 정도로 러시아에서, 외교정책을 수립할 권한은 느슨하게 연결된 정치 엘리트들의 다층구조 주변을 유동하다가 누가 더 효과적이고도 결연한 결속을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체제의 각기 다른 부분들에 집중되었다. 이런 경우 예컨대 독일에서처럼 ‘지고한’ 주권자의 존재는 체제 내 권력관계를 분명히 하기는커녕 오히려 흐릿하게 했다.
이것은 이를테면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선택지들을 면밀히 검토한 두 강대국의 추론을 재구성하는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신뢰의 수준은 낮고(심지어 동맹들끼리도) 적대감과 피해망상의 수준은 높은 집행부들이 상대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속사포처럼 주고받은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문제다. 이런 국제관계에 내재하는 휘발성은 각 집행부 내부의 권력 유동성과 체제의 한 중심점에서 다른 중심점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경향 때문에 더욱 커졌다. 외무부 내부의 알력과 논쟁은 더 경직된 정책 환경에서라면 억압되었을 의문과 반대 의견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유익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위험이 편익보다 컸다. 아가디르 위기 때나 1914년 6월 28일 이후처럼 분쟁을 빚을 가능성이 있는 양쪽에서 매파가 신호 보내기 과정을 장악할 경우, 위기가 빠르고도 예측 불가능하게 고조될 수 있었다.
6장 마지막 기회: 데탕트와 위험, 1912~1914 (549~550쪽)
우리는 중요한 구별을 해야 한다. 프랑스 또는 러시아의 전략가들은 동맹국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개시하는 계획에 관여한 적이 없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것은 시나리오이지 계획 자체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양국 정책수립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독일에 미칠 법한 영향을 놀라울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프랑스 정책수립자들은 군사적 위협의 균형이 얼마만큼 독일에 불리하게 기울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1914년 6월 프랑스 참모본부의 보고서는 “군사적 상황이 독일에 불리하게 변경되었다”라고 만족스러운 투로 지적했으며, 영국의 군사적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의 행동은 전적으로 방어적인 것이고 적에게만 공격적인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핵심 정책수립자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베를린의 선택지를 줄일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국제관계 이론가들이 ‘안보 딜레마’라고 부르는 상황, 즉 한 국가가 자국의 안보를 강화
2017년 12월,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왜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을 건넸는가?
2017년 12월, 북한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3대 요구사항을 밝혔다. 요구 내용은 2009년 중단된 군 연락채널을 복원해 우발적인 전쟁의 위험을 줄일 것,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낼 것, 유엔 안보리의 비핵화 결의를 이행할 것이었다. 또 펠트먼은 외교 회담 자리에서는 이례적으로 역사책을 한 권 건넸다. 바로 이 책,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이다. 100년도 더 전에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의 원인을 다룬,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쓰인 두꺼운 역사책을 북한 외무상에게 전달한 펠트먼의 행위에는 분명 외교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 “걸작(masterpiece)” -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데일리 메일》
◈ “기념비적인, 계시적인, 심지어 혁명적인 책” - 《보스턴 글로브》
◈ “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관한 최상의 서술” -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 “새로운 표준 저작” - 《포린 에퍼어스》
◈ “빈틈없는 연구, 섬세한 분석, 우아한 산문을 결합한 아름다운 저술” - 《워싱턴 포스트》
◈ 《인디펜던트》 《선데이 타임스》 《파이낸스 타임스》 등 올해의 책 선정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로라 섀넌 상 수상
지난 2014년 서구에서는 1차 세계대전 개전 100주년을 맞아 전전(戰前) 유럽을 새롭게 조명한 저작들이 앞다투어 출간되었다. 마거릿 맥밀런의 《평화를 끝낸 전쟁》, 션 맥미킨의 《1914년 7월》, 맥스 헤이스팅스의 《1914년의 파국》 등 굵직한 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터라 주요 언론에서는 몇 종을 추려 비교하는 서평을 싣기도 했다. 이 경쟁장에서 《몽유병자들》은 이언 커쇼와 니얼 퍼거슨 등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1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관한 이해를 재정립하는 새로운 표준 저작이자 일급 서사라는 호평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 《인디펜던트》 《파이낸스 타임스》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우수한 유럽 관련 연구에 수여되는 로라 섀년 상을 수상했다(2015). 또한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아 이제는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의 뒤를 잇는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의 주제인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7월 위기’는 역사상 가장 복잡한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마저 무색케 하는 위기 중의 위기로 꼽힌다. 이 전쟁의 기원 또는 원인을 다룬 문헌만 해도 하나의 ‘산업’이라 불릴 만큼 방대하다. 이런 이유로 “이 전쟁의 기원에 관한 관점들 가운데 일군의 선별한 자료들로 뒷받침할 수 없는 관점은 사실상 없다.”(27쪽) 이를 잘 아는 저자는 특정한 개전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또 하나의 가설 또는 관점을 내놓기보다는 전쟁을 불러온 핵심 행위자들의 결정을 시간순으로 차근차근 따라가는 접근법을 택한다. 다시 말해 그들 간 상호작용의 연쇄를 면밀히 추적한다.
이 책은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반목하다가 전쟁에 불을 붙인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라예보 암살사건 전야까지 두 나라의 상호작용을 따라간다.
2부에서는 서사를 중단하고 4개 장에서 다음 네 가지 질문을 한다. ① 유럽은 어떻게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양극화되었는가? ②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을 어떻게 수립했는가? ③ 발칸반도(유럽에서 권력과 부의 중심지들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 지역)는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위기의 무대가 되었는가? ④ 데탕트 시대로 들어서는 듯했던 국제 체제는 어떻게 전면전으로 치달았는가?
3부에서는 사라예보 암살로 시작해 핵심적 결정 중심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검토하고, 위기 고조를 위한 계산과 오해, 결정을 조명하는 등 7월 위기 자체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왜” 발발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어났는가로
- 1차 세계대전의 책임론을 넘어
지금까지 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한 논의는 주로 전쟁이 ‘왜’ 발발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이는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가 ‘누구’ 때문에 일어났느냐라는 책임론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이런 책임 지우기는 개전 이전부터 시작되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의 ‘전쟁 책임’ 조항(전쟁 발발의 책임은 독일과 그 맹방들에게 있다)과 그에 따른 막대한 배상금 부과, 1960년대 독일 역사가 프리츠 피셔의 ‘피셔 테제’(독일 카이저 빌헬름 2세와 그의 각료들이 유럽에서 독일의 고립을 타파하고, 국내 불만 세력을 억누르고, 무엇보다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전에 전쟁을 계획하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는 관점)를 거쳐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에 반해 이 책을 포함해 앞서 언급한 최근 저작들은 대체로 유럽 국가들의 공동 책임을 강조한다. 특히 저자는 다자간 상호작용을 도외시한 채 단 한 국가에 전쟁 책임을 지우거나 교전국들의 ‘유책 순위’를 매기는 견해가 증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밀한 서술로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영국은 차치하더라도) 프랑스와 러시아의 책임이 적어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책임 못지않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1914년 전쟁은 유럽 국가들이 공유하던 정치 문화의 소산, 특정 국가의 범죄가 아닌 공동의 비극이었다.
1914년의 핵심 의사결정자들은 구조와 체제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행위능력으로 가득한 주역이었다
이 책의 중심 주장은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걸어간 길들을 밝혀야만 1914년 7월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쟁에 앞서 연달아 일어난 국제 ‘위기들’을 단순히 재론하는 수준을 넘어 그 사건들이 어떻게 경험되었는지, 인식을 구조화하는 서사에 어떻게 엮여 들어갔는지, 어떻게 행위를 추동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의사결정자들의 결정을 최대한 그들 자신의 위치에서 이해하고자 전쟁이 ‘왜’ 일어났느냐는 물음보다는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물음에 주목한다. 유럽을 전쟁으로 이끄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고, 상황을 그렇게 바라보았을까? 수많은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인들의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은 흔히 바로 그 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오만하고 허풍 떠는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알바니아 문제와 ‘불가리아 차관’ 같은 전쟁 이전의 이국적 특징들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했고, 또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파악되었을까? 의사결정자들은 국제 정세나 외부 위협을 논할 때 실질적인 무언가를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들 자신의 두려움과 욕구를 적에게 투영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저자는 1914년 여름 이전과 여름 동안 핵심 행위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매우 역동적인 ‘결정하는 위치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구성함으로써 독자들이 이러한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안내한다.
저자는 그들의 미래가 닫혀 있었다고 전제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열려 있었고 그들 각자 실제 역사와는 다른 미래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들은 역사의 비인격적인 전진 운동에 보조를 맞춘 조력자, 체제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라 행위능력으로 가득하고 충분히 다른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역이었다. 전쟁은 불가피한 귀결이 아니라 그들이 내린 연쇄 결정의 정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우발성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는 핵심은 ‘균형’이다. “1차 세계대전이 어째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지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이 통찰은 전쟁이 실제로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이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563쪽)
1914년 유럽에서 21세기의 세계를 읽다
- 100년 전 전쟁사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
앞서 말한 펠트먼의 책 선물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펠트먼이 의도하지 않은 분쟁이 발생할 위험성에 대한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을 건넸다고 분석했다. 펠트먼에게 이 책은 ‘의도하지 않은 분쟁’의 위험을 일깨우는 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은 어느 나라든 내게는 ‘방어적’ 의도가, 상대에게는 ‘공격적’ 의도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였다. 초지일관 전쟁을 역설한 호전파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집행부 전체를 놓고 볼 때 전쟁을 적극적으로 계획한 국가는 없었다. 그럼에도 믿음과 신뢰의 수준은 (심지어 동맹들끼리도) 낮고 적대감과 피해망상의 수준은 높은 집행부들이 서로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속사포처럼 상호작용한 결과, 사상 최악의 대참사가 일어났다. 핵심 의사결정자들은 자국을 최우선하는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자신의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결코 전망하지 못했다. 요컨대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859쪽)
21세기 세계 정세는 100년 전 유럽과 매우 흡사하다. 냉전이 끝난 이래 안정적인 세계 양극 체제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러 세력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 와중에 제국들이 쇠퇴하고 신흥 국가들이 부상했다. 이런 시각 변화는 유럽이 전쟁에 이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자극한다. 이 도전에 응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는 천박한 현재주의를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바뀐 관점에서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과거의 특징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1914년 여름 위기의 경과를 읽는 독자들은 필시 그 생생한 현대성을 알아차릴 것이다. 특히 우발적 분쟁의 가능성과 함께 살아온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의 주역들과 비슷한 인물형의 핵심 의사결정자들을 우리는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현대의 ‘몽유병’에서 깨어나는 데 이 책이 일조하기를 바란다.
작가정보
저자(글) 크리스토퍼 클라크
크리스토퍼 클라크 (Christopher Clark)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 교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유럽 근현대사와 정치사상, 지성사를 연구하고 있다. 시드니대학, 베를린자유대학,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다. 영국 학술원 회원이며 2015년 영독 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작사 작위를 받았다. 프로이센과 독일의 역사를 다룬 2006년 저서 《강철 왕국: 프로이센의 흥망, 1600~1947(Iron Kingdom: The Rise and Downfall of Prussia, 1600-1947)》로 울프슨 역사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으며, 이 책의 독일어판 출간을 계기로 독일사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인 독일역사학계상을 비독일어권 학자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그 밖에 저서로 《카이저 빌헬름 2세: 권좌의 삶(Kaiser Wilhelm II: A Life in Power)》, 《개종의 정치: 프로이센의 선교적 개신교와 유대인, 1728~1941(The Politics of Conversion: Missionary Protestantism and the Jews in Prussia, 1728-1941)》이 있고, 편저서로 《문화 전쟁: 19세기 유럽의 가톨릭-세속 분쟁(Culture Wars: Secular-Catholic Conflict in Nineteenth-Century Europe)》이 있다.
번역 이재만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했고,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역사서와 인문서 번역에 주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문명과 전쟁》, 《세계제국사》, 《정복의 조건》,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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