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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이문영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4년 02월 02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12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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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7171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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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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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등을 통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문체로 문학의 경계를 흔들고 세상의 경계를 지우는 작가 이문영의 첫 번째 소설이 출간되었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는 실제 소리의 세계와 이명의 세계를 번갈아 오가는 사이 현실과 비현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과 사건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사연들이 얽히고설키며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실상, 즉 ‘이 세계의 몰골’을 생생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이 실험적 형식의 소설 속에는 ‘소리가 희박한 쪽’으로 낮게 엎드려 배를 밀고 나가는 문장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부하고 은유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시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감각의 열림과 확장과 연결을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서로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7
작가의 말 319

내 앞에 놓인 세계가 두 개로 나뉘고 있었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현실의 소리로 이루어진 세계와 이명이 목구멍을 열고 이야기를 게워 올리는 세계. 멀어지다가 가까워지고, 밀어내면서도 겹치고 마는, 두 세계 가운데 내가 끼어버렸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물어도 내 생각을 말할 순 없었다.
집 앞 전봇대 위에서 까치들이 지저귀었다. 왼쪽 귀는 깍깍깍으로 들었겠지만 오른쪽 귀엔 하하하로 들렸다. (61~62쪽)

목, 숨, 값, 달, 라. 줄에 매달려 붉은 페인트로 휘갈긴 소리가 빌딩 벽에서 붉게 부르짖고 있다. 빌딩을 하늘까지 쌓아 올리고도 일한 돈을 받지 못한 남자가 매미처럼 달라붙어 쓴 다섯 글자. 그 글자들이 세로로 매달려 만든 문장 위에 나도 매달려 페인트를 칠한다. 빨갛게 아우성치던 글자들이 발음을 씹으며 하얗게 잠잠해진다. 높이감을 잃는 순간 떨어지는 줄도 모르게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들어본 가장 큰 소리는 사람 떨어지는 소리. (63~64쪽)

배제된 목소리가 이명이 된다. 기존의 소리 전달 경로에서 감지되지 않는 비명이 귀를 찾아와 터뜨리는 울음. 소리의 길을 빼앗긴 존재들이 뇌가 왜곡해서라도 인지할 수밖에 없도록 지르는 고함. 내 말도 들어달라며 둔감해진 청신경으로 달려와 온몸으로 부딪치는 충돌. 이 세계의 고막을 두드리는 신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불필요한 잡음이나 제거해야 할 소음으로 치부할 때 그 소리들은 고립된 곳에서 혼자 울다 고칠 수 없는 질병이 되고 말 것이라고. 진공의 우주처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멸해버리는 세계에선 결국 그 세계 자신의 비명 역시 누구에게도 수신되지 않을 것이라고. (67~68쪽)

죽어 묽어진 존재들이었다.
살았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죽어서도 그들의 삶을 기억해주거나 기록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죽은 그들이 끝없이 말을 쏟아내는 이유는 살았을 때 누구도 그들에게 귀 기울인 적 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묽은 사람이었다.
또렷하고 도드라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희미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거리에서조차, 나는 선명한 사람들 틈에 끼어 있을 때면 화선지에 스민 옅은 먹물처럼 윤곽선이 지워졌다. (107쪽)

이성이 잠들 때 깨어나는 괴물은 나와 당신을 잡아먹었다.
괴물은 사투르누스의 초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절망을 조롱하는 댓글들 안에 서식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내 안에,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각오로 열심히 살라고 훈계하는 우리 안에, 해고를 탓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 없음을 탓하라는 사회의 시선 안에, 경쟁력 없는 산업과 노동자는 구조조정되는 것이 발전의 순리라는 시스템의 논리 안에서, 괴물은 으르렁거렸다. (…) 서로의 고통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 추락이었고, 타인의 삶을 상상하길 멈춘 사람이 괴물이 됐다. 괴물은 내 안에 있고, 당신 안에, 우리 안에 있는 동시에 우리 밖에도 있었다. (145~146쪽)

발견돼도 구조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방치된다. 잊히지 않으려면 악이라도 써야 한다. (175쪽)

내가 스스로 사라졌다고 당신들은 주장하지만 나를 지운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러니 들릴 리가 없겠지. 들리지 않는다고 해야겠지. (191쪽)

absurd엔 어리석은, 터무니없는, 황당한, 이란 뜻도 있다. 청각장애(surd)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는 파생어다. 제대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잘 듣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너무 크게 들리거나 듣고 싶은 것만 들을 때도 정확한 소리는 파악되지 않는다. 사태의 책임을 장애에 돌리는 말의 기만이다. 동그랗고 매끈하고 반질반질한 세계관. 찌그러뜨려야겠죠? (201~202쪽)

뇌는 그렇게라도 소리를 만회하고 있었다. 이명의 원리와 같다고 나는 이해했다. 음량 누가는 작은 소리들이 부여잡은 확성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가 잃어버린 소리들이 소멸되지 않으려고 간절하게 붙든 최후의 마이크. 누군가에겐 들리지 않고, 누군가는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데, 극강의 청력 없이도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키워내는 장치. 남쪽 소도시 공장 굴뚝에 매달린 노동자의 목소리를 서울 본사 앞 집회 현장으로 불러내 증폭시킨 확성기처럼. 그렇게 해서라도 똑바로 들으라는 청각신경의 강요 같았다. (207쪽)

소리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지 쓸모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해악이 돼버린 산업의 옛 종사자는 그가 건설한 100데시벨의 세상에서도 쫓겨났다. 그 소리를 구조조정하며 첨단에 이른 시대는 구조조정에 열중할 뿐 무엇이 구조조정되는지엔 관심이 없었다. 경쟁력 잃은 사람들이 퇴출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 당연한 세계가 되면 그 세계에서 견딜 수 있는 미래란 없다. (213~214쪽)

멈추지 않고 가라앉는 이유는 무거워서가 아니라 바닥에 끝이 없기 때문이다. (226쪽)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한쪽으로만 들을 거면. 찌릉 찌릉 찌릉. 귀는 뭐 하러 두 개나 달고 다녀요? (243쪽)

먼지처럼 흩어진 200여 명의 생전 자취를 더듬느라 나는 그 도시를 오랫동안 헤매고 다녔다. 사망자들이 죽어 발견된 곳이나 죽기 직전 살던 곳을 찾아가 그들의 흔적을 모았다. 한 명 한 명의 위치를 지도에 찍으며 ‘유령의 분포도’를 그렸다. 유령들이 지도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을 뒤에 떨구며 질주해온 도시의 의지가 보였다. 가난을 몰아넣은 땅일수록 유령들은 밀집해서 번식했다. 그들이 살고 죽어간 자리는 도시 개발 방향과 정반대였다. 도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가 뒤돌아보지 않는 곳에서 유령이 됐다. 그들은 죽었으므로 투명했으나 살았을 때도 보이지 않았다. (280쪽)

그러다 슉.
머리를 숙여 피하는 내게 슉. 풋워크로 몸을 빼는 내게 슉. 주먹을 뻗을 듯 말 듯 하며 입으로만 슉. 마우스피스 낀 이빨 사이로 비웃음을 슉슉. 그 소리에 맞춰 움찔하는 나를 슉슉 놀린다.
그때마다 나는 왼쪽? 오른쪽?
오른쪽으로 피하는 순간 훅. 기다렸다는 듯이 훅. 턱 좌우에 훅훅. 결정타로 훅훅훅.
그로기. 출렁이는 링. 꽉 막힌 사각의 동그라미. 지독한 적막. 도망갈 곳이 없다.
다운된 내 얼굴 위로 허리를 굽히더니 다시 슉슉.
마우스피스가 씨익 웃으며 슉 슉슉슉. (291~292쪽)

듣기에 자신이 없어진 뒤로 나는 무언가 듣고 나면 나 자신부터 의심했다. 의심을 거치지 않으면 정말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나는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사실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리는 단순해지고, 확신은 편리해지고, 세상은 완강해졌다.
(…) 닫힌 감각은 우리를 비대하게 만들지만 감각의 열림과 확장과 연결은 울타리를 부숴 우리를 넓힌다. (300쪽)

휠체어를 타고 접견실로 들어온 그의 얼굴에서 나갈 생각 없이 눌러앉은 마비가 보였다. 근육을 뜻대로 쓰지 못해 말투가 어눌했다. 내 소개를 대강 한 뒤 주범이 맞느냐고 물었다.
“주범, 요?”
표정에 난감함이 어렸다.
주범이 아니면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 되묻는 것 같았다. 살면서 마주친 갈림길마다 길이 갈릴 만큼의 차이를 겪어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부모 없이 던져진 길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도착지에 차이가 있어야 길도 굳이 갈라지는 이유가 있고, 결과에 차이가 있어야 선택도 굳이 하는 이유가 있었다. (305~306쪽)

사실은 진실보다 단단해야 했다. 사실이 진실은 아닐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닌 진실은 없었다. 사실을 토대로 진실은 확립되지만 진실을 전제로 사실을 선택할 순 없었다. 그가 인정했다는 ‘모든 사실’은 진실을 지탱할 만큼 단단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307쪽)

그동안 질문하는 사람은 나였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자 일의 기본이라고 배웠는데 질문은 답변보다 속 편한 일임을 얼마 안 돼 알게 됐다. 질문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지만 답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일 수도 있었다. (310쪽)

나는 그에게 무슨 이야기까지 듣고자 했던 것일까. 탈탈 털어 듣고도 이야기 안 된다며 쓰지 않는 나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까지 하게 만들어 쓰는 나는, 그 기계로서의 글쓰기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312~313쪽)

피 흘리는 소리들이 귀에 대고 이야기를 슉슉 뱉었다. 내가 잘라버린 이야기들. 취재하고도 잊어버린 이야기들. 한 번 스치듯 쓴 것으로 할 일 다 했다며 만족한 이야기들. 쓸 만큼 썼으니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며 합리화한 이야기들. 너무 무거워 독자들이 싫어한다며 알아서 회피한 이야기들. 이제 지겨우니 그만하자는 이야기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모래 아래 파묻으며 내가 실종시키고 증발시킨 사람들. 내 손끝에서 묽어져 흩어진 존재들. 내가 저질러온 부드러운 학살들. 내가 만든 유령들. 감지되지 않는 우주 폐기물처럼 떠다니다 눈에 띄기 위해 스스로 추락하며 몸을 사른 심장들. 만만해지지 않기 위해 위험해져야 했던 짐승들. 내 몸의 피를 전부 빼내지 않으면 작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귀에서 슉슉거렸다. (315~316쪽)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 걸쳐 있었다. 차라리 소설이길 바라는 이야기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일 때가 많았고, 현실은 정말 현실일까 믿기지 않을 만큼 소설 같을 때가 많았다. (…) 사실이 제시되면 사실을 부정하는 사실들이 알을 깠다. 정의를 주창하면 정의를 비난하는 정의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사실과 거짓과 정의와 불의가 서로를 응원하며 공존공영했다. 그러니 소음과 이명과 환청이 뒤죽박죽된 내 귓속쯤은 너무 리얼해서 만사 오케이였다. (315~316쪽)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도달한 듣기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 이토록 숭고한 소설로 승화돼 정말 다행이고 고맙다.” _김숨(소설가)

문학의 경계를 흔들어온 이문영 작가의 본격적인 첫 소설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등을 통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문체로 문학의 경계를 흔들고 세상의 경계를 지우는 작가 이문영의 첫 번째 소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이하 《왼오세》)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조세희 작가로부터 “《난쏘공》의 난장이들이 자기 시대에 다 죽지 못하고 그때 그 모습으로 이문영의 글에 살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는 지금껏 말의 길에서 누락된 이야기들을 집요하게 듣고 생생히 되살려왔다.
《왼오세》는 홀로 남아 자신의 훼손된 감각을 끌어모아 듣기를 계속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되어 들리지 않는 것, 잘못 듣고,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전한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로, ‘이명’을 거쳐 닿을 수 있는 최선, 최대한의 성찰을 묻고 듣고 쓴 작품이다. 폭력과 가난, 극한 노동, 차별과 혐오로 가득한 세계에서 추방된 소리들, 버려진 소리들, 이름을 가진 적 없는 소리들, 이 세계가 잃어버린 소리들이 그의 문장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소리로 포착해낸 이 세계의 몰골, 어떤 울음들의 세계
소설 속 왼쪽 귀의 세계는 실제 세계의 소리, 선명한 소리 즉 현실의 이야기다. 반면 오른쪽 귀의 세계는 이명 세계의 소리, 흐릿한 소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다. 《왼오세》는 이처럼 두 세계로 나뉜, 두 세계를 오가는, 대립하다가도 서로 침범하며 포개지는 실제 소리와 이명이 현실과 비현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과 사건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사연들과 얽히고설키며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실상, 즉 ‘이 세계의 몰골’을 생생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여느 소설들이 그렇듯 《왼오세》에도 작가의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거나, 그가 함께 통과해온 시간이거나, 그가 취재하고 기록한 사건들이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곳곳에 뿌려져 있다.
이 소설에는 이명의 이미지들이면서 한국 사회를 은유하는 여러 상징들이 등장한다. 그 상징들이 현실과 비현실의 소리와 사건들과 만나며 이 세계가 어떤 소리를 품고 어떤 소리를 몰아내는지 드러낸다. 세월호, 이태원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이주노동자, 추방입양인, 무연고 사망자, HIV 감염인 등 세상의 소리 전달 경로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배제된 이명들, 어떤 울음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왼쪽 세계와 오른쪽 세계가 선명하게 맞닥뜨리거나 흐릿하게 조우하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가 ‘이명’을 다루는 방식을 상징한다.
서로의 고통을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에서 소리의 길을 빼앗긴 존재들이 내지르는 비명들. 누군가에겐 들리지 않고, 누군가는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소리들, 그 절박한 목소리들을 하나씩 되찾아 들려준다.

당신의 세계는 어떤 소리들로 채워져 있는가
인간의 귀는 왜 두 개일까? 흔히 입이 하나, 귀가 둘인 이유를 적게 말하고 많이 듣기 위해서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귀가 두 개인 과학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소리의 방향을 정확하게 감지하게 위해서다. 한쪽 청력을 잃은 주인공은 소리의 방향을 구분하지 못해 자전거에 치여 나뒹군다. 듣고 싶은 소리에만 귀 기울이면 사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는 사실을 그는 거듭 세상과 충돌하며 배운다.
“차이를 인지해야 안전할 수 있었다. 오돌토돌한 소리들을 눌러 매끈하게 만든 세계일수록 위험해졌다. 양쪽을 모두 살피지 않고 한쪽 소리만 들으면 방향 감각이 흐려졌고, 소리의 방향을 혼동하기 시작하면 소리의 진위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귀가 두 개인 이유가 있었다.”(242쪽)
소리에서 소리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이 세계에 공기처럼 가득 들어차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온 소리들. 《왼오세》는 그 세계가 어떤 소리들로 구성돼 있는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삶은 어떤 소리들로 채워져 있는지 질문한다. 그 세계에서 누구의 소리가 가장 큰지, 누가 가청 주파수를 장악하고 있는지, 주파수 밖으로 쫓겨난 소리들은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묻는다.
이 세계의 소리 전달 경로에서 배제되어 이명이 된 소리들, 실종된 소리들, 버려진 소리들, 쫓겨난 소리들을 추적하고 추리하며 ‘이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을 되살려내고, 그들을 이명으로 만든 세계의 “동그랗고 매끈하고 반질반질한” 세계관을 가차 없이 찌그러뜨린다. 소설은 섬뜩하게 묻는다. 당신의 귓속은 몇 데시벨인가. 그 데시벨을 갈아치워 구조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다른 누군가의 귓속에서 구조조정되고 있지는 않은가.
《왼오세》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부하고 은유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시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간편하게 규정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문장들은 다양한 생각의 길을 열어주면서도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상상하게 해준다. 그 문장들은 목청 큰 소리가 넘쳐나는 곳이 아닌, 성대가 잠기고 기척마저 희미한 곳을 찾아다니며 수사하듯 탐색하고 기록하고 이야기로 옮긴다. 이문영의 문장들은 ‘소리가 희박한 쪽’으로 낮게 엎드려 배를 밀고 나아간다.

감각의 열림과 확장과 연결을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
《왼오세》에서는 현실의 소리와 이명을 오가는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문학, 미술, 음악, 신화, 종교, 영화 등을 가로지르는 여러 장르와 작가의 작품들이 얽혀 들어, 소리를 매개로 독자에게 작품을 안내하는 도슨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은 모두 5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형식으로 서술되는 각 장의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단절되고 때로는 느슨하게 연결된 파편들처럼 읽히다가 책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진다.
《왼오세》에는 주인공이 사는 건물과 집에 침입하려는 사람의 시도가 조금씩 이야기를 바꾸며 되풀이된다. 에드바르 뭉크가 대표작 〈절규〉를 변주해 여러 버전의 그림으로 남긴 것처럼, 조금씩 변형되고 뒤틀리는 이야기들이 거듭될수록 피해자의 공포는 점점 독자들의 몸으로 옮겨온다. 그와 동시에 불현듯 ‘나 자신도 예외 없이 누군가에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느끼며 서늘해진다. 이러한 감각의 역전을 통해, 자신의 감각에 고립되지 않고 타인의 감각에 열려야 나 아닌 존재들을 향한 몰이해와 혐오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음을 이야기는 암시한다.
서로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 지금 우리가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다.

두 귀의 세계로 안내하는 열쇳말

●이명
“심각한 이명의 가장 흔한 원인은 중추신경계로 가는 신호 전달이 막혀 발생한다.”(67쪽)
소리 감지 기관으로 충분한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 뇌는 대체 경로를 통해 본래 소리와는 다른 소리(이명)를 인지한다.
이명은 귀울음. 기존의 소리 전달 경로가 감지하지 못한 비명이 귀를 찾아와 터뜨리는 울음. 배제된 목소리가 이명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왼오세》는 인간의 발성으로 묘사할 수 없는 온갖 이명들을 통해 소리 경로에서 배제된 존재들의 비명을 듣는다. 알아듣지 못하면 이명일 뿐인 소리들을 알아듣기 위해 모든 감각을 끌어모은다.

●듣기
한쪽 청력을 상실한 《왼오세》의 주인공은 어느 순간 자신의 듣기를 의심한다. 이명과 환청에 시달리며 자신이 들은 소리들에 확신을 잃는다. 그의 의심은 이 세계의 청력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듣기에 자신이 없어진 뒤로 나는 무언가 듣고 나면 나 자신부터 의심했다. 의심을 거치지 않으면 정말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나는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사실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리는 단순해지고, 확신은 편리해지고, 세상은 완강해졌다.”(300쪽)

●순음과 잡음
주인공의 오른쪽 귓속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청력검사를 받던 중 그 소리들을 비집고 들어오는 ‘순음’을 잡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여러 이명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흐느끼고 고함지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들에 시달리면서도, 순음이라는 ‘단일하고 깨끗한 소리’를 불신한다.
“단일 주파수로만 이뤄진 순수한 소리(순음ㆍpure tone)란 현실에 없었다. 인류는 여러 소리가 뒤섞인 잡음 속에 살아왔다. 다른 소리를 몰아내고 순음의 세계를 만들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 끝은 폭력과 전쟁이었다. 잡음은 순음으로 이뤄진 청정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순음으로만 이뤄진 끔찍하게 깨끗한 세상의 도래를 막는다. 순수 혈통이 아니어서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던 프리모 레비도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필요하다’고 썼다.”(171~172쪽)


∥줄거리∥

조이섶. 그의 직업은 듣는 사람, 기자다. 누구보다 잘 듣고 정확하게 전해야 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자신이 인터뷰했던 해고 노동자가 보도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기사 때문입니까. 영정 사진 앞에 엎드려 절하며 묻지만, 고인은 말이 없다.
그때부터 시작된 극심한 두통과 이명. 급기야 머릿속에서 종양이 발견되고 그 영향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는다. 그 앞에 놓인 세계가 점점 두 개로 나뉘기 시작한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현실로 이루어진 세계와 이명이 목구멍을 열고 이야기를 게워 올리는 세계.
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할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져 그를 삼켜버린다. 이명과 환청은 극에 달하고, 귀로 듣는 것들을 더는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는 범인을 쫓듯 이명의 진앙지를 찾아내기 위해 세상의 온갖 소리를 지독하고 집요하게 파헤치기 시작한다.
추방된 소리들, 밀려난 소리들, 버려진 소리들, 이름을 가진 적 없는 소리들, 이 세계가 잃어버린 소리들. 소리의 길을 빼앗긴 존재들이 그의 귀를 찾아와 비명을 지른다.
‘이명 속 목소리’가 듣기에 확신을 잃은 그에게 말한다. 끈질기게 듣는 것 외에 제대로 듣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듯.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요.”

작가정보

저자(글) 이문영

《웅크린 말들》과 《노랑의 미로》 등을 썼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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