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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배리 로페즈 지음 | 신해경 옮김
북하우스

2024년 03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3월 0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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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1.29MB)
ISBN 97911640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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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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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 배리 로페즈의 대표작이자 전미도서상 수상작인 『북극을 꿈꾸다Arctic Dreams』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북극의 진면모를 펼쳐내며 생태학의 고전이 되었다.
북극에 대한 오랜 인식은 삭막하고 척박한,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불모의 땅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온대, 열대 중심으로 고착된 자연관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지금도 북극은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땅으로 추상화되어 소비되며 고유성은 외면받는다.
저자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거부하고, 북극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 이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미지의 땅은 지금껏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문

들어가며: 전설만큼이나 먼 땅
1장 큰곰의 땅 아르크티코스: 우아하고 세련된 이상한 움직임들
2장 사향소: 평온하게 강인하게
3장 북극곰: 통찰하는 방랑자
4장 일각고래: 해석 불가능한 코드
5장 대이동: 숨결이 길이 될 때
6장 얼음과 빛: 공포의 미
7장 땅: 마음을 감싸는 땅, 땅을 감싸는 마음
8장 항로: 열정과 탐욕이 얽힌 순수한 욕망
9장 역사: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나오며: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땅

감사의 말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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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북방 대지에서 인간의 미래는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누구나 자기 희망의 투사물로서의 꿈을 만나는 곳이 되었다. (...) 그리고 그보다 훨씬 큰 꿈, 인간의 꿈 이야기를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간직해왔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 ‘과거의 지혜가 미래를 압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따르는 결단과 희망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영원한 대화에 관한 이야기이며, 우리끼리의 대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도와 희망을 둘러싼 대지와의 대화, 이를테면 평원에 내리는 뇌우나 어린 산의 깔쭉깔쭉한 선이나 외딴 호수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는 오리 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경외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4만 년 동안이나 이 대지에서 우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해왔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이 하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대지 위에서 현명하게, 그리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대지에 깃든 모든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답답한 무지를 깨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
- 서문 24쪽

우리에게 새롭고도 걱정스러운 것은 땅 자체의 다름, 이런저런 견해들의 성질마저 바꿔버리는 그 땅의 다름이다. 우리는 양립하는 시각들도 쉽사리 수용하는 온대의 대지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 온대의 긴 생장기와 온화한 기후,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과 적절한 강수량은 인간의 남용을 상당 부분 보완해주었다. 그러나 북극 생태계의 생물학적 특성은 다르다. ‘양쪽을 다 수용’하려 시도하기에는 생태적으로 너무나 취약하다. 그렇다면 북방에서 우려할 것은 당장 중재와 타협을 추구하려는 이 조급함이다.
- 들어가며: 전설만큼이나 먼 땅 44쪽

1597년에 얼음에 갇혀 난파된 네덜란드 탐험가 빌렘 바렌츠는 노바야젬랴섬 북단에서 선원들과 함께 비참한 상태로 겨울을 보냈다. 그들은 심한 불안 상태에서 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추위보다 더 증오한 것이 어둠이었다. 어스름이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번득이는 태양이 주는 거칠 것 없는 시야와는 견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솔로몬의 말을 들려줬다. “빛은 달콤하다. 눈으로 해를 보는 기쁨이여.” 마침내 예측보다 12일이나 빨리 해가 나타났다. 그들은 신의 가호를 느꼈다. 선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해를 가리켰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난관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1월의 그날 그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는 안다. 그것은 해가 아니라 해의 신기루였다. 해는 여전히 지평선 5도 아래에 있었지만, 그 광선이 대기의 굴절 현상으로 꺾어져 보인 것이다. ‘노바야젬랴 현상’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북극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현상은 정확한 측정과 예측에 대한 맹신에 주는 경고이자 세계가 이상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의 한 사례다.
- 1장 큰곰의 땅 아르티코스: 우아하고 세련된 이상한 움직임들 61~62쪽

사향소 무리의 구성 변화는 개별 동물과 집단 양쪽 모두에 ‘개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혼합 무리라고 늘 지배적인 수컷들이 수줍은 암컷들과 어린 동물들을 이끄는 형태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무리 내 수컷들의 행동이 훨씬 눈에 잘 띄기는 하지만 암컷들도 수컷들만큼 무리의 이동과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포식자가 접근할 때뿐만 아니라 만만찮은 강이나 가파른 벼랑, 무너져 내리는 강둑 같은 장애물이 등장할 때도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나타난다. 각자의 개성에 대한 이해와 서로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쌓여 이런 상황들, 특히 방어 대형을 만드는 상황에서 분명하게 위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공황 상태에 빠져 새끼와 어미 들을 남겨놓고 도망가는 녀석들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개체들일 것이다. 서로를 잘 아는 무리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움직이며, 그런 무리에서는 종종 나이 많은 녀석들이 얼이 빠졌거나 말 안 듣는 새끼들을 방어 대형 안쪽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이런 일을 설명하려다 보면 우리는 가끔 할 말을 잃는다. 동물들이 본능으로 움직인다고 무심코 상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들에게 동기와 창의성이 있는지 의심스러워한다. 200만 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은 동물인 사향소의 진화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재치 있게 반응했든 둔하게 반응했든 간에 그 유장한 세월 동안 상당한 수가 계속해서 올바른 선택을 해왔다는 점이다.
- 2장 사향소: 평온하게 강인하게 118쪽

캐나다인 북극곰 생물학자인 레이 슈와인스버그가 언젠가 해빙 위에서 데번섬 해안 절벽을 올려다보며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 땅이 놈들을 가로막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놈들은 거의 모든 지형을 통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놈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먹이가 없는 곳이에요.”
북극곰이 대단한 방랑자인 이유는 멀리 이동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지칠 줄 모르고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의 에스키모 사냥꾼들이 북극곰을 피숙투우크라고 부르는 이유도 곰이 수월하고 영리하게 땅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
에스키모 문화와 그 이전의 문화가 만들어낸 북극곰에 대한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해석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통찰력이 북극곰과의 특별한 유사성에서 나온다고 믿게 된다. 북극에서의 삶에 성공적으로 적응해간 과정을 보면 에스키모와 북극곰은 어느 정도 닮았다. 일부 에스키모 집단을 제외하면, 둘의 주된 사냥감은 고리무늬물범이다. 참을성 있게 아글루에서 기다리기와 다양한 종류의 추적 기술 등 둘의 사냥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북극곰이 에스키모보다 먼저 북극에 도착했는데, 에스키모들이 북극곰의 사냥 장면을 지켜보며 사냥 기술 일부를 배웠거나, 최소한 그 기술 일부를 도입해 정제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에스키모 집단은 곰들과 마찬가지로 겨울에 육지를 떠나 해빙 위로 이동한다. 물범 사냥이 잘되는 장소라면 두 종류의 사냥꾼 모두 대략 2주 사이에 사냥감의 씨를 말려버린다. 그러면 이동한다. 둘 다 해빙 가장자리와 해안가를 따라 생활을 영위한다. 그리고 둘 다 물범이 사라져 굶주릴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 3장 북극곰: 통찰하는 방랑자 166~188쪽

우리가 일각고래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일각고래가 우리에게 익숙한 감각의 위계구조와 영 다른 체계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한, 일각고래에게 염도를 측정하는 능력은 있는 듯하지만, 맛을 보고 냄새를 맡는 화학적 감각들은 모두 사라졌다. 예민한 촉감은 남아 있다. 압력을 감지하는 능력은 향상되어, 아주 섬세하게 깊이를 분간할 수 있는 감각과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수중에서 앞서간 대구 떼가 일으킨 미세한 난류를 포착하는 사냥꾼의 감각이 있다. 부족한 빛 때문에 시각은 위축되었다. 사실 눈은 고압과 염분에 의한 화학적 자극, 끊임없이 몰려오는 바닷물, 물속에서 달라지는 빛의 굴절각에 순응해 변형되었다. (일각고래는 눈구멍에 고정된 눈으로 물 위의 세상을 본다. 난시인 데다 거리를 달리하며 초점을 맞추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
- 4장 일각고래: 해석 불가능한 코드 234쪽

툴리호에는 25만 마리의 흰기러기가 있었다. 동틀 무렵 녀석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길이가 1.2킬로미터, 폭은 대략 457미터 정도 되는 떼를 지어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새 떼가 수면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할 때는 폭풍에 양철판이 흔들리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가 났다. (머릿속에서 소리를 하나씩 분리해보면 빨랫줄에 걸린 마른 수건이 바람에 날릴 때 나는 팍팍 소리와 비슷하다.) 일단 날아올라 날개를 편 녀석들은 눈부시다. 햇빛을 가르며 나는 불투명한 흰색 몸체, 물에 씻긴 그 외피의 흰색이 반투명한 날개와 꼬리털의 회색빛 나는 흰색과 대조를 이룬다. 가까이에서 보면 녀석들은 북극여우와 같은 조밀하고 나무랄 데 없는 흰색을 보여준다. 폭풍의 기미가 드리운 청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녀석들의 흰색은 초현실적인 선명함과 그늘 한 점 없는 광휘를 내보인다. 기러기들이 툴리호 주변 경작지에서 먹이를 먹을 때는 5,000마리 또는 1만 마리 단위의 떼로 몰려다닌다. 때로는 하늘에 4~5만 마리가 동시에 날고 있는 때도 있다. 녀석들은 거대하게 소용돌이치는 연기처럼 경작지에서 날아올라 더 높이 더 넓게 하늘로 퍼져나가며 인간의 시야를 벗어난다. 기러기 1만 마리가 뒤쪽으로 휘어진 하나의 물결이 되어 마주 날아오는 기러기 떼 속으로 세차게 흘러간다. 마치 끝없이 새로 열리는 장지문처럼 그 위에 한 층이, 그 위에 또 한 층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마침내 공간 감각을 잃고 바다 밑바닥에서 거대한 물고기 떼를 올려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 5장 대이동: 숨결이 길이 될 때 260쪽

움직이는 총빙 사이에서는 250톤짜리 배조차 불과 2~3분 만에 산업용 프레스에 낀 그랜드 피아노처럼 참나무 늑재가 위로 휘어지다가 우두둑 큰 소리로 파열하며 꺾여 부서질 수 있다. 얼음 가장자리에서 폭풍을 맞거나 개빙구역을 찾지 못하고 밤을 맞으면 선원들은 배를 보호하기 위해 부빙을 톱으로 잘라 임시 부두를 만들었다.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배를 잃을 수 없었던 만큼 얼음덩어리를 잘라내고 옮기는 피곤한 일을 매번 다시 시작해야 했다. 흐린 날에는 총빙이 퍼즐 조각들처럼 움직였고, 느슨해진 얼음들이 ‘배를 기절시킬 만큼 세게’ 반복적으로 부딪혀왔다. 고급선원들은 폭풍이 지나가거나 배가 얼음지대를 벗어날 때까지 선원들의 체력을 안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화무쌍했다. 가만히 있던 얼음이 돌아qh면 움직이고 있었다. (...)
1857년에 배핀만에서 장례식을 주관하던 또 다른 영국 탐험가 프랜시스 맥클린톡은 해빙을 지나다가 문득 12월의 보름달을 쳐다보았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완벽한 달무리가 달을 감싼 가운데 천국을 둘러싸고 있다는 희미한 빛의 띠가 수평으로 그 속을 통과하고, 여섯 개나 되는 가짜 달 또는 무리 달이 떠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속된 이 보기 드문 광경은 안개 때문에 더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얼음 알갱이와 수분 입자에 의한 빛의 굴절과 반사, 공기 중 입자들에 의한 회절에 관련된 물리 법칙들은 만만찮게 복잡하다. 천정호와 빛무리는 때로는 아주 희미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조합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발견하고 못 하고는 대체로 볼 줄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다. 나는 어느 봄날 랭커스터 해협에서 불투명한 부드러운 흰색 기둥 또는 깃털(모양이 꼭 참새 꼬리 깃털처럼 생겼다)이 남동쪽 수평선과 태양 사이에 서 있는 것(태양주)을 보았고, 그날 저녁에는 자정 몇 분 뒤에 긴 무지개색 방패 두 개가 태양 반대쪽 수평선 위에 나타나는 보기 드문 환일을 보았다
- 6장 얼음과 빛 347~369쪽

상상 역시 새로운 땅에 시간의 차원을 부여하는 질문을 낳는다. 이 울버린 발자국은 이번 여름의 것일까, 아니면 작년 여름의 것일까? 이 주황색 이끼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여기 저습지에서 평화롭게 먹이를 먹고 있는 카리부를 저기 멀리 이동하고 있는 늑대들이 발견할까? 여기서 야영했던 사람들은 왜 이 조각된 물범 뼛조각을 버리고 갔을까?
우리가 땅에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은 상당히 모호하고 정의하기 힘들다. 집안일에 골몰한 채 마지못해 여행에 나선 사람은 땅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누구도 배고픈 원주민 사냥꾼만큼 기민하지는 못할 것이다. 뭔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동경이나 연민을 느낀다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큰 흥분을 느낀다면, 그런 것들이 그 땅에 대한 긍정적인 처분에 영향을 줄 것이다. 북극에서 비행기 사고로 친구를 잃은 적이 있거나 북극 광산에 투자했다가 파산했다면, 이 땅을 적대적으로 느낄 것이고, 이 땅의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예민한 감각뿐만 아니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의 차이도 저마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땅의 어떤 특징들을 찾아내도록 이끌어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에 대한 작은 조각 지식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이야기의 형태로 축적된다. 이야기들은 공동체 안에서 기억되기 때문에 자주 확인할 수 없는 지식도 잊히거나 버려지는 일이 없다. 이런 서사들은 원주민들에게 특정 땅에 대한 복잡하고 장기적인 시각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실제로 알게 된 사실과 그저 상상한 것,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실체 사이를 오가며 확인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에 의해 정제되면서 매일 확증을 받는다. 복잡하지만 쉽게 공유되는 이 ‘현실’은 그 지역을 벗어나면 일반론이나 오해 또는 부정확한 추상으로 축소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인식이든, 인식은 마치 홍수처럼 땅을 쓸고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주워 모아 판독해야 하는, 덤불에 걸린 젖은 종잇장 같은 개념들을 남기며. 누구도 이야기 전부를 들려주지 못한다.
- 7장 땅: 마음을 감싸는 땅, 땅을 감싸는 마음 430~431쪽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이 극적인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의 꾸밈없는 성격과 가식 없는 감수성을 역설한 일차 자료는 거의 없다. 그리고 곧잘 비유로 드는 우주비행사들의 위업은 이들 항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주비행사들은 임무에 적절한 복장을 갖추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며, 모든 과정에서 지극한 보살핌을 받는 데다, 국민적 존경을 받는다. 게다가 막강한 항법장치와 관측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북극에 처음으로 온 사람들은 멀리서 찍은 해안선 사진 한 장 보지 못하고 출발했다. 그들은 허술한 배에 그보다 더 허술한 장비와 항해술을 가졌고, 게다가 근본도 지리학적 근거도 없는 지도들을 지참하고 있었다. 하도 사고가 잦다 보니 난파나 죽음이 대수롭지 않았던 시대였던지라 사망 기록을 찾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그들은 대중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들은 폭풍과 괴혈병, 굶주림, 적대적인 에스키모, 목마름으로 잔인하고도 치명적인 고통을 겪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용기와 결심이 워낙 극단적이어서 영웅적이라기보다는 으스스하고 기묘해 보인다. 성취에 대한 환상이 그들을 몰아붙였다. 최악의 순간에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불굴의 인내, 엄격한 해군 규율로 서로를 다잡았다. 쿠라흐를 타고 영적 항해에 나섰던 젊은 수도사 무리나 16세기에 존 데이비스와 함께 배를 탔던 세속적인 선원들, 또는 1819년 겨울 멜빌섬에 있었던 윌리엄 패리의 잘 정비된 겨울 숙영지에서 볼 수 있는 그처럼 창의적인 대담함이야말로 인간의 놀라운 특징이라 하겠다.
- 8장 항로: 열정과 탐욕이 얽힌 순수한 욕망 471쪽

유럽인들이 북극을 탐험하던 그때, 에스키모들도 자신의 땅을 탐험하며 새로이 적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럽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유럽인들은 북극을 특정 시간에 고정된 모습으로 생각했다. 왜소한 사람들이 사는 원시적인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말이다. 유럽인들은 고요함과 추위를 생물학적 안정 상태로 착각했다. 그들은 북극의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북극은 사막이자 황무지였다.
스테파운손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나중에 그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한 미국 기병대 중위의 사례를 근거로 들며, ‘사냥감이 득실거리는’ 지역에서 살아남지 못한 크로지어를 멸시했다. 이런 비난은 부당하고 속 보이는 짓이었다. 설사 크로지어가 사냥을 알았더라도 그건 ‘스포츠’였지 그런 곳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크로지어도 그의 부하들도 카리부나 사향소가 정말로 득실거리는 곳에서나 생존할 수 있었을 듯한데, 킹윌리엄섬과 애들레이반도는 확실히 그런 장소에 해당되지 않았다. 구할 수 있을 만한 동물은 물범뿐이었는데, 그들에겐 물범을 사냥할 만한 기술이 없었고, 무엇보다 그처럼 많은 인원을 먹여 살릴 만큼 물범이 많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 지역에 에스키모들이 드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북극을 구석구석 풀이 우거진 땅, 또는 동물들이 넘쳐흐르는 땅이라고 광고했던 스테파운손은 토착 동물들을 잡아 부하들을 먹이지 못한 그릴리도 공개적으로 비난했는데, 북극을 생물학적 사막이라고 본 영국인들의 잘못된 관념만큼이나 스테파운손의 관념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
북극을 여행하면서 산업 개발의 흔적과 마주치지 않기란 힘들다. 너무나 많은 물류, 교통, 통신 선로가 이곳을 지난다. 나는 몇 년 사이에 프루도만을 네댓 번 거쳐 갔고, 캐나다 군도의 납-아연 광산인 배핀섬 스트래스코나만에 있는 나니시빅 광산과 리틀콘월리스섬에 있는 폴라리스 광산을 모두 방문했다. 그리고 어느 겨울에는 멜빌섬 레이갑에 있는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
배리 로페즈가 안내하는
미지의 땅 북극 이야기

‘북극’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빠르게 녹아내리는 빙하’,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북극곰’. 오늘날 북극은 기후 위기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엔 어땠을까? ‘삭막하고 척박한 땅,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불모의 땅’ 북극은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이미지로 굳어지며 무시당해왔다. 예전에도 지금도 북극은 시대의 입맛에 맞게 대상화되었고, 고유한 특성은 외면받았다. 북극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온대, 열대 중심으로 고착된 자연관에서 비롯된 오해와 편견이다. 제한된 지식과 경험으로 북극을 재단한 것이다. 북극 생태계는 다른 지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물학적 특성을 가진다. 낮과 밤, 토지와 얼음,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람까지도 말이다. 북극을 이해하려면 북극이 품고 있는 고유한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 배리 로페즈의 대표작이자 전미도서상 수상작인 『북극을 꿈꾸다』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북극의 진면모를 생생하게 펼쳐내며 생태학의 고전이 되었다.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북극의 낮과 밤, 하늘을 덮는 오로라와 땅을 덮는 빛과 얼음, 수천 년간 이 대지와 호흡해온 생명들과 서구에서 온 낯선 이방인들의 이야기까지 충실하게 담아낸다.
저자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거부하고, 북극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 이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미지의 땅은 지금껏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지 본래의 순수한 아름다움, 고요한 생동의 힘과 경이롭고 신비한 감각 세계, 통념을 무너트리는 토박이의 지혜와 모험과 탐욕의 역사가 은은하게 뒤섞인 이야기는, 자연과 삶을 대하는 정형화된 감각에 균열을 내며 상상력을 풍부히 뒤흔든다.

일상적 감각이 통하지 않는 장소
북극에 대한 아홉 가지 이야기, 아홉 가지 상상력

총 아홉 개의 장은 각각 완결성이 있으면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북극의 땅과 바다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는, 그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동식물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러한 북극과 오랜 시간 호흡한 원주민들의 특별한 삶 이야기는, 북극에 대한 무지와 환상을 가진 서구인들의 욕망과 대비되며 서로를 더욱 드러낸다. 저자의 현장 경험이 이야기에 생생함을 불어넣는 가운데, 북극을 과학, 고고학, 인류학, 지리학, 역사, 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아, 북극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명료하게 그려내고 북극에 깃든 자연과 인간 간의 깊은 의식 관계를 건져 올린다.

1장 큰곰의 땅 아르크티코스: 우아하고 세련된 이상한 움직임들
친숙한 북극성 얘기부터 시작하여 북극을 평화롭고 풍요로운 땅으로 묘사한 그리스 신화, 호전적인 고트족·반달족 등 북방 부족들의 영향으로 “얼어붙은 산맥과 광폭한 바람의 땅, 악이 자라나는 황무지”로 묘사한 유럽 북구 신화 등을 살펴본다.
과학의 관점에서 북극을 정의하는 다양한 방법들과 지리적 북극점과 자기적 북극점 등 각종 북극점의 의미와 위치, 특징들과 함께, 북극 지역의 가장 큰 특성인 태양의 움직임과 낮과 밤의 주기, 계절의 변화를 설명한다. 북극점에서 적도 쪽으로 가상의 여행을 하며 태양의 움직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정확한 측정과 예측에 대한 맹신의 문제점과, 세계가 이상하게 움직인다는 놀라운 사례를 보여준다. 스물네 시간 주기에 익숙한 우리의 감각이 북극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나면, 북극 토양의 특징과 그에 적응하기 위한 동식물들의 생존전략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2장 사향소: 평온하게 강인하게
북아메리카 빙하기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대형동물 가운데 하나인 사향소가 어떤 과정을 거쳐 툰드라에 홀로, 여유 있게 살아남아 적응했는지 살펴본다.
뱅크스 섬의 사향소는 인베스티게이터호 사건으로 처음 외부에 알려졌다. 배에 버려진 물품들을 찾아 섬에 온 에스키모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과도하고 집요하게 사향소를 사냥했다. 이로 인해 사향소는 멸종된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가, 몇십 년 만에 다시 나타나 급격하게 숫자가 늘어났다, 생물학자들도 사향소의 경이로운 회복 과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사향소의 계통과 외형적 특징, 습성, 무리생활, 짝짓기, 먹이, 다른 동물 종들과의 상호 관계, 뿔의 모양과 특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괄목할 만한 복원력을 보여주는 이 동물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몸을 붙여 둥근 방어 대형을 만들어 무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향소의 지혜로운 습성이 외지인의 경제적 이익 앞에서 무참한 살육이란 예기치 않은 재앙으로 돌아왔고, 에스키모는 그러한 서양인들을 ‘자연을 바꾸는 사람들’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는 동물에 대한 윤리적 행동은 무엇이며, 올바른 재연결을 꿈꿀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3장 북극곰: 통찰하는 방랑자
북극의 해양 먹이사슬을 조사하기 위해 물범을 찾던 중 북극곰도 마찬가지로 물범을 사냥하고 있었고, 결국 북극곰이 먼저 물범을 찾아냈다는 재미있는 경험으로 시작한다. 북극곰의 생물학적 특성과 진화 과정, 북극으로 이동한 시기, 서식지를 만드는 법과 털의 역할, 추위를 견딜 수 있게끔 고안한 경탄할 만한 생리 작용과 복잡한 행동 양태, 겨울잠과 굴의 구조, 출산과 양육 방법,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동하는 고독과 끈기, 놀라운 이동 방법 등을 설명한다. 물범 한 마리를 사냥하려고 온갖 전략을 써가며 한나절을 견디는 북극곰의 모습과, 그러한 북극곰의 사냥법을 배우기라도 한 듯 비슷한 방법으로 먹을 것을 얻는 에스키모의 모습도 보여준다.
기원전 500년~기원후 1000년 사이에 번성했던 도싯 에스키모 문화에서 북극곰은 주술사들이 인간의 신체를 버리고 영적 세계로 ‘날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강력한 존재였다. 비슷한 사냥감을 노리고,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공포’를 끼치는 북극곰이 에스키모 문화 속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살펴보고, 서구인들에게는 북극곰이 어떤 이미지로 자리 잡았는지 살펴본다.
고래잡이 선원 하나가 바다코끼리의 지방 덩어리로 북극곰 어미를 꾀어 새끼를 먼저 총으로 쏴 죽이고, 널브러진 새끼를 일으켜 세우고 쓰다듬으며 30분 넘게 슬퍼하는 어미마저 쏴 죽인 채 떠났다는 일화와, 에스키모가 북극곰에게 보이는 존중의 태도는 강렬한 대비로 다가온다.

4장 일각고래: 해석 불가능한 코드
일각고래의 뚜렷한 특징인 나선 모양의 엄니 때문에 이 동물은 오랜 기간 신화 속의 생명체로 여겨졌다. 고대 노르드어로 고래와 시체를 뜻하는 ‘nar’와 ‘hval’에서 유래된 이름에 얽힌 중세 유럽의 여러 가지 일화들을 시작으로, 형태적 특정, 습성, 진화적 뿌리, 먹이, 엄니의 생성 과정, 암수의 차이, 엄니의 특징 등을 설명한다. 일각고래는 우리에게 익숙한 감각의 위계구조와 다른 체계에 따라 세계를 이해한다. 우리에게는 ‘소음’으로만 느껴지는 다양한 소리와 진동으로 상호 소통하는 일각고래의 사회적 관계와 의사소통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에 대한 다양한 감각을 상상해보는 황홀함을 선사한다.
중세 유럽인들은 일각고래과 유니콘을 혼동했고, 일각고래의 엄니가 유니콘의 뿔로 둔갑했다. 낮에는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주고, 밤에는 다가오는 역병을 막아주고, 독살하려는 자의 간계까지 막아주는 보물과도 같은 것으로 소문난 엄니는 값비싸게 유통되었다. 반면 에스키모들은 일각고래에게 대단한 영적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고, 엄니보다 가죽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동물 기린은 유니콘과 비슷한 위상을 가졌지만, 상업적인 가치를 가진 적이 없었다. 중국인들은 기린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 훌륭하고 이상적인 모든 것의 화신으로 여겼고 인간의 교화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일각고래의 엄니를 인간이 부여한 상징으로 포섭하려 했던 서구인들의 자연관을 돌아보게 한다.

5장 대이동: 숨결이 길이 될 때
동물들의 시간과 거리 기준은 인간의 기준과는 다름은 물론 제각각 다르다. 동물들은 어떤 방식으로 지형을 이해하고 이동하는 걸까? 하물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은 어떻게 찾을까? 25만 마리의 흰기러기가 날아오르는 모습과 소리를 묘사하는 아름다운 글로 시작하는 이 장에서는 북극 동물과 인간의 대이동과 그 방식을 들여다본다. 북극에서 해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온 하강, 빛의 감소, 눈과 얼음 생성, 먹이 감소와 같은 순환에 대처하기 위해 북극 동물들이 발전시킨 이동 전략을 소개하고, 동물들의 생태와 습성, 이동 경로, 경로를 찾아가는 방법을 설명하며, 대이동이 만들어내는 북극의 고유한 리듬을 담아낸다. 빛이 떠올라 동토가 녹고 물이 생겨나는 짧은 여름엔 수많은 동물이 모여들어 먹고 쉬고 새끼를 기르며 남쪽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데, 저자는 이를 땅의 호흡이라 묘사한다. “북극의 대지는 봄에 빛과 동물들을 크게 들이마신다. 여름에는 오래 숨을 참는다. 그리고 가을에 숨을 내쉬면서 그 모든 것을 남쪽으로 몰아낸다”라는 표현은 감탄을 자아낸다.
북극에서 발견되는 인류의 흔적들을 찾아 고고학적으로 인간이 북극으로 이동하여 정착하는 과정을 그려내며, 현대 에스키모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자세히 다루고 그 부족들이 차례로 서구에 소개되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에스키모의 문화와 서구 문화의 차이를 동물과 동물의 서식지를 대하는 관념과 태도의 차이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6장 얼음과 빛: 공포의 미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북극에서 발견한 것은 “시간을 초월한 듯 빛에 가득 찬 숭고한 순수성과 침해받지 않는 대지 본래의 아름다움”이라고 썼다. 이번 장은 이 표현에 가장 걸맞은 북극의 빛과 얼음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다양한 종류의 얼음과 오로라, 신기루, 화이트아웃 등 북극의 빛에 대해 설명하고, 해빙과 다양한 종류의 얼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특성이 어떠한지,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어떻게 받는지 알려준다. 또 북극의 얼음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얼음은 바람에 따라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어디로 방향을 틀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얼음의 예측 불가능성은 서구 탐험가들에게 큰 고난과 시련을 주었다.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는, 거의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탐험가들은 북극 얼음의 순전한 힘과 위협적인 크기, 가차 없는 움직임에 매료되어 혼이 쏙 빠지곤 했다. 이런 이야기는 압도적 공포가 동반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을 자아낸다.
얼음과 빛에 관련된 예술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모리스 헤이콧이라는 북극의 풍경 화가와의 대화를 통해 얼음과 빛의 회화적 예술성을 이야기하고, 서구 회화에서 북극이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19세기 유럽과 미국 풍경화의 경향을 통해 살펴본다. 또한 서구 문명에서 빙산이 대성당에 비유되었던 점을 이야기하며 북극의 빛과 아름다움에 깃든 신성한 종교성을 환기한다. 북극의 어둠이 에스키모의 과도한 살육에 영향을 끼치고, 극심한 우울증을 불러온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내면에 깃든 정제되지 않은 폭력성을 상기시킨다.

7장 땅: 마음을 감싸는 땅, 땅을 감싸는 마음
사람은 나고 자란 땅에서 깊은 친근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땅과 인간의 유대는 깊고 복잡하다. 하지만 쉽게 우리는 땅을 그저 인간 인식의 투사물이자 피조물로 여긴다. 땅은 동물만큼이나 대화하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선입견과 욕망으로 채색한다. 한 에스키모는 새로운 땅에 가면 무엇을 하냐는 말에 “듣소”라고 대답한다. 19세기 미국 화가들은 땅을 “신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이 장에서는 이들의 태도처럼 온 감각을 집중해 땅을 관찰하고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에스키모는 대지와 분리된 삶의 의미를, 대지의 동물, 얼음이 내는 소리, ‘중요한 식량’에서 얻는 맛과 영양분과 분리된 삶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땅을 감싸는 마음’이 되는 것이 최선이라 말한다. 우리와는 다른 이러한 개념은, 땅의 개념이 문화권마다 다름을 알려준다. 여우의 경우, 인간에 비해 몸이 땅에 훨씬 가까운 데다, 전반적으로 아주 작은 편이라 땅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주 다르다. 이처럼 동물들은 주관적인 방식으로 환경을 이해하고 변형하며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언어와 지도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호피족의 언어와 인디언의 영어를 비교하며, 영어가 고정된 공간의 언어로, 건축을 묘사하는데 적합한 반면, 호피족 언어는 움직임과 변화하는 관계, 연속적인 시간과 공간이 얽힌 세계를 투영하는 언어로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는 내용은 정형화된 언어가 가진 한계를 감지하고, 더 넓은 언어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 아주 복잡한 해안선을 기억에 의지해 그려낼 수 있는 에스키모들의 능력과 19세기에 땅을 찾아 북극을 탐험하며 지도를 그리고 빈 공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던 서구 탐험가들을 비교하며 땅에 대한 애착과 태도의 차이를 설명한다.

8장 항로: 열정과 탐욕이 얽힌 순수한 욕망
중세 아이슬란드 문학에서부터 19세기 초 영국의 북극 탐험들까지의 북극 항해 기록을 다룬다. 5세기에 쿠라흐를 타고 7년간의 항해에 나서며, 만나는 이들에게 치유 의술을 베푼 젊은 수도자들, 16~17세기에 안정적이고 관세가 없는 동방무역로를 찾기 위해 배를 탄 영국과 네덜란드의 선원들, 19세기에 빈틈없는 과학적 지식 축적을 목표로 항해에 나선 존 배로우와, 1819년 북극 탐험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흥미진진한 탐험의 주인공인 윌리엄 페리까지 북극을 향해 떠난 거의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특히 페리의 항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이후 80년 동안 한 번의 탐험으로 그처럼 새로운 땅을 많이 발견한 사람은 없었을 만큼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모험의 땅으로 이어지는 항로, 부를 향한 항로 탐색은 여러 시대에 걸친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런 탐색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욕망은 인간의 모든 욕망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 물질적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자, 새로운 땅을 찾고 이해하려는 정신적 고양에 대한 욕망이었다. 배리 로페즈는 고난 또한 초월한 그 욕망을, 북극을 향한 탐험가들의 꿈을 생각한다.

9장 역사: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8장에 이어 북극을 탐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이후 석유와 광석 채취를 위해 북극에 온 사람들, 북극을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19세기부터 북극을 향한 사람들은 업적을 강렬히 열망했다. 북극은 하나의 무대에 불과해졌고, 등장인물들은 국가적 또는 개인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반목과 시기, 질투가 횡행했고, 한편으로는 진정한 존중과 존경이 넘쳐흐르는 얽히고설킨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목숨을 건 항해와 격렬한 난파, 기적 같은 구조와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절박한 노력, 우연과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는 19세기 이후의 북극 탐험 이야기에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오늘날 북극을 찾은 이들은 어떨까. 부를 쫓아 이곳으로 온 노동자들이 보이는 좌절의 흔적, 오직 석유에만 관심을 보이는 과학자들과 산업가들. 이들에게는 북극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북극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들이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이다. 땅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떠나 땅이 무슨 소용인지, 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 주민들과 동물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대체로는 관심조차 없다. 저자는 북극을 알고 이해했다는 착각을 버리고 다시 바라보자고 말한다. 북극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고, 깃든 지혜를 간직하여 배우자고. 북극을 다시 꿈꿔 보자고 제안한다.

우리에게는 자연을 상상하고 꿈꿀 힘이 있는가
이 책을 읽고 북극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의 핵심 개념이 북극을 인간의 언어와 관점으로 대상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리 로페즈는 말한다. “잠자코 툰드라를 걸어보자고, 키 작은 자작나무와 버드나무 잎새를 흔드는 바람을 지켜보자고, 이동하는 카리부 떼의 발굽이 땅을 구르는 소리를 들어보자고, 보퍼트해에 뜬 카약의 노 자루에 귀를 대고 턱수염물범이 내는 길고 떨리는 트레몰로 소리를 들어보자고, 수술용 메스처럼 날카로운 에스키모의 흑요석 연장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린다고 상상해보자고.” 배리 로페즈는 인간이 구축한 다양한 지식을 통해 북극을 모든 측면에서 바라보겠다는 엄밀한 태도를 취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되게 만드는 이성의 권력을 내려놓고 북극 자체를 온몸으로 느끼겠다는 부드러운 존중의 태도를 갖춘다. 북극은 인간의 이야기와 함께 자연을 이루는 모든 존재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다. 북극을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대지에 깃든 모든 것들과 진심으로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며, 이 힘이 북극을 꿈꿀 수 있도록 이끈다. 북극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또한 북극을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와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

추천의 말
배리 로페즈는 인간과 자연의 잃어버린 유대를 복원하는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작가이다. 북극의 진면모가 담긴 이 책은 위대한 유산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가디언

북극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공감, 그 생생함과 경이를 하나의 거대한 역작으로 묶어냈다. 바다와 얼음, 하늘과 땅, 야생의 생명들을 들여다보는, 아니 꿰뚫어 보는 시선은 오직 그만이 소유한 천부적 재능이다.
뉴욕 타임스

시인의 영혼을 소유한 학자는 믿을 수 없이 생생하게 북극을 그려낸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나가면 어느새 이 마술 같은 대지 위에서 눈을 뜬다.
아이리시 타임스

눈이 부시다… 배리 로페즈의 눈으로 본 북극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미지의 땅으로 솟구친다.
미치코 카쿠타니(퓰리처상 수상자)

작가정보

(Barry Lopez)
‘오늘날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배리 로페즈를 소개하는 표현들이 말해주듯이, 그는 온 인생을 걸고 자연과 인간의 잃어버린 유대를 복원하기 위한 이야기를 썼다. 자연을 대상화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을 거부하며,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자연과 호흡하겠다는 불굴의 시도는, 대지와 바다, 세계를 이루는 모든 존재가 품은 고유한 미지와 조우하는 황홀하고 마법 같은 글쓰기의 원천이 되었다.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극을 포함해, 초원, 사막, 섬 등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낸 그는 2020년 75세의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자연에게 언어와 목소리를 돌려주는 그의 글은 자연을 상상하는 것을 멈추고, 다른 존재를 착취하는 데 몰두하는 문화에 경종을 울리며, 자연과의 부서진 관계를 회복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로 우리에게 남았다.
1945년 미국 뉴욕주 포트체스터에서 태어나 노터데임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 『호라이즌』 『늑대와 인간에 대하여』 『황야 건너기』 『북아메리카의 재발견』 『강의 기록』 『사막의 기록』 『저항』 『울버린의 교훈』 『현장 기록』 『까마귀와 족제비』 『변명』 『이번 생에 대하여』 등이 있다. 배리 로페즈의 원고와 메모, 현장 기록 등은 텍사스 공과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으며, 『플로트』 『투명한 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저는 이곳에 있지 않을 거예요』『어떤 그림』 『미술관에 갑니다』『풍경들』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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