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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이주영 지음
오늘산책

2023년 12월 19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1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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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2.27MB)
ISBN 979119370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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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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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어른들의 언어가 아닌 아이들의 몸짓과 눈빛으로 나누는 이야기가 좋아 소아청소년과를 택한 젊은 전공의가 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소아응급실에서 아픈 아이들과 보호자들의 낮과 밤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소아응급실에서는 환자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매일 많은 사람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내일이 되기 전에 환자는 집으로 외래로 병실로 떠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매일 소아응급실에서 마주하는 찰나의 기쁨과 감사의 순간들, 안타까운 사연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아픔과 슬픔, 그로 인한 성장의 시간들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퇴근길이면 당직 일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과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지만 의료의 본질만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오롯이 전해지기를 소망하며...

저자는 응급실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은 때로 아이보다 엄마, 아빠임을 알고 그들을 위해 먼저 다정한 마음을 내어줍니다. 아직 아이 돌보는 법이 서툰 초보 부모들을 보며 똑같이 서툴렀던 자신의 초년병 시절을 돌아보고, 딸아이가 다쳐 의사가 아닌 보호자로서 응급실을 찾았을 때는 상대의 입장과 속도를 몰라 오해했던 시간을 돌아봅니다. 아이를 잃어 절망과 고통을 겪고 있는 부모들에게서 아버지의 어깨를 먼저 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병원 곳곳의 ‘무대 뒤’ 의사들, 매일 밤 잠든 아이와 가족을 위해 귀하디귀한 마음 한 조각을 기꺼이 떼어주는 간호사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도 잊지 않습니다.
학대아동을 진료할 때는 아픔과 미안함, 자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장애가 있는 아이의 아주 짧은 눈맞춤 한번에도 함박웃음을 짓는 엄마를 보면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입니다.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사라지고, 동네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닫고, 소아응급실이 더 이상 중환자를 받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소아 의료의 문제에 대한 고민도 아울러 나눕니다. 너무나 안타까워 언급하기조차 버거운 사안이지만 소중한 이 땅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픈 현실을 용기 내어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어른들의 역할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아이들 곁을 지키는 모든 어른들에게 한 팀이 되어보자고 내미는 다정한 두 손입니다.

그리고 끝내는,
왜곡되어가는 아이들의 환경과 우리나라 소아 의료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고자 용기 내어 건네는 불완전하지만 간절한 호소의 말들입니다.
작가의 말 7

1장
아주 보통의 육아

새벽 새벽 두 시의 공동 육아 13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7
오늘도 선을 넘는다 24
식탁 유리 속의 그림자 32
세 종류의 보호자들 40
아주 보통의 육아 44
언어의 사슬 47
하지 않아요 52
연기를 마신 아이들 57
아이에게 가르치는 내 몸 사용 설명서 62
응급실 환자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 69

2장
강 중류의 의사들

항해의 비밀 79
내가 되고 싶어 한 의사는 85
도망자 1 90
도망자 2 96
일을 쉽게 하는 최고의 방법 100
그날 이태원 106
강 중류의 의사들 111
드라마 속 의사들은 어디 있을까? 1 119
드라마 속 의사들은 어디 있을까? 2 126
Make a Wish 134
확률과 통계 141
괜찮다고 말해도 된다면 151
그 환자 못 받아요 156
두 달만 배우면 소아과 의사만큼 본다 160
자린고비의 약 165
1종 보통의 의사들을 위하여 171

3장
결정적 장면

무대 뒤의 의사들 179
명의를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 184
119를 불러주세요 189
가와사키의 밤 194
그가 의사였다면 200
중환자실의 해그리드 205
아주 특이한 일상 211
학대 아동의 분리 그리고 그 뒷이야기 215
나는 2차 가해자입니다 221
무지개를 위하여 225
결정적 장면 232
오늘도 배운다,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걸 235

돌아오지 않겠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아이를 오래 지켜본 의사들은 그 순간을 동시에 느낀다. 상한 아이의 몸이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영원히 아쉬울 부모의 마음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초라한 심폐소생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간은 특별히 더 천천히 흐른다. _19쪽

절망과 고통이 지배하는 시공을 마지막까지 추스르는 것은 대체로 아버지들이었다. 온정신을 부여잡으며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 슬픈 소식을 전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서류를 정리하고, 병원비를 결제하고, 영안실 직원과 장례 절차에 대해 건조한 대화를 나누는 일. 보이지 않는 사이에 아버지들이 해야 했던 그 많은 일들을 나는 어째서 몰랐을까. _22쪽

여러 일을 겪을수록 감정은 무뎌지고 복잡한 삶은 많은 기억을 지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아이를 잃은 부모의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어깨를 먼저 본다. _26쪽

한밤중의 소아응급실에서 때로 보살핌이 필요한 것은 아기보다 엄마, 아빠인 순간들이 있다. _38쪽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 5년째, 간격이 고른 계단처럼 착착 줄어드는 전공의 숫자는 똑같은 숫자로 착착 줄어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예고편이다. 아이의 혈색, 숨소리, 목소리 하나로도 위험을 잡아낼 수 있도록 수년에 걸쳐 이미 충분히 훈련된 전문의들마저 소아청소년과 진료 현장을 떠난다.
경험의 축적과 전수가 사라지는 소아청소년과, 노인이 사라지는 바다.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_84쪽

이건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치료하는 내내 사심 가득 담아 아이들의 보들보들한 손가락을 만지고, 상담하는 내내 욕심껏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에게 건강과 생명을 선물하는 일이고, 세상에서 우리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렇게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었다. _99쪽

드라마 속 따뜻한 마음을 가진 ‘슬기로운 의사’들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고 환자들은 호소하지만, 사실 그들 모두 현실의 말과 행동으로 병원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부디 현실 감각 없는 소아청소년과 마니아들이, 쓸데없이 공명심 넘치는 흉부외과 마니아들이, 태아의 심장 소리만 들어도 좋아 죽는 산부인과 마니아들이, 프라모델 오타쿠처럼 작은 장기와 선천성 기형에 집착하는 소아외과 마니아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_125쪽

여전히 의학은 불완전하고 사람이 하는 일은 어떤 것도 모든 순간 완벽할 수 없다. 그 자연과학의 법칙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누군가 나쁜 짓을 했으니 죽었을 것’이라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무의식이 의사들은 때로 두렵다. 언제부터인가 협력자가 아닌 적이 되고 만 의사와 환자 관계를 생각하면 슬픔과 안타까움, 공포와 주저하는 마음이 동시에 밀려온다.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일터로 나가고 아직은 내가 배우고 믿는 대로 일할 테지만, 이런 판결이 반복된다면 앞으로는 어쩌면 조금씩 더 비겁해지고 용기를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 _149쪽

법적으로 완벽하게 안전한 수술을 받을 것인가, 의학적으로 현실성 있는 최선의 수술을 받을 것인가.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나 합병증을 해결하려면 최고의 보상금이 필요한가, 최적의 후속 치료가 필요한가.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질문이 있고 우리는 어쩌면 답을 이미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_174쪽

몇 년 전만 해도 소아청소년 진료는 날마다 행복하고 기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는데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이제는 좀 지겹다.
다른 직업이라고 쉽겠는가마는, 힘들다기보다 슬프고 화가 난다기보다 상처받는 날들이 너무 많아졌다. 퇴근하는 길마다 쓸쓸하고 공허한 마음. 직업에 실연이라도 당한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축복일까 어리석음일까. _199쪽

나는 지금도 수많은 동료들의 도움과, 지원과, 응원을 받으며 환자들을 본다. 때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간혹 서로 욕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사이에 환자가 있을 때 우리는 진심이라는 것을. _209쪽

신고하거나 하지 않거나, 학대 가능성이 있거나 없거나.
나에게 주어진 선택은 그뿐 중간은 없다.
나는 오늘 그렇게 또 학대의 방관자 또는 동조자가 되었다. _224쪽

어떤 날은 희망을 말하고 또 어떤 날은 침묵해야 하는 나는, 이 순간이 그들에게 또 어떤 결정적 장면으로 남을지 몰라 애써 말을 고르고, 사진으로 상황을 이해시키며 눈물을 숨긴다. _233쪽

“아이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요.”
전공의 3년차였던 어느 가을, 소아중환자실의 보호자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그 말은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 _241쪽

작가정보

저자(글) 이주영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 소아응급의학과 세부전문의
현)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임상 조교수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했다. 전문의가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진료는 언제나 새롭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육아는 여전히 어렵다. 집에서는 사랑을 배우고 응급실에서는 삶을 배우며, 찰나의 기쁨과 스쳐가는 감사의 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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