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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사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4년 03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2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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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7.52MB)
ISBN 9791172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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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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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수단 내전⋯
‘새로운 전쟁’ 이후 세계 질서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한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뜨거운 모색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덧 2주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곧 끝나기는커녕 러시아가 10년 이내에 나토와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수단 내전, 니제르 쿠데타 등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20세기에 이어 세계는 또 다른 전쟁의 시대로 들어섰다. 이 전쟁들은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꿀까? 그리고 한국은 격변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이 책은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을 중심으로 이런 질문들에 답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박노자 작가가 이번에는 소련 출신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이 전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러시아 사회의 작동 원리를 내부자의 눈으로 세밀하게 분석한다. 또한 지정학적 관점에서 일련의 전쟁을 다원 패권 시대로의 이행을 알리는 징후로 해석하며,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과 노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전쟁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한국이 나아갈 길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믿을 만한 나침반이 돼줄 것이다.
프롤로그-전쟁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방법

1부 “혁명의 국가” 소련은 어떻게 침략 전쟁의 주역이 됐나
소련의 폐허에서 러시아의 미래를 예측하다: 다시 보는 소련 망국 30년
21세기의 러시아 혁명은 가능한가
푸틴주의: 국가, 군대, 정교회의 삼위일체
‘러시아 혐오’의 실체는 무엇인가
러시아의 반전운동은 왜 미약한가
각자도생 사회에서 반전운동은 가능한가
러시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1930년대가 주는 교훈
“현실 사회주의” 실험은 무엇을 남겼는가: 소련 출범 100주년
러시아는 왜 성공한 개발 국가가 되지 못하는가
푸틴 독재를 옹호하는 지식인은 누구인가
중ㆍ러의 헤게모니 전략은 성공할까
왜 소련은 몰락하고 중국은 살아남았나

2부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가
전쟁은 러시아의 ‘발전 전략’인가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러낸 것들
러시아는 왜 전시 동원 모델을 선택했나
푸틴의 도박은 성공할까
문화는 어떻게 침공을 가능케 했는가: ‘제국’과 ‘전쟁’으로 구성된 문학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패권 지형을 어떻게 재편할까
‘힘의 공백’ 이후,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국가의 귀환은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꿀까: 우크라이나 침략 1주년을 돌아보다
하층계급은 왜 전쟁에 동조하는가
‘친척 민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왜 싸우는가
러시아, 침략의 논리
러시아는 왜 이렇게 호전적인가

3부 한국과 러시아,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한ㆍ러는 왜 ‘진짜 남자’에 열광하는가
두 개의 군사주의: 러시아와 한국
‘주변부 콤플렉스’로 하나 되다
한ㆍ러, ‘피해자 민족주의’를 공유하다
‘헤게모니적 민족주의’라는 공통분모
역사 교육은 어떻게 ‘제국’을 정당화하는가
한국적 정치 다원주의와 러시아적 정치 일원주의
중ㆍ러에 비판적인 좌파가 필요하다
푸틴의 협박은 한ㆍ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러시아를 어떻게 인식해왔는가: 환상과 환멸의 역사
신권위주의는 어떻게 외로운 청년들을 사로잡았나
푸틴과 박정희, 무엇이 다른가

4부 포스트 워,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크라이나는 세계 재분할의 첫 단추가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 대외 정책의 상관관계
전쟁은 어떻게 현대 세계를 만들었나: 자본주의ㆍ의회주의ㆍ복지사회와 전쟁의 관계
주변부는 어떻게 중심부가 되는가: 유럽과 동아시아의 비교로 본 통일과 분열의 지정학
풍요의 경제는 어떻게 위기를 맞는가
다원 패권 체제가 몰려온다: 21세기 첫 20여 년의 총결산
신냉전 시대, 냉정한 양비론을 넘어서라
“전쟁하는 국가”에서 반전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미국 패권 이후, 혼돈과 기회의 시대에 대비하라
중ㆍ러, “한계 없는 협력”은 가능할까
전쟁은 어떻게 러시아를 만들었나: 전쟁으로 읽는 200년 러시아사
세계는 러시아와 함께 퇴보 중인가
세기말로 돌아간 세계, 한국의 과제는 무엇인가
케인스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넘어선 평등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라
파편화되는 세계, 윤석열 정부의 실패는 시작됐다
“전체주의적 집단”들의 전성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라
균세로의 귀환은 기회인가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서구 패권을 종식시켰나
‘한반도 평화’를 중심에 둔 한·러 관계를 위한 제안

2023년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전쟁의 해’였습니다. 1968년이 ‘세계 혁명의 해’,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각종 저항 운동들이 일어난 해였다면, 2023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란의 해로 각인돼 앞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일련의 새로운 전쟁들은 결국 미국 독무대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여러 주요 비서구 열강의 ‘도전’을 의미합니다. 이 도전의 궁극적 결과에 따라 2020년대 중후반쯤에는 앞으로 또 30~50년 동안 지속될 주요 강대국 사이의 새로운 질서가 다시 만들어지고 한동안 이어질 것입니다. … 새로운 전쟁의 시대를 다루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저술 의도는 전쟁의 시대를 전쟁 없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가면서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공유하는 데에 있습니다._5~14쪽

궁극적으로는 러시아 지도부가 구상하는 “신세계”의 큰 그림은 러시아의 손아래에 있는 구소련 권역과 동유럽, 중국 패권이 확실한 동아시아, 인도 패권이 지배하는 남아시아, 이란과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본위의 중동, 독일-프랑스 지도하의 유럽 등 여러 강국들의 영향권으로 구성된 세계 체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요 결정들을 독일과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튀르키예 등 주요 강국의 지배자들이 “협의”하고 “합의”해서 내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각각의 영향권 안에서는 해당 영향권의 패권 국가가 지닌 규정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은 러시아의 영향권 구축에 우크라이나가 걸림돌이 됐기에 지금 그 걸림돌을 “제거”하는 셈입니다._35쪽

큰 틀에서 봤을 때 내전의 종식 이후 소련의 역사는 “현실”의 이름으로 “이념”이 점차 뒤로 물러나는 과정이자 “혁명적 국가”에서 “혁명적” 부분이 퇴색하고 “국가”에 보다 더 강하게 방점이 찍히는 과정이었습니다. … 소련 장교들이 다시 제정 러시아 시절처럼 “계급장”을 달게 되었고, “애국적” 내용의 “국사” 수업들이 부활했으며, 동성애가 불법화되었고, 여성들은 낙태권까지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 당시 소련 사회는 점진적으로 “보수화”되는 역사를 밟고 있었던 만큼 그 궁극적 몰락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혁명의 이념을 계속 등지다 보면 결국 혁명 이후의 “실험적 국가” 체제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자연스레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_61쪽

러시아 문학의 “당연한 배경”은 바로 ‘제국’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문학가들은 ‘제국’을 ‘문명화’를 추진하는 긍정적 행위자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간주하고, ‘현지인’이나 ‘적국’의 저항에 부딪치는 경우 ‘제국’의 군사력을 옹호하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푸시킨은 〈러시아의 비방자들에게〉 등의 시를 통해 1830년 폴란드 독립운동에 대한 러시아군의 진압 작전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또한, 도스토옙스키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군의 점령이나 튀르키예와의 전쟁을 열성적으로 옹호하면서 튀르키예의 수도인 이스탄불까지 러시아가 “탈환”해 다시 비잔틴 시대와 같이 “기독교 도시”로 “복원”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꿈”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 톨스토이와 같은 “예외”들을 제하면 러시아의 주류 문학은 “제국”과 “전쟁” 없이는 그 구성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_108~109쪽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들은 종종 서로를 “형제 민족”이라고 지칭합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약 80퍼센트가 러시아어 구사자들인데, 이들 대부분은 원어민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원어민급으로 러시아어를 구사합니다. …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친척 민족”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데 친척 사이의 폭력이 본래 “남”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 이상으로 무서운 것처럼, 스스로를 “본가”라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를 저들 나라의 “방계”로 치부해 재정복하려는 러시아 국가와 군의 폭력 역시 그 정도가 상상 이상입니다. 러시아 점령 지구에서 러시아군 방첩부대에 의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로 지목된 주민들을 기다리는 것은 고문실과 죽음뿐입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바흐무트에서처럼 죽을힘을 다하며 “필사적 저항”을 벌이는 것입니다._131~134쪽

러시아 군대는 빈민과 지방민으로 구성된 군대입니다. 2022년 2월부터 같은 해 12월 사이에 우크라이나에서 전몰된 것으로 확인된 약 1만 명의 러시아 군인들의 출신지 등을 분석한 한 연구에 의하면 이 침공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민족 차별까지 받는 부랴트 공화국의 남성이 군에 (끌려)가 우크라이나에서 죽을 확률은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부유한 남성보다 약 120배나 더 높았습니다. 평상시에는 경제적 착취를 받는 빈민들이 전장에 동원돼서는 노동력도 아닌 자신의 몸 전체를 괴물 같은 제국에 바쳐야 하는 시스템인 셈입니다._156쪽

러시아의 역사 교육은 철저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모스크바 중심주의’적입니다. 러시아 교실에서 배우는 14~17세기의 중세사는 오로지 ‘모스코비아’, 즉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국가 및 제국의 ‘발전사’뿐입니다. … 모스크바 대공국·왕국·제국에 대한 서술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이뤄집니다. 이반 뇌제의 카잔 침략과 정복, 아스트라한 침략과 정복, 그 시대에 시작된 시베리아 정복 등은 그저 “우리 영토 확장” “우리나라의 발전”이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됩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으로 인해 희생되는 타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 학교에서의 역사 교육이야말로 지금 푸틴의 침략을 위한 총알받이들을 준비해주고 제공해주는 셈입니다._173~175쪽

오늘날 열강들 사이에서는 전쟁과 상호 견제, 그리고 필요시의 협업이라는 ‘균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균세 시스템의 재도래를 민족주의적 경향을 띤 국내 일부 지식인들이 “다극화”라고 표현하며 반기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정말 반길 일인지는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예컨대 현재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현장에서 200명 이상의 외국인 전사들이 우크라이나 군대에 자원입대를 했다가 전사했는데, 그들 중의 수십 명은 미국과 폴란드, 영국, 독일 등 나토 국가들 출신입니다. 전장에서 나토 국가 출신 전사들과 러시아 병사들이 서로를 죽였다는 사실은 확전의 불씨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대만을 중심으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과 미국의 직접적인 무장 충돌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균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늘 불안을 담보로 합니다._295~296쪽

한국을 “우크라이나의 후원 세력”으로 지목한 러시아 측은, 일종의 “대칭적 대응”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한국이 러시아의 적국인 우크라이나와 가까워지는 만큼 러시아도 한국의 주적인 북한과 가시적으로 가까워져갔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생즉사 사즉생 정신에 입각한 연대”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공동의 “싸움”을 제시한 것처럼 김정은도 푸틴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도 언제나 반제자주 전선에서 내가 러시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전적이고 무조건적 지지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 결국 우크라이나 지원을 통한 윤석열 정권의 “한·미 동맹 굳히기 작전”은 적어도 외형적으로 일종의 ‘동맹’을 방불케 하는 북·러의 “새로운 밀월”로 이어졌습니다._308~309쪽

전쟁을 ‘발전 전략’으로 삼은 푸틴의 러시아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배경인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 사회를 알아야 한다. 통속적으로나마 15개의 산하 공화국을 하나로 묶었던 소련 공산당의 좌파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로 대체됐는데, 이는 푸틴 체제의 억압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은 반전운동을 조직하고 이끌 정치 세력의 부재에 주목한다. 대부분의 국내 제조업체가 군수업체나 군수업체의 유관 기업이라 많은 노동자가 푸틴의 군사주의를 지지하는데, 러시아의 주류 좌파 정당인 연방 공산당은 이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는 일부 자유주의 정치 세력이 있지만, 소련 붕괴 이후 급속한 자본주의화가 낳은 폐해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게다가 소련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회적 공동체가 해체돼 러시아는 “각자도생에 골몰하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들의 모래더미 같은 집합체”(51쪽)가 됐다. 강력한 반전운동이 조직되지 못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의 러시아가 전쟁을 일종의 ‘발전 전략’으로 삼았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군사 부문에서 미국 다음의 ‘2위 대국’인 러시아로서는 전쟁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성장 전략이라는 것이다. 강철, 망가니즈, 우라늄 같은 자원을 보유한 ‘옛 러시아 제국’의 영토, 우크라이나를 “수복”해 국제 경쟁에서 보호받는 경제 영토 안에서 자본을 육성하고, 장기적으로는 서방과도 경쟁할 힘을 갖춘다는 것이 러시아의 구상이다.
이런 ‘발전 전략’의 시행은 미국 패권의 쇠락과 맞물려 있다. 2008년 경제공황, 중국의 경제적 부상 등은 세계 질서의 정점에 있던 미국의 추락을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푸틴의 러시아는 이 시점을 ‘발전 전략’을 추진할 적기로 판단했다.

다원 패권 체제와 윤석열 정부의 실패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전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침략 그 자체가 아니라 침략을 계기로 분명해진 세계의 변화다. 중국, 인도,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 세계의 각 지역 강국이 러시아 제재에 불참하며 미국의 리더십에 불복했다. 제재를 가한 나라들의 인구는 세계 총인구의 14퍼센트에 불과하다. 즉,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군림하던 일극 패권 체제가 여러 지역 강국이 세력 균형을 이루며 견제하는 다원 패권 체제로 이행하고 있으며,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같은 세계 재분할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다원 패권 체제는 평화와 거리가 멀다. “균형이 약간이라도 깨질 것 같으면 바로 군사적 대응이 실행되기 때문”(296쪽)이다. 저자는 세력 균형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계에서는 대규모의 전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장기 평화가 이제는 끝나가고 있는 것”(296쪽)이라고 강조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수단 내전 등 최근 벌어진 일련의 전쟁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 한국은 잘 대응하고 있는가? 저자가 평가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러 정책은 낙제점에 가깝다. 한국이 1980년대에 소련과의 수교를 모색했을 때부터 대러 관계의 초점은 안보였다. 북한의 주요 후견 국가였던 소련이 상위 동맹국이자 군사기술 공급자라는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어 북한을 견제하는 것이 한ㆍ러 관계의 핵심 목표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에만 치우쳐 철저하게 러시아의 반대편에 섰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캐나다, 폴란드에 포탄과 전차, 자주포를 수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하며 북한과의 동맹을 견고히 했고, 북ㆍ러 관계는 냉전 시대를 연상케 할 만큼 전례 없이 밀착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크게 악화한 것이다.

전쟁의 시대를 전쟁 없이 지나는 법

이 책은 전쟁의 시대를 전쟁 없이 헤쳐나가려면 ‘한반도 평화’를 중심에 둔 외교ㆍ안보 정책을 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려면 무조건적 대미 맹종의 태도를 버리고, 한국이 미국 글로벌 전략의 ‘졸’이 아닌 한반도 주변 외교의 독립적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윤석열 정부가 취한 태도가 한반도 안보에 위협이 됐듯, 한미동맹에만 ‘올인’하는 외교는 위험하다. 특히 지금처럼 미국 패권이 쇠락하고, 세계 질서가 다원 패권 체제로 재편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만이 아닌 러시아, 중국, 북한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국가들과 평화 지향적인 외교에 나서야만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러시아 사회와 세계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일련의 전쟁 이후 새롭게 재편될 세계 질서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또한, 다원 패권 시대에 한국이 선택해야 하는 외교ㆍ안보 노선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노자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코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대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대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주목받았으며, 《당신이 몰랐던 K》 《미아로 산다는 것》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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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전쟁 이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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