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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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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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문장과 개성 있는 인물, 탄탄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구성이 돋보이는 디샤 필리야의 첫 소설집 『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이 놀라운 현상을 완전히 납득하게 만든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기시감을 주며 이어지면서 9편의 단편소설은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기독교 신앙의 교차성 문제를 밀도 있게 담아낸다. 필리야는 세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흑인 여성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겪는 여러 층위의 억압과 폭력 그리고 한계를 넘어서는 그들의 진짜 욕망과 자유로운 도약을 생생하게 그린다. 오직 작품의 힘만으로, 우리에게 매섭도록 매혹적인 충격을 선사하는 이 책은 분명 미국 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힘차게 알리고 있다.
안-대니얼 … 027
자매에게 … 035
복숭아 코블러 … 065
강설 … 111
물리학자와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가 … 137
자엘 … 165
기독교인 유부남을 위한 지침 … 207
에디 레버트가 올 때 … 225
감사의 말 … 253
옮긴이의 말 … 256
율라는 진짜 신자다. 나처럼 목구멍에 미적거리는 질문들이 가득한 채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밤 율라는 내 손가락을 그 하얀 면 팬티 안으로 끌어들이고 보아스는 완전히 잊었다.
본문 16쪽
율라는 몸을 돌려 나를 마주본다. “나는 그냥 행복해지고 싶어.” 율라가 흐느낀다. “그리고 정상적이고.”
나는 둘 사이의 틈을 좁히고 싶고, 그애를 끌어당겨 눈물이 멈출 때까지 그애 몸을 흔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한다. 나는 다 괜찮게 만들 수가 없다, 그애가 원하는 대로는.
“누구에 따른 정상, 율라? 죽은 지 수천 년 된 남자들? 노예제가 멋진 거라 생각하고 여자를 소유물처럼 다룬?”
“성경은 하느님의 오류 없는 말씀이야.” 율라가 소곤거린다. 소곤거림이 이렇게 도전적일 수 있나 싶다. 본문 23-24쪽
“나는 하느님에게 의문을 품지 않아.”
“하지만 이런 식의 하느님을 너에게 가르친 사람들에게는 의문을 품어야 할지도 모르지. 그게 너한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니까.” 본문 24쪽
“그 인간은 우리를 가질 자격이 없어.” 우리 엄마가 스테트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거든. 나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그 사람은 우리를 가질 자격이 없다. 하지만 르네는 그렇게 믿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 자기가 무엇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자신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 본문 45쪽
욕망으로 인한 메스꺼움. 그 말이 지난주 식료품점에서 구한 쓰레기 소설의 페이지에서 올라와 마음속에 기름처럼 검고 미끌미끌하게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욕망이 넘치면 거기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욕망이 우리를 저 아래 바닥까지 끌고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본문 91-92쪽
이 모든 일로 인해, 하느님은 자기 피조물이 비극에 갇히고 얽힌 채 방방 뜨며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하는 속이 꼬인 꼭두각시 조종자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본문 96쪽
엄마는 나를 위해 모든 일을 했고 자신을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여름날의 아름다운 누비이불처럼 숨막히는 것, 몸에 스치면 쓸리고 계절이 바뀌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에나 아쉬운 것이었다. 본문 122쪽
남자들이 어떻게 너를 선택했고, 네가 오랜 세월 그 관계에 어떻게 헌신했는지, 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네가 네 몸안에서 완전히 편한 적이 없었다는 거-상담사 덕분에 정리가 되었던 생각. 너는 그에게 그 남자들이 자기 몸에 더 편하고 스스로에게 더 자신이 있고 더 예쁜 여자를 찾아 너를 떠나기로 할 때까지 너는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본문 145쪽
오늘 교회에서 목사 영감은 우리가 구원을 얻어야 하고 천국에 가고 싶으면 죄가 되는 육신의 쾌락을 포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오로지 구원받는 얘기만 하고, 죄에 관해 잔소리하고, 교회에만 가는 것 같다. 교회는 지옥처럼 지겹고, 그래서 그냥 스위트 세이디를 지켜보면서 그녀의 섹시한 몸과 은밀한 과거 생각만 한다. 본문 181쪽
여자로 가득한 가족, 그리고 우리는 남자들과 최악의 시간을 겪었지. 좋은 남자들은 젊어서 죽었고 끔찍한 남자들은 어서 죽어주기를 바랄 만큼 오래 살았어. 하느님 저를 용서하소서. 본문 199-200쪽
당신은 그 여자를 알지만 나는 여자들을 안다. 당신은 당신이 바람을 피우는 걸 알면 그 여자가 화를 내거나 실망할 거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어떤 부인들은 오히려 안도한다는 걸 알면 당신은 놀랄지도 모르겠다. 당신 부인은 아마 당신이 욕구를 다른 데로 가져가서 얻게 된 평화와 고요에 감사할 것이다. 그 여자는 사실 지금도 섹스를 원할 수 있다. 단, 당신하고는 아니다, 더는 아니다. 본문 215쪽
옛말이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기르고 아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엄마는 누가 사랑해준 적이 있을까, 자식들 외에? 엄마는 교회와 금욕생활에 헌신했음에도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평화,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면 우리 것이 된다고 하는 그 평화를 결코 누리지 못했다. 성경에서 약속하는 그 기쁨, 말할 수 없는 기쁨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얻은 것은 예수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길은, 딸의 상상으로는, 너무 덧없어 어떤 갈증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는 엄마가 침대로 들이는 남자들보다 더 조용하고 수동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요구하는 연인이었다. 본문 245쪽
온몸으로, 떨면서, 넘쳐나게, 두려움 없이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길어낸 강력한 욕망
필리야는 ‘순정한 교회 여자들’이라는 허울좋은 프레이밍 뒤에 숨겨진 현실과 그들의 진짜 욕망을 거침없는 문장과 절묘한 형식으로 까발린다. 『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에는 새로운 욕망을 발견하는 여성들이 있다. 교리에서 어긋난 욕망, 위험하고 낯선 욕망,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욕망을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순간, 이들은 당황하고 때론 절망에 빠진다.
「율라」에서 소꿉친구인 율라와 캐럴레타는 세계가 혼란에 빠진 새로운 밀레니엄의 밤, 여느 때처럼 둘만의 밀회를 즐긴다. 두 사람은 매년 제야가 되면 호텔에서 육체적 친밀감을 나누지만 독실한 신자인 율라는 그들의 관계가 신 앞에 죄악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밤이 지나면 언제나 모든 것이 실수였으며 자신은 여전히 동정이라고 말한다. 한편 「물리학자와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가」의 라이라는 엄격하게 자유를 통제하는 기독교도 어머니 아래서 자라 마흔두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몸이 낯설다. 학술대회에서 만난 물리학자 에릭과 서로 마음이 통하지만, 그가 원하는 걸 자신이 줄 수 없으리란 생각에 관계를 진전시키기 꺼린다. 「안-대니얼」에서 암 투병중인 어머니를 보살피는 ‘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유부남과 호스피스 센터 주차장에서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된다. 중학교 동창인 대니얼을 닮았지만 대니얼은 아닌 ‘안-대니얼’과 비좁은 차의 뒷좌석에서 몸을 움직이면서도 ‘나’는 비참한 현실을 완전히 잊기가 힘들다.
믿음과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망설이는 자들의 이야기는 비단 ‘교회 여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가, 종교가,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온 이들이 그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서서히 알아갈 때, 익숙한 세계는 분열되고 새로운 충격이 찾아온다. 그러나 날것의 자유를 맛본 자들은 이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책을 펼친 우리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처럼.
“내 인생은 절대 엄마 인생하고 같지 않을 거야.
아름다울 거니까, 부스러기가 아닐 거니까.”
은밀한 비밀들은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엄마에게서 다시 그 딸로 전해지며 계속되고 변화한다. 필리야는 짧은 분량 속에 촘촘하게 서사를 구성해 사회적, 종교적 억압과 폭력이 여성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답습되는지, 또 모녀를 비롯한 여성 집단이 어떻게 그 틀에 갇히거나 그 틀을 깨고 나오는지에 대해 그린다.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애증과 죄책감, 상실감과 같은 복잡하고 인간적인 감정들은 때로는 일기로, 편지로, 지침으로 생동감 넘치게 전해진다.
「자엘」에서는 증손녀인 자엘의 일기와 외증조모 시점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아이가 태어나면 대대로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독실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엘은 목사 부인인 세이디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 외증조모는 그런 자엘을 걱정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자 모든 일에 대해 함구하며 자엘을 보호한다. 외증조모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딸과 손녀를 생각하며 자엘은 적어도 남자아이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자매에게」의 네 이복자매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할머니 집에 모인다. 이들은 세 명의 여자와 네 딸을 낳고도 평생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에게 또다른 숨겨진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도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리려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복숭아 코블러」의 올리비아는 외딴 빈민가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간다. 어머니는 월요일이면 찾아오는 ‘하느님’을 위해 정성스레 복숭아 코블러를 준비한다. 그가 코블러 접시를 비우고 두 사람이 침실로 들어가면 여지없이 어머니의 “오, 하느님!” 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하느님’이 교회의 유부남 목사라는 걸 알 만큼 올리비아가 자란 뒤로도 어머니와 목사의 부정한 관계는 계속되고, 고등학생이 된 올리비아는 목사의 아들에게 과외를 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복숭아 코블러를 만드는 엄마는 결코 딸에게 레시피를 전해주려 하지 않는다. “달콤함을 맛보면 그걸 너무 원하게 되고, 자라서 그 부스러기나 맛보면서 살 테니까”라고 말하며 코블러의 맛조차 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밤중에 부엌에 몰래 내려가 쓰레기통 바닥에 붙은 코블러를 핥아먹는 여자애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원망과 절망과 공포가 있지만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구원도 남아 있다. ‘구원받기’를 거부한 여성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과 투쟁하며 끝끝내 저마다의 짜릿한 전락을 맞이한다. 여기 살아 숨쉬는 비밀들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합창은 사랑과 삶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다. 그 기분좋은 덜컹거림을 기대해봐도 좋다.
작가정보
Deesha Philyaw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자랐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일을 관두고 전업 작가로 전향했다.
첫번째 소설집인 『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2020)은 세대를 넘나드는 흑인 여성의 삶을 생생히 그려내며 그들이 겪는 여러 층위의 억압과 폭력에 대해, 그리고 이에 맞서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찾아가는 그들의 자유로운 도약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민하고 대범한 9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이 작품은 발표 직후부터 평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펜/포크너상, 스토리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트 세덴바움 상을 수상했으며, HBO Max에서 드라마로 제작할 예정이다.
번역가로 활동하며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옮긴 책으로 『로드』 『선셋 리미티드』 『신의 아이』 『패신저』 『스텔라 마리스』 『제5도살장』 『바르도의 링컨』 『호밀밭의 파수꾼』 『에브리맨』 『울분』 『포트노이의 불평』 『미국의 목가』 『굿바이, 콜럼버스』 『새버스의 극장』 『아버지의 유산』 『사실들』 『왜 쓰는가』 등이 있다. 『로드』로 제3회 유영번역상을, 『유럽문화사』로 제53회 한국출판 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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