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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수기

세계문학전집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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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08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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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4.14MB)
ISBN 9788954698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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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삶의 지난함과 광활한 자연이 그려내는 시대의 풍경화
젊은 투르게네프의 역작이자 러시아 리얼리즘문학의 성취
사냥꾼의 수기

호리와 칼리니치 7
예르몰라이와 방앗간 여주인 29
산딸기샘 49
시골 의사 67
나의 이웃 라딜로프 85
오두막농민 옵샤니코프 101
리고프 133
베진초원 153
크라시바야 메차의 카시얀 187
마름 219
사무소 243
비류크 275
두 지주 291
레베댠 307
타티야나 보리소브나와 그 조카 331
죽음 353
노래꾼들 375
표트르 페트로비치 카라타예프 405
밀회 433
시그롭스키군의 햄릿 449
체르톱하노프와 네도퓨스킨 491
체르톱하노프의 최후 523
산송장 577
덜거덕덜거덕! 601
숲과 초원 627

해설 | 행복한 이들도 멀리 떠나고 싶어한다 641
이반 투르게네프 연보 657

내가 어떻게 그들의 신뢰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에게 격의 없이 말을 걸어주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즐거웠다. 20~21쪽

칼리니치가 자연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호리는 인간과 사회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칼리니치는 요모조모 따지길 좋아하지 않았고 뭐든 덮어놓고 믿었다. 호리는 삶을 아이러니하게 볼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른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알았고 나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21~22쪽

러시아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강인함을 뼛속 깊이 믿기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으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대담하게 앞날을 내다본다. 러시아 사람은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고 이치에 맞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24쪽

세상에는 참 희한한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과는 오랫동안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도 결코 속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지만, 어떤 사람과는 통성명도 마치기 전에 당신이 그에게, 또는 그가 당신에게 마치 고해라도 하듯 손톱 밑 이야기까지 늘어놓게 된다. 70쪽

“네, 나리, 항상 그런 법이지요. 얕게 헤엄치는 것들이 항상 잘난 체하는 법입니다.” 113쪽

“과거는 과거입니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순 없는 법이지요. 종국에는…… 지상 모든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거 누굽니까, 볼테르가 말했듯이 말입니다.” 97쪽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을 만한 정도로 일어나는 법이며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고약한 상황은 없습니다.” 97쪽

“저는 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정당하게 법에 따라 사는 수밖에요,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118쪽

“이제 머리를 써야 할 때지요. 다만 안타까운 게 있다면, 젊은 나리들이 지나치게 머리를 굴리신단 말입니다. 농부를 대할 때 꼭 인형 다루듯 하십니다. 이래저래 부리고 써먹다가 고장이 나면 버리십니다.” 118쪽

“지주 나리가 농부들에게 몸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상냥하게 바라보실 때면 농부들은 겁이 나 죽을 지경입니다. 나리, 이게 대체 무슨 영문입니까, 말씀 좀 해주시겠습니까?……” 120쪽

“사는 게 힘들어서라니! 그래, 네놈이 그렇게 진심이었다면 그 술꾼하고 술집에 앉아 있을 게 아니라 도움을 줬어야지. 말은 어찌나 그럴싸한지, 아주 대단하구나!” 126쪽

“세상에, 나리, 봉급이 다 뭡니까!…… 먹을 것이 좀 나오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더 바라는 게 없습니다요. 마님이 부디 무병장수하시길!” 146쪽

숲에서 드러누워 위를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기분좋은 일이다! 깊이를 모를 바다가 그대 눈앞에 보이고, 그 바다는 그대 아래 넓게 펼쳐지고, 나무들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식물의 뿌리처럼 내려가 유리처럼 맑은 파도 속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203쪽

“피야말로 가장 거룩한 것이거든! 피는 해님을 보지 못하고, 피는 빛으로부터 숨어…… 그런 피에게 빛을 보게 하는 건 아주 큰 죄야, 아주 큰 죄라고…… 어이구, 무서운 죄야!” 205쪽

“무엇을 하며 먹고사느냐 묻는다면, 딱히 하는 건 없어. 어릴 때부터 나는 아주 둔해빠져서 되는대로 일하며 살았지. 일꾼으로서는 영 써먹을 데가 없거든…… 어디서 나를 쓰겠어! 몸이 튼튼한 것도 아니고, 손재주도 없으니. 음, 봄이면 꾀꼬리를 잡아.” 206쪽

“사람도 짐승도 죽음 앞에서는 수를 못 써. 죽음은 달려서 오지 않고,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 게다가 죽음을 도울 수도 없는 법이고……” 206쪽

“늪에서 잘 때도 있고, 숲에서 잘 때도 있고, 들에서 잘 때도 있어. 아무도 없는 아주 외진 곳에서 말이지.” 207쪽

“사람은 자고로 의로워야 해, 암! 그러니까 하느님이 보시기에 마땅해야 한다 이거야.” 207~208쪽

“해가 밝게 비춰주니 하느님에게도 내가 더 잘 보일 테고, 그러니 노래도 절로 나오지. 여길 봐, 어떤 풀이 자라는지. 이렇게 풀들을 잘 봐뒀다가 조금씩 뜯어서 모으는 거야. 여기 샘이 하나 있는데, 아주 깨끗한 샘물이 졸졸 흘러. 이 물도 꿀꺽꿀꺽 마시고는 잘 기억해두는 거야. 하늘을 나는 새들은 또 어찌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210쪽

“나리, 나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원체 단순한 사람이라 옛 방식대로 할 뿐입니다. 주인이면 주인답게, 농부면 농부답게 살아야지요…… 암, 그렇고말고요.” 304쪽

러시아의 농부가 죽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놀랍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그의 태도는 무심한 것도, 우둔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의식을 치르듯 죽는다. 차갑고 단순하게 죽는다. 362~363쪽

그 목소리에는 꾸미지 않은 깊은 정열, 젊음, 힘, 쾌감, 그리고 매혹적이고도 태평스러운, 그러면서도 애끓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 목소리에는 러시아의 뜨겁고 진실한 영혼이 소리 내며 숨쉬었고, 그렇기에 듣는 이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러시아 사람의 심장에 걸린 현들을 움켜쥐었다. 399쪽

“굶어죽기야 하겠습니까! 돈은 없어도 친구들은 있을 테니까요. 돈이 다 뭡니까?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황금도 다 먼지입니다!” 428쪽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아름다운 자연을 망라하고
드라마와 해학, 서정으로 직조한 젊은 투르게네프의 걸작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꼽히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1852)가 완역되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사냥꾼의 수기』는 러시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19세기 농노제 말기를 살던 다양한 계층, 다양한 인간의 일상을 수채화처럼 담백하게 담아낸 연작단편집이다. 1847년부터 1851년까지 〈동시대인〉에 스물두 편이 차례로 실렸고, 1870년대에 세 단편이 추가되었다. 총 스물다섯 단편은 계절마다 사냥감을 쫓아 곳곳을 여행하는 귀족 사냥꾼 화자의 눈에 비친 다채로운 자연과 삶의 풍경, 그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하고 사실적인 스케치들이다. 러시아 리얼리즘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며,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결합해가는 연작 형식은 당시 전통적 서사구조에서 벗어나려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톨스토이, 체호프 등 당대 러시아 작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헤밍웨이와 헨리 제임스 등 영미권 작가들에게도 강렬한 영감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사냥꾼의 수기』를 읽고 “이제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고, 그 영향으로 이후 「삼림 벌채」와 「세 죽음」을 썼으며, 체호프의 「갈대 피리」와 「사냥꾼」도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삶의 지난함과 광활한 자연이 그려내는 시대의 풍경화
젊은 투르게네프의 역작이자 러시아 리얼리즘문학의 성취

니콜라이 고골에 이어 러시아의 차세대 문학을 이끌 이반 투르게네프가 등장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베를린대학교에서 유학하며 서유럽의 중심부를 여행했다. 그리고 개화하고 근대화하는 그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진정한 교육이 시작된 곳이 러시아 밖 유럽이라 말했듯이, 젊은 날 서구주의와 자유주의에 크게 이끌린 투르게네프는 이후 “가장 비러시아적인 러시아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1840년대 집필활동을 시작한 투르게네프는 담백한 글과 특유의 뛰어난 서정성으로 곧 인정받았다. 러시아 작가들과 결이 달랐고, 프랑스 작가, 특히 귀스타브 플로베르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 투르게네프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첫번째 성공작은 1852년 출간된 연작단편집 『사냥꾼의 수기』였다.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를 해방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거론되기도 하는 『사냥꾼의 수기』는 사냥꾼 화자가 대자연을 누비며 지주에서 농노, 마름, 상인, 하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나눈 비극적이면서도 즐거운 공감과 상호작용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농노제의 억압과 가혹함을 드러내는 「호리와 칼리니치」 「두 지주」 등의 단편을 발표한 후, 이 작품들이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반정부적인 작가로서 정부의 감시를 받게 되었고, 실제로 구금되기도 하고 18개월 동안 고향에서 유배생활도 했다.
각 단편은 사냥 애호가인 이름 없는 화자의 여정을 좇는다.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된 이야기다. 눈에 띄는 클라이맥스나 뚜렷한 줄거리 없이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냥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관찰, 그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중점으로 흘러간다. 사냥꾼이 만난 사람은 대부분 하인이나 농노다. 지주의 땅을 부치면서 버거운 소작료를 내느라 등골이 휘고, 귀족 지주 밑에서 일하며 평생 입에 풀칠이나 하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근대화되어가던 당시 농노제는 유럽인들에게도 완전히 중세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1861년 폐지될 때까지 러시아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당시 농노의 삶을 그린 작가들은 여럿 있었으나 농노를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그린 작가는 투르게네프가 유일했다. 농민이 그저 주변 인물로 그려지거나 교훈적인 소설에서 교화의 대상으로만 등장하던 톨스토이의 소설과 달리, 투르게네프의 작품에서는 교훈적인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투르게네프가 농노들이 받는 억압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천성적으로 교훈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훈을 주는 글은 그가 추구하는 소설 미학이 아니었다.

“어째서 포도주를 데우지 않았지?” 그가 꽤 날카로운 목소리로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은 당황하며 말뚝처럼 동작을 멈춘 채 창백해졌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지 않았던가?” 아르카디 파블리치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불쌍한 시종은 자리에 선 채 우물쭈물하며 냅킨만 쥐어틀 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_「마름」에서

투르게네프는 당시 농노제의 가혹함과 봉건적 폭정을 다양한 상황의 묘사로 암시했을 뿐, 폐단을 명시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이 사는 모습에, 인간 그 자체에, 삶 그 자체에 시선을 두고 주관적 판단이나 이념적 개입 없이 러시아의 얼굴을 수채화처럼 명징하게 그려나갔다. 「산딸기샘」에서 화자는 더운 여름날 사냥을 나갔다가 강에서 낚시를 하던 두 남자를 만난다. 그중 한 사람은 이웃 마을 농노 스툐푸시카였다. 작가는 화자의 눈을 통해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이 남자의 불행한 상황을, 19세기 중반 봉건적 사회의 우울감을 그린다.

하인이라면 누구나 하인 집단에서 모종의 지위, 모종의 관계를 가지며, 지주에게 봉급을 받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매월 ‘생필품’이라는 것을 받는다. 스툐푸시카는 어떤 물질적 대가도 받지 않았고 누구와도 혈연관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심지어 과거도 없었다.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그는 가호조사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그가 한때 어느 댁 시종으로 일했다는 알 수 없는 소문만 돌았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누구의 아들인지, 어쩌다가 슈미히노 사람이 되었는지, 무슨 수로 언제부터 입고 다녔을지 모를 무호야르 카프탄을 구했는지, 어디에 사는지, 무슨 돈으로 먹고사는지 등등 아무도 알지 못했고, 사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_「산딸기샘」에서

『사냥꾼의 수기』에서 가장 강렬한 구절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대목은 농노제가 유발한 비인간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친구도 가족도 없고, 자기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왜 그런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알려진 유일한 정보는 그가 다른 사람의 재산이라는 것, 누군가의 소유라는 것뿐이다. 화자는 스툐푸시카의 상황을 이상하다고 할 뿐, 감상도 판단도 하지 않는다. 오직 농노의 눈으로 본 것, 농노의 입에서 나온 말로 그 삶의 또다른 관점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묘사 방식뿐만 아니라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새로 결합해가는 투르게네프의 스타일은 당시 새로운 서사구조에 목말라하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에게 보낸 편지에 “투르게네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적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어서 나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떠나자.”

자연, 인간,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한 사랑
투르게네프의 모든 역량이 담긴 예술 연대기

『사냥꾼의 수기』에 대해 말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빛과 그 변화에 대한 압도적이고도 황홀한 투르게네프 특유의 문체와 묘사다.

해가 맑게 빛나거나 구름에 가려질 때마다 비에 젖은 숲의 내부는 끊임없이 변했다. 배시시 미소를 짓듯 사위가 갑자기 밝아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다지 빽빽하게 심기지 않은 자작나무의 가는 줄기들이 돌연 하얀 비단 같은 부드러운 광택을 띠었고, 땅에 누운 잔가지들은 알록달록해지며 순도 높은 금처럼 타올랐다. 또 키 크고 곱슬곱슬한 고사리의 아름다운 줄기는 농익은 포도 색을 닮은 가을의 빛으로 단장한 채 빛줄기 사이로 무한히 서로 얽히고설켰다. 느닷없이 모든 것이 다시 푸르스름해졌다. 선명하던 빛깔은 순간 사그라졌고 여전히 하얀 자작나무들, 차가운 겨울 햇빛도 미처 건드리지 못한 금방 내린 눈처럼, 광택 없이 그저 하얗기만 한 자작나무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_「숲과 초원」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 평범하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는 워즈워스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투르게네프는 거기서 불멸의 암시를 찾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 그대로의 즐거움을 누린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와 달리 투르게네프는 삶에 종교적인 의미도 두지 않았다. 문학의 주요 목표는 삶의 진실을 반영하고 삶의 불의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투르게네프는 이 신념 위에 때로는 냉철하고 때로는 아이러니한 객관성을 지닌 초연함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갔다. 그리하여 누구보다 ‘인간’에 가까이 다가서는 『사냥꾼의 수기』와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그는 각 단편에서 다양한 인간 본성을 포괄적으로 그려간다. 「시골 의사」에서는 죽음을 앞둔 젊은 여성이 마지막 순간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려 덤비고, 「나의 이웃 라딜로프」에서는 중년의 귀족이 죽은 아내의 여동생과 사랑의 도주를 한다. 「베진초원」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 밤새도록 귀신 이야기를 하고, 「크라시바야 메차의 카시얀」에서는 낯선 노인이 신을 이야기한다. 「비류크」에서는 고독한 숲지기의 투박한 인정을, 「타티아나 보리소브나와 그 조카」에서는 시골의 가짜 예술가를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죽음」에서는 러시아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표트르 페트로비치 카라타예프」에서는 농노와 귀족의 비극적 사랑을, 「밀회」에서는 순진한 하녀와 불쾌한 하인의 마지막 만남을 그려낸다. 모두 이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들이고, 한 편 한 편이 밀도 높은 문체로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비참한 인생을 사는 무학의 사람들에게도 신과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있고, 체념만큼의 만족이 있으며, 그들이 내뱉는 말은 어떤 철학서 구절보다 더 깊숙이 우리 마음에 와닿는다.
희극적이고 풍자적이고 아이러니하고 슬프고 비극적인,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단면들을 합성한 그림과도 같은 이 작품집에서는 특히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화자의 품위와 온화함이 빛난다. 단편들 중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산송장」이다. 아름답고 활기찬 소녀였으나 어느 날 알 수 없는 병마에 사지가 마비되어 산골짜기 좁은 창고에 누워 초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마을 사람들의 자비로 목숨을 유지하며 신이 데려갈 그날을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은 고귀하고 영웅적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투르게네프가, 그리고 그 화신인 화자가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소설에 그려진 인간의 모든 악행에도 불구하고 이 놀라운 작품집에서 가장 강하게 현현하는 것은 자연, 인간,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한 사랑이다.

[관련 서평]

“『사냥꾼의 수기』를 읽었다. 이제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 _레프 톨스토이

투르게네프라는 젊은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세요. 이 젊은이의 재능은 ‘대단’합니다. 장래에 큰 작가가 될 겁니다. _니콜라이 고골

『사냥꾼의 수기』는 내게 단편소설의 패러다임과 같은 작품이다. _셔우드 앤더슨

루시에 골짜기와 여름밤이 존재하는 한, 도요새와 물떼새가 존재하는 한 투르게네프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_안톤 체호프

투르게네프의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다. _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프랑스 작가들 한 무더기보다 투르게네프가 훨씬 값지다. _헨리 제임스

당신의 작품을 읽으니 덜컹거리는 수레를 타고 눈 덮인 들판을 달리고 싶어집니다. 이 작품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합니다. 내 영혼 깊숙한 곳을 꿰뚫는 밝은 슬픔입니다. _귀스타브 플로베르

투르게네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내가 아는 최고의 작품이지만, 투르게네프가 썼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십시오. _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가정보

Иван Тургенев
1818년 러시아 중부 오룔의 부유한 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3년 모스크바대학교 철학부에 입학했고, 페테르부르크대학교 철학부로 옮겨 1836년 졸업했다. 1838년부터 독일 베를린대학교에서 유학하면서 스탄케비치, 바쿠닌 등 러시아 이상주의자, 서구주의자와 교유했다. 1841년 귀국한 뒤 진보적 청년 모임에 참가하며 집필을 시작했다. 1843년부터 1845년까지 러시아 내무성에 근무하며 희곡과 중편 등을 썼고, 서사시 『파라샤』(1843)가 벨린스키에게 호평받았다. 1847년 〈동시대인〉에 「호리와 칼리니치」를 발표하고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 단편을 비롯해 수년간 꾸준히 발표한 총 스물다섯 편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자, 대자연을 배경으로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농노제 아래 민중의 삶을 뛰어난 서정으로 담아낸 『사냥꾼의 수기』(1852)가 국내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정부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1850년 모친이 사망했을 때는 집안 소유 농노 천여 명을 해방하려 해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후 주로 파리에서 지내며 자료 조사와 집필을 위해 귀국할 때를 제외하고는 생애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 『루딘』(1856), 『귀족의 둥지』(1858), 『전야』(18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1870년대 러시아 인민주의 사회혁명을 그린 마지막 작품 『미개척지』(1877)까지 총 여섯 편의 장편을 남겼다. 러시아 최고의 미문가,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자, 인도주의 작가로 당대 지식인의 양심을 대표하며 말년까지 명상과 사색을 이어가다 1883년 파리 교외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해는 그의 유언에 따라 페테르부르크 볼콥스코예 묘지에 안장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고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에서 러시아 서정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으로 활동하며 웹진 〈인-무브〉에 20세기 러시아 시를 소개하는 ‘러시아 현대시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끝의 시』, LGBT 세계시선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공역),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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