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꼭두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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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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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경외감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하리라 _손보미(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줌파 라히리, 줄리언 반스, 조이스 캐럴 오츠 등 동시대를 견인하는 작가들의 작가인 윌리엄 트레버의 장편소설 《운명의 꼭두각시》가 출간된다. 이는 《비 온 뒤》《여름의 끝》《루시 골트 이야기》《그의 옛 연인》《밀회》에 이어 한겨레출판이 펴내는 트레버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윌리엄 트레버는 2016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하는 최고의 단편작가’로 칭송되었으며, 휫브레드상, 오헨리상, 래넌상, 데이비드 코언상, 왕립문학협회상 등 다수의 영예로운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부커상과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수차례 거론되며 현대 영문학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운명의 꼭두각시》는 섬세한 문장으로 인간사 고독과 인생의 비참을 그려내면서도 끝내 구원의 실마리를 부드럽게 선사하는 윌리엄 트레버 문학의 마중물이자, 《여름의 끝》《루시 골트 이야기》《펠리시아의 여정》에 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출간 즉시 휫브레드상을 받은 이 작품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윌리엄 트레버의 최고작”이라 평했다. 영화 《레 미제라블》(1998)을 만든 사라 래드클리프(Sarah Radclyffe) 제작, 팻 오코너(Pat O’Connor) 연출로 영화화되었다.
메리앤
이멜다
윌리
메리앤
이멜다
옮긴이의 말
윌리엄 트레버 연보
1983년. 잉글랜드 도싯의 우드컴 파크 대저택은 삶의 활기로 가득하다. 다소 소박한 아일랜드 킬네이 주택은 무덤처럼 고요하다. _9쪽
난 킬네이의 비극은 완전히 끝났다고 내내 생각했다. 날마다 그 비극을 상기시키던 미스 할리웰도 없고 저녁마다 잘 자라고 인사를 나누는 어머니도 없었다. 킬개리프 신부에 따르면 고모들은 또 다른 개들을 모았고 철쭉은 여전히 꽃을 피웠다. 데렌지 씨는 제분소가 변한 게 거의 없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언젠가 난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언제라도 킬네이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_131쪽
“놓치지 마, 윌리.”
“뭐를요?”
“너의 사랑. 선물 같은 거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_182~183쪽
당신 방 앞에 선 나는 아주 가볍게라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었다. 모든 두려움과 도덕이, 세상의 모든 잣대가 내게서 사라졌다. 난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이 알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 당신이 적어도 약간의 위안을 얻을지 모른다는 것 말고는. _198쪽
제발 날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오, 윌리, 난 여전히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그 단어들은 쓰일 수 없었다. 그것들은 대화에 속했지만 대화는 불가능했으므로. 이 모든 것은 형벌, 떠나지 않는 공허, 두려움, 앞으로 다가올 세월의 예측 불허였다. _219쪽
킬네이는 그 어느 때보다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난 다른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았다. 반쯤 탄 집이 아무리 음울해도,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아도 당신이 거기에 속했으므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었다. 내 존재의 모든 세부, 내 몸의 모든 혈관, 모든 흔적, 내 모든 친밀한 부분이 눈을 감고 쓰러지고 싶게 만든 그 부드러움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_264쪽
나의 딸이 킬네이에서 미쳐버렸는데도 조세핀은 내가 돌아가기를 바랐다. 일찍이 아일랜드에서는 미친 사람들이 일종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일랜드에서 전설적 인물은 거의 날마다 탄생한다. _327쪽
군인들의 학살 이후 킬네이가 그랬듯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_330쪽
단지 사랑했을 뿐인데 몰락해버린 한 가문의 비극
잔혹한 운명을 향한 애절하고 경이로운 이야기
여기 운명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휘말린 사람들이 있다. 아일랜드 소도시 페르모이, 킬네이라 불리는 저택에 사는 퀸턴가(家). 19세기 초 영국 여성과 아일랜드 남성이 만나 이룬 퀸턴가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국경을 넘는 사랑으로 대를 이어 존속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고조되는 독립투쟁을 막고자 영국은 속칭 ‘블랙 앤드 탠즈’를 아일랜드에 파견하고, 그들의 첩자가 킬네이 저택 나무에서 혀가 잘린 상태로 목매달린 채 발견되면서 잔혹한 운명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악명 높은 블랙 앤드 탠즈가 첩자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한밤중 킬네이를 급습하고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다. 아홉 살이던 주인공 윌리 퀸턴은 여동생과 아버지, 퀸턴가의 사람들 전부를 잃고 폐허가 된 킬네이에서 도망쳐 알코올중독자인 어머니와 불안한 생활을 이어간다. 끝나지 않는 악몽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던 윌리는 어느 날 찾아온 영국인 외사촌 메리앤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반복되는 운명의 장난, 운명의 꼭두각시들처럼 메리앤은 윌리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또 한 번 쓰라린 상처를 마주한 윌리가 돌연 자취를 감추며 다시금 비극의 서막이 메아리친다.
군인들의 학살 이후 킬네이가 그랬듯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_330쪽
참담한 세계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고결한 용기
아일랜드인의 슬픔을 기리는 트레버의 따스한 시선
〈워싱턴포스트〉는 《운명의 꼭두각시》를 “강력하고 지울 수 없는 아일랜드의 애환을 부드럽게 기리는 용기와 사랑의 이야기”라고 평했다. 실제로 작중 퀸턴가의 고장인 코크주 출신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남자친구를 찾고자 홀로 고독한 여정을 떠나는 아일랜드 소녀 펠리시아(《펠리시아의 여정》), 아일랜드 군인 출신 골트 대위의 실종된 딸 루시(《루시 골트 이야기》)의 서사를 통해 그 시절 아일랜드 구성원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세계를 묘사해왔다.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끝없이 이어지는 남북전쟁,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을 향한 초법적 살인과 탄압. 그 이야기의 본령과도 같은 《운명의 꼭두각시》는 잔학한 운명 앞에서도 살아남기를 포기하지 않는 안쓰러운 인물들과 그를 향한 트레버의 따사로운 시선을 찬연한 문장들로 선보인다. 한순간에 몰락한 퀸턴가, 사라진 사랑을 찾아 폐허에 발을 들인 메리앤, 살인자가 되어버린 윌리, 부모의 과거를 알고 미쳐버리는 딸 이멜다. 그들의 삶은 예고된 비극으로 질주하는 듯하지만 그 면면에는 퀸턴가의 아픔을 보살펴주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있고 폐허의 한 자락에 보금자리를 일구는 사람들의 온정이 자리한다. 냉혹한 운명 위로 쏟아지고야 마는 섬세하고 가식 없는 한 줄기 희망.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트레버의 소설을 읽으며 체감하는 “특별한 포옹”의 순간이며, “운명이 우리에게 비극을 가져다줬을 때, 기대한 적 없고 꿈꾸는 것과 정반대의 삶을 선사했을 때”(손보미 소설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용기 있는 대답이기도 하다.
난도질당한 삶, 믿을 수 없는 상실, 마음의 궁핍.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운명의 꼭두각시》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가혹한 운명이 모든 것을 태워버린 후, 어떤 위로나 용서가 불가능할 것 같은 참담한 세계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들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멈추지 말라고. 그 외롭고도 고결한 응시 끝에 결국 당신의 마음속 한 줄기 빛처럼 쏟아지고야 마는 “특별한 포옹”의 순간. _손보미(소설가)
트레버의 네 번째 장편소설 국내 초역
경이로운 문학적 체험, 한겨레출판 윌리엄 트레버 컬렉션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선한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인 소설집《비 온 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여름처럼 피어난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여름의 끝》, 고독한 운명에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여인의 전설을 그린 장편소설《루시 골트 이야기》, 평범하지만 남보다 조금 더 선한 사람들의 속죄와 자기희생의 슬픔을 담은 소설집《그의 옛 연인》, 슬퍼할 수 없고 애도할 수 없는 사랑의 잔재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비밀을 속삭이는 소설집《밀회》까지. 그간 한겨레출판은 국내에 번역 출간된 여덟 권의 윌리엄 트레버 도서 중 다섯 권을 펴냈다. 한겨레출판의 이 컬렉션을 부지런히 따라 읽어온 독자들은 ‘연달아 읽어도 어김없이 좋은 시리즈’이자 ‘트레버에게 쏟아지는 상찬에 가장 맞춤한 책들’‘한겨레출판의 트레버라면 믿고 살 것’이라고 평했다. 트레버 초기 문학인 《운명의 꼭두각시》 역시“군더더기 없는 적확하고 생생한 묘사, 흔들림 없이 정밀한 인물 설정, 칼같이 예리한 동시에 불가사의한 부드러움”(무라카미 하루키)의 재능으로 세대에 걸친 사랑과 비극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윌리엄 트레버는 독자의 지성과 상상력을 어떤 작가보다도 존경하는지라 소설에는 많은 여백이 있다. 그 여백들은 우리를 침잠하게 만든다. _〈옮긴이의 말〉에서
언제나 그렇듯 트레버의 소설은 한 번의 읽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엔 이야기를 상상하며 가만히 따라가는 자세로 읽고 그다음엔 김연 번역가의 말처럼 우리를 침잠하게 만드는 감정과 생각에 골몰한다. 그러고 나면 인생의 순간순간 머물게 될 문장과 장면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령 무자비한 풍파를 겪은 뒤 조용히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체온을 나누는 사람들의 다감한 모습 같은 것. 책장을 덮고 나서도 가시지 않는 아름다운 여운, 이 경이로운 문학적 체험은, 트레버의 문장을 긴 호흡으로 찬찬히 음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의 작품을 기다려온 독자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옮긴이의 말
주인공 이름이 윌리, 윌리엄이라는 게 특별하다. 작가의 이름이 윌리엄이므로. 소설에도 등장하는 코크주 미첼스타운 출신인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독자의 지성과 상상력을 어떤 작가보다도 존경하는지라 소설에는 많은 여백이 있다. 그 여백들은 우리를 침잠하게 만든다. 제국주의 영국과 식민지 아일랜드, 정의(正義)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 독립을 놓고 입장의 차이로 벌어진 내전, 선함과 자비의 결과로 맞게 되는 비극, 상처와 그 치료를 향한 긴 여정, 성인(聖人)들의 삶에 드리운 공포와 비극…….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윌리의 퀸턴 가문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모두처럼, 윌리 아버지가 타인들에 관해 즐겨 사용하는 ‘운명의 꼭두각시’들이 되어간다. _김연(옮긴이)
작가정보
(William Trevor)
1928년 아일랜드 코크주 미첼스타운에서 태어났다.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수학하고 1954년 영국으로 이주, 1964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 이후 휫브레드상(현 코스타상) 3회, 오헨리상 4회, 래넌상, 왕립문학협회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고, 다섯 번의 부커상 후보 외에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론되었다.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대영제국 훈장 사령관 수훈을, 1994년 문학 훈위 칭호를 받았으며, 1999년에는 영국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코언상을 수상했다. 2002년 평생의 업적과 공헌에 대하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이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로 손꼽았으며, 아일랜드의 대통령 마이클 히긴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우아함을 지닌 작가’로 표현한
바 있다. 2016년 11월 20일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수백 편의 단편과 18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대표작으로 《비 온 뒤》 《여름의 끝》 《루시 골트 이야기》 《그의 옛 연인》 《밀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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