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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7
오월의봄

2024년 02월 05일 출간

종이책 : 2020년 08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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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42.80MB)
ISBN 97911687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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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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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있어?”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있어?”
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제정되었다. 당시 검찰총장조차 “가벼운 매로 대할 사안을 도끼로 대응하는 것 같아 너무 무겁다”고 우려할 정도로 제정 당시부터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법이었다. 하지만 극우 반공 세력은 “보안법 폐기 주장은 공산당을 돕는 행위”라고 강변하며 힘으로 밀어붙여 이 법을 만들었다. 194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투옥된 사람은 무려 11만 8,621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49년 10월 형무소 두 곳을 새로 만들기로 결정할 정도였다. 그 이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보안법은 한국인의 눈과 귀를 가렸고, 심지어는 마음속 생각까지 검열하도록 만들었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이 법으로 희생되었고, 아직도 작동되고 있는 중이다.
여는 글
침묵과 망각에 반하여

우리는 선택했고 그 결단에 따라 감수한 것이죠
구술 김은혜, 글 강곤

여자들의 말하기는 저항이고 투쟁이에요
구술 유숙열, 글 홍세미

국보법이 폐지되면 그 자리에서 춤을 출 거여
구술 정순녀, 글 홍세미

세상에 눈을 뜨니 너무 자랑스러운 거여
구술 김정숙, 글 이호연

기억되지 못한 시간들-봉인된 24년
구술 고애순, 글 유해정

내 청춘은 역사도, 경력도 되지 못했다
구술 양은영, 글 유해정

종이 한 장의 무게
구술 유해정, 글 강곤

오빠를 간첩이라 했던 제 괴로움을 저들은 모릅니다
구술 유가려, 글 강곤

우리는 그렇게 몰아가도 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구술 배지윤, 글 박희정

이렇게 하면서까지 국가가 원했던 게 뭔가요?
구술 안소희, 글 박희정

차라리 살인죄라면……
구술 권명희, 글 홍세미

덧붙이는 이야기
‘분단’과 젠더-정희진

구술자들이 겪은 사건들

정권만 바뀌었지 노동자들은 계속 사업장에서 죽어나가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노동자의 목숨을 쉽게 여겨요. 이 정부에서도 그래요. 아직 할 일이, 바꿔야 할 게 많아요. 그리고 국가보안법 역시 여전히 살아 있죠. 사실 국가를 지키는 법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을 지키는 법이잖아요. 그러니 지금도 ‘문재인은 빨갱이’, 이런 게 통하는 거예요.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데 분단 상황에서 주한미군에게 돈이나 갖다 바치고 있고.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아요. -42쪽

그동안 여자들의 목소리가 안 들렸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가 울타리를 넘으면 안 되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를 우리에게 했잖아요. 이제 여자들이 말할 차례고 여자들이 말할 시대예요. 이젠 여자들이 말해야 돼요. 여자들의 말하기는 저항이고 투쟁이에요. 나도 그동안 고백, 발설하면서 그 힘으로 살아냈어요. -75쪽

민가협이 활성화되면 안 되는 거지. 다만 우리가 민가협에 있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어야 하니까 지금은 민가협이 사라질 수 없는 거지. 자료는 점점 훼손될 텐데 이 자료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면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거 아니여. 우리가 모은 자료를 두고두고 역사에 남겨야 할 텐데 이제 나도 팔십이 넘었고 다른 어머니들도 나이를 먹는데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여. 언제까지 우리가 이걸 지킬 거여. 자료가 잘 정리되면 민가협이 사라져야 하듯이 국가보안법도 그래야 할 거 아니여? 사회가 많이 바뀌었지만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진짜 바뀌었으면 좋겠어. 국가보안법이 쉽게 말하면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 잡는 법이여. 이젠 젊은 세대를 자유롭게 살게 해야지 이런 법에 얽매여 살게 하면 안 되지. -138~139쪽

많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어떻게 대항할 힘조차 없는 상태에서 당하게 되거든요. 이후의 곤경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선택했던 게 아니라 당시 정권에 의해 무방비 상태로 당한 분들은 그걸 어떻게 풀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고령이 되도록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들도 워낙 많다 보니,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로서 저보다는 그런 분들을 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분들을 잊지 않으면서 그 고통을 이제는 끝내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 역사를 부끄러운 과거, 절대 되풀이되어선 안 되는 과오로 선명하게 기록해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171쪽

3평 정도 되는 직사각형 방이었어요. 창문도 없이 다 꽉 막혀 있었는데, 가운데에 책상이 하나 있더라고요. 거기에 혼자 앉혀두고는 별다른 말이 없었어요. 여기가 어디라고 얘기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아무 말이 없었어요. 너무 겁이 나죠. 근데 혹시 잘못돼서 죽는 것보다 다른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거예요. 내가 여자니까 혹시 나한테, 내가 여기 잡혀왔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185쪽

그런데도 결국 오늘 이렇게 말하게 된 건, 그래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 시절 제 주변에 탈퇴서를 안 쓴 사람보다 쓴 사람이 많았지만 한총련 탈퇴서를 쓰고 다시 운동하는 사람들을 못 봤어요. …… 상황이 어찌 됐든 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꼴이 됐죠. 그 시절 같이 운동했던 수많은 친구들이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소식조차 못 듣고 지내요. 애써 찾지도 않았고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 큰 상처이지 않았을까? 외면하고 부인하더라도, 합리화하고 극복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상처이지 않을까? 그렇게 아무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지금 여기 있는 나부터라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한때의 일, 과거의 일이라고 하기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는 고통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기엔 내 영혼에 너무 깊숙이 새겨진 상처를, 종이 각서 한 장이 사람의 인생에 어떤 폭력이자 야만이었는지를 누군가라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한 줄 기록으로라도 국가보안법의 이 야만성에 대해, 고개 숙였던 자의 부끄러움에 대해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34~235쪽

너무 억울해서 조사실 책상에 있던 우유병을 들고 머리를 깨려고 했는데 아줌마 조사관이 제 손을 잡고 못 하게 했어요. 나중에는 새벽까지 조사하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시키고, 귓쌈(뺨)도 때리고, 얼굴 봐라, 눈 마주쳐라 하고, 앉아 있는 걸상을 발로 차기도 했어요. 3일째 되니까 앞이 캄캄하고, 여기서 어떻게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싶어 몇 번씩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창밖에 날아다니는 저 새만도 못하구나. -243쪽

남편은 진짜 얼음 같은 건 한 번도 만져보지 않은 사람이에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북한에 있을 때 제가 돈을 계속 보내줬기 때문에 남편은 그런 일 안 해도 충분히 먹고살았어요. 우리가 아무 힘도 없으니까 우리를 간첩으로 몰아간 거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 사람 딴에는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누구도 안 알아줬잖아요, 그 마음을. 저부터도 애들 아빠를 원망했고…… -298쪽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면 국가안보에 피해를 받는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로 인해 국가가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증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이 받은 형을 다 합치면 수십 년이 돼요. 한 사람의 인생일 수도 있을 만큼의 시간이죠. 그렇다면 한 사람을 죽였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서까지 이 국가가 하고 싶었던 게 뭔가요? 언제쯤 그들이 그걸 말할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는 그들에게 진실을 얘기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336쪽

국가의 권력으로 모든 걸 허용하는 게 국가보안법이에요. 법 자체가 너무 무서워요. 무소불위의 힘, 엄청난 힘을 가진 법이에요. 지금은 고문을 하진 않지만 정신적인 압박과 사상 통제를 하고요.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됐던 사람은 사회에 나와서도 죽을 때까지 보호관찰을 받아요. 이사하면 이사 갔다고 신고해야 하고, 어디를 가면 어디 간다고 신고해야 한대요. 죽을 때까지 국가의 통제를 받는 거예요. 3년 이상의 형을 받으면 누구나 그래야 한대요. 살인도 15년인데 이 법은 평생을 구속해요.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사는 거죠. -369쪽

“이제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이제는 국가보안법을 없앨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라는 시민운동을 준비하면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국가보안법 박물관이 만들어진다면,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목소리들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책의 글쓴이들(홍세미, 이호연, 유해정, 박희정, 강곤)과 사진가(정택용)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현장에서 기록 활동을 펼쳤던 이들이다. 용산참사, 밀양송전탑, 형제복지원, 세월호참사, 비정규직 투쟁, 고공농성 등 한국 사회의 모순이 폭발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이 이번에는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프로젝트와 만났다.
이 책에 담긴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1970년대 대학생이었던 이들부터 이제 막 40대에 이른 이들까지 다양하다. 1980년대 5공화국 시절부터 최근 10년도 안 된 사건의 피해 당사자이거나 관계자들이다. 국가보안법 투쟁의 산증인이자 언제나 최전선에 섰던 민가협 어머니들부터 탈북민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망라한다. 국가보안법과 맞닥뜨렸을 때 이들은 보통의 어머니였고, 아내였고, 기자였고, 운동권 대학생이었고, 시의원이었고, 북한이탈주민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국가보안법과 마주하면서 큰 고통을 겪긴 했지만. 피해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기도 했다.

왜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왜 국가보안법 역사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여성들의 공헌은 대단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성들 중심으로 소개되어왔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와 저항의 역사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남편이나 아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도 그 뒤에서 ‘옥바라지’를 하고, 구속자 석방 운동을 한 여성들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같은 국가보안법 피해 당사자이지만 여성보다 남성이 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이다. 곧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피해와 저항의 경험들, 그 질곡들은 질문되지 않았다. 어쩌면 여성들이야말로 말의 세계에서 배제되고 감금된 이들이지 않을까? 이제 늘 조연의 자리에서 질문받던 여성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주연과 조연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놓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삶으로 국가보안법을 본다는 것, 여성의 목소리로 국가보안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첫째, 역사 다시 쓰기다. 여성들의 증언을 모으는 것은 단지 역사 속에 부재한 여성의 자리를 채우려는 것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맥락 속에서 ‘여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성과 남성은 국가에 의해 어떻게 구분되고 구획되는지, 국가보안법과 맞선 사회운동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와 조건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사유를 의미한다. 즉 역사의 재해석과 재맥락화를 통한 재의미화 과정이며, 이는 지워진 여성의 역사를 드러냄으로써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자 여성 존재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하는 싸움이다.
둘째, 여성의 경험과 사유를 지식화하고 언어화하는 작업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회적, 개인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소외와 배제는 필연적으로 공식 역사에서 주변화를 낳았고 지식과 언어에서 소외를 불러왔다. 따라서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여성의 증언을 재구성하는 것은 여성이 배제와 지배를 뒤엎는 데 사용했던 언어와 지식, 행위에 대한 주목이자 발견이기도 하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의 담론에서 여성을 살아 있는 존재로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그 서사를 통해 운동사가 재구성되어 새로운 관점과 시선,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국가보안법과 마주한 구술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

학창 시절 반정부 투쟁을 하다가 수배자가 되기도 했던 김은혜는 1981년 산업선교회에서 활동하던 남편이 체포되면서 국가보안법과 맞닥뜨렸다. “둘째 아이가 1980년 6월 19일 생이니까 갓 돌이 지났을 때였죠. 큰애는 네 살이었고요. 그날 모처럼 친정에 가기 위해 짐을 챙겨 기차를 타러 나가려는데, 우리 집에 네 명의 떡대 같은 놈들이 나타나서 남편한테 후배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고 하더니 바로 잡아갔어요. 남편이 그렇게 잡혀간 뒤 기저귀 가방 둘러메고 둘째는 업고 큰애는 손잡고 방방곡곡 남편을 찾으러 다녔어요.” 그 후 그는 남편의 옥바라지뿐만 아니라 남편과 함께 구속된 사람들의 석방운동을 했다. 당시는 5·18 직후라 술집에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소리 소문 없이 잡혀가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그 이듬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남편만 풀려난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후 그는 부천에 자리를 잡고 풀무원 영업,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부천에 여성의전화, 생협, 경실련 등을 만들었고, 지역운동도 계속해나갔다. “힘들고 아파도 견딜 수 있는 것은 견뎌내고,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해요. 돈이 아니라 좋은 삶을 사는 것,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훨씬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삶을 선택한 거잖아요. 그 결단에 대한 책임은 나한테 있으니 불편함이 있더라도 감수해야죠.”
언론인이었던 유숙열은 1980년 7월 갑작스레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수배된 김태홍 기자를 숨겨줬다는 이유였다. 취조실에 들어가자 수사관들은 ‘년’ 자를 써가면서 뒷머리를 잡고 욕조 물에다 머리를 처넣었다. “계속 ‘김태홍 어디 있냐?’ 묻는데 나는 모른다고 그랬지. 나한테 자기네가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니까 ‘남민전 이재문이 죽어 나간 방으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다른 방에 끌려 들어갔는데 방 가운데 줄이 달린 나무판이 놓여 있고, 예닐곱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어요. 놀랐지. 너무 무서웠어요.” 나중에 그는 자신을 고문한 수사관 중 한 명이 이근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영상에서 그 사람 얼굴을 봤는데 나를 고문했던 바로 그 수사관이었어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그 순간을 잊고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 사람 얼굴을 보는 순간 당시로 되돌아갔어요.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했던 일들이 모두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이후 그는 미국으로 가 페미니즘을 공부했고, 국내로 돌아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를 만드는 등 여성운동을 활발하게 했다. 현재는 말하지 못해 기록되지 않고, 무시되어 지워지거나 왜곡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여자들의 목소리가 안 들렸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가 울타리를 넘으면 안 되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를 우리에게 했잖아요. 이제 여자들이 말할 차례고 여자들이 말할 시대예요.”
정순녀는 서울대에 다니던 딸이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자 민가협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리고 날마다 교도소로 찾아가 딸을 석방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어느 날엔가는 갑자기 면회가 안 된다는 거여. 우리 딸을 징벌방에다 갖다 넣었대. 박종철이 추모제를 주동했다고 말여. 징벌방이 뭔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징벌방이 뭐요?’ 그러니까 지하 어디 가서 면회도 못 하고 혼자 묶여 있는 거래. 세상에, 그냥 두지 않고 묶어놓는대. 내가 소장실에 쳐들어가서 우리 딸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지. 소장이 말도 안 하고 도망가데.” 이후 그는 자신의 딸만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가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운동가로 거듭났다. “우리 엄마들이 싸우는 게 학생들이 싸우는 것보다 몇 배가 더 쎄. 우리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서 한다 생각하면 무서운 게 없거든. 멱살 잡고서 싸울 수도 있고 저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죽일 수도 있어. 학생들은 그렇게 못 하잖아. 엄마들이 싸우는 힘이 너무 좋더라고.”
김정숙 또한 정순녀처럼 아들을 위해 싸우다가 운동가가 된 경우다. 김정숙은 아들이 학생운동을 하기 전에는 오히려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비난하던 평범한 어머니였다. 그는 ‘여자’로 태어나서 제대로 공부도 못한 게 제일 한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못 간 게 한이 됐지. 키워주신 증조할머니도, 부모님도 나를 예뻐해주셨지만 여자는 얌전히 집에 있다 시집가면 된다고 배웠지. 전라도 골짜기 시골인데도 그 옛날에 우리 작은아버지는 대학교를 졸업했어요. 친정이 교육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나는 초등학교만 다녔어. 여자는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는 거지. 우리 동네에서 여자가 초등학교를 간 경우도 많지 않았어요.” 그런 김정숙은 끊임없이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민가협 회장을 맡는 등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지. 농사짓는 친척이 시커먼 얼굴로 우리 집에 오잖아요. 전에 뭘 모를 때는 이웃 사람이 볼까봐 무섭고 창피하고 그랬는데 세상에 눈을 뜨니까 그 사람이 너무 자랑스러운 거여. 이렇게 열심히, 떳떳이 살고 있다는 게 보이니까. 이전엔 간첩 잡았다고 하면 정말로 간첩 잡은 줄 알고 ‘나쁜 놈들’ 했는데 알고 나서는 ‘저놈들 또 거짓말하네, 사기 치네. 나쁜 놈들’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어요. 누가 나쁜 놈인지가 바뀐 거지.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나니까 누구한테 빨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사람으로 안 보이더라고.”
고애순은 1995년 12월 범민련 가입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때 그는 임신 8개월이었다. “제가 거의 만삭인 상태로 한겨울에 구속되니까 밖에서 어떻게든 빼내려고 엄청 노력들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구속된 상황이다 보니 구속적부심도 안 되고, 보석도 허가가 안 났어요. 첫 임신이다 보니 임신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 뿐 아니라 교도소 안에서도 저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많이 불안했어요. 그때는 누가 보기에도 제 상태가 안 좋았어요.” 구속되고 두 달 좀 못 되었을 무렵 급격히 몸이 안 좋아졌다. 그즈음 형집행정지가 받아들여져 출소했지만, 아이는 사산되고 말았다. 그는 이 사실을 지난 24년 동안 한 번도 입 밖에 꺼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의 국면에서는 운동의 시기라는 게 있어서 저를 기다려주기가 어렵잖아요? 나는 국가보안법으로 봐서는 피해자인 게 맞는데, 그런 내가 아이한테는 가해자인 거잖아요? 그걸 극복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런 상황에서 회자되는 게 편치 않았죠.” 그 뒤 그는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자신처럼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당했던 당사자를 돕기도 하면서 스스로 더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한총련 탈퇴서, 종이 한 장의 무게

1997년 6월 정부는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했다. 그리고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과 한총련 간부들을 수배했다. 양은영도 이 시기에 구속됐다. 1심에서 검사는 7년을 구형했고, 판사는 3년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한총련 탈퇴서 작성을 강요받았다. “제가 갈등을 할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은데, 갈등이 되더라고요. 쓰면 나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런데 반성문, 한총련 탈퇴서를 쓰기에는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억울함이 너무 크고, 방법이 너무 치사했어요.” 그러나 그는 탈퇴서를 쓰지 않았다. 이후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대구로 내려가 남편과 함께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부장 질서가 일상을 지배하는 곳인 대구에서 여성인 그가 자리 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딸은 이런 그를 보고 ‘경력단절녀’라고 놀리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운동을 하다 중간에 나가서 기회를 얻은 사람들은 잘도 사리사욕을 챙기는데, 무식하게 끝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 삶이 경력이 되지도 못하고 역사가 되지도 못하고 이렇게 사는 것 같아서. 우리 한총련 세대는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인정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낙인찍혀 살고 있으니……”
1997년 4월 30일 총학생회장이던 유해정은 사복 경찰에게 체포되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이번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서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서 알았어요. 제가 그 계단을 올랐더라고요. 앞에서 누군가 눈을 가린 저를 이끌고 뒤에서 밀고. 그때 기억이 온몸의 신경에 되살아나더라고요.” 재판에서 5년형을 구형받았다. 그러자 한총련 탈퇴서를 쓰라고 강요받았다. “교도관들도, 엄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와서 재촉했어요. 풀려나고 싶으면 한총련 탈퇴서를 써야 한다. 수감된 다른 학교 학생회장들도 다 탈퇴서를 썼다. 탈퇴서가 뭐 대수냐? 네 마음만 안 그러면 되지……” 결국 그는 탈퇴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 자신의 세계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바보가 됐어요. 부끄러워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또 사람들을 만나도 입을 열 수가 없는 거예요. 자존감이 높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행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내가 사라져버린 거예요.” 그는 “겨우 숨만 쉬고 살다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가 “종이 각서 한 장이 사람의 인생에 어떤 폭력이자 야만이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탈북민 간첩 조작 사건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자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이들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2000년대 ’탈북 간첩 사건‘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도 이런 경우다. 유가려는 오빠 유우성이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다. 중앙합동신문센터라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그 어떤 변호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6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그곳에서는 폭행 등 가혹행위도 있었다. 국정원의 비민주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줌마 조사관이랑 대머리 조사관, 큰아버지 조사관(이름을 모르니까 이렇게 제가 이름을 붙였어요)이 돌아가며 조사했는데, 자기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와야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요. 끝날 때까지 하루고 이틀이고 열흘이고, 원하는 답이 나와야만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그렇게 거기서 6개월을 보냈어요.” 오빠 유우성은 국정원의 증거 조작 정황이 드러나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오빠를 간첩이라고 말해야 했던 유가려의 상처와 회한은 아직도 여물지 않았다.
배지윤은 소위 ‘부부 간첩 조작 미수 사건’이라 불리는 피해자이다. 그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150일 넘게 독방에 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얼음’이라 불리는 마약을 판매해 수익금을 북한 보위부에 상납했다는 혐의였다. “난 간첩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어요. 차라리 허위 진술이라도 해서 교도소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너무도 쉽게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얼마 뒤 배지윤은 진술을 번복하고 간첩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당시는 국정원이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이 드러나 곤란해진 때였다. 그 사건과 맞물리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간첩으로 몰렸을 것이다.
2020년 5월 대법원은 파주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안소희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2년 6월 21일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혁명동지가〉를 제창하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혐의였다. 이로써 안소희는 시의원직을 상실했다. “내가 북한 지도자를 숭배하고 있다고. 그렇게 계속 뭔가를 보여주면서 자기 혼자 찢기도 하고 밟기도 하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만약 압수 수색 때 한 점이라도 북한과 관련된 사진이든 그림이든 나왔다면, 그래서 그걸 보여주면서 왜 이런 걸 소지하고 있었냐고 묻는 거라면 그나마 상식적이라고 하겠어요. 그냥 시종일관 인신공격하는 말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몰아가는 말들뿐이었어요.” 그는 그동안 수없이 인권을 짓밟혔고, 모욕당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한다.
2015년 한밤중에 벨이 울렸고, 국정원 직원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권명희는 그렇게 국가보안법과 마주했다. 남편이 간첩 사건으로 구속된 것이다. “애들 아빠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갑자기 간첩이 됐어요. 우리나라에서 간첩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잖아요. ‘인생 끝났다. 우리 가족, 시댁, 친정, 모든 식구들이 매장이다. 우리는 이제 미래가 없구나. 우리 아이들은 어떡하나.’ 여러 생각이 들면서 너무 막막했어요.” 그 뒤 그는 가족대책위를 만드는 등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녀야 했다.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고맙다고 하면서, 그는 자신이 사건을 겪기 전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범위가 커졌다고 말했다. “남편이 감옥에 들어가고 제가 전면에 나가 활동하면서 제 생각이 넓어졌어요. 아직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많구나, 하고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 거죠.”

작가정보

저자(글) 홍세미

인권기록활동가
사람과 이야기, 함께 사는 삶에 관심이 있다.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기 위해 노력한다. 《1995년 서울, 삼풍》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나, 조선소노동자》 등을 함께 만들었다.

저자(글) 이호연

인권기록활동가
삶이 말을 통해 얘기되지만 말이 삶을 온전히 담지 못함을, 충분하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들려져야 할 이야기가 있는 한 멈출 수 없는 일이기에 기록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그런 자립은 없다》 《나는 숨지 않는다》 등을 함께 쓰고 만들었다. 현재 인권기록센터 사이,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자(글) 유해정

인권기록활동가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동그랗게 모여 앉는 세상을 위해 고통과 희망의 뿌리를 삶의 언어로 기록하며 전하고 싶다. 《밀양을 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나는 숨지 않는다》 등을 함께 쓰고 만들었다. 현재 인권기록센터 사이,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자(글) 박희정

인권기록활동가
내가 발 딛고 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목소리를 따라 이 길에 들어섰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할 권리’를 지키는 기록을 지향하며 인권기록센터 사이에서 함께하고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나는 숨지 않는다》 등을 함께 썼다.

저자(글) 강곤

저널 《인권운동》 편집장
기억하기와 기록하기에 관심이 많다. ‘희망은 인간의 불완전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 그리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답보다 질문이 궁금한 삶을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여기 사람이 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재난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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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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