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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창창

설재인 지음
밝은세상

2024년 01월 22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1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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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1.91MB)
ISBN 978898437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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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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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창창》은 무채색 같은 삶을 살아온 스물아홉 청년이 세상에 의해 규정된 무기력한 자기 모습을 지워내고 스스로 선택한 색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물들여가는 이야기다. 작가 설재인은 ‘태몽’이라는 민간 신앙을 소재로 가져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정해지는 주인공의 삶을 보여준다. 그저 단 한 번의 꿈으로 정의되고, 그 꿈풀이를 정답처럼 따라야 하는 인생. 이는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지’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야지’ ‘부모의 자랑이 되어야지’ 등 ‘넌 그래야만 해’라고 수많은 규정을 당하고, 삶에 대한 부담감을 안은 채 살아가며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느껴야 할 패배감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에 대한 비유다.
소설 속 주인공은 용과 호랑이가 나온 거창한 태몽 덕분에 곽용호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어째 태몽의 기세와는 정반대로 삶이 흘러가 가엽게도 여기저기서 시달린다. 꿈 하나에 결정된 이름과 꿈풀이로 태어나기 전부터 부정당한 정체성에 진저리가 난 곽용호. 그의 좌충우돌 자신만의 인생 풀이가 시작된다.
1부 06p
2부 182p
3부 305p
작가의 말 334p

용과 호랑이는 내 태몽에 등장한 녀석들이다. 어느 어두운 산을 혼자 헤매던 엄마가 커다란 호랑이에게 마구 쫓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마침내 어딘가 툭 튀어나와 있던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고 그 위를 호랑이가 덮쳤다고 했다. 잡아먹히려나 보다, 하고 엄마가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눈을 질끈 감았는데 호랑이는 엄마를 물어뜯는 대신 커다란 고추를 엄마의 아랫도리로 집어넣었다. 이 얘길 나는 열 살 때 엄마에게 직접 들었고 처음으로 남자의 고추가 여자의 어디에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다.
참 대단하신 성교육이 아닐 수 없다.
호랑이의 고추는 크기가 팔뚝만 했고 뜨겁게 절절 끓었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지개 같은 게 선명히 보여서 오르가슴을 제대로 느끼면 저런 것도 보이는구나, 내가 지금껏 남자들이랑 했던 건 다 애들 장난이었어, 하고 할렐루야 감탄했단다. 그러더니 이번엔 그 무지개가 꿀렁꿀렁 움직이더란다. 자세히 보니 무지개가 아니라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비늘로 온몸을 감싼 용이었다. 그 용이 수염을 휘날리며 내려와 엄마와 호랑이의 주위를 뱅뱅 돌았다. 그랬더니 합체한 엄마와 호랑이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용이 그 아래위를 호위하듯 긴 몸으로 감쌌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환장하게도 내 이름은 곽용호가 되었다.
_8~9쪽

나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사랑해 안달하는 서사들만 보면 그렇게 환멸이 났다. 일단 친구처럼 지내는 모녀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는 사람들도 이해 가지 않았고, 서로 죽이니 마니 하면서 싸우다가도 제 아이 낳고서는 우리 엄마에게도 나처럼 예쁠 나이가 있었다며 갑자기 착해지는 이야기는 가장 최악이었다. 싸우려면 일관성 있게 가지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가. 어리고 약했던 내 인생을 그토록 힘들게 만든 힘 센 원수를 어찌 그리 쉽게 용서할 수 있는가.
내가 겪어온 어린 시절을 떠들어대며 공감을 요구하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편을 들어주는 척하다가도 슬쩍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일하면서 혼자 키우셨잖아. 얼마나 힘이 드셨겠어. 게다가….”
그들에게는 ‘게다가’의 다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얼마나 좋아, 돈도 잘 버시는데. 너는 어머니 덕에 먹고살 걱정 없잖아?”
_10~11쪽



나는 평생을 엄마와 비교당하며 살아야 했다. 곽용호.
이름 세 글자 말고는 아무런 색채가 없는 아이. 무기력한 존재. 회백색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캔버스 위의 엉성한 습작 스케치 같은 사람. 성격이 밝지도 않고 외모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공부는 그냥저냥이고 그 어느 것에도 뾰족한 재능이 없는.
“너희 어머니가 곽문영 작가님이라면서? 선생님이 그 왜, 그 작품 진짜 좋아했는데! 있잖아, 그….”
학년 초 첫 상담 때마다 담임들이 하는 멘트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그럼 용호도 학교생활 기대할게. 어머니 닮아서 잘하겠지!’라는 마무리도. 실망 역시 반복했다.
쟤 엄마는 그렇게 대단한데 쟤는 애가 영 야무지지도 못하고 능력도… 어떻게 저렇게 평범하지? 하고 교무실에 앉아 수군대면서.
그런 말을 나는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작업뿐이니까. 하루 열다섯 시간 일하는 엄마를 방해해선 안 되는 게 내가 모녀 관계에서 배운 첫 번째 생존 방법이니까.
나는 지긋지긋했다. 나중엔 내 존재, 내 이름 석 자조차 그저 엄마의 특별한 존재와 서사를 쌓아 올리는 도구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의아해질 정도였다.
_13~14쪽


엄마는 진짜로 사라졌다. 한여름 아스팔트 도로에 내린 가랑비처럼 깨끗하게 증발해버렸다.
나는 오혜진의 전화를 받고 집에 돌아왔다. 벌레 새끼 하나 없었다. 혹시 몰라 엄마의 옷장을 뒤져보았다. 글 쓸 때마다 입는 엄마의 작업복 일곱 세트가 몽땅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건 가출이구나. 무슨 꿍꿍이가 있구나.
오혜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요, 엄마 작업복 아세요? 왜, 스님 옷 같고 회색에 펑퍼짐한. 집에서 작업할 땐 우리 엄마, 그 옷밖엔 안 입거든요. 근데 일곱 세트 다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자의로 사라진 거예요. 납치, 실종 아닙니다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알아서 돌아올 거니까.
건너편에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통화가 끊겼나? 핸드폰을 귀에서 떼곤 화면을 쳐다봐도 통화 시간은 멀쩡히 계속 흐르는 중이었다. 여보세요, 라고 예의상 세 번쯤 더 외친 다음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수화기에서 불쑥 오혜진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돌아오시지 않으면요?”
“예?”
“왜 저한테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걸까요? 돌아오시지 않으면…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의 질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기 때문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간신히 들어간 대학을 마칠 즈음 캠퍼스에서 자주 굴러다니던 까끌까끌한 대화들. 그 질감과 딱 일치했다. 믿고 따른 미래의 꿈이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꼴을 지켜봐야 했던, 그 파편들에 이리 까이고 저리 까여 울퉁불퉁해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절망의 질감.
_36~38쪽


셋 이상이 알게 된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일 수 없단 말은 도망칠 구석이 있는 인간들이나 할 수 있는 얘기다. 비밀을 어디 슬쩍 누설한다고 하더라도 아사할 걱정 없는 사람들이나. 그래서 우리 셋은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이 업계에서 곽문영 작가가 없으면 존재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오혜진.
어머니는 투병 중이고 아버지는 경비원이며 취직은 가장 안 된다는 국문과 전공 휴학생 함장현.
그리고 그 번듯한 집인 하리팰의 관리비를 내는 것마저 버거운 나, 곽용호까지. 한 달 몇백만 원의 관리비는 대건빌라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곽용호에게는 조용히 현실이 된 괴담과도 같았다. 학교 쉬는 시간에 애들에게 듣고선 꺅꺅댄 후 잊었는데 혼자 집에 가는 길에 다시 만나게 된 긴 머리의 얼굴 없는 여자 같은 그런 느낌.
반신반의하던 오혜진은 나와 장현이 함께 작업한 샘플 원고 몇 개를 받더니 점점 마음을 열었다. 셋이 처음으로 모인 자리에서 장현과 오혜진은 거의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칼로 각자의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는 이들처럼 굴었다. 오혜진은 일일드라마 덕분에 죽지 않은 장현의 이야기를 듣곤 코까지 흘리며 울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거든요. 먹먹한 목소리로 오혜진은 외쳤다. 나에게도 드라마가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했걸랑요. 꿈이 내 전부이던 시절이. 지금은요? 지금은 유통기한 지난 꿈이 나를 목 조르고 있지.
막차 장소는 서울 한복판에서 메추리구이와 말고기 육회를 판다는 요상한 포장마차로 오혜진이 혼자 자취하는 오피스텔의 지척에 있었다. 완전히 취한 오혜진을 먼저 들여보내고 우리는 거기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했다.
좋은 이야기만 했다. 우리가 동시에 보란 듯 사랑하고 기꺼이 나 자신이라는 인간을 만드는 유의미한 요소로서 받아들였던 타인의 창작물 이야기. 책은 책이고 영화는 영화고, 연극은 그저 연극이었던 시절. 돈이나 사업적 싸바싸바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시되던 시절을 어린 채로 함께 통과했던 우리가 훌쩍 커버린 후의 당혹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네 이름이 크레딧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야, 진짜? 진짜 그것마저도 괜찮다 이거야?”
내가 고개를 꾸벅이며 거듭 물을 때마다 장현은 똑같이 취해서는 되받아쳤다. 이게 처음일 것 같아? 나는 이미 많이 당해서 돈 낭낭하게 준다면 아무 이의 없어. 돈이 최고잖아. 그런 말로. 또박또박 깔끔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발음은 사정없이 꼬였고 각각의 단어를 두세 번씩 뱉었다.
나는 슬펐다. 그 애가 그렇게 말하는 게 자조적이어서. 말로는 ‘돈이 최고’라고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절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니까. ‘돈이 최고’인 것처럼은 절대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돈이 최고’라고 입을 뻥긋대는 것은 이백 퍼센트의 자학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날 포차가 영업을 끝낼 때까지 먹고 마셨다.
나는 장현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계산을 끝냈다. 장현은 못내 미안해했다.
_55~57쪽


“좀 이상해. 기분이 이상해.”
장현이 지망생 카페에서 보고 들은 대로 우리는 끝없는 질책과 수정의 늪에 빠질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기에 오혜진의 느닷없는 극찬이 불안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두 다리를 허공으로 번갈아 차올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불안해야만 하게끔 키워진 것은 아닐까. 나는 호기로운 척을 했다.
“우리 둘 다 성공의 경험이 너무 없어서 이러는 걸지도 몰라.”
“아, 그런 걸까 용호야?”
“어. 맨날 성공하는 인생이었으면 그냥 아, 내가 또 하나 성취했구나, 하고 별것 아니게 넘어갔을지도 몰라. 뭐, 야, 우리가 잘하나봐!”
그러니까 너무 가엽고 불쌍하게 굴진 말자. 낯선 성공의 경험을 온전히 누려 보자, 우리. 나는 그 벤치에서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한 시간 사십 분이 지나 있었다.
집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그날 종일 오혜진에게 엄마의 실마리를 찾았는지 묻지 않았단 걸 자각했다.
_72~73쪽

아무 일정 없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태몽에 용과 호랑이가 등장한 덕에 환장하게도 용호란 이름을 갖게 된 곽용호. 그는 이름 세 글자를 빼면 색채 없는 인간이다. 스물아홉 인생 내내 잘나가는 엄마와 비교당하는, 캔버스 위의 엉성한 습작 스케치 같은 사람(13쪽). 공부는 그냥저냥 해 삼수 끝에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에 가까스로 들어갔지만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하고 있는 패배자.
곽용호는 어린 시절부터 늘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세상에도, 엄마에게도. 세상의 관심에서 빗겨 나 있는 그에게 유일하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때는 오직 드라마계의 스타 작가이자 자신의 엄마인 곽문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뿐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홀연히 사라진다. 한여름에 아스팔트로 도로에 내린 가랑비처럼 깨끗하게 증발해버렸다(36쪽).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드라마 제작사 피디이자 곽문영의 수족 오혜진이 한 가지 제안을 해온다. 엄마의 새 드라마 ‘드림 런처스’를 대신 집필해달라는 것.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다가 마음 깊숙이 한 구석에 버러진 자신의 꿈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적으라고 할 때 언제나 썼던 그 단어, ‘작가’. 하지만 엄마의 글재주에 비하면 곽용호의 재능은 얄팍하기 그지없었고, ‘작가’는 그에게 먼지 쌓인 꿈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그 ‘작가’를 해달라니. 비록 곽문영이란 이름으로 쓰는 엄마의 드라마지만 곽용호는 솔깃한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곽용호는 고등학교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이자 옛 애인 함장현과 함께 엄마의 드라마 ‘드림 런처스’ 대본 작업을 시작한다. 걱정과는 달리 첫 대본이 통과된 후 그들 작업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신명 나게 집필 작업을 이어가던 중 오혜진 피디에게 사라진 엄마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사라진 엄마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승복 입은 사람.’ 엄마의 행방을 알기 위해선 ‘승복 입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엄마의 책상 서랍 깊숙한 곳 꼭꼭 숨겨진 일기장에 적혀있는 스님이란 존재. 그는 ‘광혜암’이라는 암자에서 지내고 있었다. 지도에 뜨지도 않는, 외곽 어느 산에 위치한 을씨년스러운 암자였다. 마치 일부로 누군가가 찾아오기 힘들게 숨은 것처럼. 가까스로 찾아간 그곳엔 부서진 성상들이 가득하다. 기독교, 천주교, 목 없는 불상, 하반신 없는 성모상….
모든 게 의심스러운 광혜암에서 사이비 ‘땡중’ 같은 사람이 곽용호를 맞는다. 넙데데한 얼굴에 잡티 흔적이 가득하고 붉은빛 도는 피부가 마치 딸기 같은 모습이다. 뭐 하나 성한 게 없어 보이는 광혜암.
여기는 뭐 하는 데지? 엄마는 대체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너무 가엽고 불쌍하게 굴진 말자
낯선 성공의 경험을 온전히 누려 보자, 우리

《별빛 창창》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잃은 채 살아간다. 팍팍한 현실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떠나보낸 것이 꿈이었다. 잘나가는 엄마의 그늘에 가려지고, 스물아홉이 되도록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해 패배감에 잠식된 곽용호. 좋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가고 싶은 대학이 아닌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다른 대학에서 몇 년째 졸업을 유예하며 4학년으로 살아가는 함장현. 신인 작가를 발굴하겠다는 야심 찬 꿈을 가지고 피디가 되었지만 현실은 스타 작가 매니저 역할을 하며 유통기한 지난 꿈에 짓눌린 오혜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현실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고, 이들에게는 좌절만이 쌓인다. 그러던 중 스타 작가 곽문영이 종적을 감추며 곽용호와 함장현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짜글짜글하게 구겨질 대로 구겨져 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그들의 삶이 피기 시작한 것. 마음속에서 꺼내 보지도 못한 꿈을 한 번에 이루고, 재능을 인정받고, 무엇보다 일을 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곽영호와 함장현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드디어 증명받은 기분이다. 이를 바라보는 오혜진 역시 이제야 자신의 역할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내 불안이 엄습한다. 우리가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 때문.
실패로 점철된 그들의 삶에는 성공의 경험이 부재하고,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낯선 현실과 실시간으로 바뀌는 상황, 복잡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곽영호와 함장현은 끝까지 함께 나아간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비록 그들의 삶은 밉게 구겨지고 뭉개졌지만, 그래서 외롭고 상처받았지만, 기쁨을 누리는 것에 익숙지 않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여전히 따스하고 다정하다.

“좀 이상해. 기분이 이상해.”
장현이 지망생 카페에서 보고들은 대로 우리는 끝없는 질책과 수정의 늪에 빠질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기에 오혜진의 느닷없는 극찬이 불안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두 다리를 허공으로 번갈아 차올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불안해야만 하게끔 키워진 것은 아닐까. 나는 호기로운 척을 했다.
“우리 둘 다 성공의 경험이 너무 없어서 이러는 걸지도 몰라.”
“아, 그런 걸까 용호야?”
“어. 맨날 성공하는 인생이었으면 그냥 아, 내가 또 하나 성취했구나, 하고 별것 아니게 넘어갔을지도 몰라. 뭐, 야, 우리가 잘하나봐!”
그러니까 너무 가엽고 불쌍하게 굴진 말자. 낯선 성공의 경험을 온전히 누려 보자, 우리. 나는 그 벤치에서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한 시간 사십 분이 지나 있었다. (72~73쪽)


나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사랑해 안달하는
서사들만 보면 그렇게 환멸이 났다

곽문영과 곽용호의 모녀 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 있다. 엄마 곽문영은 언제나 일로 바쁘고 곽용호는 늘 혼자다. 아빠란 존재는 누군지 얼굴조차 모른다. 곽문영의 드라마가 대박이 나면서 그는 더욱 방치된다. 그때부터였을까. 이들의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 곽용호는 잘나가는 엄마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무기로 팔고 다니는 엄마가, 딸에게는 작은 관심조차 없으면서 휴머니즘의 드라마를 뚝딱뚝딱 써내 시청자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놓는 엄마가 가증스럽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끔찍한 엄마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저 성공한 엄마를 둬 먹고 살 걱정 없는 곽용호를 부러워하기 바쁘다. 사실 그에게는 이 사실이 가장 큰 문제다. 엄마 덕에 먹고 사는 삶. 곽용호에게 엄마는 늘 뛰어넘어야 하는 대상이지만 현실은 엄마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고,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그의 돈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혐오 또한 늘어만 간다. 곽용호는 그렇게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 유영한다. 엄마에게 자신은 그저 커리어를 완성시키기 위한 구성품 같은 존재이며 화목한 가족이란 건 환상이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가 사라진 뒤에도 곽용호는 별 타격을 받지 않지만 세상의 시선이 걱정되어 이내 엄마를 찾아 나선다. 엄마가 남긴 자취를 따라가며 엄마도 작가도 아닌 인간 ‘곽문영’이 그동안 숨겨온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둘의 관계는 새 국면을 맞는다.

나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사랑해 안달하는 서사들만 보면 그렇게 환멸이 났다. 일단 친구처럼 지내는 모녀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는 사람들도 이해 가지 않았고, 서로 죽이니 마니 하면서 싸우다가도 제 아이 낳고서는 우리 엄마에게도 나처럼 예쁠 나이가 있었다며 갑자기 착해지는 이야기는 가장 최악이었다. 싸우려면 일관성 있게 가지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가. 어리고 약했던 내 인생을 그토록 힘들게 만든 힘 센 원수를 어찌 그리 쉽게 용서할 수 있는가.
내가 겪어온 어린 시절을 떠들어대며 공감을 요구하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편을 들어주는 척하다가도 슬쩍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일하면서 혼자 키우셨잖아. 얼마나 힘이 드셨겠어. 게다가….”
그들에게는 ‘게다가’의 다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얼마나 좋아, 돈도 잘 버시는데. 너는 어머니 덕에 먹고살 걱정 없잖아?” (10~11쪽)


유전되는 아픔, 똑 닮은 상처

《별빛 창창》 소설의 주요 공간 배경 중 하나는 ‘광혜암’이다. 이궉산이라는 외곽의 깊은 산속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이곳은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다. 암자 입구에는 부서진 성상들이 즐비하고, 건물 벽에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은 벽화들이 가득하다. 외관부터 수상한 이곳을 관리하는 스님 역시 어딘가 미심쩍어 보인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만 같은, 늘 같은 냄새가 나는 곳. 광혜암의 정체는 무엇일까?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서 아픔도 유전됩니다. 내 아픔은 슬프게도 이미 누군가 미리 겪었던 아픔일 가능성이 커요. 상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은 상처를 알아봐요.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 여기가 이상하게 못생겼다고 흘낏 보며 넘기지만, 경험이 있던 사람은 알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서 잘못 아물어 흉이 진 모양이라는 걸 안단 말입니다. 그 보살님들이 곽 작가님을 알아본 이유가 그거지. 자기 몇십 년 전 모습을 그대로 닮았었단 말이에요.” (234쪽)


꼬질꼬질한 삶과 창창한 꿈 어디쯤에서,
스물아홉의 질감은 늘 그랬다

《별빛 창창》은 꼬질꼬질한 삶과 창창한 꿈 그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실패와 성공 사이, 상실과 사랑 사이, 연민과 혐오 사이, 스물아홉의 질감은 늘 그랬다. 불안정하고 불명확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작가 설재인은 이들을 절망이 가득한, 혹은 희망이 가득한 삶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지금을 견디면 장밋빛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확언 또한 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조금씩이라도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만을 제시할 뿐이다. 주인공 곁에서 무슨 일이 있든 같이 웃고 우는 이들을 끊임없이 등장시키며, 우리에게도 인생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운명 공동체가 반드시 있음을 일깨운다. 이 모든 과정은 경쾌하고도 날카로운 문장 속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는 설재인의 세계에서 감추고픈 ‘꼬질꼬질한 나’와 긴 시간 ‘꿈꿔온 나’의 모습을 모두 마주한다. 다채로운 인물들로 복작이는 그의 소설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현실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기도 한 이유다. 꿈인 듯 현실인 듯한 설재인의 세계는 끝내 다정함을 향해 간다. 결국 그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길을 걷는 다정한 동행자다. 작가 설재인은 이 동행이 해피엔딩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함께 패배의 길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허나 세상이 우리의 길을 막고, ‘발을 잘라버린다면 어느 동화책에서처럼 춤추는 발이라도 세상에 내보내버리겠’다는 주인공 곽용호의 말처럼 운명 공동체가 있어 우리는 잘려버린 발로도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다. 비록 잘린 발들일지라도 깊고 창창한 별빛이 쏟아지는 길 위에서, 그 누구보다 창창한 꿈들을 품고 아주 ‘귀여운 춤’을 출 것이다. 서로를 토닥이는 마음으로. 우린 괜찮다고.

작가정보

저자(글) 설재인

주먹과 루틴 그리고 알콜성 음료 신봉자. 2019년 《내가 만든 여자들》로 데뷔했다.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사뭇 강펀치》,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붉은 마스크》《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우리의 질량》《강한 견해》《내가 너에게 가면》《딜리트》《범람주의보》《캠프파이어》《소녀들은 참지 않아》,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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