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동자의 모험
2024년 02월 27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2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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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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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고물가와 그에 비해 확연히 낮은 임금 인상률로 인해 되레 마이너스 임금을 받는다고 평가되는 시기, 어느 때보다도 빈부와 계급 차이가 확대되고 양극화된 이념과 사상으로 혼란스러워진 지금, 장르 소설 작가들은 이 사회, 그리고 노동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느 노동자의 모험: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은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되었고 다섯 명의 장르 소설 작가들은 각자 마음속에 깊이 간직했던 현 사회의 노동자가 맞닿은 문제점(노조 탄압, 외국인 노동자 처우, 하청 노동, 중대재해 등)들을 하나하나 꺼내 들었다.
노조 활동을 하다 사고사한 망자를 만나고서야 착취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한 삼도천의 뱃사공, 착취와 부조리 속에서 꿈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까지 잃어가는 제빵사, 산업혁명기 배경 웹소설의 단역 노동자에 빙의된 후 생존을 위해 주인공에게 혁명 정신을 일깨우는 회사원, 어떤 실험에 동원된지도 모른 채 특별 수당에 기뻐하는 청소 노동자, 살인 혐의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의 결백을 밝혀야 하는 시골 마을 파출소장의 이야기까지. 어제와 오늘 뉴스에 등장했고 내일의 뉴스에도 등장할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이 이야기는 현실감 넘치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잃지 않아 독자들의 기억에 더욱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한편 『사랑과 혁명, 그리고 퀘스트: 하드 SF 앤솔러지』, 『절망과 열정의 시대: 일제강점기 장르 단편선』 등 구픽의 장르 앤솔러지는 2024년에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카스테라 / 은림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 / 이서영
슈퍼 로봇 특별 수당 / 구슬
살처분 / 전효원
송윤은 갈대밭을 헤쳤다. 뛰다시피 도착한 곳에서 강심연의 나루터가 보였다. 어스름한 어둠을 밝히는 횃대와 모닥불 사이로 망자와 뱃사공들이 보였다. 곳곳에 내건 현수막이 불어오는 강바람에 펄럭였다.
살기 위한 결사 항쟁!
뱃삯 7할을 가져가는 저승! 배 수리비도 안 나온다! 임금을 인상하라!
근로 시간 준수하라! 죽지 못한다고 무시하냐!
위험천만한 뱃길! 수귀로부터 안전 보장이 될 때까지 투쟁 투쟁 투쟁!
_「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배명은) 중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어쩌다 보니 신입 기사로, 일이 능숙해지자 다른 지점의 휴일을 책임지는 파견 기사로 계속 업무가 바뀌었다. 나름 승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월급의 앞자리 숫자는 도무지 변하지 않았다. 파견 기사가 하는 일은 제빵사가 쉬는 지점이 문을 닫지 않도록 대신 가서 일해 주는 것이었다. 365일 쉬지 않고 열려 있는 프랜차이즈가 가능한 게 바로 이런 시스템 덕이었다. (…) 회사가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오라 가라 하고 돈도 마음대로 주고 뺏고 휴일조차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나는 정말로 지쳐 버렸다. 내가 사표를 쓸 의사를 비치자 회사는 재빨리 나를 교육 기사로 승진(?)시켜 주었다. 고정적인 장소로 출퇴근하게 되지 생활이 한결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쉴 틈 없이 무지막지한 12시간 노동은 여전했다.
_「카스테라」(은림) 중에서
이 세계관에서 메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0에 수렴했다. 아마 어딘가에서 산재로 죽거나,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하거나, 매춘을 시작하게 되거나, 강도당하거나,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이 메리 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메리가 그걸 피할 수 있는 그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없는 세계였다. (…) 물론, 열다섯의 메리가 무엇을 아는지는 몰랐다. 내가 아는 건 오직 서른 살 선경의 방식뿐이었다. 메리, 아니 선경인 나는 아픈 무릎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침묵의 세상을 깨고, 피에 젖은 깃발을 올리라는 게 직장에서의 주문 아니었던가. 그러려면 오늘 내가 만난 아름다운 소녀는 프록코트 청년의 손이 아니라 피에 젖은 깃발을 손에 쥐어야만 했다.
_「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이서영) 중에서
21세기 내내 사람들이 ‘의료 민영화’라 불렀던 의료 부문 영리화가 진행된 결과, 22세기 현재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공공 의료 체계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였다. (…) 병원비와 수술비 상환을 위해 설계된 30년 고정 금리 대출 상품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홍채와 지문 정보를 입력하며, 서진은 자신의 남은 수명을 거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서진에게 주어진 30년의 삶은 이 막대한 부채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수행될 것이었다.
_「슈퍼 로봇 특별 수당」(구슬) 중에서
“이거를 까칠허다고 히야 허나. 아녀, 그냥 정상이여. 너무나 심허게 정상이지. 이 여자가 이주 노동자나 국제 결혼헌 사람이 관련된 일이라먼 아주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디, 우리가 아무리 안 글라고 히도 쪼매 거시기헌 부분이 있기 마련이잖냐. 암만히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닝게, 이? 긍게 뭔 소리나먼, 차별을 헐라고 허는 게 아닌디 무의식적으로다가, 이? 근디 이 사람은 외국인이 쪼금이라도 부당헌 대우를 받는 꼴을 못 봐요. 들어 보먼 다 맞는 말이여. 옳은 소리고. 우리가 반성허고 고쳐야 허는 부분들이 맞어. 최 경사 같은 애들은 그 여자가 맥없이 시비만 건다고 싸우기도 허는디, 그것은 잘못이지.”
_「살처분」(전효원) 중에서
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배명은)
죽은 자들이 도착하는 삼도천 뱃사공들의 팀장인 송윤은 부정한 일을 저지르던 중 느닷없이 노조 활동을 하다 사고사한 최태수와 맞닥뜨린다. 송윤은 뱃사공 중 하나인 경수에게 최태수의 뒤처리를 맡기지만 연일 계속되는 과도한 업무와 부당한 임금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경수는 최태수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카스테라(은림)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세상에서 항상 나를 반겨준 빵집 ‘카스테라’와 사장님 효이 씨와의 기억을 잊지 못한 나는 제빵사의 꿈에 매진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들어간 제빵 회사는 무지막지한 업무량과 인간적이지 못한 처우로 나의 꿈을 조금씩 갉아 먹는다. 이 와중에도 나의 냉장고에서 동화처럼 자라나고 있는 꿈의 케이크는….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이서영)
불안과 권태 속에서 퇴근하던 길,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읽던 웹소설 속으로 빠져 들어간 나. 하지만 나는 주인공도, 귀족도 아닌 산업혁명기의 하층 계급 노동자였다! 이대로라면 아무도 모르는 새 죽어 사라질 마당. 나는 귀족 청년과의 결혼으로 신분이 상승할 예정인 주인공 클레어를 혁명의 주인공으로 조련시키기로 결심한다.
슈퍼 로봇 특별 수당(구슬)
방위 산업체 소속 K 연구소의 청소노동자인 서진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들과 번듯한 직장 없이 세상에 불만만 많은 딸이 비교되어 가슴이 쓰리다. 어느 날 우연찮게 연구소에서 비밀 실험 제안을 받은 서진은 그 내막을 알 수 없어 불안해하면서도 즉시 지급되는 특별 수당에 마음을 놓기로 한다. 하지만 서진이 모르는 실험의 비밀은 따로 있었는데….
살처분(전효원)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 중인 닭 분쇄기에 사람이 빨려들어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썸밧이 용의선상에 선다. 현장에 도착한 파출소장은 외국인 노동자 일이라면 손발 걷어붙이고 뛰어드는 베트남 출신의 이 동네 마당발 부 응옥 란을 만나 껄끄러워하면서도 충실히 조언을 들으며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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