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으므로, 진다
2024년 02월 01일 출간
국내도서 : 2016년 07월 01일 출간
- 오디오북 상품 정보
- 듣기 가능 오디오
- 제공 언어 한국어
- 파일 정보 mp3 (174.00MB)
- ISBN 9791165349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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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분 29.0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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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28.0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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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 _미황사
가장 먼 여행 _운문사
영혼의 구슬과 페르시아의 흠 _관음사
불일암은 잠언이다 _불일암
모든 것은 기울어진다 _수구암
오리 다리는 짧고 학의 다리는 길다 _은해사
아파야 새로운 것이 온다 _각연사
나비는 수평으로 난다 _원심원사와 석대암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해” _길상사
2부 모든 것은 사라진다
여시아문과 디아스포라의 불빛 _산방굴사
모든 것이 사라져간다 _봉원사
그리워할 대상 없어도 그리움이 사무치는 절 _부석사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뜨지 않은 별 _진관사
팔만대장경, 그 장엄한 언어의 숲을 찾아서 _해인사
이 세상에서 가장 여운이 긴 풍경소리 _정암사
네 몸속에 절 하나 지어보아라 _법흥사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달라 _상원사
서럽다. 화두 30년. _통도사
3부 기울어지다 사라진다
부처가 얼어 죽으면 경전이 무슨 소용인가 _봉정암
사찰로 가는 마음, 성찰로 돌아오는 마음 _송광사
가장 슬프고 애틋한 절 _운주사
피었으므로, 진다 _선운사
섬진강에서 화엄사 종소리를 들어보았는가 _화엄사
바다처럼 출렁이다 산처럼 무너지다 _보리암
살아 있는 부처의 눈 _보문사
저녁 산사에서, 묵념 _낙산사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장엄한 법당 _‘팽목항법당’
미황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동백숲을 향해 내려갔다. 금강스님이 곱게 꺾어가라고 허락한 한 송이 동백꽃이 눈에 아른거렸다. 2010년 3월 10일 법정스님 입적 전날, 금강스님은 가수 노영심을 통해 눈 맞은 미황사 동백꽃과 매화를 병원 중환자실에서 폐암으로 투병 중인 법정스님에게 전했다. 자신의 고향인 먼 해남에서 온 붉은 동백꽃을 보며 법정스님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가니 그대가 왔구나.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다.”
누운 채 물끄러미 보던 법정스님의 눈시울이 조금씩 젖어갔다. 어쩌면 평생 좇고 좇아온 화두 한 송이가 죽기 전날에야 비로소 무심한 듯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심하도록 서러운 화두 56년이라면, 차라리 꽃을 꺾는 대신 산을 옮기거나, 다리를 건너는 대신 강을 옮기는 게 더 불이(不二)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_p.25
불일암은 부사와 형용사가 없는 절이다.
내 고교 시절인 1970년대 후반의 송광사 불일암은 점 이전의 물방울 혹은 눈부처 같은 절이었다. 보통 한 절의 주지스님이 유명해질수록 절의 살림살이도 점, 선, 면으로 세속의 영역을 확장해가기 마련이다. 선은 소유의 경계선을 긋는 토대이고 면은 성채를 지어 군림하는 토대이다. 다행히 법정스님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고 스님이 입적한 이후까지도 불일암은 동백꽃이 떨어지는 순간처럼 간명하고 간결하다. 단지 열반 이후 부쩍 늘어난 추모객들의 편의를 위해 대숲 오솔길을 조금 단장해 ‘무소유길’로 이름 붙인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난 그 ‘무소유길’을 소유욕으로 걷지는 않는지 거듭 스스로에게 물었다.
_p.53
그림이 완성되자 법당은 구경하던 스님들의 탄성으로 가득 찼다. 곧 티베트 승려들이 함께 기도를 했다. 모래알 같은 번뇌와 잡념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졌던 순간들을 잠시 떠올리는지도 몰랐다. 기도가 끝나자 승려들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원탁 옆에 도열했다. 승려들 가운데 하나가 ‘금강저’라고 하는 50센티미터 정도의 나무막대기를 들고 나와 그림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감탄을 연발하던 스님들이 모두 다시 숨을 죽였다.
그런데 티베트 승려가 잠시 합장하더니 나무막대기로 ‘모래 만다라’를 빗자루처럼 천천히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법당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가득 찼다. 나도 깜짝 놀라 입이 딱 벌어지며 숨이 멎을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티베트 승려는 계속 쓸었다. 원탁 아래로 색모래들이 흩어졌다. 얼마 후 아름다운 원탁은 처음처럼 하얀 캔버스로 돌아갔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충격을 불교에서는 ‘무상(無常)’이라 부를 것이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므로 모든 아름다움 또한 덧없이 사라진다. 우리는 우주의 가랑잎 위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래알들일 뿐이다. 때로는 햇빛을 받아 잠깐 반짝이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모래끼리 부딪쳐 생채기가 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모래 만다라처럼 한순간에 사라진다.
_p.99-100
안쏠림으로 세워진 무량수전 토방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멀리 소백산 자락으로 자욱이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라.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법고소리를 들으며 무량수전에 고여 있는 빛깔을 한번 보라. 그것은 사람의 것이 아닌, 결코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빛깔이다. 그 빛깔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더욱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그런 빛깔이 아니다. 그 빛깔은 무량수전과 석양이 부석의 돌틈처럼 서로 슬픔의 공명을 이룰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_p.129
진관사는 오래전 내가 현상금과 2계급 특진이 걸린 긴급수배자였을 때 가끔 찾은 절이다. 25~28살의 청년, 그때 도망자로서의 내 은신처는 주로 은평구 일대였다.
살얼음 위를 걷는 긴장의 나날들. 어둠도 복면을 하고 있었던 삼엄한 시절.
심신도 지치고 앞날도 아득해 문득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홀로 이 절간을 찾아 배회하며 물끄러미 지는 해를 바라보곤 했다. 임종의 숨결 같은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었고, 배고픈 아이들이 밥그릇 바닥을 긁는 것 같은 소쩍새 울음소리도 들었다. 모든 게 서럽고 아득했다.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대웅전 기왓장의 이끼는 차라리 허공에 목을 맨 능소화 붉은 꽃잎인 양 더욱 서러웠다. 오늘 다시 히크메트의 시를 별에게 들려주며 아직도 내 먼 여행은 시작되지 않았는지를 물을 것이다. 더불어 내 진정한 여행이 언제 시작되는지를 묻고 또 물을 것이다.
_p.131-132
탐미적 허무주의 시인의 현란한 감성과 정제된
지적 사유가 돋보이는 섬세한 자기 내면 기록이다. _정호승ㆍ시인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절집으로 들어서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환하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들도 아련히 귓바퀴를 적셔온다. _안도현ㆍ시인
<b>
책 소개
시인의 마음에 비친 산사의 풍경,
그 눈부신 고요와 성찰의 시간 </b>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지칠 때, 우리는 어디 조용한 산사로 들어가 그 풍경 속에 고즈넉이 스며드는 하루를 꿈꾼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에서 비켜나면 내면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 산사의 예불소리, 범종소리, 풍경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를 열어두기만 해도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가 된다. 이 책은 그런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산사의 고요한 풍경과 소리 그리고 성찰의 메시지를 전한다.
《피었으므로, 진다》는 시인의 눈, 시인의 걸음으로 전국의 산사를 돌아보는 기행산문집이다.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자 불교적으로 의미 깊은 3보사찰, 5대 적멸보궁, 3대 관음성지를 망라하며, 그 밖에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절집 등 전국 27곳의 산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고발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의 작가, 이산하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B>
출판사 리뷰
마음이 흐트러지는 날,
산사에서 만나는 눈부신 고요와 적멸의 한때</b>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지칠 때, 우리는 어디 조용한 산사로 들어가 그 풍경 속에 고즈넉이 스며드는 하루를 꿈꾼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에서 비켜나면 내면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 산사의 예불소리, 범종소리, 풍경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를 열어두기만 해도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가 된다. 이 책은 그런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산사의 고요한 풍경과 소리 그리고 성찰의 메시지를 전한다.
《피었으므로, 진다》는 시인의 눈, 시인의 걸음으로 전국의 산사를 돌아보는 기행산문집이다.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자 불교적으로 의미 깊은 3보사찰(통도사·해인사·송광사), 5대 적멸보궁(통도사·상원사·법흥사·봉정암·정암사), 3대 관음성지(낙산사·보문사·보리암)를 망라하며, 그 밖에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절집 등 전국 27곳의 산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설악산과 지리산을 돌고 서해, 남해, 동해를 아우르며 제주까지 발길이 닿는다.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고발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의 작가, 이산하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시인의 글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임재천 등의 사진을 수록해 산사의 사계와 길 위에서 만난 황홀한 풍광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산사로 가는 길,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시인의 감성과 통찰로 생을 바라보다
저자는 여러 산사의 특색을 시인의 시선으로 포착해 깊이 응시한다. 예컨대 순천 불일암은 “부사와 형용사가 없는 절”이고, 영주 부석사는 “그리워할 대상이 없어도 그리움이 사무치는 절”이며, 화순 운주사는 “가장 슬프고 애틋한 절”이다. 그래서 단순히 산사의 풍경과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답사기에 그치지 않고 밖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구도기에 가깝다.
시인은 산사의 가장 장엄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글에서 새벽녘 절간의 고요와 노스님의 기침소리, 절마당의 꽃잎 피고 지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이 마치 잠언처럼, 시처럼 읽힌다. 같은 곳을 다녀와서도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풍경과 소리, 곡진한 이야기들이 그의 글에서 보이고 들리는 이유다. 시인의 눈을 통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산사의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풍경 속에서 우리의 생을 돌아보게 된다.
작가가 처음 산사여행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 외할머니가 주지로 있던 암자에서 만난 ‘백구두를 신은 젊은 객승’과 노숙을 하며 전국의 절을 찾아다닌 것이 산사여행의 시작이었다.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하고 긴급 수배되었을 때, 아득한 심정으로 그가 찾아간 곳도 절이었다. 그 후로도 삶이 버거워 한숨이 깊어지는 날, 그는 산사에서 위로받고, 깨닫고, 자기를 성찰했다. 이 책에는 그 눈물겹고 애틋하고 감동적인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산사에서 시인의 통찰은 더욱 깊어진다. 인간은 “우주의 가랑잎 위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래알들”일 뿐이며 결국 기울어지다 사라져가는 존재임을 성찰한다. 그리하여 피었으므로 지는 것이 모든 존재의 거역할 수 없는 숙명임을 말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산문을 나서듯, “들떠 있던 마음이 찻잎처럼 가라앉으며 적막 같은 강물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시인이 행간에 숨겨둔 맑은 바람 한 자락, 은은한 범종소리가 찌든 마음을 씻어준다.
2002년 《적멸보궁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글에 새로 12편을 추가하고 사진을 곁들여서 다시 선보인다.
<b>[ 책속으로 추가 ]</b>
운주사는 쉽게 들어갈 수는 있어도 쉽게 나올 수는 없는 절이다. (…) 내가 본 수많은 절 중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한 절이다. 전남 화순의 운주사는 지리산 일대를 돌아 해남 땅끝마을로 가다 우연히 도둑처럼 슬쩍 스며든 절이다. 마치 넓은 계곡의 야외 조각전시장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다. 잔설이 깔린 입구의 풀숲에서부터 평지와 비탈을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듯한 석탑과 돌부처 들이 절 뒷산까지 가득하다.
어찌 보면 한때 단란했던 대가족이 산야로 뿔뿔이 흩어져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다가 마침내 함께 지쳐 쓰러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무엇엔가 기갈 들린 사람들이 큰 뜻을 도모하려다 포기한 채 다음 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자꾸만 가슴이 저며온다. 헐벗은 숲속 응달마다 아직 녹지 않은 잔설도 잔설이지만 산야를 힘겹게 물들이는 늦은 오후의 겨울 햇살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 기대고 있는 돌부처들의 그 애잔한 눈빛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게 한다.
_p.202-203
지옹스님의 선방에 있는 것은 구석에 단정하게 개어놓은 얇은 이불과 조그마한 베개 하나, 그리고 벽에 걸린 승복과 몇 가지 다기, 반들반들하게 닳은 염주와 때묻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태어난 생에 가깝도록 70 평생 줄이고 줄여놓은, 그러고도 앞으로 저기서 더 줄어들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특히 오르고 오르려 하여도 언제 녹아 사라질지 모르는 저 구름 같은 이불과 평생 주인의 외로움을 받치고 있었을 저 빗방울 같은 베개를 보고 있으면, 차라리 미어진 가슴이 더 빠져나올 물기마저 없는 사막인 양 편안해져와서 좋다.
_p.231
“스님은 와 까만 고무신은 안 신고 하얀 백구두만 신는교?”
“남이싸 뭘 신든 니가 무신 상관이고? 그리구 이놈아, 이게 부처의 해골바가지란 것도 모리나? 하하하!”
“해, 해골바가지 좋아하시네, 이거 순 땡초 아이가…….”
(…)
내 심한 비아냥도 곧잘 받아주던 소탈한 스님이었다. 무슨 사연인지 술만 마시면 넋 나간 사람처럼 하루 종일 먼 산만 하염없이 보며 울다가 웃다가……. 하여튼 그 시절 머리가 약간 돈 것 같은 이 ‘땡초’하고 난 참 많이도 같이 돌아다녔다. 배가 출출하면 스님의 바랑에서 생쌀을 한 줌씩 꺼내 오물오물 씹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 한때 철학에 미쳐 있었다는 이 스님과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낙산사에 와서 그의 부음을 들을 줄이야……. 가슴에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마음이 미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_p.264-265
작가정보
저자 이산하는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부산 혜광고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필명 ‘이 륭’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하며 등단해, 그해부터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7년 ‘제주 4·3사건’의 학살과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국제민주연대 등 인권단체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한라산》, 성장소설 《양철북》, 산사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프리모 레비 지음) 《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지음) 등이 있다.
낭독 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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