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
2024년 04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1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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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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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인 ADHD 아닐까?’ 하는 막연한 의심과 ‘만약 질병이라면 내가 환자가 되는 것인가?’ 하는 뜻밖의 불안. 치료라는 이름의 희망과 질병이라는 낙인의 두려움. 이랬다가 저랬다가 머릿속이 복잡한 김의심 씨는 도대체 성인 ADHD가 뭔지, 왜 갑자기 사람들이 ADHD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인지, 자신이 가진 기대와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래, 모르면 물어보자. 의심 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선생님의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김의심 씨, 안녕하세요. 시간 맞춰 오느라 애쓰셨어요. 오, 짐이 많으시네요. 펼쳐진 노트북은 여기 책상 위에 놓고 사용하시면 되고, 가방이랑 옷은 옆의 의자에 놓으시고요. 어, 위험해요, 그 종이컵은 제가 받아드릴게요.”
질문하는 사람 | 내가 ADHD면 어떡하지? 내가 ADHD였으면 좋겠다!
화답하는 사람 | 둠칫, 둠칫, 꽈당! 조금 기우뚱거려도 괜찮아요
1. ADHD, 이해와 오해
ADHD, 왜 이렇게 핫하죠?
산만하면 다 ADHD일까?
ADHD, 정확히 뭔가요?
어릴 때 진단이 안 된 이유는 뭘까?
언제 내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걸까?
ADHD는 혼자 오지 않는다
|ADHD 환자의 이야기 1
2. ADHD, 구원과 절망
혼자 고민하지 말고 병원 가자!
약이라는 오리발을 끼고 혼란의 바다 건너기
ADHD인의 아킬레스건, 수면이라고?
잠, ADHD를 푸는 열쇠
너 자신의 스트레스를 알라
|ADHD 환자의 이야기 2
|ADHD의 뇌에 대하여
3. ADHD, 환자와 사회
질병이 아니라 개성으로 봐주겠니
자기계발 담론과 ADHD
마음 놓고 산만하지도 못한 K-장녀
ADHD라서 그랬네 vs. 내가 ADHD라니
|ADHD 환자의 이야기 3
|ADHD 약물치료의 역사
4. ADHD, 고립과 공존
우리 조상은 ADHD였을 수도?
ADHD인, 내 동료가 돼라!
우당탕탕 빙글빙글 ADHD와 가족들
ADHD인과 살아보니 어때요?
내 습관, ADHD 최적화를 시작합니다
|ADHD 환자의 이야기 4
에필로그 | 우리들의대화방
필요할 때 찾아보세요
1) ADHD 체크 리스트
2) ADHD 진단 기준
3) 병원에 가기 전에 생각해둘 것
4) ADHD 진단을 위한 검사
5) 나와 잘 맞는 병원과 전문의 찾는 요령
6) ADHD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의심 씨의 인지능력이나 업무 처리 능력이 떨어진다기보다는 어떤 부분은 상대적으로 훌륭하고 어떤 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즉 그 편차가 크고 불균형한 상태여서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대단한 욕심을 부린 게 아닌데도 힘든 거죠.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나는 왜 안될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고요. 자꾸만 ‘나는 정상이 아니다’라는 고민을 하곤 하는데, 때마침 주의력과 집중력, 도파민 등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니 ‘내가 혹시 ADHD라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되죠. 정리도 잘 안되고 생산성도 떨어지고 산만하기 그지없는 나의 이런 상태가 사실은 질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질환이라 생각하면 나의 상태를 ‘교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품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ADHD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실제로 진단이 덜 되고 있기 때문이죠. 의심 씨 같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 병원을 찾고 ADHD를 진단받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_ADHD, 왜 이렇게 핫하죠?, 36쪽
ADHD가 있는 뇌의 상황을 한번 그려볼게요. 초등학교 교실이 하나 있어요. 1반이라고 합시다. 1반에는 의욕이 넘치는 친구, 똘똘한 친구, 개구쟁이 친구들이 다양하게 모여있습니다. 그런데 1반 담임 선생님이 교탁 앞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거예요. 수학 시간이라 아이들이 “구구단이 뭐예요?” 하고 묻는데 “어, 얘들아 잠깐만. 선생님이 피곤해서, 정신 좀 차리고.” 이러면서 계속 헤매고 있는 거죠.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어떤 아이는 다른 과목 교과서를 펼쳐 읽고, 어떤 아이는 공책에 낙서를 하고, 어떤 아이는 짝꿍이랑 장난을 치고, 다른 아이는 말없이 화장실에 가겠죠. 아이들을 적절히 통제하고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텐션이 떨어진 선생님, 이것이 ADHD가 있는 뇌의 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업시간은 흘러가는데, 대체 구구단은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오늘 진도를 완수할 수 있는 걸까요?
_ADHD, 정확히 뭔가요?, 56쪽
여성의 경우는 임신과 출산, 양육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ADHD를 의심하며 병원을 찾는 일이 흔합니다. “선생님, 저는 육아가 너무 안 맞아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요”라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요.(…) 아이한테 너무 소리를 지른다는 거예요. 물론 아이 때문에 속이 터지고 답답하면 그럴 수 있죠. 그런데 ADHD가 있는 엄마들이 겪는 감정은 그냥 신경 쓸 일이 많아져 힘들다는 것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ADHD가 있는 분들은 일단 평소에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도 힘들었거나, 아니면 규칙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경우도 많거든요. 아이가 없을 때라면 밥을 좀 대충 먹거나 건너뛰어도, 청소를 좀 안 해도, 시간 약속에 좀 늦어도, 충동적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책임을 온전히 혼자 짊어지면 되지만 아이를 키울 때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단순히 아이 때문에 속상하고 스트레스 받는다, 육아가 너무 피로하다 정도를 넘어서 나도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든데 애가 스스로 걷고 뛰게 만들어야 하니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밀려올 수밖에요.
_언제 내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걸까?, 75쪽
저는 ADHD 치료에서 약물이 하는 역할을 ‘오리발’에 비유하곤 합니다.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강습용 핀, 일명 오리발이요. 오리발을 착용하고 발차기를 하면 맨발로 할 때보다 훨씬 수월하지요. 평소보다 물에 잘 뜨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편해서 수영을 배우는 강습생들이 팔 동작을 연습하거나 영법을 발전시킬 때 오리발의 도움을 받곤 합니다.
ADHD 치료 약물을 이 오리발이라고 생각해보세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개선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약의 도움으로 조금 더 쉽게 개선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영법이 익숙해지면 오리발이 없어도 수영을 잘할 수 있듯이, 약의 도움으로 일상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ADHD 약물도 줄여나가면 됩니다. 약물 치료를 하면서 일을 시작하고 동기를 유지하고 지속해나가는 것이 원활해지면, 루틴을 정리하거나 과제를 완수하는 과정을 충분히 익히고 훈련할 수 있게 됩니다.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감각을 직접 체감하면서 원하는 정도의 집중과 실행 수준을 조절하게 되면 약이 좀 덜 필요하다고 느낄 거예요. 이 정도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무리가 없겠다 싶은 수준을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하여 치료 목표로 정해보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 약을 줄여나갈 수 있는, 그러니까 오리발 없이도 능숙해지는 시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_약이라는 오리발을 끼고 혼란의 바다 건너기, 119쪽
우리 뇌의 시상하부의 상교차핵이라는 곳이 일주기 리듬을 결정하는 일종의 생체 시계인데요, 어떤 사람들은 이 생체 시계가 밤에 자고 아침에 깨는 일반적인 리듬과는 다르게 설정되어 평범한 사회적 루틴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라고 부릅니다. ADHD를 가진 분들은 이 중에서도 지연성 수면 위상 증후군(Delayed Sleep Phase Syndrome)을 주로 경험합니다. 잠자는 데에 필요한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 자체가 1.5~2시간 이상 지연되어 잠들기도 어렵고, 심한 경우는 밤에 주된 활동이나 놀이를 하다가 새벽 5~6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밤중에 방해 요소가 적기 때문에 이때 집중을 요하는 일을 처리할 수 있어서 주로 밤에 작업을 하는 통에 수면 리듬이 더더욱 늦어지기도 합니다. (…) 불면증이 있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성인 ADHD 환자 네 명 중 세 명이 밤에 잠들기 위해 마음을 차단(shut-off )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합니다. 푹 자기 위해 방의 조명 스위치는 끄지만, 뇌의 각성 스위치는 끌 수 없는 것입니다. 자려고 누워서 머리를 비우고 양이라도 세어보려 해도, 갑자기 떠오르는 그날 있었던 일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 여기서 파생된 상상 등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런 상황을 ADHD의 “생각의 질주(racing thoughts)”라고도 표현하는데요, 평소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특히 잠들기 전에 입면을 크게 방해합니다.
_ADHD의 아킬레스건, 수면이라고?, 129쪽
다만 걱정이 되는 점은 요즘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문화에서는 이러한 좋은 취지가 왜곡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에요. 자기계발 담론에서는 당사자가 겪어온 어려움을 모두 개인 내부의 문제나 노력 부족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성공에 대해 아는 것을 ‘변화’라 하고 자신을 변화하기 전과 후로 나눈 뒤, 변화 이후를 성공에 대해 아는 ‘계몽된 자’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살아가는 우리에겐 ADHD 진단과 치료의 ‘비포/애프터’가 마치 ‘좋은 삶’과 ‘나쁜 삶’의 대치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물론 ADHD로 일상에 불편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낸 환자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개선되고 편안해지는 과정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ADHD 치료 이전의 삶은 ‘이번 생은 망했어’이고 치료 이후의 삶만이 ‘갓생’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전의 나의 삶도 나의 삶이고 변화된 새로운 삶 역시 나의 삶이잖아요. 치료 이후 일상이 달라졌다고 해서 나의 정체성이나 유전자가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ADHD를 진단받고 치료하기 이전의 삶은 다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뿐, 애초에 내가 갖고 있던 가치관이나 능력, 기질,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_자기계발 담론과 ADHD, 188쪽
‘K-장녀’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의젓해야 하고, 힘든 내색을 해서는 안 되고, 부모의 양육을 보조하고, 부모를 실망시켜서는 안 되는, 소위 살림 밑천이라는 ‘한국의 큰딸’이요. 앞서 여성들은 성 역할 특성상 학교와 사회에서 정리정돈과 자기관리에 대해 더 높은 기준을 요구받는다는 얘길 했는데요, K-장녀는 이에 더해 가정에서도 어마어마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게 됩니다. 장녀 또는 장녀가 아니어도 이런 역할을 부여받은 자녀는 부모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고, 부모의 책임도 일부 나누어 지게 되지요. (…) 게다가 K-장녀로서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면 더 큰 비난이 이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무리하게 과교정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지요. 이는 강박적 태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나는 방심하면 실수를 하니 정신 바짝 차리고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며 애쓰다 보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이런 K-장녀 환자들을 종종 마주합니다. 보통은 불안장애나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데, 상담을 이어가며 자세히 관찰해보면 근본적인 원인이 ADHD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 진단에 다다르기도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어릴 때부터 단련된 책임감과 배려, 각고의 노력으로 본인의 증상을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거든요.
_마음 놓고 산만하지도 못한 K-장녀, 200쪽
ADHD가 나아지면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이전보다 수월하게 흐르고 스트레스 관리도 조금은 쉬워지겠지만, 그게 곧 내 인생이 나아질 거라는 보장으로 이어지나? 나는 저분들처럼 뛰어나게 잘하거나 성취를 이뤘다고 할 만한 분야가 없는데, ADHD가 치료되면 나는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일까? 그냥 썩은 쓰레기에서 일반 쓰레기가 되는 것 아닐까? 막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제 겨우 몇 주 약 먹었는데 벌써 이런 걱정부터 하고 있다니 나도 진짜 못말린다 싶어요.
그래도 일단은 좋아요. 특출난 능력은 없지만 약물 치료 덕분에 적어도 기본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시간을 지키는 것,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는 것, 잠을 잘 자는 것, 방을 치우는 것, 물질 사용 중독들에서 벗어나는 것. 무릇 인간이라면 하고 살아야 하는 것들을 사람답게 할 수 있겠지. 우선 지금은 그런 생각으로 살아요.
_ADHD 환자의 이야기 4, 환자Y, 304쪽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요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안주연 전문의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허둥대며 들어오다가 물컵을 엎을 뻔하는 김의심 씨를 느긋하고 다정한 미소로 맞이한다. 마치 이런 일에 매우 익숙하다는 듯이, 넘어지려는 종이컵을 빠르게 받아들고 의심 씨의 어수선한 가방들을 정리하면서.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는 ADHD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과 ADHD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싶은 두 사람의 대화로 시작된 본격 성인 ADHD 탐구서다. 전작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를 통해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였던 안주연 원장은 최근 부쩍 늘어난 20~40대 성인 ADHD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ADHD에 대한 책 집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ADHD임을 진단받지 못해 오랫동안 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환자들을 만나며, 전문가와 당사자를 이어줄 질문자이자 해설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김의심 씨의 질문에 기쁘게 화답했다고 고백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게만 느껴졌던 ADHD,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이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만큼 익숙해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ADHD로 진단받은 30대 환자는 2018년에 비해 2022년에는 7배나 급증했으며, 20대의 경우 4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성인 ADHD 환자가 늘었다는 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며, 그만큼 ADHD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고 자신의 치료 경험담을 고백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안주연 원장은 이 책에서 ADHD ‘열풍’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이야기한다. 환자가 많아지고 관심이 높아진 것은 여러 제도적 변화와 연구의 확대로 진단이 전보다 유연해진 영향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환자가 늘었다는 이유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특유의 기민하고 경쟁적인 분위기로 인해 개인이 마음 돌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점에 더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의 기준들이 성인 ADHD 환자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 사회적 안전망은 약해져 가는데 성취를 이루기 위한 기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주의력이 부족해 실수를 자주 하고 시간 관리에 취약하며 관계 맺기에 서툰 ADHD 환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진다. 하나의 부품으로서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나사 하나가 고장나면 전체 공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ADHD인은 흡사 고장난 나사가 되어 오랜 시간 홀로 고군분투해왔다. 그렇게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고 자기 비하에 빠져 힘들어하던 이들이, ‘이 모든 게 ADHD 때문이라면 어쩌면 나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면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ADHD라는 질병의 명칭이 정립된 것은 불과 36년밖에 되지 않았을 만큼 ADHD는 아직 젊은 현대병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소아기에 진단되고 치료받았어야 할 질병임에도 성인이 되어서야 문제를 인지하고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그동안 자신의 삶을 괴롭혀왔던 부분들이 ADHD 때문이었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병명 때문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과잉행동이 있거나 충동성이 보인다’는 몇 가지 증상만 떠올리곤 하는데, 사실 ADHD의 증상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무기력하고, 지각하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과몰입하고, 그런데 집중하지 못하고, 울컥하고,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덤벙대고, 항상 졸리고, 어지르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산만하고, 늘 지적받고 혼나는 삶. 어떻게든 제대로 살아보려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개선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면 어쩌면 ADHD가 원인일 수 있다.
물론 증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ADHD로 진단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다른 질병이 원인이 되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진단은 면밀하고 정밀한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그러니 만약 사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다른 질병이 개선되었는데도 끝내 해소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자신을 괴롭힌다면 적극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실제로 성인 ADHD를 진단받고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소개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여전히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성인 ADHD를 진단받고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ADHD에 대한 편견 없는 정보와 다정한 격려를 전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좌충우돌 정신없어 보이는 ADHD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자고 독려하기도 한다. ADHD는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어떤 사회에서는 큰 ‘흉’이 아니지만 각박하고 경쟁적인 한국사회에서 유난히 약점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료 시민으로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이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인다면, ADHD인은 더 크게 숨 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은 기우뚱거려도 괜찮아요
그것이 인생입니다
이 책은 ADHD에 대한 이해와 정확한 정보, 사회적 맥락의 분석, 진단 과정, 대처 방법 등 ADHD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환자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ADHD가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ADHD의 특성은 나름의 개성과 강점이 있다. ADHD의 특성은 상당히 모순적이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갖지 못하는 독창성과 유연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깊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뛰어난 공감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주의집중이 어려워 하염없이 일을 미루지만 한번 발동이 걸리면 순식간에 훌륭하게 일을 수행해버리기도 한다. 위계가 없는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어려운 자리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이야기하기도 하고, 타인의 실수나 잘못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으며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ADHD인은 그동안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행동한다는 이유로 많은 질타와 지적을 받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은 앞으로 ADHD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ADHD인을 ‘삶에 필요한 것들을 익히기 위해, 그리고 주변과 연결되고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해온,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자신이 가장 크게 빛날 수 있는 곳을 향해 용기 있기 나아가기를 독려한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이해받고, 스스로를 이해하며, 때로 휘청거리며 넘어지더라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정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누군가 삶의 균형이 깨지고 마음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를 둘러싼 생물심리사회학적 측면을 고루 돌보고 함께 회복해가고자 하는 사람. 다정하고 말과 글의 표현력이 좋다는 말을 듣지만 정리 정돈과 치밀한 계획에는 서툴다. 에너지를 진료에 몰빵하다 보니 일상생활은 상당히 혼란하다. 회복은 관계를 통해 일어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 내담자가 치료적 관계 외에도 자연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돕고 응원하려고 한다. 책 읽기와 쿼카를 좋아하며 앞으로 운동 그리고 등산과 친해지고 싶어 일방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를 썼고 현재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으로 일하며, 각종 매체의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정신 건강을 지키고 다독이는 노하우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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