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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시간

하랄트 얘너 지음 | 박종대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4년 01월 30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1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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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4.50MB)
ISBN 979117171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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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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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1945년 5월 8일, 이른바 '제로시간'부터 1955년까지 10년 동안 독일이 거쳐야 했던 재건의 노력과 사회적 분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책. 독일인들은 어떻게 ‘나치’를 버리고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을까? 독일의 경제 기적은 모두 철저한 자기반성과 근면성 덕분일까? 독일인의 과거사 청산은 과연 ‘모범적’이었을까? 패망 이후 독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독일'이라 부르는 나라를 만들었는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독일을, 그 역사의 장면을 되살린다.
들어가는 말: 불행 사이로 비치는 행복 7

1. 제로 시간?
수많은 시작과 끝ㆍ19 |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ㆍ28

2. 폐허 속에서
거대한 잔해는 누가 치울 것인가ㆍ37 | 폐허의 아름다움과 잔해 관광ㆍ55

3. 대이동
영원히 고향을 잃은 사람들ㆍ71 | 해방된 강제 징용자와 유랑 포로ㆍ78 | 충격적인 자기 자신과의 만남ㆍ102 | 길 위에서의 곤궁한 삶ㆍ124
4. 댄스 열풍
끓어오르는 삶의 기쁨ㆍ139 | 잿더미 위에서 열린 광란의 파티ㆍ149

5. 파괴된 도시의 사랑
탈진한 남자들의 귀향ㆍ171 | 《콘스탄체》, 여성의 목소리를 내다ㆍ185 | 삶에 굶주리고 사랑에 목마른ㆍ191 | 여성 과잉 시대ㆍ199 | 동쪽 여성들이 겪은 “능욕의 시간”ㆍ209 | 서쪽의 양키 애인, 베로니카 당케쇤ㆍ216

6. 약탈, 배급, 암거래: 시장경제를 위한 수업
재분배의 시작: 약탈을 배우다ㆍ237 | 식량 배급표의 논리학ㆍ243 | 좀도둑 민족의 탄생ㆍ252 | 시민 학교로서의 암시장ㆍ271

7. 경제 기적과 부도덕에 대한 염려
화폐 개혁, 두 번째 제로 시간ㆍ285 | 볼프스부르크, 인간 대농장ㆍ296 | 부부의 성을 사업 모델로 삼다ㆍ321 | 도덕적 타락에 대한 두려움ㆍ332

8. 재교육자들
연합국의 독일 정신 개조ㆍ343 | 고향을 찾은 낯선 손님들ㆍ360

9. 예술 냉전과 민주주의 설계
문화에 대한 갈망ㆍ385 | 추상미술과 사회적 시장경제ㆍ393 | 키드니 테이블이 바꾼 생각들ㆍ414

10. 억압의 소리
공기처럼 사라진 파시즘ㆍ425 | 침묵, 말, 그리고 내키지 않는 밀착ㆍ434 | 탈나치화와 민주주의ㆍ451

맺음말: 삶은 계속된다 460
주 466
참고문헌 507
그림 및 인용 출처 521
찾아보기 522

오늘날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반면에 당대인들이 홀로코스트의 그늘 속에서 어떻게 계속 살아갔는지는 잘 모른다. 그전에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수백만 명을 살해한 나라가 어떻게 도덕과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양심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것을 다시 입에 올릴 수 있었을까?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그들의 자식들이 스스로 찾도록 내버려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_ 15쪽 〈들어가는 말〉 중에서

과거에 제복을 입었던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재빨리 벗거나 불태워버리고, 아니면 다른 색으로 염색했다. 고위직은 음독자살을 했고, 하위직은 창밖으로 몸을 던지거나 동맥을 끊었다. ‘공백기’가 시작되었다. 법은 효력이 정지되었고, 어떤 일에도 담당자는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었다. 먼저 엉덩이를 깔고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옛 권력은 도망쳤고 새 권력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대포 소리만이 새 권력이 언젠가 올 것임을 예고했다. 이제는 품위 있고 점잖은 사람들까지도 약탈에 나섰다. 사람들은 무리 지어 식량 창고를 털었고, 버려진 집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과 잠자리를 구했다._ 22~23쪽 〈1. 제로 시간?〉 중에서

잔해를 처리하는 방식은 도시 경제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트는 1949년에 소망하던 대로 서독의 수도가 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경제 기적의 수도’로 부상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잔해 처리 방식이 한몫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전쟁 잔해로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도시들에서는 당국이 주민들에게 삽을 들고 당장 청소에 나서라고 다그친 반면, 프랑크푸르트 당국은 다른 식으로 접근했다. 과학적 방식이었다. 그들은 분석하고 숙고하고 실험했다. (…) 프랑크푸르트 화학자들은 잔해를 녹이는 과정에서 이산 화황과 산화칼슘으로 분해되는 석고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냈고, 이로써 분해 과정이 마무리되면 아주 좋은 값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멘트용 골재를 얻을 수 있었다. _ 50쪽 〈1. 폐허 속에서〉 중에서

나치가 유럽 내 유대인 공동체에서 빼앗아 독일 도서관과 박물관으로 옮긴 수백만 권의 서적은 유대인에게 역사적 의미가 무척 큰 자산이었다. 그랬기에 파괴된 유대 문화의 유산을 확인하고, 독일에서 되찾아 스스로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유대인 단체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유대문화재건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그런 임무를 맡아 독일을 방문했다가 민족 대학살에서 막 살아남은 두 유대인 공동체 사이의 심각한 불화에 휘말렸다. 이 분쟁은 양측 모두에 무척 중요한 유대인의 정체성, 그리고 통합과 관련이 있었다. 그 때문에 뮌헨 유대인들 은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동유럽 정통파들 덕분에 이득을 보았음에도 이들이 하루빨리 팔레스타인으로 떠나기만 바랐다.
_ 92쪽 〈3. 대이동〉 중에서

전후 시대 영화를 보면 거의 매번 모리배나 암상인, 지하 세계의 범죄자 같은 인간들이 파티를 즐긴다. 이들은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게오르게 그로스George Grosz의 풍자화처럼 탐욕스럽고 기름진 얼굴로 두툼한 커틀릿을 먹고, 밀수한 와인을 마시고, 여인의 출렁이는 가슴에 코를 박는다. 이런 점에서 춤과 파티는 전반적인 궁핍 상태에서 자동으로 금기시된, 파렴치한 졸부들의 음탕한 유흥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가진 게 없는 사람도 파티를 즐겼다. 물론 모두가 그러지는 않았지만.
_ 144쪽 〈4. 댄스 열풍〉 중에서

귀향자의 전형적인 모습은 늘 침울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유형이었다. 그들은 몸이 안 좋아 소파에 누워 뒹굴 때가 많았다. 소파라는 게 아직 남아 있다면 말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남편과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한 가족들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식솔들이 매일 느끼게 해준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런 세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모든 것이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나라는 외국에 점령당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였다. 귀향자들은 아내가 자기 없이도 그럭저럭 가족을 건사해왔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화가 났다. 그 과정을 통해 아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_ 174쪽 〈5. 파괴된 도시의 사랑〉 중에서

젊은 독일 여성들이 미군을 찾은 데는 문화적 또는 하위 문화적 동기도 숨어 있었다. 즉, 고루한 독일적 삶의 방식과 비좁고 숨 막히는 환경에서 탈출하려는 욕망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다수 독일 역사가들은 당시 여성들에게 낯선 것에 대한 욕망이 존재했고, 바로 그 속에 미군들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콜릿에 대한 욕구 외의 다른 이유들에서 미군, 심지어 흑인에게 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겐 오직 ‘궁핍만’이 부역의 동기여야 했다. 그렇다면 자발적으로 양키를 찾은 여자들을 민족의 배신자로 보려는 충동이 여전히 우리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_ 224쪽 〈5. 파괴된 도시의 사랑〉 중에서

도둑질도 유형에 따라 섬세하게 구분되었는데, 기준은 분명했다. 자신의 소유물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타인의 것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조개탄을 빼돌려 자기 것으로 삼았다면 그건 보호되어야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공공기관의 소유물로서 화물차에 실려 있는 조개탄은 그처럼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당시 독일인들의 집단적 법의식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화물차에서 석탄을 가져가는 것은 긴급 피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구책이고, 개인의 지하실에서 석탄을 가져가는 것은 도둑질이다. 전후 시대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동물, 즉 착한 동물이나 나쁜 동물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했다. 밭에서 감자를 훔친 사람은 부지런히 먹을 것을 모으는 햄스터고, 그런 햄스터에게서 물건을 빼앗는 사람은 하이에나였다. 둘 사이에 사회성이 의심스러운 늑대가 돌아다녔는데, ‘고독한 늑대’도 늑대 떼와 마찬가지로 악명이 높았다._ 266쪽 〈6. 약탈, 배급, 암거래〉 중에서

볼프스부르크의 역사는 1938년에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국민차를 원했다. 신차는 값이 1000마르크 이하여야 했고, 안정성이 높고 수명이 길어야 했으며, 연비가 좋고 공랭식 엔진을 장착해야 했다. 심지어 히틀러는 둥근 딱정벌레 모양의 자동차 모형까지 직접 그려서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 계획에 반대했고, 그 가격으로는 도저히 자동차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히틀러는 자동차 업체들이 고급차에 집착하기 때문에(그건 히틀러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국민차를 만들 능력이 없다고 여겼다. _ 298쪽 〈7. 경제 기적과 부도덕에 대한 염려〉 중에서

미국인들은 종전 직후 바로 독일인들에게 재사회화의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독일인들을 히틀러의 희생자로 여기는 공산주의 역사 이론이 없었다. 반대로 평범한 독일인조차 군국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냉혈한의 성정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고, 그런 성정에 가장 적합한 정부 형태가 총통 국가였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독일인들은 아직 민주주의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때까지는 세계 평화에 엄청난 위험으로 남을 거라고 보았다. 따라서 모든 독일인은 원칙적으로 적으로 간주되었다. _ 351쪽 〈8. 재교육자들〉 중에서

예술 영역에서도 냉전의 전선이 형성되었다. 동쪽과 서쪽의 독일인들이 점점 더 멀어질수록 추상미술은 서독에서 주도권을 잡기가 한결 쉬워졌다. 동독의 구상미술 원칙이 분명해질수록 추상미술 역시 정치 체제의 미학적 대안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서독의 대표적 예술 양식으로 올라서는 것이 한층 수월해졌다는 말이다. 자유의 예술로 이해되는 추상미술은 신앙고백과 같은 카리스마를 얻었고, 이 카리스마는 정치와 분명히 선을 그을 때 더욱 설득력 있게 발산되었다. 추상미술은 존재의 유희적 축제를 묘사했고, 커다란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분출된 순수 생명 에너지를 구현했다. 또한 물감을 주걱으로 퍼서 바르거나, 방울방울 떨어뜨리거나, 표면에 두꺼운 덧칠을 함으로써 재료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사치의 구현이기도 했다. 사치는 더 높은 형태의 풍요를 부르짖는 동시에 오랫동안 전후 시대의 내적 강박으로 남아 있던 근검절약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갈망이었다._ 406쪽 〈9. 예술 냉전과 민주주의 설계〉 중에서

1949년 미국에서 돌아온 한 여성 망명자는 비록 6개월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유대인 박해를 말하지 못하는 독일인들의 무능을 자기 실존의 처절한 부정으로 느꼈다. 유대인으로서 1933년 독일을 떠나야 했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문화재건위원회’11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미국의 여러 기관에 ‘나치 통치의 후유증’에 대해 보고했다.12 그는 “히틀러를 여전히 증오하고”, 자유사상이 넘치고, 승전국에 대한 원한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베를린을 제외하면 나머지 독일 사람들의 심리 상태에 경악했다. 그의 눈에 비친 만연한 무관심과 전반적인 감정 결핍, 공공연한 냉혹함은 “실제 있었던 일을 직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뿌리 깊고 완강하고 때로는 야만적이기까지 한 자기 부정의 가장 뚜렷한 외적 증상”일 뿐이었다. 전 유럽에 깊은 애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는데 독일만 그렇지 않았다. 대신 독일에는 광기에 가까운 부지런함이 현실 부정에 이용되었다. 아렌트는 사회심리학자 알렉산더 미철리히와 마르가레테 미철리히가 나중에 이름 붙인 이런 ‘애도의 무능’ 때문에 독일인들이 “말과 논증, 그리고 인간의 진실한 슬픈 시선에도 더는 반응하지 않는 살아 있는 유령”이 되어버렸다고 했다._ 433~434쪽 〈10. 억압의 소리〉 중에서

야만의 시대에서 시민의 시대로,
전후 독일인은 무엇을 망각하고 어떻게 회복했는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똘똘 뭉쳐 있었던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나자 완벽하게 분열되었다. 옛 질서는 사라졌지만, 새 질서는 아직 모호한 이때, ‘인간이 다른 모두에게 늑대’라는 뜻으로 ‘늑대의 시간’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쟁 이후, 절반 이상의 독일인은 과거 속하던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폭격에 사망하거나 피난, 망명,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에 1000만 명의 강제 징용자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총 4000만 명에 달했다. 자신이 살던 자리에서 추방당하고 끌려가고, 풀려나며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시민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완전히 새로운 구성원으로, 무질서의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했던 시기. 저자는 이 시기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가장 중대한 변화는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먹을 것을 조달하는 일에서, 약탈에서, 교환에서, 구매에서 일어났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끝나자 성적 모험의 물결이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갈망하던 남자들의 귀향 뒤에 극심한 실망도 뒤따랐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어 했으며, 이혼 수치는 비약적으로 치솟았다.
가족은 해체되고, 삶의 질서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인간 관계는 상실되어 갔지만, 사람들은 새롭게 다시 모여 어울렸고, 젊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잿더미의 혼란 위에서 매일마다 자신의 행복을 찾는 모험을 즐겼다. 전후 독일인의 의식을 볼 때 홀로코스트가 미친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미미했다. 자신들의 ‘수상쩍은 행복’을 위해서 홀로코스트를 회피했고, 자신들을 희생자로 그렸다. 그러면서도 전후 시대는 지금까지 여겨지던 것보다 더 논쟁적이었고, 삶은 더 개방적이었으며, 지식인은 더 비판적이었다. 의견의 스펙트럼은 넓었고 예술은 더 혁신적이었다. 이런 의식적 억압과 왜곡 속에서 반파시스트적이고 신뢰를 일깨우는 오늘의 독일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 책은 전쟁 직후 10년의 기간 동안 독일이 거쳐야 했던 재건 사업과 그 속에서 분열된 독일인의 멘털리티를 다각도로 살핌으로써, 잊고 있던 1945년과 1955년 사이의 독일을 새롭게 조명한다. 공식문서나 출간된 책뿐 아니라 일기, 수기, 문학작품, 신문, 잡지, 영상자료, 심지어 유행가 가사 등 방대한 자료와 세심한 해석을 통해 독일이 어떻게 그 시기를 넘어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는지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특히 토마스 만, 한나 아렌트 같은 유명인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들의 개인적 기록을 통해 그 시대의 분위기까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포착했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우리가 아는 자기반성은 없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 희생양 논리를 주장한 독일인들
1947년 1월, 독일의 잡지 《관점(Der Standpunkt)》에는 이렇게 묻는 기사가 실렸다. “독일인들은 왜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없을까?” 기사는 독일이 “유럽의 문제아이자, 세계의 속죄양”이라며, “국제사회에도 일반 가정과 마찬가지로, 사랑받는 아이가 있으면 미움받는 아이도 있다”고 질문에 자답한다. ‘과거 청산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수출국’이라고 자부하는 독일에서, 그것도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 직후에 어떻게 이런 문답을 던질 수 있었던 걸까? 세계대전을 ‘가정 불화’ 수준으로 축소시키고, 가해 민족을 ‘문제아’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의 내면은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걸까?
1945년 5월 8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패망한 이른바 ‘제로 시간’ 직후, 독일인들이 맞닥뜨린 건 약 5억 세제곱미터의 폐허 더미였다. 전쟁으로 인한 6000만 명의 사망자, 붉은 군대의 진입과 함께 시작된 강간의 물결, 서방 연합군의 독일 점령, 1946년과 1947년 ‘기아의 겨울’이라 불리는 지옥을 경험한 독일인은 마치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들을 ‘희생자’로 여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그저 사람을 마비시키는 ‘독’과 같은 국가사회주의에, 사람을 순종적인 도구로 길들이는 ‘마약’과 같은 나치즘에, 히틀러라는 ‘악’에 희생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어떤 민족의 영혼도 독일 민족의 영혼만큼 운명에 의해 그렇게 자주, 그렇게 깊이 갈아엎어져 새로운 정신의 씨앗이 싹틀 토양을 마련하지는 못할 것이다.”_본문 430쪽

당시 언론과 책, 논문에는 독일인이 겪은 고통을 다른 민족의 어떤 고통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최상급으로 표현한 글이 넘쳐난다. 그 시기를 어둡게 그릴수록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과 죄책감이 더 가벼워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앞선《관점》의 기사는 이러한 처절한 생존 욕구 앞에서 독일인들이 택한 희생자 논리, 홀로코스트에 대한 의식적 억압, 집단적 침묵의 심리적 발로였다.
전후 독일인조차 옛 시절을 회고할 때, 스스로를 그동안 겪은 일을 일단 말없이 견뎌내야 했던 ‘위대한 침묵자’로 그리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침묵은 홀로코스트에 한해서만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 오히려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다수 사람들은 전례 없이 뜨거운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 항복 선언 후 보름 만에 폐허 속에서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었고, 두 달 만에 밤새 투어를 돌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댄스홀이 영업을 재개했다. 전후 전체 인구의 약 5%만이 살아남은 쾰른에서는 1946년 으스스한 잔해 사이로 이미 작은 ‘카니발 행렬’이 지나갔고, 같은 해 베를린에서는 ‘환상 무도회’가 열렸다. 1947년이 되자 사람들은 벌써 휴양지로 휴가를 떠났다. 질트섬의 1만여 개 휴양 숙소 가운데 6000개는 피난민들로 꽉 차 있었지만, 나머지 숙소는 휴양객들이 차지했다.
저자는 패망 직후 수십 년간 수백만 명의 학살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논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과거 청산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아우슈비츠 재판이 진행되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 또한 철저한 자기반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나치 세대에 불복종 운동을 펼칩시다”라는 1967년 길거리에 붙은 전단처럼 68세대의 분노에서 촉발된 부모 세대에 대한 역사적 승리였다. 즉 우리가 모범 사례로 드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1945년 이후 독일인들이 스스로에게 가했던 억압의 후유증이었던 것이다.

“도덕적 붕괴와 집단적 인식의 왜곡”
내부자의 눈으로 전후 독일인의 멘털리티를 부검하다
당연하게도 전쟁은 독일의 수많은 사회적 개념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도덕 관념’이다. 오늘날 우리가 독일인의 특징으로 떠올리곤 하는 ‘정직성’은 전후 독일인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패망 전까지 굶주림이란 걸 몰랐던 독일인들은 종전 이후 보급망이 파괴되고, 연합군이 식량 배급을 급격히 줄이자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살아남기 위해서 독일인들은 새로이 생존 기술을 익혀야 했는데, 약탈, 암거래, 좀도둑질이 바로 그것이었다.
패전 후 연합군이 점령하기 직전 ‘권력의 공백기’에 독일인들은 ‘약탈’에 몰두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사람들은 정부 건물, 비축품 창고, 화물열차, 농장, 이웃의 집까지 미친 듯이 물건들을 털었다. 이는 18세의 평범한 독일 여성의 일기에 친지, 이웃들과 함께 떠난 약탈 기행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일반적인 일이었다. 연합군은 곧 행정기관의 정상화를 통해 사회 시스템은 안정시켰지만, 도덕적 붕괴는 멈출 줄을 몰랐다. 특히 종전 직후 3년간은 1인당 최하 800칼로리의 식량만 배급했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늘 굶주림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대체로 부도덕한 자구책을 다양하게 마련했고, 시골로의 ‘도둑질 투어’도 그중 하나였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원하는 것을 살 수 없는 도시민들은 시골 농부들의 수확물을 훔치기 위해 기차를 탔다. 식량 배급표의 틈새에도 금세 구멍이 생겼다. 암시장에는 연합군의 PX에서 횡령하거나 밀수한 물건들이 넘쳐났고, 위조된 식량 배급표가 다발로 유통되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늑대의 시간’, 즉 ‘자연 상태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늑대인’ 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법의식과 도덕 감정의 완전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얼어 죽지 않은 사람은 모두 도둑질을 했다. 모두가 도둑이라면 과연 서로를 도둑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_본문 261쪽

1947년 범죄학자 한스 폰 헨티히는 “독일의 범죄 양상은 서양 문명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규모와 형태를 띠고 있다”며 ‘범죄의 일상화’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발표했다. 당시의 잡지, 학술서, 신문, 수기 등에는 이런 독일인의 법의식 실종과 죄책감에 대해서 벌인 논쟁이 수없이 발견된다.
그러나 독일 전후 일상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역사적 거리를 두고 이런 논쟁을 바라보면, 논쟁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인다. 독일에서만 50만 명의 유대인이 약탈당하거나 집에서 쫓겨났고, 그중 16만 5000명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은 법의식 실종의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패전 후 세상 사람들의 눈에 ‘독일인들’은 전쟁 범죄와 제노사이드를 통해 가해자로 낙인찍힌 지 오래였는데도 독일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나라가 질서와 품격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국외에서는 전후의 이런 시스템 붕괴를 독일을 재사회화할 기회로 바라보았지만, 독일인들은 이제야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우려했다는 점에서 당시에 집단적 인식의 왜곡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강제수용소 유대인의 행방, 전쟁 이주민의 사회적 역할
시민사회의 초석은 이렇게 다져졌다
독일인들이 궁핍한 나날 속에서 수상쩍은 행복을 누리는 동안, 800~1000만 명에 달하는 강제 징용자들의 송환도 시작되었다. 전쟁 중에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서 끌고 온 700만 명의 외국인과 유대인들이었다. 매일 10만 7000명이 고향으로 수송되었지만, 수용소에 남기를 택한 유대인도 적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잔류한 까닭은 다양했다. 대부분은 돌아갈 곳이 없어서였고, 정신적ㆍ신체적 쇠약함으로 이송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미군은 “유대인은 같은 국적의 다른 비유대계 주민들보다 나치에 의해 훨씬 더 큰 고통을 받았다”는 이유로 유대인 생존자들을 위한 새로운 수용소를 마련해줬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뮌헨 인근의 ‘푀렌발트 수용소’였다. 원래 염료회사의 사택 단지였던 푀렌발트는 말이 수용소지 작은 유대인 사회나 다름없었다. 켄터키 거리, 뉴욕 거리를 포함해 총 15개의 거리가 있었고, 자체 행정기관, 정당, 경찰, 법원, 병원, 직원 훈련소, 학교, 극장, 스포츠클럽 등 다양한 시설과 심지어 이디시어로 신문까지 발간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많은 유대인이 떠났지만, 반대로 돌아오는 유대인들도 있었다. 십수 년의 수용소 생활로 자유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남들이 알아서 삶을 정리하고 보호해주는 수용소 속 ‘수동적 삶’을 그리워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강제 징용자들 외에도 전후 연합국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총 4000만 명이 넘었다. 피난민, 노숙자, 탈영병과 얄타회담 및 포츠담회담으로 독일 동부가 폴란드령이 되면서 강제 이주당한 실향민들, 반유대주의와 집단학살로 독일로 밀려드는 유대인 난민까지, 종전 직후 독일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로 뒤엉켜 있었다. 이에 더해 여전한 인종주의와 지역주의, 부족주의까지 횡행하며 당시 사람들조차 사회 통합이 가능하리란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통합의 기적’은 일어났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200만 명의 실향민이었다. 연합군 계획하에 시골로 이주한 그들은 지역 토착민의 적대감 속에서도 사회 현대화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탈지방화의 효소 기능, 지역적 차이의 평준화, 경제 기적의 동력, 그리고 헌법적 애국주의에 기반한 국가 정체성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데도 실향민이 일조했다. 곧 제도적 통합도 뒤따랐다. 특히 1952년에 서독에서 실시된 ‘부담 조정법’은 ‘부동산과 주택, 기타 자산을 소유한 사람은 50%를 손실을 입은 사람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본래 목적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냈다. 치열하고 집요한 논쟁을 거쳐 힘겹게 균형을 이룬 타협안에 동의하는 재분배 과정에서 훗날 ‘시민 사회’라 불리게 될 공동체적 자산의 초석이 놓인 것이다.

나치, 파시즘, 제3제국의 흔적은 어떻게 지워졌나?
거대한 설계자 연합국의 치밀한 계획
제3제국에서 신생 민주주의공화국으로 전환기에 파시즘의 때를 벗기는 역할은 연합군의 몫이었다. 연합군은 독일제국의 국경을 넘는 순간 정복지 관리를 위한 정교한 계획을 이미 주머니 속에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독일인들에게서 오만함을 몰아낼 수 있을까?’ ‘지난 12년 동안 그들에게 주입된 인종주의를 어떻게 뇌에서 제거할 수 있을까?’ 독일 정신을 점령할 광범한 구상으로서 일단 소련은 ‘울브리히트 그룹’ 같은 독일 망명자 집단과 손을 잡고, 전단, 라디오 연설문, 언론사 등을 차례로 접수해나갔다. 울브리히트 그룹 중 몇몇은 시체들이 즐비한 언론사 거리에서 쓸 만한 인쇄기와 타자기를 찾아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졌는지 패전 후 약 2주 만인 5월 22일에 첫 일간지《베를리너 차이퉁》 창간호가 10만 부 발행되었다.
미군 또한 메릴랜드의 리치캠프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리치 보이스(Ritchie Boys)’와 함께 열여섯 개의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고 배포했다. 한데 소련과 달리 미국이 ‘민주주의의 촉진제’로서 독일인들을 ‘재교육’하기 위해 주목한 게 또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예술, 그중에서도 ‘추상미술’이었다. 미국은 추상미술이 ‘상상력의 탈나치화’에 좋은 미적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소련에 대항하고 서독에 독자적인 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추상미술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전폭적이었다. 젊은 화가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전시회 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다량으로 구매했다. 미국의 치밀한 작전을 통해 추상미술에 대해 여전히 반감을 가진 독일인의 집에도 서정적인 추상화가 침투했다. 추상 무늬의 커튼과 카펫, 테이블보가 집 안을 장식한 것이다. 전후 독일인들의 집은 곧 둥글고 불룩하고 구부러지고 비스듬한 소도구들과 ‘콩팥 모양’의 키드니 테이블 같은 가벼운 가구들로 채워졌다. 파시즘의 상징과 같은 육중한 참나무 가구들은 버려지고 새로운 ‘시대정신’이 집 안 곳곳에 놓인 것이다. 이성만이 탈나치화의 유효한 수단이라 보는 사람들에겐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디자인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독일인들은 환경을 바꿈으로써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규명하고자 한 부분은 명확하다. ‘다수 독일인이 개인적 책임을 거부했음에도 어떻게 나치 정권을 가능케 한 심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 여기서 이전의 과대망상만큼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몽에서 화들짝 깨어난 듯한 급격한 ‘현실 자각’이었다. 게다가 연합국에 딸려 들어온 느긋한 생활 방식의 매력, 암시장을 통한 쓰디쓴 사회화 과정, 실향민에 대한 사회적 통합 노력, 추상미술을 둘러싼 떠들썩한 논쟁,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즐거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심리 상태의 변화를 촉진했고, 그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담론은 서서히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독일’과 ‘독일인’이라 부르는 그들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작가정보

Harald Jähner
1953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문학, 사학, 예술사를 공부했다. 1983년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대외협력부를 이끄는 한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을 비롯한 유력 일간지에 다양한 기사를 써왔고, 이어 《베를리너 차이퉁》의 편집국에서 일하면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문예란을 책임졌다. 2011년부터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문화 저널리즘 분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랄트 얘너의 대표작인 《늑대의 시간》은 출간 직후 48주간 독일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9년 라이프치히 도서전상에서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사냥꾼, 목동, 비평가》 《의무란 무엇인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를 포함하여 《특성 없는 남자》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15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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