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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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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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9월 12일 오후 두시 삼십 분부터 세 시까지, 이제는 은퇴한 대령 한 사람, 남편에게 버림받은 대령의 딸, 그녀의 열 살짜리 아들이 함께 앉아 있는 그 시간은 기이할 정도의 고독과 적막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밤, 대령의 친구인 ‘의사’가 세상을 떠났고 이 세 명은 의사의 시체가 마을 묘지로 향하기 전 시체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시체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쳐 망자의 안식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의사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이유로 신의 대리인인 마을 사제도 묘지 매장을 반대하고 나섰으며, 의사가 정치적인 혼란기에 시민의 편에 서서 민중 봉기 부상자들을 치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을의 대표인 읍장도 반대에 표를 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영원히 멈춰 버린 듯한 공간 안에서 아버지와 딸과 손자는 저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되새기며 사람과 사건과 역사들 사이에서 거미줄처럼 이야기를 확대해 나간다.
작품 해설
작가 연보
<b>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현대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 ‘마술적 사실주의’의 원류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마술적 데뷔작’</b>
현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 집필을 마친 뒤 칠 년여에 걸쳐 세상에 소개되지 않았던 전설적인 데뷔작 『썩은 잎』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이 비범한 첫 작품 안에는 이미 거장의 문학 세계가 충분히 구현되어 있다. 가상의 마을 마콘도, 거대한 시스템이 초대한 부정과 부패, 거부할 수 없이 치명적인 사랑과 죽음, 기나긴 세월 동안의 고독, 서로 다른 도덕과 경험이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격렬한 순간, 이 모든 것이 시공간을 사용한 퍼즐 맞추기처럼 환상적이고도 생경한 풍경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퇴역한 대령, 대령의 딸 이사벨, 그녀의 어린 아들, 그리고 지난밤 유명을 달리한 어느 의사의 시체가 있다. 스산한 가을, 거리의 바닥에는 떨어진 잎들이 쌓여 썩어 가고 의사는 마을 묘지에 매장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해 영원한 안식을 보류당했다. 성당의 종소리, 과거에서 풍겨 나오는 향냄새, 빳빳한 상복의 옷깃, 입속에서만 속삭이는 비밀. 조촐하고 괴상한 이 장례 자리에서 가족들은 저마다 지난날을 회상하고 시간과 공간이 종횡으로 확장하며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의 타래가 풀려 나와 눈앞에 흘러간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지평을 열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풍경’을 열어 보인 현대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의 이 문제적 데뷔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완전히 새로운 문학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b>■ 삶을 살아가는 한, 우리 모두를 찾아오는 근원적인 고독
어느 죽음을 둘러싼 삶의 이야기를 통한 고독의 성찰</b>
1928년 9월 12일 오후 두시 삼십 분부터 세 시까지, 이제는 은퇴한 대령 한 사람, 남편에게 버림받은 대령의 딸, 그녀의 열 살짜리 아들이 함께 앉아 있는 그 시간은 기이할 정도의 고독과 적막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밤, 대령의 친구인 ‘의사’가 세상을 떠났고 이 세 명은 의사의 시체가 마을 묘지로 향하기 전 시체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시체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쳐 망자의 안식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의사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이유로 신의 대리인인 마을 사제도 묘지 매장을 반대하고 나섰으며, 의사가 정치적인 혼란기에 시민의 편에 서서 민중 봉기 부상자들을 치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을의 대표인 읍장도 반대에 표를 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영원히 멈춰 버린 듯한 공간 안에서 아버지와 딸과 손자는 저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되새기며 사람과 사건과 역사 들 사이에서 거미줄처럼 이야기를 확대해 나간다.
우리는 죽은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갔다. 굳게 닫힌 방은 더위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거리에서 태양이 이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공기는 콘크리트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강철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뒤틀어 버릴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시체가 놓인 방은 여행 가방 냄새가 나지만, 나는 어느 곳에서도 그런 가방을 볼 수 없다. 구석에 그물 침대 하나가 있다. 그 한쪽 끝이 고리에 매달려 있다. 쓰레기 냄새가 풍긴다. 우리는 망가지고 거의 깨져 버린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 본문 중에서
이제 나는 읍장이 마을 사람들의 깊은 증오심에 동조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것은 십 년 동안 쌓여 온 감정이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진료실 문 앞으로 데려와 소리쳤을(의사가 문을 열지 않고 집 안에서 말했기 때문에)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의사에게 소리쳤다. “의사 선생님, 이 부상자들을 돌봐 주세요. 다른 의사들은 치료해 주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바나나 회사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썩은 잎’처럼 변한 사람들, 모든 부정한 것들에서 자기 자신을 유폐한 어느 기인, 기묘한 애정의 화신이자 소문의 주인공인 원주민 하녀, 부유하고 아름답던 시절에 대한 회상과 세상의 적개심에 노출된 무력감, 바람에 부유하는 낙엽처럼 수많은 이야기와 생각과 감정이 종횡무진 펼쳐지는 가운데 마침내 소설의 시곗바늘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죽음과 그 죽음을 지키며 각자의 고독을 견디는 세 사람을 가리킨다.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의사를 위하여 적개심에 불타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밖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오후 세 시. 이 책을 펼친 독자 모두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독한 ‘결정적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b>■ 2014년 타계한 현대의 거장이 보여 주는 ‘문학의 원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탁월한 데뷔작</b>
데뷔작은 작가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데 매우 유효한 단초이다. 한 사람의 독자에서 한 사람의 작가가 되는 순간,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붐’을 일으켰던 불세출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이 ‘데뷔작’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부터 완성된 작가였던 그의 천재성을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다.
스타일, 세계관, 상징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데뷔작에서 명료하게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강렬한 이미지와 막힘없는 스토리텔링,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탄력적인 구성 등 가르시아 마르케스 특유의 스타일이 이미 일정 부분 정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의 터전이자 삶의 원류인 가상의 지역 마콘도, 일가를 거치며 내려오는 연대적인 역사의 서술, 거대 자본이 가져온 파국의 양상, 치명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인간 본연의 고독 등 그가 일관되게 천착해 온 주제의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놀라움을 더한다.
이 작품의 진가는 『백 년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 등 무수한 베스트셀러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한편, 높은 문학적 성취로 평단과 문단의 갈채를 받으며 ‘작가의 작가’로 이름을 남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적 토대를 최초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데에 있다. 또한 마콘도라는 마술적 세계로 들어가는 길잡이로서, 21세기 독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세대를 사로잡은 마콘도 세계를 구체적으로 처음 다루었으며, 마술적 사실주의를 이해하고 그 세계로 들어가는 데 필수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매혹적인 필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우리 시대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의 이 ‘마술적’인 데뷔작은 환상적이고 마법 같은 저 기나긴 이야기의 ‘원류’를 만나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타카타에서 태어나 외조부의 손에서 자랐다. 스무 살에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하지만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학교를 중퇴하고 자유파 신문인 《엘 에스펙타도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로마에 파견된 그는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것을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썩은 잎』,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불행한 시간』 등 저항적이고 풍자 정신이 넘치는 작품을 발표하던 중 1982년 『백년의 고독』을 발표하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를 통해 전 세계 문인들로부터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받은 그는 이후 발표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통해 다시금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순박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미로 속의 장군』,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등이 있다.
평단의 찬사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이 현역으로써 글을 써 오던 그는 2014년, 향년 87세로 타계하였다.
역자 송병선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콜롬비아 카로이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픽션들』, 『알레프』, 『거미여인의 키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모렐의 발명』, 『천사의 게임』, 『꿈을 빌려 드립니다』,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 『염소의 축제』,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 등이 있다.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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