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
2023년 12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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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2638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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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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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
작가의 말
어떤 자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타인을 죽이지요. 그리고 어떤 자는 타인을 살리려고 습관적으로 자신을 죽이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 인간을 완전히 죽이거나 살려낼 순 없는데,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미 반쯤 죽은 채로 살아 있기 때문이죠. _ p. 22
한 인간이 저지른 죄악이 여러 인간의 운명을 강제로 바꾸어놓는 이상, 결코 어떤 인간도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줄이거나 없앨 수 없죠. _ p. 69
만약 미래의 누군가가 이 책을 우연히 읽고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면, 이는 그의 주변에 너처럼 잔혹한 죄를 저지른 가해자와 나처럼 처참하게 파괴된 피해자가 많이 살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정당한 처벌과 용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_ p. 173
신은 인간을 절망시키기 위해 운명을 발명했다고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실패하는 과정만이 곧 인간의 운명이죠. 작은 성공은 큰 실패를 위한 미끼일 뿐이에요. 작은 실패 덕분에 더 큰 실패를 견뎌낼 수 있게 된 것이니, 모든 인간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그래요, 이 괴상망측한 몰골은 모두 제가 디자인한 것이지요. 운명보다 먼저 달려가서 더 큰 규모로 실패하지 않는다면 악행과 유랑을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런 몰골을 하고 있어야 노동이나 납세의 의무를 감당하지 않은 채 공공 보호시설 안에서 여생을 편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죠. _ pp. 191~192
네가 처벌을 견뎌낸 뒤에도 내가 감지하고 있는 고통은 여전하다. 처벌은 죄악을 옮기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기억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피해자나 하느님을 대신해 가해자를 처벌하겠다고 약속한 법률가들은 가해자가 저지른 죄악보다는 그걸 증명하는 논리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수준의 형벌을 선고하고 말았다. _ p. 253
십삼 년 전 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강렬한 생명력에 사로잡혔다. 십삼 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기운에는 헌신 대신 파괴의 열정이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사제들과 수용인들을 총동원해 너에게 복수를 은밀히 준비했고 완벽한 성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_ p. 273
세상을 탐독하는 작가가 직조해낸 알레고리의 세계
세상에 대한 지독한 성찰로 삶의 아이러니를 그려내는 작가 김솔이 새롭게 펼쳐낸 이야기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절망적이다. 그의 묘사대로 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동원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기에 삶은 허망하고 끔찍하며 억울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위해 습관적으로 타인을 죽이는 인간과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인간들이 벌이는 악의 소굴 같은 세상에서 인간은 아직 닿지 못한 세계를 놔두고 삶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죄악에 의해 여러 인간의 운명을 바꾸며, 인간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는 명징한 진실과,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상처만 불어나는 세상에서 죗값에 대한 정당한 요구가 한 편의 복수극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김솔 작가가 세상의 끝을 향해 가는 인간들을 나열하며 각종 수사와 장광설을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허무를 지우고 초월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성취하고 누리는 삶이 아닌 온전히 이야기로 남은 사람들의 삶은 소설의 존재 이유마저 드러낸다. 인생의 포악함과 아이러니는 인간 자체의 어리석음을 통해 웃음을 빚어내고, 그들을 향한 세심한 통찰은 겹겹의 알레고리 속에서 가장 소설적인 작품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신은 인간을 절망시키기 위해 운명을 발명했고 모든 인간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신의 농담과도 같은 시험대에서 그 고약한 장난에 당황하지 않고 존엄하게 대처하고 싶은 하나의 격식으로서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를 쓴 자가 아니라 읽는 자일 것이다.
천 시간 안에 한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설계된 숨 막히는 복수극
총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홀수 장과 짝수 장이 화자를 달리한다. 숨겨진 상징을 찾는 것 이상으로 분리된 이야기의 아귀를 꿰맞추어 온전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일이 독자들에게 내맡겨진다. 주사위처럼 두 면이 바라보는 구조로 여섯 개의 침대가 마주 보고 있는 ‘겟세마네’라고 불리는 중증환자실에 하나의 침대가 더해진다. 실명을 알 수 없는 가운데, 파블로, 페드로, 후안, 필리페, 앵무새, 다묵장어, 안드레 일곱 명의 기구한 경험과 현재 상태가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정체를 숨긴 한 피해자는 십삼 년 전 처절한 배신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이 중증환자실에 가해자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말간 얼굴로 또 다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스스로 걸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누구보다 가해자의 성정을 잘 알기에 예술적 기질에서 착안해 세상으로 향한 뇌관을 스스로에게 겨눌 수 있도록 자극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장광설을 뽐내는, 붉은 라디오로 통하는 파블로를 통해 끊임없는 이야기로 허영심을 부추기고 영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다시 일탈을 감행하도록 폭동을 일으키도록. 그리고 그사이 앵무새와 다묵장어를 통해 가해자의 망각을 일깨울 단서들을 흘린다. 망각의 퍼즐을 맞춰 스스로 파멸하게 할 제삼의 시나리오와 함께. 하지만 제일 시나리오는 파블로의 탐욕으로 누설되고 제삼의 시나리오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실패를 예상한 제이의 시나리오 속 암살자가 준비하고 있기에 소설은 끝을 향해 갈수록 숨 막히는 흐름과 계산이 발동되며 소름 돋는 결말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벌주고 싶은 마음과 이로부터 탄생하는 생명력 사이에서 인간을 향한 내밀하고 집요한 증오와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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