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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데모

아무튼 시리즈 63
정보라 지음
위고

2024년 03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3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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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7.22MB)
ISBN 979116089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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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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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데모’라고 답하는 사람, 처음 만났을 때도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인사말은 언제나 “투쟁”인 사람, ‘작가의 말’에 소설보다 시위에 관한 얘기를 더 많이 쓰는 사람, 정보라 작가의 첫 에세이 『아무튼, 데모』가 출간되었다. 다양한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고, 서명대에서 서명을 받으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에 관한 애정의 고백이자 우리가 함께 가고자 하는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설집 『저주토끼』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라고 썼다. 이것이 소설가 정보라가 소설을 쓰는 마음의 시작이라면, 『아무튼, 데모』 마지막 장에 쓴 “나는 데모하러 나가서 동지들을 실제로 보면서 실제로 땅을 딛고 같이 행진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자 그대로 걸을 때마다 조금 더 좋은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데모꾼’ 정보라가 데모하러 가는 마음의 시작이다.
준비물
이태원
광화문
집회 사람들 1
지하철역
행진
오체투지
집회 사람들 2
검은 시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고공농성
해외 연대
유토피아

사계절 필수 준비물은 물, 깔개, 보조배터리, 여행용 휴지다. 그리고 나는 집회장 앰프의 굉음을 못 견디기 때문에 귀마개도 언제나 준비해 가지고 간다(앰프 굉음을 계속 들으면 난청 생길 수 있다). 귀마개는 3M 주황색이 최고다.
시위, 집회는 야외 활동이라 최대한 편한 신발을 신고 날씨에 맞게 대비해야 한다. 여름에는 쿨토시와 모자, 양산 등 햇빛 가리는 도구가 꼭 필요하고 땀 닦을 수건, 선크림, 냉동한 아이스팩도 있으면 좋다. 겨울에는 핫팩과 여러 가지 방한 장비가 필수다. (7면)

농성장은 항상 시끄러웠고 언제나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극단적인 정치 성향과 잘못된 현실 인식에 물든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름을 스스로 주장하며 몰려와서 서명대를 뒤엎기도 하고 유민 아버님에게 여러 가지 무례와 폭력을 저질렀다. 그럴 때면 항상 변호사 선생님이 아버님 앞으로 나서서 온몸으로 막았다. (34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살아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당했던 분들은 그토록 온몸을 던져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애쓰고 노력했건만 죽어서도 장애인이라서 그냥 묻히거나 지워졌다.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거리에서 활동했다면 장애인 열사들, 빈민운동 열사들은 대학생들이 알지 못하거나 가지 못하는 장소 곳곳에서 인권과 평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어느 한쪽은 인정받고 다른 한쪽은 그냥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진심으로 서럽고 억울한 일이다. (47면)

그들은 구의역 김 군이 스스로 잘못해서 죽었다고 말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님이 사망했을 때도 책임자들이 김용균 님이 스스로 잘못해서 죽었다고 말했던 걸 생각하면 기업은 다 비슷한 수법을 어디서 배워오나 보다. 죽은 사람은 자기가 잘못해서 죽었고, 산 사람은 일하다 죽을지언정 그 시체를 넘고 넘어 어떻게든 일하러 가야만 한다. 이것이 개명한 21세기 대한민국이다. (53면)

전장연 활동가들이 대화하고자 하는 대상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다. 일반 시민이 아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을 동원해서 소란을 일으키고 ‘장애인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역할을 일반 시민에게 떠넘기고 그 뒤에 숨는다.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턱이 없는 보도에서 지하철로 여행가방을 끌고 드나들 때, 저상버스를 타고 내릴 때, 그 모든 편의와 안전장치가 다 장애인들이 피와 목숨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물론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오늘도 열심히 ‘장애인 탓’을 하고 있다. 야비하다. (54면)

쌍차 분향소에서 다섯 걸음만 가면 에어컨을 시원하게 가동한 커피 전문점이 최소한 세 군데 이상 있었다. 무지개 동지들은 쌍차 동지들과 함께 더위와 소음 속에 앉아 있으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무지개 동지들이 아주 유별난 무슨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이다.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연대의 표현인지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면 아침부터 찾아가서 부스마다 돌면서 아름다운 무지개 물품을 잔뜩 구입하여 가산을 탕진하고 떠들썩한 행진에 참여한다. 퀴어퍼레이드는 즐겁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예쁘다. (57면)

평등행진 때 똑같은 몇 명이 “동성애 반대” 손 팻말을 들고 설교하는 어조로 고함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오는 걸 보니 저분들은 사실 우리 행진이 부러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풍물패가 신나게 연주하고 속도가 빠른 음악을 크게 틀고 다들 춤추고 소리치면서 행진하는 건 무척 재미있다. 부러우면 굳이 반대하는 척하지 말고 그냥 같이 행진하면 된다.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다. (61-62면)

역시 성소수자와 다양성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를 외쳐댔는데 옆에서 따라오는 혐오 세력이 자꾸 “동성애는 사탄”이라 외치니까 주최 측이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명곡 〈루시퍼〉를 틀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님들이 방송차에 타고 앞서 가면서 “내 자식 퀴어고 나는 내 자식이 자랑스럽다”고 외치셔서 감동하고 〈루시퍼〉에 웃고 그러면서 즐겁게 행진했다. (70-71면)

경험해보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타인의 몸을 경험할 방법은 없으니까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세상을 정말 전혀, 하나도, 결단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우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81면)

시간이 갈수록 몸도 지치고 발언할 밑천(?)도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팬데믹 시기라 국회 주변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위원장님은 ‘아무 말 대잔치’ 를 펼치기 시작했다. “불교 경전에도 차별하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차별이 얼마나 나쁜 건지 아십니까? 차별금지법 안 만들고 국회의원들은 뭐 합니까? 차별하면 지옥 가는 거 모릅니까?” 하필 나는 그 바로 옆에서 오체투지를 했는데 위원장님의 점점 더해가는 분노에 찬 아무 말 대잔치에 자꾸 웃음이 나와서 일어설 때마다 팔에 힘이 빠졌다. (83면)

한국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기업은 사람을 죽여도 벌을 받지 않고 노동자는 부당해고에 항의해도, 노조에만 가입해도 온갖 징벌적 손해배상에 얽매이는 것 같다. 노동자는 기업의 노예가 아닌데, 기업이 멋대로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법제도를 정말 빨리 뜯어고쳐야 한다. (111면)

불법체류나 불법취업은 어감처럼 그렇게 무시무시한 범죄가 아니다. 먹고살려고 하다 보면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하는 일이란 한국인이 원하지 않는 종류의 일이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단번에 재벌기업 회장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한국인의 재산과 권리를 빼앗아 풍요롭게 사는 게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공장과 농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지극히 열악한 환경에서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는다. 일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면 의료비는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데 고용주가 무책임하면 병원조차 제때 못 가는 일도 흔하다. 최소한 현재의 일터가 괴로우면 다치거나 죽기 전에 다른 일자리로 옮길 자유는 주어져야 한다. 권리나 법률을 따지기 전에 사람 생명에 관계된 일이다. (142-143면)

전쟁은 끝나지 않고, 2023년 10월 7일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계속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하는데, 가자지구에는 독립된 군대가 없다. 한쪽에만 군대가 있고 한쪽만 일방적으로 폭격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다. 학살이다. (164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유토피아이며, 그 과정이 유토피아인 이유는 동지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나는 언젠가 죽더라도, 내가 죽은 뒤에도 나와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은 세상에 남아 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계속 가다 보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테니 결국 나의 이상, 나의 소망, 나의 의지는 동지들을 통해서 세상에 계속 남게 된다. 그리하여 도달하건 도달하지 않건 동지들과 함께 영원히 그 이상향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야셴스키의 유토피아다. (167-168면)

무엇보다도 나는 나의 동지들을 사랑한다. 나 혼자 동지라고 생각하고 내적 친밀감을 느낄 뿐 상대방은 나를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뭐 그래도 상관없이 나는 동지들을 사랑한다. 집회에 나가면 동지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왜 요구하고, 지금 상황이 어떻고, 정부와 권력과 제도가 노동하는 시민을, 살아 있는 인간을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대응을 했어야 했는지, 그러나 뭘 어떻게 안 하는지 아주 명확하게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동지들을 존경하고 언제나 집회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169면)

_10년 넘게 꼬박꼬박 출근하듯 “데모하러 간다”
정보라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오랜 주제 중 하나는 ‘고통’이다. 고통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이유를 “삶이 고통의 바다”이기 때문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자신이 전공한 러시아 혁명기 유토피아 소설은 대부분 고통에서 시작하는데, 세상이 이렇게 고통스러우니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이야기라고. 그게 와 닿았다고. 『아무튼, 데모』는 유토피아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세월호 추모 및 진상조사 요구, 성소수자 인권 보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해고노동자 복직, 차별금지법 등을 지지하는 집회나 시위에 열심히 참가해온 작가의 기록이 빼곡 담겨 있다. 10년 넘게 꼬박꼬박 출근하듯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집회 현장을 오갔던 사람들의 마음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_나는 언제나 집회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진상 규명”, “차별 금지”, “복직 보장”, “제정 촉구”… 집회에서 울리는 구호들이다. 이 구호가 실천된다고 해도 “대다수의 이성애자 비장애인 한국 국적 시민들”의 일상생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당사자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들이다. ‘전장연’ 집회에 참여하고 그들과 함께 지하철 선전전을 했던 작가는 단언한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타인의 몸을 경험할 방법은 없으니까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세상을 정말 전혀, 하나도, 결단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우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정보라 작가에게 집회나 시위는 배움의 장소이다. 정부와 권력과 제도가 노동하는 시민을, 살아 있는 인간을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노동자로서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나의 노동으로 세상이 돌아가는데, 그 권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나는 나의 동지들을 존경하고 언제나 집회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_왜 그렇게 데모에 진심이었을까?
정보라 작가는 왜 그렇게 데모에 진심이었을까? 작가는 그 이유가 학생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10년 이상 대학 강단에 강사로 서면서 학생들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고 싶고, 학생들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평등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유토피아를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꼭 눈앞에서 이상향을 보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어쨌든 더 좋은 앞날을 위해서 계속 노력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성평등, 여성해방, 장애해방, 노동해방, 인권존중, 세계평화를 외치는 많은 동지들이 그런 완벽한 세상이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소리치고 행진하고 파업하고 농성하고 투쟁한다. 그렇게 투쟁하면 자기만 괴롭고 연행당할지도 모르고 구속당할지도 모르고 몇십 억의 손배소가 걸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싸운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좋은 세상을 향해 하다못해 반의 반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보라 작가는 말한다. 내가 행진이라도 한 번 더 하고 구호라도 한 번 더 외치고 집회를 할 때 머릿수라도 하나 더 채우면 나와 동지들이 원하는 세상이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지 모른다고.

_준비는 간단하다
『아무튼, 데모』의 시작은 이렇다. “사계절 필수 준비물은 물, 깔개, 보조배터리, 여행용 휴지다. 그리고 나는 집회장 앰프의 굉음을 못 견디기 때문에 귀마개도 언제나 준비해 가지고 간다(앰프 굉음을 계속 들으면 난청 생길 수 있다). 귀마개는 3M 주황색이 최고다.” 귀마개만 아니면 어디 좋은 데로 놀러가는 피크닉 준비물 같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을 장착하고 집회에 한번 참여해보면 어떨까? 나들이 가듯, 놀이동산 나서듯 가벼운 마음들이 모여 함께 걷는 사이 우리는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닌, 함께 싸우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투쟁.

작가정보

저자(글) 정보라

소설도 쓰고 러시아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권 문학작품들도 번역하고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데모도 열심히 한다. 『저주토끼』,『한밤의 시간표』,『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등을 썼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들,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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