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꽃뿌리이끼

이아영 지음

불교문예출판부 2023년 11월 3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이아영 시인의 시편들은 포행하듯 세속을 거닌다. 거닐며 참회를 하고, 마음을 맑게 씻는다. 이아영 시인의 시 속 자연과 생명 존재는 환생한 그것이요, 정경과 현상과 행위는 관觀하는 대상으로서의 그것이다. 특히 소리 또한 관하는 대상으로서 수행적 차원에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포행하는 시이면서 흡사 벙근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얻게 되는 환희심 자체이며 법法의 향기 가득한 도량이다. 시인이 “뜨락 너머 저만치 단풍나무 한 그루/ 연기 한 점 없이 꽃불 피운다”(⌜한낮의 독백⌟)라고 노래할 때, 또 “아카시아 꽃향기 무애춤 추면서/ 홍진 껴안고”⌜5월의 화답⌟)라고 노래할 때에는 불교적 통찰에서 태어난 시의 새롭고 쾌적한 진전을 보여준다.
― 문태준(시인) 

목차

차례

1부 별꽃뿌리이끼

세심각洗心閣
보리암 풍경 또는 관음
아욱꽃
별꽃뿌리이끼
춘분에 핀 목화송이
생의 춤
시화詩畵
돌꽃
산호 귀고리
종소리
낮달의 그림
덜꿩나무
쥐똥나무꽃


2부 팬데믹 뜨락

팬데믹 뜨락
바다의 파수꾼
숨 쉬는 꽃
보리밥집
체중계
모성애母性愛
아미蛾眉의 꿈
빈 의자의 생각
뻐꾹새 통곡
강아지풀
경칩驚蟄
루드베키아
오디의 꿈


3부 풍경소리 보다

풍경소리 보다
가을 붙잡는 긴 머리 소녀
꽃문
헛꽃
엑소더스
배롱나무
만추
예약 미용실
비몽사몽非夢似夢
꽃무덤
독감
한낮의 독백
밤송이
대왕꽃기린


4부 나의 둥지 꽃기린

묘법妙法 한 수저
사철패랭이꽃
거북이 마스코트
구묘지향丘墓之鄕 2
너는 누구냐?
대추나무 푸념
폭설
배롱나무의 진술
첫눈에 들다
이 성긴 쳇바퀴는 누가 돌릴까
철없는 가시내들
지문指紋 찍힌 악보
나의 둥지 꽃기린
5월의 화답
A Response in May

■ 작품론 | 자연을 받아들이는 두 가지 방법 | 황정산(시인 〮 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한낮의 독백


빈집 나 홀로 창밖을 본다

뜨락 너머 저만치 단풍나무 한 그루

연기 한 점 없이 꽃불 피운다



별꽃뿌리이끼


나를 탁본해 보실래요

이끼는 이끼인데
별같이 생긴 이끼일까요
꽃같이 생긴 이끼일까요
뿌리같이 생긴 이끼일까요

나를 현미경으로 보실래요
꽃이라고 하면 꽃잎도 있고
꽃받침도 암술도 씨방도 다 있지요

다시 한번 관찰해보실래요
내 몸엔 달걀이 두 개 있어요
배와 등에 말이에요
이빨도 두 개 있다니까요
아무것도 씹을 순 없지만

뿌리, 뿌리는 아마도
못 찾으실 거예요

소리 없이 웃고는 있어도
속 깊이 울고는 있어도
도대체 눈물은 모르는 내 모습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고
살다가 보니 눈물샘이 다 말라버린
별꽃뿌리이끼 여기 살아요



묘법妙法 한 수저


동백숲 카멜리아 파란 샘터에
동박새 홀로 앉아
옴짝달싹하지 않고
무언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이삼 분쯤 흘렀을까
두 날개 파닥이며
목욕재계 매무실 하더니
훌쩍 솟아올라
‘명상의 집’ 속으로 향한다

오가는 사람들 뜸해지고
땅거미 스멀대며 기어들 때
포행布行하던 내 발등에
동백꽃 한 송이 꽃술째 떨어진다

동박새 뒷일이 뭐 그리 궁금한지
연못은 알려나 연꽃은 알려나
입안에 갇힌 질문 한 수저
선문답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다



세심각洗心閣


원추리 한 송이 꽃대 올린 뜨락 너머
외줄 높이
레일바이크에 몸 맡기고 허공을 오른다

숨 가쁘게 키질하는 바람 한 자락
푸른 햇살 속에서 술래잡기하는가?
솔숲 바위틈으로 소맷자락 감춘다

윤오월 초하루 염불소리 청청한데
안경 밑으로 주르륵 눈물비
참회를 태우는 촛농의 그림인가

허접스러운 생각일랑 큰 바위 밑에 묻어둘까?
흐르는 샛강으로 띄워 보낼까

물레방아 멎은 연못 속에는
황금물고기 두어 마리, 네 잎 클로버를 입에 물고
연잎 밑으로 지느러미 살랑거린다

올 같은 가뭄에도
큰 바위 밑에서 샘물 솟는 수암사水岩寺
외줄 타고 내려놓은 하심下心이다

출판사 서평

이아영 시인의 시들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시어들이 자연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들은 인위적으로 언어를 비틀거나 현란 비유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를 읽으면 사물의 구체성과 그것을 경험한 시인의 정서가 실감으로 다가온다. 자연스럽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자연스러운 언어를 통해 시인은 자기 안에 들어있는 자연의 질서를 재발견하고 우리가 잊고 살아가고 있는 자연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의 존재임을 다시 일깨워 현대 사회라는 이 허망한 인공의 땅에 든든한 삶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작가정보

저자(글) 이아영

경북 상주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시창작 과정 수료
2001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돌확 속의 지구본』
『꽃요일의 죽비』가 있음.
순수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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