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마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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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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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조지 엘리엇(본명: 메리 앤 에번스, 1819~1880)의 『미들마치(Middlemarch)』(1870~1871)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436.437번)으로 출간되었다. 『미들마치』는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욕망, 나아가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 본성의 명암을 포괄적으로 고찰한 대작이다. 가상의 소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각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다채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결혼, 종교, 선거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같은 주제들을 둘러싼 풍부한 담론과 극적 사건들을 촘촘하게 전개하는 『미들마치』는 그 주제들의 방대함과 등장인물 하나, 하나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세밀한 필치로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새긴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풍경화라는 찬사를 받는다.
6부 미망인과 아내 177
7부 두 가지 유혹 347
8부 일몰과 일출 497
피날레 658
작품 해설 670
작가 연보 681
* 그러나 서로 알면서도 언급하지 않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그들 사이의 신뢰는 더욱 멀리 밀려난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애정을 믿지 않았다. 불신보다 더 쓸쓸한 외로움이 어디 있을까? (2권 25~26쪽)
* 그러나 우리가 절망이라 부르는 것은 채워지지 않은 희망의 고통스러운 열망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2권 120~121쪽)
* 프레드에 대한 제 감정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를 버릴 수는 없을 거예요. 그가 저를 잃어서 불행하다는 것을 알면 저도 온전히 행복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 감정은 제 마음에 아주 깊이 뿌리를 내렸거든요. 아주 어릴 때부터 늘 저를 가장 사랑해 주고 제가 다치면 너무 마음을 써 주었기에 고마웠어요. 제게 새로운 감정이 생겨서 그 감정이 약해지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어요. 그가 모든 사람의 존중을 받는다면 무엇보다도 기쁘겠지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와 결혼을 약속하지 않겠다고 말씀해 주세요. (2권 154~155쪽)
* 어떤 신사들은 자신의 위대한 영혼이 실수로 빠져든 우주라는 따분한 덫에 대해 전반적인 불만을 표현함으로써 문학계에서 놀라운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자아와 하찮은 세계를 의식한다면 그 나름의 위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드게이트의 불만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은 사고와 효과적인 행동에서 위대한 존재가 자기 주위에 있는 반면 자신의 자아는 점점 협소해지면서 비참하게 고립된 이기적인 두려움에 빠져들고 그런 두려움을 줄여 줄 사건을 천박하게도 노심초사하며 바라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2권 363쪽)
* 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고, 그녀는 옆에 앉아서 함께 울었다. 둘이 함께 나누는 치욕이나 그들에게 치욕을 가져온 행위에 대해서 아직은 서로 언급할 수 없었다. 그는 말없이 고백했고, 그녀는 말없이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솔직한 성격이었지만 그럼에도 서로 의식하는 것을 가리킬 말을 피했다. 타오르는 불똥을 피하듯이. 그녀는 “어느 정도나 중상모략이고 잘못된 혐의인가요?”라고 말할 수 없었고, 그는 “나는 죄가 없소.”라고 말하지 않았다. (2권 529쪽)
* 모든 한계는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젊은이들과 오랫동안 어울리다가 이제 그들의 삶과 작별하면서 그 이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인생의 단편이 아무리 전형적이더라도 일정한 거미집의 표본은 아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 있고, 열성적인 시도가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잠재된 힘이 오래 기다려 온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과거의 과오가 원대한 복구를 촉구할 수도 있다. (2권 658쪽)
* 수많은 이야기의 도달점이었던 결혼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랬듯이 지금도 위대한 시작이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신혼을 보냈지만 황야의 가시밭과 엉겅퀴 덤불에서 첫아이를 낳았다. 결혼은 지금도 가정 서사시의 시작이니 다가오는 세월을 절정으로 이끌고 노년이 되어 함께 나눈 다정한 기억들을 수확하는 완벽한 결합을 차차 이루어 내거나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리고 만다. 어떤 이들은 옛날의 십자군처럼 명예롭게 희망과 열정을 품고 시작했다가 서로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참을성이 부족해서 도중에 꺾이기도 한다. (2권 658~659쪽)
<b>타임 선정 역대 가장 사랑받은 소설 10위
가디언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100권
BBC 선정 가장 위대한 영국 소설</b>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일 테니까. 파스칼과 결혼하는 것과
같겠지. 위대한 사람들이 진실을 보아 온 빛으로 나도 진실을 보게 될 거야.”
버지니아 울프는 『미들마치』를 “성인을 위해 쓰인 극소수의 훌륭한 영국 소설 중 하나”라고 평했다. 울프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전의 로맨스 소설들과는 달리 『미들마치』가 결혼을 다양한 역학 관계가 작용하는 사회 심리학적 결단으로 그린 것에 주목했다. 『미들마치』의 뼈대는 세 커플의 결혼 이야기다. 여기서 결혼은 지적 열망이 가득했던 어린 신부에게 우울증의 나락을 보여주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질병 치료의 혁신을 추구했던 젊은이를 비참한 빚쟁이로 전락시키는가 하면, 상속받을 재산만 믿고 허랑한 생활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철부지 청년을 견실한 농부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조지 엘리엇은 다채로운 인물들의 내면, 욕망과 선택의 동기, 갈등의 양상을 깊이 파고들어 인간 경험의 사실적인 태피스트리를 빼어나게 직조해 냈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심리적 위기와 고뇌에 대한 공감력, 사회적 규범이 낳은 모순과 위선에 대한 조지 엘리엇의 통찰은 놀랍다.
주인공 도러시아 브룩은 당대의 사회 규범 또는 제도적 제약 때문에 여자로서는 해내기 어려운 학문적 성취를 노학자와의 결혼으로 대체하려 한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네, 그렇고말고요!”라고 대답하는 상냥하고 잘생기기만 한 남자는 그녀에게 감동적인 애인이 될 수 없었다. “참으로 기쁜 결혼이란 아버지 같은 남편이 아내가 원한다면 히브리어도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1권 19쪽)고 믿었다.
하지만 도러시아가 추앙했던 에드워드 캐소본 목사는 학자로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반려자로서도 이기적이고 옹졸하다. 그는 도러시아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아내로 삼을 수 있었던 여자 중에 그녀가 가장 결점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결혼했다. 그랬기 때문에 도러시아는 그에게 곧 대단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예상보다 훨씬 더 골치 아픈 존재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녀는 그를 간호했고, 책을 읽어 주었고, 그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차렸고, 그의 감정 상태를 염려했다. 그러나 그를 판단하고 있으며, 아내로서의 헌신은 그녀의 불신-이와 더불어 남편과 남의 행위를 전반적 상황의 한 부분으로 너무나 명료하게 파악하는 비교 능력-을 회개하고 속죄하려는 것이라는 확신이 남편의 마음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1권 694쪽)
어린 아내에 대한 자격지심에 아내와 친분을 나누는 윌 래디슬로의 불륜까지 상상했던 캐소본은 만약 자신이 죽고 나서 도러시아가 윌과 재혼을 하게 된다면 자신의 유산은 상속받지 못하도록 유언장까지 고친다.
터시어스 리드게이트는 혁신적인 의술로 의학계를 진보시키겠다는 높은 이상을 품고 미들마치에 온다. 그는 남편을 존경하고 스스로를 아름다운 장식처럼 꾸밀 줄 아는 아내를 원하며 로저먼드 빈시에게서 그런 여자를 찾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들마치의 답답한 중산층 집단에서 벗어나 귀족 계층으로 상승할 기회만을 갈망하던 로저먼드는 리드게이트가 준남작의 조카라는 사실에 매력을 느낄 뿐이다. 이 커플은 애초에 상대의 내밀한 욕구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소망을 상대에게 투사하고 그에 따른 오해와 갈등만 키워가고, 결국 그들의 결혼은 ‘재앙’이 되고 만다.
허상이 부서진 뒤 결혼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리드게이트는 자기 선택에 대해 책임지려 애쓰고 상대에 대한 연민을 배우기도 하지만 실패한 인생에 대한 자조적 의식에 짓눌리고 만다. 도러시아는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기를 기대하며 스물일곱 살 연상의 현학적인 목사를 남편으로 선택했던 것이 세상에 대한 무지와 자신의 헛된 욕망에서 빚어진 비극이었음을 깨닫지만,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감정과 내밀한 고통을 이해하려 애쓴다.
한편 어린 시절의 소꿉동무였던 프레드 빈시와 메리 가스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가진 것이 없고,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인물들이지만, 상대에 대한 허상이나 자기기만 없이 계층적 차이나 편견을 극복하며 관계를 일구어 간다. 프레드는 매력적이지만 재정 관념이 없는 무책임한 청년이고, 메리 가스는 존경받는 토지 중개인의 딸이다. 프레드는 메리를 줄곧 짝사랑하고, 현명한 메리는 프레드를 좋아하면서도 무모한 행동으로 늘 빈곤을 겪는 그의 자질에 의구심을 품는다. 메리는 프레드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까지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프레드는 메리 가족의 반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메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한다.
메리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게으르고 경박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내게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 듯이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며 일하는데, 그리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너는 그런 경멸을 당하며 견딜 수 있어? 유용한 일이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아무 쓸모도 없는 상태를 견딜 수 있니? 게다가 네게는 좋은 점이 아주 많잖아, 프레드.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을 텐데.”
“네가 바라는 거라면 무슨 일이든 노력하겠어, 메리.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준다면.” (1권 428쪽)
『미들마치』에서 한 인물의 이야기는 다른 인물의 이야기와 여러 갈래로 교차하고 상호 연결되어 있다. 촘촘한 이야기 구조와 전지적 화자의 방백 같은 내러티브 기법을 통해 조지 엘리엇은 한 지방 도시와 그 주민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엮어낸다. 조지 엘리엇이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한 1860년 말은 영국의 산업화와 제국주의적 기획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엘리엇은 그로부터 40여 년 전, 선거권 개정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철도 부설 사업이 시작되며 가톨릭 해방령으로 종교 논쟁이 가열되고 의회가 해체된 후 총선을 치르면서 귀족에게 제한되어 있던 선거권이 일반 서민에게 확대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변화를 모색하는 에너지가 꿈틀대기 시작하는 소도시 미들마치에 제각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신화의 근원을 연구하면서 정작 당대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에 무지하고 지엽적 확신에 매몰된 에드워드 캐소본 목사, 첫 번째 결혼에서 쓰디쓴 절망을 겪었음에도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유산을 포기하며 또 한 번의 결혼과 새로운 삶을 향해 발을 내딛는 도러시아, 질병의 획기적인 치료를 꿈꾸며 의료 개혁을 추구하는 터시어스 리드게이트, 대학까지 마치고도 성직이 적성에 맞지 않아 갈등하는 프레드 빈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한치의 불의도 눈감지 않는 굳건한 메리, 이들은 내적 결함이나 외적 제약으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변화에 맞춰 도전하며 삶의 궤적을 그려 간다.
조지 엘리엇은 『미들마치』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결혼의 다양한 양상을 다루는데, 그것은 결혼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복잡한 역학 관계, 사회적 기대가 개인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결과를 탐구할 수 있는 풍부한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도러시아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대개 그녀가 ‘좋은 여자’였을 리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좋은 여자라면 첫 번째 남자와도 두 번째 남자와도 결혼하지 않았을 테니까.”
『미들마치』는 빅토리아 시대 평범한 한 개인의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 개인의 선택이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 또는 사회 구조 자체가 개인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문학적으로 고찰한, 한 시대의 정밀한 초상이자 독창적 탐구이기도 하다. 『미들마치』는 뛰어난 사실주의와 심리적 고찰로도 독보적인데, 등장인물에 대한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전형적 묘사에서 확연히 벗어나 있는 이 작품의 차별성과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은 작가 조지 엘리엇의 특별한 환경에 바탕하고 있다. 조지 엘리엇은 여성 작가가 공식적으로 남성 작가와 동등한 인정과 존중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던 시대에 남성적 필명으로 글을 쓴 여성 작가였다. 다시 말해, 『미들마치』는 여성 작가로서 조지 엘리엇의 특수한 조건, 사회적으로 제한된 기회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 작가로서 기울인 지적 단련의 과정에서 탄생했다. 조지 엘리엇은 자신의 작품이 문학계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던 만큼 연구와 독서에 열중했으며, 당대의 철학을 깊이 탐구하고 저명한 사상가 및 작가들과 교류했다. 엘리엇은 프랑스 사회학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의 인도적 철학이나 스피노자의 윤리학, 포이어바흐의 인간 중심 신학에 대해 잘 알았고 당대 영국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사상에도 공감했다. 존 로크와 에드먼드 버크,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영국의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뿐 아니라 노예제 철폐를 주장하고 여성 참정권을 옹호하며 영국의 인도 식민지 운영을 비판하는 등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개혁을 주장했는데 엘리엇은 진보에 대한 전반적 믿음을 공유했으며 개혁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맥을 같이한다. 그녀의 문학적 지향과 『미들마치』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들이 품은 철학적 깊이와 다층적 시각은 동시대의 진보적 사상을 섭렵해 간 집념의 결과이다.
조지 엘리엇은 유부남인 조지 헨리 루이스와 동거하며 사회적인 고립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습적인 결혼 제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사랑, 의무, 관습적 제도의 모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작품으로 남겼다. 한 개인이 처한 상황을 세밀하게 그리면서, 동시에 특정한 상황에서 한 개인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 그런 선택에 이르게 한 심리적 동인은 무엇인가를 파헤치며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성향이나 내밀한 욕구, 선입관이나 편견, 주위 인간들에 대한 태도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교한 심리적 사실주의 소설을 구축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천박한 부자들에 대해 느낀 감정은 가히 종교적 증오심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들은 소매가를 높이 매겨서 돈을 벌었을 테고, 캐드월레이더 부인은 목사관에 현물로 공급되지 않는 물건을 비싸게 사야 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하느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 그런 사람들을 계획에 넣지 않으셨다. 게다가 그들의 억양은 귀를 따갑게 했다. 그런 극악무도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도시는 저급한 코미디에 지나지 않았고, 점잖은 우주를 설계할 때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캐드월레이더 부인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싶은 숙녀가 있다면 자신의 아름다운 관점은 얼마나 포용력이 넓은지 살펴보고, 그 관점이 영광스럽게도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을 수용하는지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1권 103쪽)
개인이라는 주체와 외적 사회 환경이라는 객체의 역학 관계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인물 중 하나는 리드게이트다.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원시 세포를 발견하려는 열망과 의료 체계를 개혁하려는 야심을 품고 영국에 돌아와 번잡한 인간관계를 피하기 위해 미들마치에 정착한 그는 처음에 놀라운 의술을 가진 의사로 각광을 받는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청진기를 사용하여 진찰하고 약을 제공하지 않으며 시신을 해부한다는 소문으로 점점 환자들에게 도외시되면서 금전적 고통을 받는다. 더구나 다른 의사들에게 질시와 분노를 일깨우며 의사 집단에서 소외되고, 불스트로드가 설립한 열병 병원의 관리를 맡으면서 다른 의사들과 반목은 극에 달한다. 열병 병원의 목사를 선출하는 투표 장면은 거미줄처럼 뒤얽힌 여러 이해관계의 갈등과 집단의 압박 및 질곡을 잘 보여준다. 인습적인 관계로 엮여 있고 민간요법이 관행인 소도시의 의료계에서 개혁 추구는 지난한 일이며, 이상주의적 신념은 관행의 벽에 부딪쳐 쉽게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리드게이트의 좌절은 내적 요인에서 기인한 바도 크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열망을 품은 매력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부심과 우월감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과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귀족적이고 세속적인 취향으로 인해 경제적 고충을 겪는다. 무엇보다도 결혼을 통해서 쓰라린 좌절을 경험한다.
어떤 신사들은 자신의 위대한 영혼이 실수로 빠져든 우주라는 따분한 덫에 대해 전반적인 불만을 표현함으로써 문학계에서 놀라운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자아와 하찮은 세계를 의식한다면 그 나름의 위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드게이트의 불만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은 사고와 효과적인 행동에서 위대한 존재가 자기 주위에 있는 반면 자신의 자아는 점점 협소해지면서 비참하게 고립된 이기적인 두려움에 빠져들고 그런 두려움을 줄여 줄 사건을 천박하게도 노심초사하며 바라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2권 363쪽)
조지 엘리엇은 로저먼드 빈시나 캐소본 같은 자기중심적 인물을 묘사할 때도 “가엾은” 같은 형용사를 붙여 부르며 그들에 대한 이해심을 독자에게 호소한다. 이런 서술이 자칫 교훈적이거나 설교적이라는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지만, 상대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공감을 요구한다고 불평할 때 실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비워 둔 공감의 자리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는 화자의 지적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에 열렬한 신앙심으로 전도에 열중하지만 부정하게 남의 재산을 가로채고는 하느님의 일을 수행한다고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위선자 불 스트로드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그의 고뇌에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와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작가로서 엘리엇의 강점이고 곧 그녀의 윤리 의식에서 비롯한 탁월한 성취이다.
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고, 그녀는 옆에 앉아서 함께 울었다. 둘이 함께 나누는 치욕이나 그들에게 치욕을 가져온 행위에 대해서 아직은 서로 언급할 수 없었다. 그는 말없이 고백했고, 그녀는 말없이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솔직한 성격이었지만 그럼에도 서로 의식하는 것을 가리킬 말을 피했다. 타오르는 불똥을 피하듯이. 그녀는 “어느 정도나 중상모략이고 잘못된 혐의인가요?”라고 말할 수 없었고, 그는 “나는 죄가 없소.”라고 말하지 않았다. (2권 529쪽)
엘리엇이 추구했던 사실주의적 미학에 따르면, 당대의 문학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목가적 풍경이나 영웅적 인물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으므로 진실이 아니다. 엘리엇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 진실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인물들의 복합적인 심리를 정교하게 그리고자 한다. 1856년 엘리엇은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예술의 위대한 기능”은 바로 “공감을 확대하고 우리의 개인적 운명의 경계를 넘어 경험을 증폭하고 동료 인간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이를 확실성이 무너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대안적 가치로 제시한다. 영국 비평가 F. R. 리비스가 역설했듯이 엘리엇의 심리적 사실주의 미학은 삶에 대한 진지한 윤리적 감수성의 결실이고, 이런 미학을 통해 엘리엇은 19세기 영국 소설을 도덕적,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탐구하는 진지한 장르로 발전시켰다. 엘리엇이 역설한 인간관계의 신성함과 타인에 대한 공감적 태도 및 우애, 평범한 인간의 헌신적 삶에 대한 강조는 19세기 초 낭만주의 시인들의 세계관과 토머스 칼라일의 신념을 연상시키는 바가 크다. 기존의 기독교 중심적인 윤리와 확신이 무너진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유기적 사회와 인간 중심적 가치에서 대안을 발견한 낭만주의 사상은 빅토리아 시대를 관통하며 아름답고 위대한 유산을 남긴 것이다.
작가정보
George Eliot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로, 1819년 영국 워릭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병약했던 탓에 어려서부터 여러 기숙학교를 돌며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정통 기독교인 복음주의를 포기하고 보편적 인간성에 입각한 비국교도 교리를 택했다. 1854년 급진적 자유사상가인 유부남 조지 헨리 루이스와의 동거로 런던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루이스의 격려에 힘입어 서른일곱 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만, 1878년 루이스의 사망과 더불어 그녀의 작품 활동은 끝났다. 엘리엇은 예술의 위대한 기능은 ‘공감을 확대하고 개인적 운명의 경계를 넘어 경험을 증폭하고 다른 인간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비평가 F. R. 리비스가 역설했듯, 엘리엇의 심리적 사실주의 미학은 삶에 대한 진지한 윤리적 감수성의 결실이고, 이런 미학을 통해 엘리엇은 19세기 영국 소설을 도덕적,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탐구하는 진지한 장르로 발전시켰다. 엘리엇은 이십여 년의 집필 기간 동안 슈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번역했고, 《웨스트민스터 리뷰》의 부편집인으로서 많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1857년 세 편의 단편을 모은 『성직 생활의 단면들』을 조지 엘리엇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한 뒤, 대표작 『미들마치』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을 비롯해 『애덤 비드』, 『사일러스 마너』, 『로몰라』, 『급진주의자 펠릭스 홀트』, 『다니엘 데론다』 등의 장편 소설과 『스페인 집시』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188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교에서 강사 및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지프 콘래드, 존 파울즈,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J. R. 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공역),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톨킨의 그림들』, 토머스 모어의 서한집 『영원과 하루』, 리처드 앨틱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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