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여행
2024년 03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3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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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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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작은 길, 아무런 표시 없는 빈 공간,
낯설거나 유쾌한 이름이 붙은 작은 마을로의 모험인 동시에
인간의 삶과 질병과 죽음을 형성하는 수많은 힘을 이해하고
그 힘들이 드러나는 장소들을 탐구한 86,209킬로미터의 여정
런던 세인트토머스병원 응급실 의사 스티븐 페이브스가 6년간 자전거를 타고 누빈 86,209킬로미터의 여정. 『발견의 여행』은 자전거 여행의 험난하고 고단하면서도 흥미로운 모험이라는 뼈대 위에, 여행길에서 만난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여행 에세이이자 의학 에세이다. 인간으로 북적이는 도시의 소란과 인간의 발길이 덜 닿아 신비로운 자연의 풍광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세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한편 그들의 삶과 질병과 죽음의 배경을 의학의 관점에서 탐구했다.
들어가며
1부 지도의 공백이 모험을 부른다: 런던에서 케이프타운까지
1 출발선
2 플랜B
3 동행
2부 날씨가 허락하는 기간: 우수아이아에서 데드호스까지
4 생각의 지질학적 대변동
5 끊김과 이어짐
3부 기념해야 할, 잊어야 할: 멜버른에서 뭄바이까지
6 먼 곳
7 신의 축복
8 모래언덕과 바람과 물과 인간
9 비 온 뒤
10 돌고 돌고 돈다
4부 우리가 한때 세상을 바꾸었노라: 홍콩에서 칼레까지
11 우회로
12 박동 소리
13 크레이지 맥스
14 국경이라는 세포막
15 샛길
16 병원과 감옥
17 유럽 속의 정글
5부 어떤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은 닫힌다: 집으로
18 원점에서
19 재활
20 우리에 대해
작가의 말
참고 문헌
지도를 들여다보며 아무도 가보라고 하지 않은 곳들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지도란 계획을 위험에 빠뜨리고 여행자를 모험으로 이끄는 세이렌의 노랫소리 같은 것. ‘원래’ 서쪽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감추어진 작은 길, 아무런 표시 없는 빈 공간, 낯설거나 유쾌한 이름이 붙은 작은 마을에 자꾸 눈길이 갔다. 지도 속에서 나는 마음껏 길을 잃고 헤맸으며, 내 삶 또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펼쳐졌다. (215면)
이야기는 국가를 건설하고 정체성을 강화한다. 그 정체성에서 국적은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 어쩌면 정체성이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협상, 내부자와 이방인이 모두 발언권을 지니는 협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체성이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맥락이, 그리고 세계 자체가 모래언덕과 바람과 인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46면)
어쩌면 국경이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흉터 같은 것이 아니라 세포막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흉터란 영구적이기에 장기적으로 볼 때 국가 사이를 가르는 선의 유동성이나 국제역학 관계의 변동 같은 것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반면 세포막은 반半투과성이어서 특정 용질과 분자와 물질은 자유롭게 통과시키지만, 다른 것은 차단한다. 국경도 이런 특성이 있다. 무엇이 넘나드느냐에 따라 투과성이 달라진다. 아편, 상품, 사람, 원조, 다국적기업, 약물, 감염병, 돈, 지식, 이데올로기 등 많은 것이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한다. 세포막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402-403면)
1998년 탈레반은 마자르이샤리프를 공격하면서 유독 하자라족을 표적으로 삼았다. 고문과 강간이 자행되었다. ‘눈에는 눈’ 식으로 더 많은 폭력이 이어졌지만, 아무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없다. 모든 잔혹 행위는 뭔가에 대한 보복이었고, 공포가 흩뿌려진 곳에서 더 많은 공포가 싹텄다. 그들의 갈등은 일부 서구 평론가들이 부족 사이의 오래된 증오를 들먹이며 설명하는 것처럼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그런 설명이 너무 안이한 해석, 언젠가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싹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버리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편리하게도 그런 해석은 강대국들이 아프가니스탄 내 일부 세력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증오를 부추기고 분쟁을 격화한다는 문제를 슬쩍 피해 간다. (425면)
건강한 사람이라면 질병이라는 현상 아래 흐르는 수많은 맥락을 축소하는 편이 마음 편할 것이다. 그 이유는 스스로 좋은 건강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강을 미덕이나 소중한 상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다른 행운도 깊은 차원에서 개인적이며, 우연이나 상황이나 특권이라는 푹신한 매트리스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믿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우리는 모두 유죄다. 이렇게 말해서 유감이지만 당신도 그렇다는 뜻이다. (465면)
영국의 ‘적대적인 환경’ 속을 떠돌면서, 지저분하고 질병과 궁핍에 시달리는 정글의 슬럼을 떠돌면서 어떻게 대접받았든, 그 기억은 다음 행선지로 그들을 따라가고, 결국 그들과 함께 시리아로, 콩고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받은 환대와 학대는 세계관을 바꾸고, 영국인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영국이라는 관념 자체를 전파할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망명 기간 동안 이방인으로서 비교적 수월하게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겪은 일도 그와 같다. 츠엉과 리옌은 내게 중국 그 자체다. 시리아의 사막 한복판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준 타리크는 어떤 의미에서 외교관이다. 내가 만나본 몇 안 되는 시리아 사람 중에서 그의 가족은 내 마음속에서 시리아란 나라의 인상을 결정지었다. 그 뒤로 TV 화면에서 그들의 조국이 불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을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492-493면)
여행을 하면 저절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그간 내가 조금이라도 자기 발견이란 걸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세심하게 살피는 수밖에 없는데,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더 확실히 자기를 발견하는 길일지 모른다. “인간은 세상에 대해 아는 만큼만 자신에 대해 알게 마련이다.” 괴테의 말이다. (503면)
나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쌤쌤이지만 다르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행 중 많은 시간을 보건의료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인간이란 존재의 가공되지 않은 부품, 우리의 피와 뼈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유사성에 주목하고 차이를 사소하게 여기는 관점이 생겼을 것이다. 또한 나는 자전거 안장 위에서 일상적인 세상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 굳이 다시 강조하자면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통점에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어쩌면 전형적인 결론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여행자란 사람과 장소가 서로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깨닫고 경탄하기를 바라는 존재 아닌가? 여행이란 색다른 것, 즉 ‘타자성’에 집착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것, 즉 ‘타자화’도 끊임없이 목격했다. (526면)
자전거로 세계를 도는 것을 탐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그렇다. 인간은 높은 산과 드넓은 사막과 툰드라까지 세상 모든 곳을 정복했다. 물리적으로는 이 행성의 대부분을 이미 ‘탐험’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 넓은 의미에서 보면,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탐험할 수 있다. 외과적 의미에서 탐험이라면 탐색적 수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연결된 관계(마틴 루서 킹이 “피할 수 없는 상호관계의 네트워크”라고 한)를 드러내는 것도 일종의 탐험이다. 길 위에서 야생의 풍경을 보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관대함을 경험하면서 경외심을 느꼈지만, 가장 큰 경외심을 느낀 것은 이 세계의 엄청난 복잡성이었다. 전에도 비슷한 경외심을 느낀 적이 있다. 초짜 의대생 시절 우리의 내부 세계, 인체의 복잡성을 탐구할 때였다. (528면)
치유라는 말의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 의학이 몸을 치유하고, 정치와 외교가 세상을 치유한다고 믿는다면, 의학과 정치 모두 갈수록 복잡해진다고 느낄 수 있다. 의학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약과 기술이 소개되고, 환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병에 시달린다. 정치라는 면에서 보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알고, 그 어느 때보다 숫자가 많으며, 그 어느 때보다 서로 의존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그것이야말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인간적인 나쁜 습관이다. 정체성과 유형에 대해, 범주와 진단명에 대해 지나친 집착에 빠질 때 우리는 우리의 장대한 복잡성을 부정한다. 지도 위에 그려진 선에 너무나 깊이 빠져들 때는 반드시 뭔가가 나타나 우리의 집착 따위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 선들을 지워버린다. 화산재 구름, 전염병, 극단적인 기후, 이데올로기, 거짓 정보 같은 것이 거침없이 국경을 넘는 순간, 우리는 그간 편리한 허구를 너무 믿어왔음을 알고 바보가 된 기분을 느끼며, 분리주의는 불행한 결말을 맞은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음을 깨닫는다. (528-529면)
슬프게도 우리는 팬데믹이든 전쟁이든 정신건강이든 인구의 대이동이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복잡성에 대해 눈을 감고 만다. 어쩌면 그 이유는 복잡성이 또 다른 불쾌하고 두려운 삶의 진실 중 하나인 불확실성을 불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 문제를 잘 요약했다. “희망과 공포가 생생할 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동화에 기대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복잡성이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견뎌야 하는 것이다.” (532면)
바람직한 정치인의 모델을 그려볼 때 우리는 임상의사들이 어떻게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지, 어떻게 환자를 방치하는지 항상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의사가 임상 징후를 간과하거나 잘못 해석했을 때, 사물에 대한 편향적 관점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했을 때, 환자에게 적대적이거나 자존심에 사로잡혀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지 않을 때,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흔히 좋은 의사가 되려면 네 가지만 잘 지키면 된다고 한다. 입을 닫고, 귀를 열고, 많이 알고, 진심으로 염려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의사뿐 아니라 모두에게 통할 것 같다. (534면)
●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람과 땅의 활기찬 전경,
천천히, 느리게 달리면서 던지는 질문과 발견
시작은 단순했다. 스티븐 페이브스는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전공과목 선택을 앞둔 시기, 전공의가 되는 확실한 길 대신 자전거 세계 일주를 선택했다. 지도를 들여다보면 감춰진 작은 길, 아무런 표시 없는 빈 공간, 낯설거나 유쾌한 이름이 붙은 작은 마을에 자꾸 눈길이 갔다. 지도 속에서 의지껏 길을 잃고 헤매는 사이, 앞으로의 삶 또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펼쳐졌다.
6년간 지구 두 바퀴 거리를 달리는 동안 자전거 타이어 26개, 체인 14개, 페달 12세트, 바퀴 축의 롤로프허브 5개가 닳았다. 국경을 102번 넘었고, 길가에서 야영한 날만도 천 일이 넘었다. 추위와 더위, 비바람과 진흙탕, 허기와 갈증, 교통체증과 통행금지, 모기와 빈대에 시달리고, 낯선 이방인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천진한 장난꾸러기들,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불쑥 다가오는 사람들, 자전거 여행자의 허름한 행색과 무모한 여정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국경 관리인 탓에 지치는 날도 있었지만, 뜻밖에 마주친 감격의 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다. 길에서 만나 친구가 된 동료 자전거 여행자들, 위험 지역에서 에스코트를 자처하는 경찰관, 그리고 무엇보다 조건 없이 응원하고 환영하고 초대해주고 차와 음식과 방을 내주고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났다. 런던에서 케이프타운으로, 우수아이아에서 데드호스로, 멜버른에서 뭄바이로, 홍콩에서 칼레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기까지, 6대륙을 가로지르며 마주친 낯설고도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활기찬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페달을 밟으며 인간의 몸과 세계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의학 오디세이
페이브스에게 자전거 여행이란 진흙탕 속에 뛰어들고 바람에 몸을 맡겨 감각의 홍수를 맛보는 일, 즉 모험에 뛰어드는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건강을 형성하는 수많은 힘들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 그 힘들이 드러나는 장소 자체에 대한 발견을 병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전거로 세계 구석구석의 길, 도시, 산맥, 강, 국경을 타고 넘으면서 페이브스는 자연스레 인간 몸속의 혈관, 맥박, 신경망, 척추, 심장박동, 세포막을 떠올렸다. 그리고 의학을 공부하면서 인체의 복잡성을 탐구할 때와 같은 경외심을 느꼈다.
그 복잡한 세계를 떠도는 동안 페이브스는 복잡한 이유로 건강을 잃은 사람들과 공동체의 노력으로 생명을 구한 사람들을 만났다. 케냐 투르카나의 이동식 진료소, 인도네시아 쓰레기 산 반타르게방, 캄보디아 톤레사프호수의 수상가옥촌, 네팔 카트만두 인근의 한센병원, 조지아 아바스투마니의 결핵 요양원, 프랑스 칼레의 난민 캠프 정글 등지에서 만난 아픈 사람들의 모습에 여행을 나서기 전 응급실에서 마주한 환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그저 한 사람의 아픈 몸이라고 생각했던 환자 뒤에 숨은 배경과 이야기들에 비로소 눈을 떴다. 그리고 그동안 정체성과 유형에 대해, 범주와 진단명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너무 쉽게 인간의 몸에 깃든 장대한 복잡성을 부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다시 세계의 복잡성을 부정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지도 위에 그려진 선에 너무나 깊이 빠져들 때는 반드시 뭔가가 나타나 우리의 집착 따위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 선들을 지워버린다. 화산재 구름, 전염병, 극단적인 기후, 이데올로기, 거짓 정보 같은 것이 거침없이 국경을 넘는 순간, 우리는 그간 편리한 허구를 너무 믿어왔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알고, 그 어느 때보다 숫자가 많으며, 그 어느 때보다 서로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 팬데믹이든 전쟁이든 기후변화든 인구의 대이동이든,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 대부분은 그 복잡성에 대해 눈을 감고 만다. 복잡성이 또 다른 불쾌하고 두려운 삶의 진실, 즉 ‘불확실성’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페이브스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하면서, 복잡성이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견뎌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복잡성을 부정하고 단순화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인간적인 나쁜 습관이라고 지적한다. 그에게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는 것은 복잡성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편향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생생하게 일깨워준 일종의 수업이었다.
● 인간애와 삶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는 여정, 그 끝에서 건네는 질문
“자,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출발할 때 세웠던 ‘육대주를 자전거로 횡단한다’는 희망과 목표는 길 위에서 수정됐다. 페이브스는 자신이 일하던 런던의 병원 응급실에서 멀어질수록, 그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했다. 여행을 하면 저절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괴테가 남긴 “인간은 세상에 대해 아는 만큼만 자신에 대해 알게 마련”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그는 자칫하면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편협한 여행자의 눈을 바깥세상으로, 낯선 사람들에게로 돌리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느리고 긴 여행을 끝내고 다시 환자들이 기다리는 병원으로 돌아오면서 페이브스는 의사의 역할이란 단지 수수께끼 같은 질병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데 있다면서, 좋은 의사가 환자 앞에서 갖춰야 할 네 가지 태도를 마음 깊이 새긴다. ‘입을 닫고, 귀를 열고, 많이 알고, 진심으로 염려하는 것.’ 의사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온 뒤 그는 마주 앉은 환자에게, 그리고 이 책을 펼쳐 들 모든 독자에게 진심을 다해 말을 건다.
“자, 제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가정보
(Stephen Fabes)
영국 세인트토머스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왕립지리학회 회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75개국, 86,000여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여행했다. 이 시대 전 세계의 삶을 담은 일종의 타임캡슐과도 같은, 자전거 페달 위에서 인간의 몸과 세계의 복잡성을 동시에 탐구한 그의 글은 『가디언』, 『텔레그래프』에 게재되었으며 그의 여행은 CNN, BBC 등에 소개되었다. 이 책으로 2021년 ‘텔레그래프 선정 올해의 스포츠 도서(사이클링 부문)The Telegraph Cycling Book of the Year ’와 ‘보드맨 태스커 상The Boardman Tasker Prize ’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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