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2024년 03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3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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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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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는 왜 우리의 삶과 세상을 더 낫게 바꾸지 못했을까?’ 물론 냉소, 정치 혐오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 반대다. 정치에 희망에 있기에, 정치가 실패해온 이유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 벤 앤셀(Ben Ansell)은 서른다섯의 나이로 옥스퍼드대 교수로 임용될 만큼 영미권에서 촉망받는 정치학자다. 최근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스티븐 호킹 등도 참여한 적 있는 교양 프로그램 ‘BBC 리스 강의’에 출연했다.
저자는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이라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중요 가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둘러싼 딜레마가 무엇인지, 그 안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다섯 가지 사안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개인 이익과 집단 목표 간의 불일치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덫’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불일치 안에서 타협과 협의의 길을 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는 다수결이 갖고 있는 맹점, 연대와 관련해서는 수익자와 부담자 간의 상호신뢰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 책에 앞서 불평등, 민주주의에 관한 세 권의 학술서를 쓴 바 있는 저자는 역사와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내며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기후 위기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정치 이슈가 빠르게 소비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요즘, 나의 생활과 세상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만드는 정치를 고민하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들어가는 글_우리가 정치에 실패하는 이유
1부_민주주의: ‘국민의 뜻’과 같은 것은 없다
1장 브렉시트 투표는 왜 실패했는가
2장 민주주의와 ‘국민의 뜻’
3장 민주주의의 덫
4장 ‘국민의 뜻’에서 ‘합의의 기술’로
2부_평등: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결과는 서로를 약화한다
5장 제프 베이조스의 우주여행
6장 평등 그리고 유토피아
7장 평등의 덫
8장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
3부_연대: 우리는 필요할 때만 연대를 찾는다
9장 미국인은 왜 오바마케어를 외면했는가
10장 연대의 실현, 보편적 복지 국가
11장 연대의 덫
12장 보편적 기본소득의 한계와 가능성
4부_안전: 독재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무정부 상태를 피할 수는 없다
13장 전염병 그리고 봉쇄된 도시
14장 무정부 상태와 억압의 줄다리기
15장 안전의 덫
16장 안전의 덫을 피하는 과학 기술
5부_번영: 단기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길은 장기적으로 더 가난해지는 길이다
17장 기후 협약은 왜 번번이 실패했는가
18장 성장의 역사가 남긴 교훈
19장 번영의 덫
20장 지속 가능한 성장은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나가는 글_정치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감사의 글
참고 문헌
주
왜 우리는 민주주의의 병폐에 빠져들고 마는가? 이는 민주주의가 세 가지 적(敵)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첫째, 엔트로피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살피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둘째, 양극화다. 우리가 선호하는 정책이나 정치인에 투표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들에 ‘반대하기 위해’ 투표하면 정치는 끔찍해지고 그 기능이 몹시 위축된다. 셋째, 기술의 오용이다. 딥페이크 기술을 포함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허위 정보를 빛의 속도로 퍼뜨린다. 이로써 정치인은 유권자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략하고, 시민들은 소셜미디어의 반향실(echo chamber)에 갇히거나 자신의 의사결정을 AI 아바타에 맡긴다.
_한국의 독자들에게
기후 변화는 우리에게 다섯 가지 핵심적인 정치적 과제를 제시한다. 가장 먼저 ‘민주주의’와 관련된 질문이다. 과연 우리는 탄소 배출 감소 방안과 관련해 혼돈이나 양극화로 치닫지 않을 안정적인 세계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평등’에 관해서도 중요한 질문이 있다. 부유한 국가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국가보다 더 많이 부담해야 할까? 모든 국가는 오염 물질을 배출할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는가? 또한 기후 변화는 세계적인 ‘연대’를 고민하게 만든다.
_들어가는 글
정치란 사람들이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서로 약속하는 방식을 말한다. 또한 정치는 기후 변화, 내전, 세계적 기근,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등 모두의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_들어가는 글
우리는 모두 원칙적으로 민주주의를 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기기가 종종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덫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뜻’과 같은 것은 ‘없다’. 영국 대중은 선택했다. 그러나 의회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정이 탈퇴/유지라는 이분법으로 좁아졌을 때조차 민주주의는 그 실행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은 ‘예/아니오’를 요구하는 질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다양한 교환 그리고 지침을 실행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브렉시트를 실행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국민의 뜻’이란 게 정말로 존재했던가? 그런 것은 없었다.
_1장
덜 위협적이지만 여전히 암울하게도, 공화당 당원의 38퍼센트는 그들의 자녀가 민주당원과 결혼한다면 ‘아주’ 혹은 ‘상당히’ 기분이 나쁠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민주당 부모들 역시 똑같은 비중으로 그들 자녀가 공화당원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을 지지하는 부모 3분의 1이 그들의 자녀가 보수당원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_3장
왜 미국 정치는 불평등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걸까? 미국은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결과가 서로를 약화한다’라고 말하는 불평등의 덫에 걸려들었다. 미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평등한 경제적 자유는 불평등한 결과를 완화하려는 시도를 더욱 힘겹게 만든다. 그리고 일반 대중에서 정치인과 억만장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인의 각자 다른 동기는 이 덫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
_5장
우리는 평등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이 큰 시대, 심지어 점점 더 커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그 너머의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평등에 관한 언론의 관심과 정치적 우려가 매우 증가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은 국민에게 명목적으로 평등한 정치적 권력과 그들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는 소득과 부를 기준으로 대단히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겪고 있다.
_6장
반면 경제적 자유에 ‘모든 것을 거는’ 접근 방식을 선택하면 우리는 경제적 재분배 가능성이 차단된, 부자가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 살게 된다. 그러니 정치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평등한 경제적 권리와 평등한 결과 사이에서 신중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_7장
연대의 덫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그 이유는 연대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연대는 전적으로 사적인 형태의 자선이나 전적으로 공적인 형태의 보험에서 비롯된다. 두 경우에 부유한 사람은 덜 부유한 사람에게 자원을 나눠 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강제의 수준과 나눠 줘야 할 자원의 규모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연대에 관한 오늘날의 논의에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원칙적으로 좋은 생각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여기에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지, 만일 개입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하는지로 넘어가면 치열한 논쟁이 곧바로 이어진다.
_10장
연대의 덫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딜레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삶이 순조롭게 흘러갈 때, 우리는 연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다른 사람들’이 어둠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미래의 당신은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미래의 당신은 아프거나 암에 걸릴 수 있다. 미래의 당신은 운명의 장난에서 자신을 지킬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미래의 당신을 보살필 것인가? 지금의 당신이 보살필 것인가?
_11장
또한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연대에 참여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보편적 사회복지를 생각해보자. 스웨덴의 사회복지는 정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성공을 거뒀다. 세금 공제를 통해 공적 지출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할 때, 이런 투명성을 통해 사회복지에 대한 시민의 지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따라서 연대에 대한 공적 지원의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정책을 세법 속에 숨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무엇을 지원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고 투명해야 한다.
_12장
2019년에 어떤 민주주의 정부도 그들이 내년에 시민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해서 이런 요구를 강제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각국 정부는 전시 상태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안전 보장이라는 그들의 최고 임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안전은 날카로운 칼날 위에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어떻게 권력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위험한 유혹의 먹잇감이 되지 않고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무정부 상태와 억압의 위험을 모두 피하고 안전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_13장
안전의 덫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한편에는 독재가 등장하고 다른 한편에는 무정부 상태의 혼돈이 존재하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면서, 경찰과 교도소와 군대 같은 제도가 우리의 안전을 지킬 만큼 강하면서도 우리를 착취할 만큼 강하지 않도록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정치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
_15장
그런데 왜 미국 정치인들은 그렇게 교토 의정서에 반대했던 걸까? 아마도 에너지 기업들의 로비 혹은 기후 변화 이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논란의 중심에는 다른 나라들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동안 미국만 희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는 왜 기후 변화가 정치적으로 그토록 까다로운 문제인지를 말해준다. 모두의 미래를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는 모든 개인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번영의 덫이 입을 벌린다. ‘단기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길은 장기적으로 더 가난해지는 길이다.’
_17장
오늘날 우리는 오랜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경제 성장에 대해 생각할 때 위험천만하게도 정치를 종종 무시한다. 정치적 제도는 누가 경제에 참여하고, 어떤 조건에서 참여하는지를 규정한다. 그리고 장기적 투자 대신 단기적 유혹에 굴복하려는 동기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단기적 이익만을 좇지 않겠다는 정치적 약속의 신뢰성을 높인다. 정치적 제도는 우리를 번영의 덫에서 꺼내줄 수 있지만 덫 안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_18장
번영의 덫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자원 산업의 호황이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그 자원을 통제하는 지도자들이 국가에 도움을 주는 장기적인 의사결정, 특히 석유가 바닥났을 때를 대비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단기적인 이익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권이나 왕조의 단기적인 생존을 걱정하는 독재자는 무한해 보이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시민을 매수하거나 억압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그리고 이런 국가의 시민은 비록 정권 교체가 장기적으로 더 좋다고 해도, 그런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당장의 이익이나 일자리를 선택할 것이다.
_19장
번영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하며 단기적 유혹에 무릎 꿇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한편에서는 투기 광풍이 금융 시스템을 흔들지 못하도록 은행 규제와 같은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터의 팃포탯 전략에서 상호 환경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는 차원에서 집중하도록 만드는 규범을 구축해야 한다.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약속은 지키기 힘들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고 신뢰하는 것은 번영의 핵심이다.
_20장
이 책에서 내가 제안한 해결책이 언제나 성공을 거두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도전 과제에 직면해 해결책을 계속 새롭게 다듬어나가야 한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를 “딱딱한 판에 서서히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 구축한 제도와 규범은 현재에 잘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약속을 계속 반복해서 만들어나가야 한다.
_나가는 글
· BBC 리스 강의 강연자의 현실 정치 안내서
·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 추천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대니얼 지블랫 추천
매해 12월이면 ‘올해의 사건 10가지’와 같은 제목으로 그 해의 중요 사건을 정리하는 기사와 콘텐츠가 어김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과 짝을 이루어 나오는 것이 ‘새해에 주목해야 하는 일’이다. 올해는 단연 ‘정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세계 인구의 25퍼센트가 선거에 참여한다. ‘슈퍼 선거의 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선거로 들썩이는 지금 우리는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정치의 필요성 혹은 효용감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혐오가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오늘날 정치의 문제, 정치의 역할,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자못 진지하게 묻는 책 한 권이 나왔다.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다. 물론 냉소, 정치 혐오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 반대다. 정치에 희망에 있기에, 정치가 실패해온 이유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 벤 앤셀은 미국에서 자라 현재 옥스퍼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른다섯의 나이로 옥스퍼드대 교수로 임용될 만큼 영미권에서 촉망받는 정치학자다. 최근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스티븐 호킹, 마이클 샌델 등도 참여한 바 있는 교양 프로그램 ‘BBC 리스 강의’에서 ‘민주주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네 차례 강연을 진행했다.
저자는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이라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중요 가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둘러싼 딜레마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가 보기에 이 다섯 가지 사안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목표가 대부분의 경우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덫’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불일치 안에서 타협과 협의의 길을 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을 달성하기 어려운 이유와
그 해결 방안에 대한 옥스퍼드대 정치학자의 통찰
앞서 언급한 다섯 개(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의 소재가 각 부의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개별 부는 ‘X는 무엇인가’, ‘X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덫)는 무엇인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에서 다섯 개의 논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민주주의: 진정한 ‘국민의 뜻’과 같은 것은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말이 ‘국민의 뜻’이다. 저자는 ‘국민의 뜻’이라는 말이 가진 함정을 지적한다.
전체 인구가 100명인 국가에서 대통령 선거를 한다고 해보자. 두 명의 후보가 선거에 출마해서 한 후보가 60퍼센트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투표율은 80퍼센트다. 이제 전체 국민 중 몇 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는지 보자. 48퍼센트다(100×0.8×0.6=48). 전체 인구를 놓고 보면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선출된 권력으로서 전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린다. ‘국민의 뜻’이라는 말 아래 말이다.
A와 B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는 그나마 낫다. 선택지가 세 개, 혹은 그 이상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사례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조지프 슘페터와 케네스 애로의 정의, 콩도르세의 역설, 비례대표제 등 투표 방식에 대한 여러 논의 등을 두루 살펴보며 ‘민주주의의 덫’을 설명한다. 나아가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다룬다.
·평등: 평등한 권리를 허용하면 평등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평등한 사회일까? 물론 모두 극단적인 경우다. 하나는 완전하게 평등한 소유를 실현하는 사회다. 이는 동시에 불평등한 권리와 자유의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하나는 평등한 경제적 권리를 허용하고 시장이 기능하도록 내버려둔다. 이럴 경우 거대한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어떤 경우든 정치는 실패한 것이라 지적한다.
여기에 ‘평등의 덫’ 즉,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결과는 서로를 약화한다”라는 딜레마가 있다. 평등한 권리를 허용하면 평등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을 평등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를 기본 전제로 불평등의 기원, 평등과 효율성 간의 관계, 경제적 불평등 문제, 스웨덴의 사민주의 모델, 성별에 따른 임금 불평등 등을 다룬다.
·연대: 우리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사회적 안전망을 원한다
‘연대의 덫’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 우리는 삶의 전체 이야기를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삶 전반에 걸쳐 순수한 기여자가 될 것인지, 즉 연대를 통한 도움의 ‘제공자’가 될지 또는 ‘수령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나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나서야 보험에 가입하려고 한다. 두 번째는 연대의 경계에 관한 문제다. 모두가 똑같은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는 연대의 범위가 지구 단위이지만 누구는 함께 사는 가족에 한정된다. 세 번째는 근본적으로 동료 시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지전능해 보이는 국가조차 사람들이 저마다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예를 들면 실직의 차원에서) 이해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를 토대로 연대가 어려운 이유를 찬찬히 분석한다. 우리는 ‘언제’ 연대를 찾는지, 우리가 연대하려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리고 연대의 실천과 정보의 문제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이론, 미국 사회 내 의료보험과 복지의 역사를 살펴본다. 나아가 기본소득의 가능성과 한계를 다룬다.
·안전: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유를 희생하려 하지는 않는다
2019년 발생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안전의 덫’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했다. 행정 당국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시민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마스크 필수 착용, 외출 금지, 타인과의 접촉 금지, 회사와 관공서 폐쇄 조치 등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몇몇 국가의 시민들은 자유를 외치며 행정 조치에 반발했다. 이에 더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지의 문제, 주변의 사람들이 정부의 조치에 따르는지 여부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독재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무정부 상태를 피할 수는 없다.”
“안전의 덫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한편에는 독재가 등장하고 다른 한편에는 무정부 상태의 혼돈이 존재하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면서, 경찰과 교도소와 군대 같은 제도가 우리의 안전을 지킬 만큼 강하면서도 우리를 착취할 만큼 강하지 않도록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정치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는 안전에 관한 논의에서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야기, 근대 경찰의 출현과 감금의 역사, 과학기술과 안전과의 관계 등을 다룬다.
·번영: 단기적으로 우리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가난하게 만든다
오늘의 달콤한 풍요는 길을 잃게 만든다. 이런 단기적인 유혹은 장기적인 정체로, 결국은 파멸로 이어진다. ‘번영의 덫’이다. 번영의 덫은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장기적으로 더 부유하게 살 수 있을 때도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속이고, 약속을 어기고, 착취함으로써 즉각적인 이익을 취하려 한다. 스스로 제약이 없고 자신의 손을 묶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이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단기적인 유혹에 넘어간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할 때 전체는 무너진다.
또한 번영의 덫은 협력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모습을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자원의 저주’가 있다. 자원으로 이룩한 부는 다양한 부정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정치를 왜곡한다. 그러나 ‘자원의 저주’는 인간의 운명이 아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는 석유 자원을 신중하게 활용함으로써 1인당 25만 달러에 이르는 국부펀드를 구축했다. 또한 석유 자원은 내전을 촉발하고(나이지리아), 독재를 등장시키고(사우디아라비아), 어리석은 선택(카타르월드컵)을 내리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번영의 덫은 우리가 협력하더라도 그런 노력이 장기적인 번영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 이어질 때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 열풍(그리고 그 후폭풍)이다.
천연 자원의 축복을 다르게 활용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정치다. 제도를 만들고 규범을 설계하는 방식과 공유하고 있는 철학의 차이가 이러한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다. 저자는 ‘자원의 저주’를 비롯해 맬서스가 펼친 이론과 그것의 함정, 죄수의 딜레마 문제 등을 통해 ‘번영의 덫’을 살펴본다.
“분열에서 균형으로, 정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정치의 실패 이유를 이해할 때,
우리는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들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다섯 가지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정치의 역할에서 찾는다. 정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는 필연적인 불일치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정치를 외면하거나 피해 달아날 수 없다”. 물론 눈앞의 길이 뻥 뚫린 고속도로는 절대 아니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가깝다. 동시에 여러 길이 놓여 있어 어느 쪽이 목적지로 향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나타나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 기술과 시장을 통해 나은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정치가 없어져야 세상이 발전할 것이라는 선동은 오히려 우리를 퇴보하게 만든다. “정치를 외면한 대안은 우리를 좌절의 길로 이끌 것이다.”
다음으로는 개인의 이기심은 자연스러운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기심은 필연적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이기심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집단적인 목표가 좌절되는 것은 개인의 다양한 이기심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심을 탓하기보다 제도를 설계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제도를 너무 성급하게 비효율적이라거나 부패했다고(물론 때로는 그렇지만!)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타협과 조정과 균형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정치 이슈가 빠르게 소비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요즘, 나의 생활과 세상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만드는 정치를 고민하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치를 두고 “딱딱한 판에 서서히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말했듯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일본과 독일 등 전 세계 10개국에서 출간되었으며, 《권력과 진보》의 공저자 대런 아세모글루,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공저자 대니얼 지블랫 등이 추천했다. 원제는 《WHY POLITICS FAILS》(2023).
작가정보
(Ben Ansell)
벤 앤셀은 옥스퍼드대학교 너필드 칼리지의 교수로 비교 민주주의 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2013년에 서른다섯의 나이로 옥스퍼드대학교 정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당시 가장 젊은 나이로 영국학술원 연구원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연구는 〈더타임스〉,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다양한 언론 매체를 비롯해 세계은행에서 발행하는 〈세계 개발 보고서〉, BBC 라디오의 토론 프로그램인 〈스타트 더 위크〉에 소개되었다. 또한 수백만 파운드 규모의 유럽연구이사회 프로젝트인 ‘부의 불평등에 대한 정치학’에서 선임 연구원을 지냈으며, 비교 정치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술지 중 하나인 〈비교 정치학 연구〉의 공동 편집자를 맡고 있다.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그의 첫 번째 책이다. 이전에는 세 권의 학술서를 썼으며 세 차례 수상을 했다. 2023년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마이클 샌델, 스티븐 호킹 등이 참여한 바 있는 BBC 라디오의 〈리스 강의〉에서 ‘민주주의의 미래’라는 제목 아래 네 차례 강연을 진행했다.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IT 기업에서 마케터와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파주출판단지 번역가 모임, ‘번역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항행력》, 《독일은 왜 잘하는가》,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행동경제학》,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 《와이 넛지?》, 《플루토크라트》,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 지금까지 8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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