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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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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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뿐 아니라 영화, 논픽션 등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한창 활약 중인 다섯 명의 작가들이 우리네 직장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를 들여다보았다. 신입 사원을 따돌린 채 서늘한 비밀을 공유하는 작은 회사의 구성원들을 그린 〈오버타임 크리스마스〉, 사연 많은 고택에서 정부 행사를 준비하는 공무원과 행사 실무자의 애환이 생생하게 담긴 〈명주고택〉, 근무 계약 연장을 간절히 바라는 30대 후반 싱글맘에게 닥친 차가운 현실을 조명한 〈행복을 드립니다〉, 상사의 횡포에 익숙해져 버린 사회 초년생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다룬 〈오피스 파파〉, 근무자의 삶보다 업무 효율을 추구하는 초대형 물류 센터의 비극을 담은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은 오싹한 호러 스토리인 동시에, 이 사회의 일터에 대한 날카로운 르포다.
명주고택 73
행복을 드립니다 129
오피스 파파 191
컨베이어 리바이어던 261
작가의 말 319
프로듀서의 말 337
팀장은 40대 남자 평균 비만율 57.7%에 일조하고 있는 배 나온 아저씨다. 하지만 주변의 모두가 팀장님은 동안이라고 외치는 가운데 나 혼자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때로 진실이란 다수결로 정해진다. 다수의 안에, 원하는 답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p. 21 〈오버타임 크리스마스〉
“괜찮은 곳을 아시면, 직접 섭외를 좀 해 주셔도 좋겠어요.”
그러자 이계보가 조금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런 거는 도청서 해결해야 안 되겠니껴.”
높은 톤의 목소리가 어쩐지 은희의 귓가에 따갑게 쐐기를 박는 느낌이었다. 어떤 게 도청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고, 어떤 게 시청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그런 게 쓰여 있는 규정이라도 존재한단 말인가.
p. 83 〈명주고택〉
“저는 이곳을 평생직장처럼 생각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아니, 무슨 평생직장이에요. 윤미 씨! 윤미 씨는 계약직이에요!”
윤미는 말문이 막혔다. 어떤 말을 하든 자신의 간절함이 통할 거 같진 않았다. 경준 팀장은 계약 연장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납득시키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자 윤미의 잘못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p. 158~159 〈행복을 드립니다〉
“이게 맞다고 생각해?”
강성필 팀장님이 물어보실 때마다 저는 늘 틀렸습니다. 이상하죠. 모든 문제의 답을 찍더라도 보통 하나는 맞힐 텐데 말이에요. 나중엔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신에 강성필 팀장님이 원하시는 대답을 유추해서 답하곤 했어요. 그래도 늘 오답이더군요. 강 팀장님 앞에서 저는 늘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근데 이게 꼭 강 팀장님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저는 늘 모든 것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p. 201~202 〈오피스 파파〉
딜리원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제품의 위생이었다. 제품에 닿는 부분의 위생을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신경 쓰는 것치고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생에 대해서는 기묘할 정도로 무관심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밥을 먹는 동안 헬멧들은 소독약을 뒤집어쓰고, UV 소독기에 들어갔다 나왔지만, 정작 사람들이 흘린 땀의 흔적은 얼룩과 냄새와 함께 남아 있었다.
p. 283 〈컨베이어 리바이어던〉
줄거리
〈오버타임 크리스마스〉
1년간 구직 활동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패션 회사에 입사한 유수빈은 사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전임자가 썼던 듯한 아이디로 자동 로그인된 메신저에 몰래 불만을 토로하며 버티는 중이다. 놀라울 정도로 대충 돌아가는 회사의 유일한 장점은 야근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인데, 유수빈의 사수 장현우의 말에 따르면 뭔가가 사무실에 ‘나와서’ 야근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장현우는 결국 말끝을 흐렸지만, 유수빈은 회사 앞 편의점 직원에게서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회사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눈치챈다.
〈명주고택〉
덴마크 여왕의 방한 소식에 외교부는 의전 행사로 경북의 고택 방문 행사를 추진한다.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경북도청 문화관광과 주무관 은희는 적절한 행사 장소를 쉽게 찾지 못한다. 안흥시청 이계보 과장에게 도움을 청해 봤지만 그는 은희가 서울 출신이라 같이 일하기 힘들다며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다. 그러던 중 명주고택을 추천하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은 은희는 후보지를 파악할 겸 명주고택에서 행사 업체 심사를 진행하기로 한다. 고택의 매화나무는 봄이 한창임에도 뒤늦게 꽃을 활짝 피웠고, 그 아래서는 제법 큰 개미가 개미귀신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시간이 기이하리만치 빠르게 흐르는 고택에서 심사 위원들은 밤을 맞이하고 만다.
〈행복을 드립니다〉
서른아홉 살 싱글맘 윤미는 가구 회사의 계약직 직원이다. 최근 들어 태도가 싸늘해진 팀장이 계약 연장 무산을 통보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12월 31일, 아이와의 여행을 준비하던 윤미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을 대체해 야간 근무를 서 달라는 팀장의 연락을 받고 여행을 취소한다. 윤미는 매장 문단속을 하던 중 폐가구 소각장 앞에 서 있는 두 아이를 발견하고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그사이 모습을 감춘 아이들 때문에 경찰들은 두 번이나 허탕을 친다. 이 일로 팀장의 질책을 받은 윤미는 아이들의 존재를 증명해 떨어진 신뢰도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윤미의 노력이 이어질수록 윤미의 외동딸 시영이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져 간다.
〈오피스 파파〉
가정 폭력범인 아버지에게 시달리던 민정은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광고 기획사에 입사한다. 수습 기간 내내 민정을 아꼈던 직속 상사 강성필 팀장은 수습 기간이 끝나 갈 때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아버지 못지않은 강 팀장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는 사이 민정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차곡차곡 쌓인다. 어느 날 광고 의뢰처 대표와 미팅을 하게 된 민정은 그 업체의 상품이 ‘사용자가 쓰레기로 인식한 것들을 모두’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이면의 공간으로’ 버리는 쓰레기통이라는 설명을 듣고, 괴로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을 떠올린다.
〈컨베이어 리바이어던〉
대학생 소민은 잃어버린 아이패드를 다시 살 돈이 필요해져 대형 쇼핑몰 딜리원의 물류 센터 아르바이트에 지원한다. 딜리원이 팀을 짜서 오래 일하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소민은 중고 거래 앱을 통해 윤주의 팀에 합류한다. 윤주의 가족이 모두 팀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민은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는 윤주네가 이상하다고 여기지만, 차마 사정을 묻지 못한다. 한편 물류 센터 앞에는 주기적으로 딸을 찾는다는 팻말을 든 아주머니가 나타나고, 소민은 윤주가 그 일로 매니저와 입씨름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직장, 괴담이 현실이 되는 곳
‘괴담’. 이치에 어긋나는, 상식 밖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가리킨다. 일상에서 괴담을 체험하기 가장 쉬운 곳이라면 아무래도 직장이다. 직장에서는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변하곤 한다.
신입 사원의 사수는 업무가 아닌 설거지 인수인계를 하고, 동료의 협조 요청을 받았던 직원은 바빠서 아무것도 처리하지 못했다는 말을 가볍게 던진다. 부하 직원의 기획서를 받아 본 상사는 이럴 거면 아예 일하지 말라며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기 바쁜데, 계약직 사원은 그런 상사가 있는 직장조차 붙잡아야 한다. 직원들의 삶이 이토록 고달프건만 회사는 고객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노라 약속한다. 모두 《오피스 괴담》 수록작에 담겨 있는, 실로 현실적인 사연들이다.
과감한 복수와 억울한 죽음이 드러내는 현실 세계 속 두려움
직장을 쉽게 그만둘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우리는 괴이한 일이라도 상상해 가며 울분을 삭여야 한다. 《오피스 괴담》 속 다섯 작품의 인물들은 불합리를 받아들이라는 압력에 순순히 끄덕이는 대신, 직장 생활을 망가뜨린 원흉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
복수의 양상은 호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통쾌할 정도로 과감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현실을 살짝 넘어서 있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대갚음은 어려운 일이다. 다섯 편의 수록작 전체에 억울한 죽음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의 업무 환경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선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가 자연히 그런 형태를 띠게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잘 만들어진 환상은 현실에 기반을 둔다. 작품집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어 보면 각 작품이 생생한 경험과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야기라는 도구를 통해 이 시대를 비춰 온 작가들의 통찰이, 지금도 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독자들에게 깊이 다가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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