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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유교걸

오봄문고 8
김고은 지음
오월의봄

2024년 01월 31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10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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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3.16MB)
ISBN 979116873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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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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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이 ‘최애’인 외로운 덕후의 사연

나이는 서른인데,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조금은 곤란한 처지다. 상대방은 학생이냐고 묻곤 하는데, 대학이나 대학원에 속한 것은 아니니 설명이 길어진다. 학생은 학생인데 대학에서 공부하진 않는다고 덧붙여야 한다. 그럼 뭘 공부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약간 주저하며 “철학, 유교,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그런 걸” 공부한다고 설명한다.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 그중에서도 유교란다. 하필이면 삶의 ‘최애’가 영 요새 트렌드에 맞지를 않는다(철학이 요즘 시대에 인기가 없다고는 하지만 인문학에도 ‘힙함’은 있게 마련인데 동양철학에서 그런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자신에게 동양 고전 공부를 권했던 선생님도 공부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니 ‘전공’을 바꿔보면 어떨지 권했다. 썩 돈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세상을 진보시켜 나은 곳으로 만들 것 같지도 않고(다른 철학도 아니고 동양철학에, 유교란다!), ‘간지’나는 공부로 보이지도 않는다(인문학 공부라는 게 썩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는 건 아니지만, 서양 철학자들의 흑백 사진을 넣은 스터디 홍보 이미지와 동양철학을 떠올렸을 때의 이미지를 한번 대조해보라).
심지어 저자는 공교육에 불만을 품고 대안학교로 진학한 후, 진보적 학풍의 대학을 다니다가 그마저도 마뜩잖아 그만둔 20대, 여성, 페미니스트다. 그런 이가 유교에 빠졌다. 저자는 약간의 망설임을 섞어, 하지만 분명히 선언한다. 자신은 ‘유교걸’이라고 말이다.

“나는 ‘유교걸’이다. 보수적인 여자가 아니라 유교를 공부하는 여자, 노브라로 앞가슴이 훤히 트인 티셔츠를 입고 《논어》를 들고 다니는 여자, 또래 친구들이 스토킹 범죄로 스러져가는 걸 보고 분노하면서 음양을 공부하는 여자, 고리타분한 건 딱 질색이라면서 고전 텍스트를 읽는 여자,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예(禮)에 대해 말하는 여자다.”

이 사람, 어쩌다 유교에 빠져버린 걸까? 이 책은 10년간 유교와, 동양 고전과, 동양철학과 깊이 사랑에 빠진 페미니스트 유교 ‘덕후’의 ‘영업 글’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이유가 너무 많이 필요했던 외로운 덕질의 역사이기도 하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분명한 ‘최애(=동양 고전, 동양철학, 유교)’의 매력을 구구절절 읊는다. 이리 깨지고 저리 구르며 해온 이 공부가 나를 관통하며 내 삶의 곳곳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그것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자신의 흑역사와 밑바닥을 다 까면서 고백한다. 그만큼 고생스러웠지만 벅차고 진한 경험이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 사랑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걸 모르다니. 그래서 말하고 싶다. 진탕 부딪히며 더듬어온, 동양 고전을 공부하면서 얻은 배움이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의 삶과 관계를,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곳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단초가 여기에도 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같이 한번 빠져보면 좋겠다고 말이다.
들어가며: “학생이세요?”

1부 어쩌다 유교걸
(페미니스트) 유교걸의 탄생
쓸고 닦고 환대하기
고대의 여성 선생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다
물들이고 물들어가는

2부 혼자가 될 수 없었던 나날
고립되지 않는 다정한 인간
의지적 인간의 의지하는 글쓰기
Daily Check List
프로 자기 계발러 공자
간염과 수영에게 혼쭐나다

3부 리추얼 대신 의례
그래도 여전히 좋아해
친구들이 아프다
동물들의 생존 비결
108번의 댄스
눈치 주는 비건 지향인

나가며: 학생입니다

“서양철학을 전공하는 것보다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것은 더 많은 설명과 해명을 필요로 했다.” (14쪽)

“때로는 한문으로 읽은 것들이 내 삶 위에 불쑥 튀어 오르기도 했고, 때로는 누군가와 부딪힐 때 한문 안에서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 번도 간단하고 명료한 말로 정리된 적 없는 동양 고전 공부는 내 삶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내가 공부한 동양 고전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나는 내가 동양 고전을 공부하며 만났던 사람과 겪었던 시간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15-16쪽)

“나는 교수님을 따라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다짐하며 급발진했다. 수업이 끝나면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는 왜 ‘엄마’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지 않냐고 따져 묻고(엄마는 이미 인문학 공부를 하며 새로운 동료들을 만들고 있었다), 함께 한문을 공부하는 열두 살 많은 이를 ‘오빠’라 부르기 싫어서이름으로 부르고(그는 나의 한참 선배이자 선생이기도 했다), 잘 만나고 있었던 애인에게 우리는 왜 독점적인 연애를 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그는 나의 주기적인 문제 제기로 상당히 괴로워했다). 스무 살이었다.” (21쪽)

“그제야 비로소 나는 드라마 속 재벌이 왜 “이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하며 캔디형 주인공을 쫓아다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니, 오기가 생겼다. ‘그놈의 공부가 뭔지 알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으리라!’ 곧이어 재벌과 같은 마음(‘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으로 대학도 자퇴했다.” (33쪽)

“어쩌면 ‘구별’과 ‘차례’는 누군가가 인격적인 우위를 점한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각자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이것을 꼭 사람 간에 위계를 나누고 권력을 생산하는 장치라고 볼 수 없다. 마치 내가 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일종의 강제를 행사해 친구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교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을 많이 믿는 학파다. 유교의 ‘구별’과 ‘차례’는 서로가 서로의 가능성을 믿고 의지하면서,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67쪽)

“그래도 하나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다면, 그가 예전만큼 다른 친구들을 잊고 자기 의사만 고집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목소리가 크지만, 자기 옆에 자신과 연결된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지우를 보며 함께 수업했던 선생님과 나는 조심스럽게 이런 결론을 내렸다. 친구들이 우정에 대해 익혔던 문장을 진심으로 이해한 어떤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동양 고전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80쪽)

“증자는 친구와 사귈 때 중요한 것은 신의(信)라고 말했다. 이때 신의란 무조건적인 믿음 같은 게 아니라, 성실함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실할 수 있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일 혹은 공부를 성실하게 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관계를 성실히 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116쪽)

“증자의 비근한 체크리스트는 나를 현실에 발붙이게 했다. 오를 수 없는 성인의 경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원대하고 멋진 말을 곱씹는 것보다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참조점을 되새길 때 나는 친구들을 탓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넘길 수 있었다.” (119쪽)

“공자식 자기 계발은 시장이나 상품성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것, 우리가 서로에게 의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자장에서 성찰하고 움직이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 진실되고 충실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130쪽)

“공자는 옛말에 귀를 기울였고, 나는 왜 아직도 동양 고전을 놓지 않고 있을까? 아마도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는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인문학 공동체 선생님들과 연결되어 있듯이, 이 땅의 어떤 고양이나 돼지, 어떤 산과 연결되어 있듯이, 구체적인 삶에서 길어올려진 공부와 사유는 모조리 연결되어 있다. 생명이 혼자서 살아질 수 없는데 어찌 공부라고 혼자 할 수 있을까?” (155쪽)

“나는 그 현장에 서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조용히 울음을 참고 애도하는 것 말고도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공부였다.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에겐 이 현장 역시 공부로 만나야 할 의무가 있었다.” (164쪽)

“아주 많은 이유로 인해 인간들이 세계에서, 그러니까 어떤 관계들에서 분리되고 고립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치명적인 생존의 위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계가 함께 앓고 있는 문제다. 이 상황이 친구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 세계와 연결이 끊어지는 문제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 역시 이전부터 종종 세계와 분리되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169쪽)

“유교를 배운 내가 이 자리에서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혼맹 상태에 빠지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일상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유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관계의 연결을 고민한다는 점에서도 유교적이다.” (170쪽)

“리추얼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면, 의례는 타인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의례는 다양한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 어떤 맥락 위에서 만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다.” (175쪽)

“나는 비건의 말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아서 다른 이들에게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했다. 상대도 내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나머지 나를 침범하려 들지 않았다. 서로는 서로에게 가닿지 않았으므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의례의 실패다. 의례를 함께 행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이해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섞여 드는 일이다. 그것은 자유가 허상이고 말이 명령어라는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205쪽)

페미니스트고요, 유교걸입니다

(대부분의 ‘덕통사고’가 그런 것처럼) 그가 페미니스트가 된 것도, 유교걸이 된 것도 실은 얼결에 벌어진 우연에 가까운 사고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 첫 수강 신청을 하는데, 한 선배로부터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수업이 있다기에 인생 첫 티케팅을 달려 성공했는데 뭔가가 좀 이상하다. 수강 신청을 하고 난 후에 봤더니 남은 자리가 많았다. 소수의 두터운 팬층이 있던 페미니즘 입문 수업이었다. 하지만 그 수업은 대학에서 배운 최고의 수업이었고, 거기에서 페미니즘 ‘세례’를 받으며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급발진의 시기도 물론 거쳤다(잘 만나고 있던 애인에게 왜 우리는 독점적 연애를 해야 하는지 따져 묻고, 인문학을 공부하며 동료들을 만들어가고 있던 엄마에게 왜 엄마는 엄마로만 사느냐고 따져 묻곤 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물론 자신 역시 가부장적 문화에 깊이 물들었음을 깨달으며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며, 유교 같은 데 진절머리를 내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한편 몇몇 수업 말고는 자신의 학구열을 만족시킬 수업이 대학 내에 거의 없다고 (성급하고도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며 대학을 그만두기에 이른 저자는 그 당시 발을 걸치고 있던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하필 당시 문탁네트워크에서 세를 얻고 있던 분야가 마침 동양 고전 공부였다. 얼결에 코가 꿰이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페미니즘이 즉각적으로 삶에 파장을 일으킨 반면, 동양 고전 공부가 삶에 영향력을 발휘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페미니스트 자아와 유교걸 자아가 병존하는 데까지도 몇 년의 시간,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그러니까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꼰대 철학’(으로 들리는 것)을 페미니스트 자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냔 말이다. 여러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열녀전》이 그 열녀문(烈女門)의 열녀 이야기인 줄 알고(저자는 이름마저 우리말인 사람으로, 처음 한문 공부를 시작할 무렵 한문은커녕 한자조차 또래보다 모르는 처지였다) 공부를 하기도 전에 급발진할 뻔했던 흑역사(‘아, 열녀라니! 내가 드디어 유교의 볼 장 못 볼 장을 다 보게 됐구나!’_41쪽)도 고백한다. 아직도 저자는 유교와 페미니즘이 어떻게 함께 손잡고 살 수 있을지 답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 있다. 이 책이 그에 대한 명징한 답을 내놓고자 하는 시도도 아니다. 다만 페미니즘도, 유교도 ‘내가 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살피며 그의 정체성 안으로 녹아들었다는 것, 페미니스트이면서 진심으로 유교 철학과 동양철학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0대의 전부를, 10여 년의 시간 동안 동서고금을 오가는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의 본진은 ‘동양철학’ ‘동양 고전’ ‘유교’를 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사나 서양철학, 현대미학을 공부하는 인문학 공동체의 다른 또래 친구들에게는 건네지지 않는 질문과 시선을 받으면서도 “저는 동양 고전이 좋아요”라며 덕심을 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길을 내기가 어려워 보이는, 이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어 뵈는 철학을 끈덕지게 공부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공부, 삶, 관계

대학을 그만두고 인문학 공동체에서 저자는 공동체 공간을 쓸고 닦고, 공간을 방문하는 이들을 응대하는 100일간의 수행을 한다. 글쓰기나 공부 능력을 단 한 번도 의심받아본 적 없이 살아왔고, 대학을 다닐 때까지 어떤 학교에서든 마음을 먹으면 성적은 아주 잘 나왔다. 그런데 인문학 공동체에서는 그렇게 글쓰고 공부해서는(=말과 글로 적당한 논리를 만들어 그럴싸해 보이게 만드는 재주는 있으나 한 사람과 시대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살피지 않는 태도로는)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계속 혼이 났다. 나중엔 오기가 생겨 이곳에서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을 냈고, 그러고 시작한 것이 쓸고 닦고 환대하는 공부, 고대 동양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내딛는 첫걸음인 《소학》에 나오는 “쇄소응대(灑掃應對)”의 공부였다.
물 뿌리고 청소하며, 남의 말에 응대함이 예절과 맞아야 한다는 저 말을 저자는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하며, 내 일상의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풀어낸다. 청소는 일상을 소홀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공부이자, 자신이 어떤 존재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우는 공부였으며, 응대, 즉 ‘환대’는 나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타자를 만나는 준비라는 점에서 가장 기본의 공부였다.
저자에게 동양 고전과 그 철학은 삶과 공부의 관계,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과의 관계, 우리가 살아내는 이 현장 속에서 꼬인 매듭을 풀어내는 오래되고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저자에게 이 배움은 그저 텍스트 안에 존재하는 뜬구름이 아니라 저 100일 수행의 “쇄소응대”가 그러했듯 함께 엉겨 지냈던 관계와 존재들과의 시간 속에서 구체적인 면면들로 나타난다.
초등학생 대상의 한문 교실에 선생으로 서며, 자신을 선생으로 존중하지 않는 초등학생 학생들과의 관계를 푸는 실마리를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서 찾아간다. 저자는 지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도 스승이 되는 경험을 통해 선생과 학생의 다른 역할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깨달음을 페미니스트 자아로는 온전히 납득할 수 없었던 “부부유별 장유유서”와 같은 문장에 대한 이해로 연결한다. 관계 속에 내가 놓여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내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 사는 법을 초등학생들과 공부하기 위한 유교의 문장을 찾아낸다. “근묵자흑 근주자적(近墨者黑 近朱者赤)”, 그러니까 먹을 가까이하는 자는 검어지고, 붉은 물감을 가까이하는 자는 붉어진다와 같은 같은 유명한 문장을 친구를 골라 사귀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서로를 물들이는 관계로 풀어낸다. 이질적 존재들이 어떻게 상호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 가령 친구에게 꼰대가 되지 않는 법도 《논어》에서 발견한다(“친구에게 아는 척하지 말고, 잘난 척하지 말고, 온 진심으로 상대를 위해서 생각하고 말하라”). 그리고 이 문장들을 함께 공부한 초등학생 제자가 친구와 함께하는 법을 배워 변화하는 어떤 순간을 목도하기도 한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과 ‘길드다’라는 인문학 사업체를 운영하며, 그 친구들을 지독하게 미워하고 너무 좋아하느라 힘이 들 때도 동양 고전의 가르침으로 돌아갔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체크리스트를 가져오는 식이다. 배운 것을 제대로 익혔는지(=공부한 것으로 친구를 탓하기 전에 일단은 참는다), 친구와 사귈 때 신의가 있었는지(=친구가 미워지고 싫어지는 시간도 견디고, 상대의 의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내 의견을 전달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애쓰는 성실함을 갖기),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할 때 성의를 다했는지(남이 잘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시간에 내 일을 묵묵히 해낸다)를 살펴봤다. 또 사업체를 운영하며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의 가치가 충돌한다고 느꼈던 상황에서는, 자기 진실성을 말하는 ‘충(忠)’과 상호성을 말하는 ‘서(恕)’가 공자의 가르침 전부라는 증자의 말을 떠올린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서로에게 의지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매몰되는 대신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반성하기도 하고, 취약한 우리는 남에게 의존할 수 있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그 가르침을 간염과 수영에서 혼쭐이 나며 몸에 각인하기도 한다.


리추얼 라이프 대신 의례가 있는 삶: 고립된 우리를 연결하기

공부가 자신을 관통하며 나의 삶, 나와 긴밀하게 엮인 이들과의 관계 위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를 기술하는 데서 나아가 배운 것을 좀 더 넓은 현장에서 써먹으려고 한다. ‘의례’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가까웠던 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들은 하나둘 오랜 우울증, 공황, 자살 충동, 섭식 장애를 이야기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이 세계와 분리되고 고립되고 있다는 것, 자신 역시 인문학 공동체 안에서 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친구들과 같은 시대를 거치며 친구들과 같은 자리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고립되어왔음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이 시대를 건너가기 위해 유교걸답게, 유교 스타일로 질문을 뽑아낸다.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일상에서 구체적 방법을 찾아가고, 사회와의 연결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이는 너무나 유교적인 질문이다. 저자는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했던 철학자이자, 자신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던 활동가이기도 한 공자가 사회와 관계에 대해 말하기 위해 들고나왔던 ‘예(禮)’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어쩌면 이 고립된 시대를 건너는 데, 예(禮), 그러니까 의례가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의식(儀式)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요즘 유행하는 리추얼 라이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리추얼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유교의 예, 의례는 사회와 관계를 향한다.
유교의 예나 의례라고 하면 ‘제사’라는 형식을 떠올리며 즉각적으로 사라져야 할 적폐를 연상할 수 있겠으나, 저자가 연결에서 분리된 지금 여기에 가져오고자 하는 의례의 본질은 상호 간에 행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행위다. 마치 콘서트장에서 ‘떼창’을 부를 때, 흩어졌던 시위 무리가 다시 한곳에 모여들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때, 퀴어문화축제에서 전복적 문구를 들고 멋진 복장을 차려입은 누군가를 곁에서 확인할 때, 그러니까 무언가를 함께하며 느꼈던 강한 연대감의 순간을 떠올려보라. 의례는 없애야 할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연결하고, 또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비건 의례’를 한번 보자. 저자는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살고 있는 돼지 새벽이와 잔디를 돌보며 자연스럽게 비건을 지향하게 되는데, 먹는 것을 완전히 비건식으로 바꾸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였다. 함께 먹을 음식이 제한적이니 친구들과 만날 때 미안함이 생기고, 비건을 지향하는 자신의 삶이 소 목장을 하는 친척 어른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될까 두려워 그분과의 자리를 피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비인간동물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이 정작 인간 세계에서는 단절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서로가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만나는 자리를 피하는 건 서로에게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의례의 실패다. 그래서 저자는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눈치 의례‘가 아닐까 하며 이름을 붙여본다. 너무 대놓고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상대를 의식하며 은근하게 서로에게 개입하고 섞여 드는 것 말이다(상대방이 비건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기 고명과 육수를 쓰지 않는 국수를 시키며, 국수에 올라가는 계란을 빼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눈치 의례가 아닐까).

대략, 여기까지다. 20대의 10여 년을 동양 고전과 유교를 공부하며 삶과 관계와 세상과 부딪히며 관통해온 한 덕후의 시간과 사연은.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곧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뭇 존재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동양 옛사람들의 글과 사상을 이 시대를 함께 건너고 있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존재, 세계와 분리된 채 살아가는 시대적 병증을 돌파하는 데 필요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이 안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저자는 오늘도 덕질을 멈추지 않는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그런 걸” 공부하며 넌지시 우리에게 영업한다. 같이 한번 이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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