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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을 배우다

어느 철학자가 인지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배운 것
반비

2024년 02월 22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11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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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6.60MB)
ISBN 9791192908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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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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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장애학과 돌봄이론 분야의 석학, 에바 페더 키테이의 『의존을 배우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키테이는 중증 인지장애를 가진 딸 ‘세샤’의 어머니로서 딸을 보살핀 경험이 철학자인 자신에게 제기한 문제들을 사유한다. 책은 딸의 장애와 함께 살아낸 개인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서, 기존 철학의 틀을 토대부터 허무는 새로운 철학을 써나가는 데까지 나아간다.
전통 철학은 사유할 줄 아는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해왔다. 그렇다면 인지장애를 비롯해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키테이의 딸 세샤를 철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샤는 말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으며, 대화를 할 수 없기에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철학에서 전제하는 인간 조건인 이성을 지니지 못한 세샤를 인간 바깥의 존재로 바라봐야 할까? 자신이 헌신해온 철학이 사랑하는 딸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할 때, 철학자로서의 삶과 어머니로서의 삶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키테이는 세샤와 함께한 삶이 철학에 일으키는 불화를 성찰하며, 인지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좋은 삶과 정상성, 인격과 존엄성 같은 철학적 개념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세샤는 베토벤과 바흐를 즐겨 듣고,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는 능력을 지녔다. 키테이는 세샤와의 삶을 통해, 사유할 줄 아는 능력과 무관하게 기쁨과 사랑을 나누는 능력, 그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선물임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통 철학이 전제하는 인간의 조건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깨달음은 인간의 조건을 ‘이성'에서 찾아왔기에, 이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소수자나 비인간 존재들의 존엄과 권리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전통 철학의 인격과 존엄성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이처럼 장애의 렌즈로 철학을 바라볼 때 “삶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가르침을 얻는다.


독립의 반대말은 의존일까?
독립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상호의존으로 세계를 엮다

한 개인이 온전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는 온전한 어느 개인을 그릴 때, 제 몫의 노동을 거뜬히 해내며 스스로를 부양하는 독립적인 성인을 떠올린다. 이처럼 ‘일인분’의 노동을 해내는 “건강하고 왕성한” 노동자를 이상적으로 여겨온 현대 산업사회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의존적이고 취약한 존재들은 낙인찍혀왔다. 그리고 이 낙인에서 장애인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며, 의존적이며 취약한 존재, 온전치 못한 존재로 취급받아왔다. 이처럼 의존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대다수의 장애인권 운동가들이 의존과 돌봄보다는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게 했다.
의존과 독립의 문제는 비단 장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적자생존과 각자도생이라는 가치관은 내면화되고, 우리 모두는 독립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심지어는 일종의 의무로 여기고 이상으로 생각한다. 의존하는 이들은 무능하고 미숙하며,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도태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로 의존하는 삶은 불충분한 삶일까? 의존과 독립, 또는 돌봄과 독립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일까? 키테이는 타인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세샤의 극단적인 의존을 바라보며, 낙인찍히고 폄훼되어온 의존에 덧씌워진 오명을 벗겨낸다.
우리 모두는 의존하며 살아간다. 의존하는 이를 돌보는 돌봄제공자 또한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존하며 살아간다. 의존 없이 우리는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타인과 얽혀 사는 존재로서 우리는 의존을 통해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내고, 더 잘 의존함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인간 존재로서 지니는 취약성과 위태로움이 특별한 친밀감을 경험하게 하며, 타인과 나를 ‘우리'로 상호작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의 의존으로 세계를 엮어나갈 때, 우리는 그저 생존하는 삶이 아닌 다 함께 피어나는 존엄한 삶에 다다를 수 있다고 『의존을 배우다』는 말한다. 이는 저자가 장애와 함께한 삶의 생생한 경험에서 이끌어낸 귀중한 가르침이다.
추천의 글 세샤와 함께 노래하기
서문과 감사의 글

1부 더 겸손한 철학자가 되기를 배우며
개관 여행과 그 끝
1장 문제가 되는 것/아닌 것은 무엇인가
2장 뉴노멀과 좋은 삶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을 통한 정상성의 성찰

2부 아이 선택과 계획의 한계
개관 선택과 선별
3장 선택의 한계
4장 산전 검사와 선별의 윤리
5장 선택적 재생산 조치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 방법
부록: 어머니의 선택

3부 철학, 장애, 윤리에서 돌봄
개관 돌봄의 교훈
6장 의존과 장애
7장 돌봄윤리
8장 돌봄의 완성: 돌봄의 규범성
9장 영원히 작은: 애슐리 엑스의 이상한 사례

후기 내 딸의 몸: 영혼에 관한 명상
옮긴이의 말 다른 무엇보다 배려를: 나는 왜 키테이를 읽는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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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출처

철학자는 인간, 인격, ‘우리’ 도덕적 공동체의 성원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물어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종종 다음 질문과 결합한다.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인간을 분간하는 집착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의식? 영혼? 언어?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 웃음? 놀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동료 철학자들이 세샤와 같은 사람의 도덕적 가치(온전한 인격성)를 질문하기 전까진 무엇이 도덕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을 만드는지를 말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13쪽)

이성의 능력이 없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토록 놀라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매일 하면서, 어떻게 이성을 인간 능력의 만신전 최고의 옥좌에 올리는 글을 계속 읽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딸을 키우면서 어떻게 언어를 인간성의 표지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내 아이가 상호 계약적 합의에 참여할 수 없음이 명백한데, 어떻게 정의를 상호 계약을 통한 합의의 결과로 독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딸은 내가 공언한 철학적 믿음 대부분을 거짓말로 만들었다. 그 믿음은 내가 받아들인 신조였을 뿐인가. 내 딸과 같이 사랑스러운 사람과 함께 존재한다는 생생한 현실과 내 철학적 믿음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44쪽)

내가 말하려는 내용의 대부분은 장애를 가진 삶이 지닌 가능성에 관해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우리의 지식은 무지라는 어둠에 둘러싸인 불에 비유할 수 있다. 불이 타오르며 어둠이라는 원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우리가 얼마나 알지 못하는지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철학적 숙고에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될수록, 우리 지식의 원이 넓어질수록, 우리가 얼마나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도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적 담론을 형성해온 직관과 경험을 만든 마법의 원을 넘어설 때, 우리는 숙고의 확실성에 관해 더 겸손해질 것이다.(56쪽)

장애운동가와 학자 들은 장애인의 의존이 비장애중심주의 사회의 구성물이며 이에 따라 장애인은 낙인과 배제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나는 의존이 아닌 독립이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61쪽)

그저 살아 있고 세상에 있다는 데에서 기쁨을 얻는 것은 귀한 재능이다. 나는 이것을 내 늙은 어머니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행하는 사람이었다. 옷을 꿰매고, 뜨개질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타인을 돌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잃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점점 더 원통해하며 죽음을 바라게 되었다. 어머니는 돌봄이 필요했지만, 자신이 돌보는 자, 행위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거부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야 우리는 어머니에게 뛰어난 돌봄제공자를 연결해드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점차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돌봄받고 그들과 함께하며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는 보행 보조기에 앉아 외출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식물과 나무를, 놀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을, 스쳐 지나가는 산들바람을 즐겼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나는 어머니가 존재를 그저 즐기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점차 삶의 마지막 단계에 적응하면서 원망과 억울함은 사라져갔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죽음을 마주했다. 세샤는 어머니가 길고 온전한 삶의 마지막에만 얻었던 지혜를 지니고 있다. 사랑, 기쁨, 그저 존재함의 재능. 아마 인지장애의 경험을 관통하며 얻은 것일 테다.(114쪽)

내재적 가치의 영역으로부터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마치 목탄화를 제외한 모든 예술 작품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목탄화를 제거하면 무엇이 사라지는가? 사라지는 것은 단지 목탄화로 완성되었을 수도 있는 모든 예술 작품뿐이다. 그 이상 구체적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사라지는 것은 단지 그 사람들뿐이다. 그 예술 작품이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면, 실질적인 가치 손실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실질적인 가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몇 년 전에 말한 것을 여전히 믿는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사라질 때마다 세계는 줄어든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선언 “세계는 사실의 총체다.”를 수정하여 말한다. “세계는 내재적 가치의 총체다.”(165쪽)

코미디언 리처드 프라이어(Richard Pryor)는 중년에 다발성경화증에 걸려 한창 인기 있을 때 경력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것은 “축복입니다. …… 그것은 나를 느긋하게 그리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익숙한 방식으로 걸을 수 없고, 걷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 그것은 배우기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삶에서 누구도 신뢰해본 적이 없으며, 신뢰를 배우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고 말한다.(196쪽)

딸의 확장되고 극단적인 의존을 통해 뚜렷하게 의존을 바라보면서, 나는 많은 의존이 사회적 구성물인 만큼 독립 또한 사회적 구성물로 이해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샤의 의존은 단순한 부담이나 문제가 아니었다. 때로 특별한 종류의 상호작용이자 친밀감의 계기였다. 이 극단적인 의존은 우리 모두가 삶의 어느 순간에 경험하는 의존을 새롭게 조명했다. 그것은 내 딸의 가르침 중 가장 소중한 것에 속한다.(240쪽)

토빈 시버스는 “장애가 소란을 피운다.”라고 말했다. 의존의 필연성과 장애에 대한 취약성을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없기에 우리는 이런 것을 투명 망토로 가리거나 반대로 낙인을 찍어 초가시화한다. 현대 사회는 ‘건강하고 원기 왕성한’ 노동자의 독립을 가치 있게 여기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온전히 기능하는 독립적인 성인 노동자에 엄청난 가치를 두는 사회의 이면에는 낙인찍히고 유아화된 장애인 개인이 위치한다.(245쪽)

독립을 옹호하는 논증의 다른 문제는 장애인 독립의 허용이 궁극적으로 공적 지출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독립생활을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시설 거주와 견줘 더 적다는 데 기반한다. 게다가 보조를 통해 장애인은 사회의 생산적 구성원이 될 수 있으며, 필요한 서비스의 비용을 상환하고 중요한 물질적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런 공리주의적 논증은 장애인이 사회의 ‘부담’이라는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받아치지만, 스스로 비용을 낼 수 없는 의존인을 공공이 책임져서는 안 된다는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249쪽)

절대적 독립은 거짓이지만 의존에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면, 우리는 독립을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의존에 대한 필요, 즉 모든 사회를 특징짓는 불가분한 상호의존의 핵심에 있는 필요를 사회적 구조에 엮어 넣지 않는다면 상대적 독립마저도 누군가의 희생을 초래할 것이다. 나는 장애를 통해 의존을 관리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기를 제안한다. 존재하지 않는 독립을 향한 돈키호테적 여정에 ‘능력 있는 사람(abled)’과 함께하기보다는, 의존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상대적 독립을 목표로 해보자고 말이다.(266쪽)

돌봄이 여성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본능적, 자연적 경향으로 간주되지 않게 된 뒤에야, 우리는 돌봄을 비자연화, 비젠더화하고 도덕적 행위의 양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줄리아 드라이버(Julia Driver)의 표현처럼, 그럼으로써 페미니즘은 도덕철학자가 고려해야 할 자료 은행에 더 많은 데이터를 입력하게 되었다.(272쪽)

돌봄윤리에 자주 가해지는 비판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온다. 그들은 니체의 말처럼 돌봄이 “노예 도덕”이라고 주장한다. 돌봄윤리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은 여성이 돌봄의 윤리를 보여주는 것은 경험적으로 사실이지만 여성의 전통적인 노동으로 인한 종속에서 나온 윤리이며, 관습과 법이 여성에게 그런 노동을 수행하도록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이런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전통적인 역할보다 해방에 더 맞는 윤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비판은 장애인과도 관련되어 있다. 만약 장애인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요구해야 한다면 왜 “노예 도덕”, 즉 무력한 자의 도덕에 찬성해야 하는가?
이런 비판에 대응하며 배려윤리 지지자는 예속된 위치에서 나온 윤리는 예속된 자에게 목소리가 있음을 드러낸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다른 목소리는 압제적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주입할 수 있다.(292쪽)

내 딸을 보살피며 배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디에나 보살핌의 상황에는 존중과 주의를 받아야 하는 주체와 행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의지가, 세계에서 자신을 느끼고 싶어 하는 방식이,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직관적 감각이 있다. 개인이 존중을 받기 위해 자율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335쪽)

친한 돌봄제공자가 내 딸 앞에서 딸의 동안 외모의 비결은 세금이나 고지서를 내는 것 같은 걱정이 없어서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없고, 불편한 자세를 스스로 움직여 고칠 수 없으며,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는 등 세샤에게도 걱정거리가 많다고 받아쳤다. 내 딸은 나에게 얼굴을 돌려 크게 웃으며 나를 안으려 했다. 그 일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반응을 목격한 다른 이들처럼 나 또한 놀랐다. 세샤가 어조만 파악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샤가 말을 이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사실 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결국 세샤도 40년 넘게 사람들의 말을 들어 왔으니 말이다.
우리는 뇌가 신체의 다른 부분을 특정 방식으로 지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중증 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의 (신체적) 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그의 주관적 세계에 대해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371쪽)

연인이 아닌 한, 몸은 타인에 관한 앎의 원천에서 거의 중요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의 물질성은 당연히 중요하다. 우리 몸의 현시가 아니라면 목소리는 무엇이며, 정신의 물질화가 아니라면 언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항상 타인을 몸을 통해서만 알지만, 그렇지 않은 척한다. 정신 속에 잠복한 무시당한 몸, ‘합리’ 속에 잠복한 억압된 정서, 자-존(in-dependence) 속 숨겨진 의존을 통해 드러난 것은 페미니즘의 지혜였다.(392쪽)

세샤의 경우 그것은 그 자체로 어떤 것이다. 그 ‘조용함’은 세샤의 몸에 위치한다. 그 ‘정중함’은 세샤의 피부에놓인다. 그 부드러움, 그 사랑스러운 향기, 세샤의 친절한 만짐. 세샤는 얼마나 완벽히 우리의 몸이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394쪽)

하지만 대부분의 순간 내가 이해하는 것은 거기에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의도하며, 욕망하며, 느끼며, 이해하는, 고유한 인격이. 세샤의 몸이 세샤의 영혼이다. 주체가 몸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만큼, 나에게 ‘영혼’에 관해 말하게 만드는 다른 누구를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396쪽)

더 잘 의존하는 관계로 연결될 때
우리 모두가 피어나는 돌봄이 가능해진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좋은 삶과 정상성에 관해 논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피어나는 삶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전통 철학에서 끊임없이 탐구되어온 질문을 장애의 렌즈를 통해 숙고할 때, 좋은 삶과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정상성’이라는 개념은 확장된다.
2부에서는 장애와 선택적 임신중지에 관한 논쟁을 살핀다. 장애를 가진 태아를 중절하는 것은 옳은가? 장애를 선별하는 임신중지는, 장애를 가진 삶은 무가치하거나 장애인은 세계에서 환대받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가? 장애 선별은 응당 따라야만 하는 도덕적 책무에 해당하는가? 비장애인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 어느 철학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 등을 활용하여, 키테이는 장애인의 가족이 겪는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껴안을 수 있을 것인지를 살핀다.
1부와 2부에서 장애가 철학에 던지는 질문들을 살폈다면, 3부에서는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으로 ‘돌봄’을 꺼내든다. 돌봄도 하나의 윤리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좋은 돌봄을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돌봄윤리’란 어떠한 것일까? 혼수상태인 환자를 그의 동의 없이 보살피는 것을 좋은 돌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투약을 거부하는 이에게 강제로 약을 먹이는 것은? 나는 상대를 돌보았다고 생각하며 행동했지만 상대가 그것을 돌봄으로 여기지 않을 때, 나의 행동은 돌봄인가? 3부에서는 실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좋은 돌봄’에 대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마련해간다. 이 과정에서 그간 철학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돌봄을 철학화하며, 새로운 돌봄윤리를 제안한다.
이처럼 『의존을 배우다』는 돌봄이 완성된 세계, 즉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세계를 그려보고자 하는 어머니-철학자의 제안이다. 팬데믹 이후, ‘돌봄’은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되었으나, 어떻게 좋은 돌봄을 행할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자신의 삶에서 길어내어 이론에 그치지 않는 돌봄 논의를 이끌어낸 키테이의 사유는 현재의 우리에게 더욱더 절실하다. “개념의 탄생”이 아닌 “아이의 탄생”으로부터 출발하는 책 『의존을 배우다』를 통해, 우리는 “벽난로 앞에 홀로 앉은 사상가 개인”이 제안하는 철학에서 벗어나 서로 의존하고 보살피며 엮어내는 관계의 철학에 도달할 것이다.

작가정보

Eva Feder Kittay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에서 철학과 석좌교수로 페미니즘 철학과 페미니즘 윤리, 장애학, 언어철학 분야에서 수많은 논문을 저술하고 선집을 편집했다. 돌봄과 인지장애의 문제를 철학에 도입한 연구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단독 저서로는 『돌봄: 사랑의 노동』, 『메타포(Metaphor)』가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는 『인지장애와 도덕철학에 대한 그 도전(Cognitive Disability and Its Challenge to Moral Philosophy)』, 『페미니즘 철학에 대한 블랙웰 가이드(The Blackwell Guide to Feminist Philosophy)』, 『돌봄의 주체(The Subject of Care)』, 엮은 책으로는 『프레임, 현장, 대조(Frames, Fields and Contrasts)』, 『여성과 도덕 이론(Women and Moral Theory)』이 있다. 『의존을 배우다』로 2020년 미국출판인협회 PROSE 철학상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소아치과 전문의였다가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의료인문학과 의료윤리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며 의료인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생명의료윤리와 의료인문학의 고민이 실은 모든 사람의 것일 때만 의미가 있음을 설명하고 그 가능성의 영역들을 연구한다.
『아픔에도 우선순위가 있나요?』,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등을 썼고,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의료윤리』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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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의존을 배우다
    어느 철학자가 인지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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