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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고 바라옵건대

안전가옥 FIC-PICK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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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5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1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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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2.15MB)
ISBN 979119302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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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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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일곱 번째 책. 《원하고 바라옵건대》는 상상 속 동물인 ‘신수’ 즉, ‘신령스러운 짐승’을 소재로 쓴 다섯 편의 소설을 묶은 앤솔로지다. 2021년 《On the Origin of Species and Other Stories(종의 기원과 그 외의 이야기들)》로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 후보에 오른 김보영 작가를 필두로, 동시대 작가 중에서 가장 깊이 있고 개성 있는 작품을 쓰는 이수현, 위래, 김주영, 이산화 작가가 각각 ‘호랑이’, ‘용’, ‘맥’, ‘진묘수’, ‘곤’을 택해 SF와 환상문학, 역사소설과 모험소설의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고루 갖춘 수작을 완성했다.
때로는 무섭고 심술궂지만, 어떤 면에선 귀엽고 엉뚱하기까지 한 신수들과 당차고 솔직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다섯 편의 소설은 일상과 환상이 만나는 지점을 황홀하게 그려내며 더없이 새로운 독서의 경험을 선사한다. 인간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신수 또한 신수성을 잃지 않으면서, 겨울밤처럼 차고 명징한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김보영 〈산군의 계절〉
이수현 〈용아화생기(龍芽化生記)〉
위래 〈맥의 배를 가르면〉
김주영 〈죽은 자의 영토〉
이산화 〈달팽이의 뿔〉

작가의 말
프로듀서의 말

나도 엊저녁부터 잔치 한가운데서 배 터지게 얻어먹는 중이다. 물론 내가 배가 불러야 위험하지 않다는 마을 장로의 판단에서겠지만. 이 곰의 후예들은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짐승을 계속 먹여 대니 죽을 노릇이다. 더 미칠 노릇은 내 젖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이 환장할 갓난아기다.
‘으악, 으악’ 하고 비명이 나올 만큼 젖꼭지를 기운차게 빨아 대다가, 배불러 자는가 싶어 슬금슬금 도망치려 하면 어느새 눈을 번뜩 뜨고는 양손 양발로 젖을 꾸욱, 꾹 눌러 가며 쥐어짜서 기어코 한 방울이라도 더 뽑아내는 것이다. 빠는 기세가 무슨 바람신 풍백(風伯)이 강풍을 흡입하는 듯하고, 강신 하백(河伯)이 물줄기를 들이마시는 듯하다. 끄윽, 끄윽, 낮은 신음을 하다 어처구니가 없어 도로 풀썩 누우면 소매춤 추며 지나던 아낙 무리가 “어머, 애 먹이려면 유모가 든든하게 먹어야지” 하고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입에 턱 하니 물려 주고 간다. 똥개 취급도 이런 똥개 취급이 없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명색이 산신 중의 산신이라는 이 산군(山君), 밀우(密友)가 말이다.
p. 10~11 〈산군의 계절〉

“너는 누구냐! 내 집에서 뭘 하고 있지?”
“집이요?”
예쁜 초록색 사람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규의 물통을 내려다보았다. 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만약 용소에 정말로 주인이 있어서 물을 떠 가지 못하게 한다면 큰일이었다. 어떻게든 물은 떠 가야 했다. 당황한 규는 무턱대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 살려 주세요, 선녀님!”
“누가 널 죽인다더냐?”
초록색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선녀는 또 무슨 소리냐. 무례하기는. 용은 너처럼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대로 자라는 게 아니다. 당연히 성별 같은 것도 없다.”
규는 용이라는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용에 대해 아는 건 없었다. 가뭄에 속이 타들어 갈 때 가끔 마을 어른들이 용신 님을 부르는 것을 몇 번 들어 본 게 다였다. 이 못이 용소라고 불리는 이유도 본래 용이 살던 곳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p. 56~57 〈용아화생기(龍芽化生記)〉

“알고 계신가요? 옛날 옛적에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없었어요. 사람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꿈과 엉켜 살았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이 늘 좋은 꿈을 꾸는 건 아니라서, 사람의 꿈이 만들어 낸 신이니 괴물이니 요괴니 하는 것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못살게 굴었습니다. 신들은 사람을 인형처럼 가지고 놀고 용은 세상의 뿌리를 파먹고 거인은 벌레처럼 사람을 짓밟고 마녀는 아이들을 산 채로 솥에 넣고 도깨비들은 여흥으로 사람을 죽였어요.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희미한 상고시대를 들여다보면 사람이 신과 괴물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이 허다했다지요. 그건 모두 인간이 꿈과 분리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꿈 중에는 좋은 것들도 있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진 않았죠. 진짜 변화를 가져온 건 맥이었습니다.”
너는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맥이 꿈을 먹기 때문인가요?”
“네. 맥은 인간에게 해가 되는 신과 괴물과 요괴를 잡아먹었습니다. 나쁜 꿈을 잡아먹고 인간에게 이로운 꿈을 남겨 두었지요. 사람들은 점차 좋은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길 바라자 태양이 움직였습니다. 자신들을 지배해 줄 사람을 찾자 왕들이 나타났고, 떠나길 바라면 또 사라졌습니다. 세상을 재단하고 합리와 이성을 찾길 바라서 색목인을 상상해 냈습니다. 과학이 태동한 것도 모두 사람의 꿈이지요.”
p. 106~107 〈맥의 배를 가르면〉

“그래도 정 도와주고 싶다면 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생각에 잠겼던 무명은 할머니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랑 계약 맺을래?”
할머니가 불쑥 내뱉었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를 정화해야만 하는 진묘수는 때로 이승에 오래 머물기 위해 인간과 인연을 맺는 계약을 한다. 계약으로 이어진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진묘수는 자유롭게 이승에서 지낼 수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눈동자가 마치 무명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섬뜩했다. 그 눈 안에 도사린 것은 인간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뿌리를 둔 존재가 뿜어내는 소름 끼치는 마력이었다.
“내가 네 피를 조금만 빨면 되는데.”
무명은 순간 뭐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p. 154 〈죽은 자의 영토〉

다만 그 비늘 위에서 꿈틀거리는 회색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보아하니 흑삼릉이 베어 낸 철어의 촉수 토막 하나에 아직도 생기가 다하지 않은 듯하였다. 토막에는 주먹만 한 따개비가 하나 달려 있었기에 비늘에 스치면 작게 덜그럭 소리가 났는데, 그때마다 따개비 끄트머리에 이상하게 굼실거리는 움직임이 보여 흑삼릉의 시선이 문득 거기에 가닿았다. 자세히 보니 굼실거리는 것은 따개비가 아니라 그 주둥이 언저리에 빌붙어 살아가는 새끼손톱만 한 달팽이였다. 껍질은 투명하고 몸은 우유처럼 뿌연 것이 얼핏 보면 탁한 물방울이 묻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흑삼릉은 기이하게 여기고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더욱 기이한 것은 그 달팽이의 뿔에 있었다. 둥그런 머리 위로 튀어나온 두 자루의 뿔 끝에는 모래처럼 자글자글한 덩어리가 하나씩 붙어 있었으니, 뿔이 쑥 들어가면 와르르 흩어졌다가 올라오면 어느새 다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흑삼릉은 그 덩어리의 정체가 실은 아주 자잘한 게를 닮은 벌레들이 모인 것임을 곧 깨달았다. 즉 하나하나가 먼지만큼이나 작아 눈에 제대로 보이지조차 않는 미물들이, 곤의 비늘 틈에 사는 철어의 몸에 붙은 따개비의 주둥이에 둥지를 튼 달팽이의 뿔 위에서, 자기들이 구름 속에 있는지 바다 위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계속 바글바글 무리 지었다가 도망쳤다가 하는 것이었다.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그 모습을 한없이 응시하고 또 응시하던 흑삼릉이, 불현듯 깨우치는 바가 있어 속으로 가만히 혼잣말했다.
‘가장 커다란 곤의 일곱 배라. 저 작은 달팽이조차도 그 뿔에 빌붙은 게의 일곱 배보다는 훨씬 클 터인데, 고작 일곱 배라….’
p. 196~197 〈달팽이의 뿔〉

기묘하고 괴이한 다섯 편의 신수 이야기
안전가옥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일곱 번째 책. 《원하고 바라옵건대》는 상상 속 동물인 ‘신수’ 즉, ‘신령스러운 짐승’을 소재로 쓴 다섯 편의 소설을 묶은 앤솔로지다. 2021년 《On the Origin of Species and Other Stories(종의 기원과 그 외의 이야기들)》로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 후보에 오른 김보영 작가를 필두로, 동시대 작가 중에서 가장 깊이 있고 개성 있는 작품을 쓰는 이수현, 위래, 김주영, 이산화 작가가 각각 ‘호랑이’, ‘용’, ‘맥’, ‘진묘수’, ‘곤’을 택해 SF와 환상문학, 역사소설과 모험소설의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고루 갖춘 수작을 완성했다.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신묘한 존재들의 이야기
신수 이야기에서 인간은 대부분 신수의 영험함에 의해 구원받는 단순한 존재로만 그려진다. 하지만, 《원하고 바라옵건대》 속 인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다. 다섯 신수들이 제각각 역사의 한 장면과 현대의 동물원에서, 오래된 시골 마을이나 어느 허름한 슈퍼마켓에서, 심지어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옷을 입고 생동감 있게 등장하듯이, 그들의 짝으로 나오는 인간 또한 능동적이고 당차며 살아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신수와 인간은 상호작용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때론 적이었다가 때론 공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서로를 구원하고 성장시키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무섭고 심술궂지만, 어떤 면에선 귀엽고 엉뚱하기까지 한 신수들과 당차고 솔직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다섯 편의 소설은 일상과 환상이 만나는 지점을 황홀하게 그려내며 더 없이 새로운 독서의 경험을 선사한다. 인간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신수 또한 신수성을 잃지 않으면서, 겨울밤처럼 차고 명징한 주옥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인간인 우리는 신수를 통해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너는 내가 젖 먹여 키운 아이니, 오래오래 잘 살아야 한다.” (김보영, 〈산군의 계절〉)
동천왕의 어머니인 ‘후녀’와 ‘산군 밀우인 호랑이’의 이야기로, 산천의 주인인 위대한 ‘산군’과 더 없이 용감한 한 ‘소녀’의 긴 인연을 다루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산군 밀우’의 좌충우돌 후녀 육아기이기도 하고, 산군에게서 길러졌지만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목숨을 지켜내는 ‘후녀’의 생존 분투기이기도 하다. 또, 어떻게 보면 왕위를 둘러싼 왕후 우은현과 산상왕의 권력 쟁탈전 사이에 놓이게 된 ‘산군’과 ‘후녀’의 이야기이기도. 200여 년간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고, 인간들의 지리한 혈통 전쟁을 봐 온 ‘산군 밀우’이지만, 후녀의 사랑스러운 기백에는 두 손 두 발을 들고 항복하고야 만다. 그렇게 후녀는 ‘산군 밀우’의 젖을 물고 자라게 되고, 아홉 살 무렵에는 기척을 숨기고 냄새를 지우는 법도 배운다. 후녀가 어느 정도 크자 ‘산군 밀우’는 후녀와 조금 떨어져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그렇게 혼자가 된 후녀는 연고 없는 아이들이 주로 하던 수묘인이 되고, 어느 날엔 무당의 점지로 저승 시녀로 발탁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산군 밀우’의 “오래오래 살거라”라는 축복이 명령이 되어 후녀는 기지를 발휘해 잠시 시간을 벌게 된다. ‘산군 밀우’가 그다음 후녀의 소식을 들은 건 그녀가 스물둘이 되던 때다. 그리고 그때 후녀는 제사장이 놓친 교시를 잡아 왕과 마주하게 된다. 왕은 후녀에게 고구려의 태모가 되라고 하고, 왕후는 후녀를 쫓아 병사들을 보낸다. 그리고 그동안 왕후의 일을 해주었던 ‘산군 밀우’는 뒤늦게 후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후녀’는 무사할 수 있을까? ‘산군 밀우’는 무사할까? 뜨겁고 차가운 숨처럼, 소설은 전설의 고향처럼 읽히다가, 역사 드라마처럼 변신했다가, 무게감 있고 단정한 소설로 다가온다. ‘후녀’는 산다. 혈통의 전쟁과 여러 음모와 암투를 지나서.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용은 제가 태어난 곳을 이해한 다음에 허물을 벗고 날아올라야 하지.” (이수현, 〈용아화생기(龍芽化生記)〉)
가뭄에 시달리는 어느 마을. 청년 ‘규’는 평소처럼 가파른 산길을 올라 연못에 다다른다. 한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갑고, 한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신비로운 못 ‘용소’. 하지만 바로 그때, 규의 앞에 초록색 옷을 두른 사람이 나타나 호통을 친다. 자기 집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는 거다. 선녀인 줄 알고 고개를 조아리던 규에게 그는 자신이 선녀가 아니고 ‘용’이라고 말한다. 용은 신령한 동물이라, 화생(化生)을 한다. 즉, 처음부터 용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른 동물로 태어났다가 오랜 수련으로 몇 단계의 변화를 거쳐 용이 되는 것이다. 용이 될 자질을 타고난 짐승을 용의 싹이라 하여 용아(龍芽)라고 불렀다. ‘용아’가 이 용소에서 도마뱀으로 태어난 것은 벌써 몇백 년 전의 일이었다. 인간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지만, 용아의 성취는 아주 빨랐다. 무서운 속도로 훼룡이 되고, 교룡이 되고, 반룡이 되었다. 결국 마지막 단계인 승천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승천이 잘 되질 않았다. 승천에 실패해 꼴사납게 하늘에서 떨어지다가 만난 게 ‘규’였다. 우리는 ‘규’와 ‘용아’의 만남이 서로에게 원하는 걸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며 소설을 읽게 된다. 규에겐 ‘가뭄’이 용아에겐 ‘승천’이 그거다.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을 인간의 관점이 아닌 신수의 관점에서 끌고 간다. 소설의 끝에서 우리는 ‘규’의 비극적인 결말과 그런 ‘규’를 바라보는 ‘용아’의 시선을 통해, ‘신수’와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는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단순히 비극이라 부를 수 있을까. 희극인가 하면 역시 그렇지 않다. 모든 건 ‘인간’의 눈이 아닌 ‘신수’의 눈, 그러니까 ‘용’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기에.

“비참한 사람만이 꿈을 꾸잖아.” (위래, 〈맥의 배를 가르면〉)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을 가로지르는 다섯 사람이 있다. 그들의 발길이 닿은 곳엔, 코끼리를 닮아 툭 불거진 코와 하마를 닮아 투실한 몸뚱이, 그리고 곰처럼 둥근 귀를 한 아메리카 테이퍼가 있다. ‘맥’이라고 부르는. ‘너’와 동료들은 오늘 ‘맥’을 죽이러 동물원에 왔다. 월간지 기자인 ‘너’는 편집장에게 재미있는 기사를 써 내라는 압박을 몇 달째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너는, 자신들의 꿈이 상상 속 동물인 ‘맥’에 의해 잡아먹혔다고 믿는 ‘몽상가들’이라는 SNS 비밀 모임을 알게 되었다. 도시 전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출처가 명확했다. 너는 트위터에 맥 목격담을 지어내 트윗을 올렸고, 곧 DM이 왔다. 너는 아메리카 테이퍼의 꿰뚫린 아랫배를 살폈다. 아메리카 테이퍼의 배에선 피 대신 손가락이 나와 상처를 위아래로 잡아당겼고, 곧 끔찍한 것을 토해 냈다. 꿈이었다. 그리고 곧 온 세상은 꿈과 뒤섞였다. 〈맥의 배를 가르면〉은 ‘꿈’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너’일까.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꿈’이 아닐까. 죽음을 갈망하는 ‘나’와 한 번쯤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너’의 이야기는 맥의 갈라진 배를 통해 모래시계처럼 뒤집힌 채 서로를 비춘다. 소설을 쓸지, 다시 맥의 배를 가를지, 이제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누구의 몫일까?

“저승 일은 모르겠고.” (김주영, 〈죽은 자의 영토〉)
죽으면 대대로 저승사자로 일해야 하는 가문의 외동 손녀인 무명은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서 이젠 딸들도 대를 이어 저승사자로 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아끼는 손녀가 저승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무명은 이름을 바꾸고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어느 날, 배달 노동자로 일하던 무명은 한 아파트로 피자 배달을 가지만 주인여자는 피자를 시킨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 무명의 눈에 해골처럼 삐쩍 마른 대여섯 살짜리 남자애가 들어온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계속된다. 주문 실수라 생각한 무명이 영수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전화기 너머에서 한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방금 무명이 본 남자아이의 안부를 묻는다. ‘아이’는 학대를 받고 있었던 걸까? 피자를 시켜 무명에게 남자아이의 안부를 물은 여자는 누구일까? 무명은 끝까지 저승의 눈을 피해 살아갈 수 있을까? 이승에 있지만 무덤의 입구나 외곽을 지키는 신수 진묘수와, 운명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무명, 저승에서 망나니 취급을 당해 추방된 염라의 막내아들 연라까지. 〈죽은 자의 영토〉에는 이승과 저승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외로운 인물로 가득하다. 하지만 소설이 왜 이렇게 따뜻한지. 소설의 끝에서 우리는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수호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봉안람, 그건 대체 얼마나 컸어?” (이산화, 〈달팽이의 뿔〉)
세상에서 가장 큰 곤을 사냥하러 가는 두 침어꾼 청년의 이야기다. 북쪽 바다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사는데, 그 몸집이 고래의 갑절이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붕’이라고 부른다. ‘곤’은 이목구비가 없어 평생 바다 밑바닥에 사는데, ‘붕’이 되면 성질이 변해 남쪽으로 떼를 지어 날아간다. 그러면 해일이 덮쳐 마을은 삽시간에 쑥대밭이 된다. 그리하여 ‘곤’이 ‘붕’으로 날아오르기 전에 도로 가라앉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침어꾼’이다. ‘흑삼릉’과 ‘봉안람’은 침어꾼이 되기 위해 바닷가 마을로 가는 철마(기차)에서 처음 만난다. ‘흑삼릉’이 침어꾼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곤의 비늘과 위석을 팔아 부자가 되기 위해서다. ‘봉안람’의 이유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기술로 가장 커다란 곤을 가라앉힐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침어꾼이 되어 바다로 나간 두 사람의 눈앞에 보통 곤의 일곱 배나 되는 커다란 곤이 나타난다. 두 사람은 무사할 수 있을까? 무사히 ‘곤’ 사냥을 마치고서, ‘흑삼릉’은 부자가 되고, ‘봉안람’은 자신의 기술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작가는 바닷속에 거대한 몸집을 숨기고 있는 곤의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짐작하고 상상하게만 한다. 어떤 거대한 곤도 쓰러뜨릴 수 있는 ‘도룡칠규’라는 기술을 익힌 ‘봉안람’만이 오직 목격하고야 말지만, 설명만 나올 뿐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의 물고기를 떠올릴 뿐이다. 공포와 좌절을 느낀 ‘봉안람’과 봉안람의 만류로 인해 끝내 곤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흑삼릉’. 결국 두 사람 역시 ‘거대한’ 신수 앞에 놓인 작은 인간일 뿐인 걸까? 하지만, 그 거대한 존재를 마주하면서도 기어코 지극히 작은 ‘달팽이의 뿔’을 발견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리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거대한 것’이 정말 자신의 거대함을 알고 있을까? 자신이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알고 있을까? 거대한 바다에 비하면 ‘거대한 곤’ 또한 한낱 미물일 뿐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나라를 지키는 다섯 신수들
함께하면 유독 마음이 편해지는 동물들이 있다. 《원하고 바라옵건대》의 다섯 신수들도 읽고 나면 따스하게 다가온다. ‘호랑이’도 ‘용’도 ‘맥’도 ‘진묘수’도 ‘곤’도 모두 저마다의 따뜻함으로 우리 곁에 앉는다. 어릴 적 우리가 줄줄 외워 불렀던 TV 애니메이션 〈꾸러기 수비대〉의 십이지 동물들처럼, 어쩌면 《원하고 바라옵건대》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소설 나라를 지키는 다섯 신수 친구들의 이야기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작가정보

저자(글) 김보영

SF 작가, 2004년 데뷔 후 주로 SF를 쓴다. 작품 및 작품집으로 《저 이승의 선지자》,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역병의 바다》, 《얼마나 닮았는가》, 《다섯 번째 감각》, 《진화 신화》, 《종의 기원담》, 《7인의 집행관》 등이 있다. 2021년 《On the Origin of Species and Other Stories(종의 기원과 그 외의 이야기들)》로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저자(글) 이수현

작가이자 번역가. 인류학을 공부했고, 주로 SF와 판타지 등의 상상 문학을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일을 많이 했다. 소설가로서는 《이웃집 슈퍼히어로》,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우먼 인 스펙트럼》 등의 앤솔로지에 참여했고, 무속과 코스믹호러를 결합한 《외계 신장》, 민속 판타지 장편 《서울에 수호신이 있었을 때》를 출간했다.

저자(글) 위래

2010년 8월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미궁에는 괴물이〉를 게재하며 첫 고료를 받았다. 이후 여러 지면에서 꾸준히 장르소설을 썼다. 소설집 《백관의 왕이 이르니》를 출간하고, 웹소설 《마왕이 너무 많다》와 《슬기로운 문명생활》을 연재했다. 최근 경장편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가 나왔다.

저자(글) 김주영

황금드래곤 문학상을 받은 《열 번째 세계》, SF어워드 대상 수상작인 《시간 망명자》를 비롯하여 개인 단편선 《이 밤의 끝은 아마도》, 《보름달 징크스》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시간 망명자》 외 여러 단편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에 소개된 바 있다. 공동 작품집 《전쟁은 끝났어요》, 《별 별 사이》, 《국립존엄보장센터》 등에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SF동화 《문시티》를 출간했다.

저자(글) 이산화

SF 작가. 등장인물을 절망시키는 일을 아주 즐기진 않는다. 장편소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와 《밀수: 리스트 컨선》, 단편집 《증명된 사실》과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를 출간했고, 이외에도 여러 잡지 및 앤솔로지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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