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초 단위의 동물
2023년 11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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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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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속도로 내뻗어가는 몸들의 다채로운 일곱 편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은 지금 여기,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모아 일 년에 두 권 선보인다. ‘-림LIM’은 ‘숲’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자 이전에 없던 명사다. 첫 번째 단편집 『림: 쿠쉬룩』에 이어, 문학웹진 LIM에 연재되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일곱 편의 신작을 한 권으로 엮었다.
두 번째인 『림: 초 단위의 동물』은 김병운, 서이제, 성수나, 아밀, 안윤, 이유리, 최추영 작가와 민가경 문학평론가가 함께한다. 이 이야기들은 담대하고 유유하게 움직인다. 삶의 테두리 안팎에서, 서로 다른 윤곽들이 교차하는 자리를 되묻고 흩트린다.
“정형화될 수 없는 ‘사이’의 몸과 ‘너머’의 존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민가경, 작품 해설 중에서) 하는 이 이야기들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이제 내가 되고 싶”은 존재들의 이야기. 여기를 넘어 “거기까지” 가보는 마음으로. 이전과 다른 일곱 편의 미래가 우리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서이제 · 초 단위의 동물
성수나 · 끝말잇기
아밀 ·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안윤 · 핀홀 pinhole
이유리 · 달리는 무릎
최추영 · 무심과 영원
작품 해설 | 민가경 · 사이를 지나가기, 너머에 존재하기
어때요, 지금도 우리를 보고 있나요?
남자가 우리만의 작은 터널 속에서 묻고,
그럼요, 다 보고 있어요. - 김병운 「오프닝 나이트」
p.36
오늘 밤 내가 답을 하지 않으면 남자는 기다릴까 아니면 단념할까. 내일 밤 말고 오늘 밤은 어떠냐고 물으 면 남자는 달려올까 아니면 곤란해할까. 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이 되기를 원한다고, 내게는 자랑도 인정도 투쟁도 필요 없는 관계가 절실하다고 말한다면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건 나를 안타까워하던 너의 표정과는 얼마나 다를까.
슬퍼하는 동안에는 일하지 않았고,
일하지 않아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서이제 「초 단위의 동물」
p.62
조이? 동물적 감각이랄까, 촉이랄까. 나는 지렁이가 조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에바도 왔 군요. 조이는 온몸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조이, 이게 다 뭐예요. 아파서 쉬는 줄 알았더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예요. 나는 조이에게 물었다. 보면 몰라요? 일하는 중이에요. 조이는 내게 말했지만, 일을 하는 중이 라고 하기에는 그저 꿈틀거릴 뿐이었다.
고지의 존재 자체가 목소리에 꿰어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여러 갈래가 아니라 한 갈래였다.
- 성수나 「끝말잇기」
p.81
청진판을 쥔 지경의 손이 한곳에 멎었다. 둥치의 한가운데, 나이테의 중심이었다. 아이들이 숨죽인 채 지경 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기자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선생이 손을 뻗어 기자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주변이 마법처럼 조용해졌다.
지경이 눈을 떴다.
“고지.”
세상이 번쩍 켜지듯 플래시가 터졌다.
이건 모 여성주의 단체의 자문을 받은 결과라고 했다. 반드시 명확한 언어로 동의를 구할 것.
- 아밀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p.130
사실 처음에는 다시 여자를 만나볼 마음이 안 들었다. 리아와의 대화와 섹스가 꽤 만족스러워서이기도 했지 만, 무엇보다도 리아를 집에 두고 다른 여자와 연애하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그랬다. 바람을 피우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영민은 진지했다. 리아를 존중하고 싶었다. 지금 리아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여자도 존중할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정해진 렌털 기간은 3개월이었다.
집쥐로 보이기 시작한 그 늦은 오후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었으므로.
- 안윤 「핀홀 pinhole」
p.163
엄마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단감 모양 화과자를 보자, 자신이 훼손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면, 인정해버리면, 그것은 정말 훼손으로 남을 테니까.
보라는 휴대폰에서 그날 오후 승원의 본가에서 찍은 사진을 열어보았다. 거실 장식장에 있던 액자를 찍은 것 이었다. 사진 속에서 승원과 그의 부모는 푸른 바다를 등지고 나란히 서서 활짝 웃고 있었다.
기다렸어. 너희의 시간으로 사십억 년이 넘도록 여기에서 단지 너만을 기다렸어.
- 이유리 「달리는 무릎」
p.202-203
하늘에는 다섯 개의 달이 떠 있었고 흐릿한 은빛 필름 같은 생물들이 거리에 북적였다. 지구가 아닌 이곳을 나는 아련하고 그리운 마음으로 걸었다. 둘러볼수록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을 이루는 모든 것들 이 조화롭고 각자의 자리에서 쓸모 있었다.
그런 꿈을 꾸다 깨었을 때 나는 묻곤 했다.
거기 있어요?
외계인은 틀림없이 대답했다.
있어.
그러면 나는 안심하고 다시 잠들었다.
몸을 떠난 것이 유령일까 떠나온 몸이 유령일까.
자신이 품에 안고 있는, 진주가 떠나온
텅 빈 호구 껍데기를 바라본다. - 최추영 「무심과 영원」
p.209
예감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침묵을 가로지르고 내면에 도달하는 말을 하는 사람. 그들의 언행은 투명하지 만 무겁다. 기억할 만한 언행이 아닌데도 루프가 된다. 그들은 그냥, 당연히, 라며 말을 시작한다. 그들의 무 의식적 몸짓에는 미래가 달라붙는다. 의식을 위한 춤처럼.
전화를 받았더라면 상대는 인사도 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때 해준 이야기 있잖아, 어떻게 끝난다고 했지?”
한 여자가 유령 이야기를 만들었다.
“꾸물거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으니까.
나는 아주 천천히 다가올 내 미래가 기대되었다.”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두 번째!
자신만의 속도로 내뻗어가는 몸들의 다채로운 일곱 편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은 지금 여기,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모아 일 년에 두 권 선보인다. ‘-림LIM’은 ‘숲’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자 이전에 없던 명사다. 첫 번째 단편집 『림: 쿠쉬룩』에 이어, 문학웹진 LIM에 연재되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일곱 편의 신작을 한 권으로 엮었다.
두 번째인 『림: 초 단위의 동물』은 김병운, 서이제, 성수나, 아밀, 안윤, 이유리, 최추영 작가와 민가경 문학평론가가 함께한다. 이 이야기들은 담대하고 유유하게 움직인다. 삶의 테두리 안팎에서, 서로 다른 윤곽들이 교차하는 자리를 되묻고 흩트린다.
“정형화될 수 없는 ‘사이’의 몸과 ‘너머’의 존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민가경, 작품 해설 중에서) 하는 이 이야기들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이제 내가 되고 싶”은 존재들의 이야기. 여기를 넘어 “거기까지” 가보는 마음으로. 이전과 다른 일곱 편의 미래가 우리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어때요? 지금도 우리를 보고 있나요?
남자가 우리만의 작은 터널 속에서 묻고,
그럼요, 다 보고 있어요. - 김병운 「오프닝 나이트」
게이 아티스트 그룹전에 참여한 ‘대오’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나’. 어디에나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거대한 세트장 같은 이곳에서 만난 ‘호수 씨’로 인해 전 애인 ‘윤범’과의 일들을 상기한다. HIV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사랑을 그린 ‘윤범’의 소설을 읽은 한 PL(People Living with HIV/AIDS) 독자가 소설이 실제 경험담인지 묻자 “노코멘트”로 답한 일. 그로 인해 지인들로부터 너 혹시 그거 아니지, 라는 질문을 받았던 것. 예술로 삶을 선취해보려는 투쟁 의지, 소수자성을 획득하고 가시화하고자 하는 욕망과 당사자로서의 구체성은 어떻게 겹쳐 있을까. ‘나’와 ‘우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이고 읽히고 얽힐 수 있을까.
슬퍼하는 동안에는 일하지 않았고,
일하지 않아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서이제 「초 단위의 동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애매하게 조금씩 지각을 반복하는 ‘나(에바)’와 회사 동료들(조이, 루나, 벤, 에이든, 맥스)의 이야기가 매일 초 단위로 기록된다. 어느 날 구내식당 상추에 붙은 달팽이를 발견한 ‘나’와 동료들. ‘구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느린 성장을 지켜보는 며칠 사이 ‘조이’가 회사에 나오지 않기 시작한다. 점점 늘어나는 일에 허덕이던 ‘나’는 여느 날처럼 지각 위기에 처하고. 번호판 없는 택시에 몸을 맡겼다가 시간도 날짜도 가늠할 수 없는 곳에 돌연 내려지는데. 계절이 바뀌는 동안,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갈아 넣으며 일하던 나날은 곧 환상처럼 멀어진다. “꾸물꾸물.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쉬지 않고 가면 괜찮을 것이다.”
고지의 존재 자체가 목소리에 꿰어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여러 갈래가 아니라 한 갈래였다.
- 성수나 「끝말잇기」
식목일 기념행사, 열 살 ‘지경’은 학교 뒤편 ‘아기산’에서 나무둥치에 청진기를 대고 인터뷰를 하게 된다. 또렷이 들린 나무의 ‘목소리’를 따라 “고지”라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돌아오는 “응”하는 대답. 그러나 기자와 선생은 믿지 않는다. 한편 ‘고지’는 어릴 때부터 말을 건네오던 ‘목소리’로부터 떠나기 위해 애쓰는 열세 살 아이. 아이들을 연결하는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본연의 색과 경계를 허물며 생성을 이어나가”(작품 해설 중에서)는 아이들의 끝없는 끝말잇기. 소용돌이 같은 나이테의 중심 속에서 ‘지경’과 ‘고지’가 서로를 마주하기까지. 수많은 가능성을 거쳐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기까지. 유연하고 어린 몸들이 여정을 시작한다.
이건 모 여성주의 단체의 자문을 받은 결과라고 했다.
반드시 명확한 언어로 동의를 구할 것.
- 아밀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너무 리얼해서 숨을 쉬지 않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인 최신 여성형 섹스 로봇 ‘리아’ 그리고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벗어나고자 ‘리아’를 렌털한 레즈비언 ‘영민’. “교육용”부터 애인 역할을 수행하는 “생활형” 모델까지 인공지능 섹스 로봇이 상용화된 시대는 이곳과 무엇이 다르거나 다르지 않을까.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로서 “여자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지만, 섹스를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리아’의 몸을 이용하는 여느 남성들과 스스로가 다를 바 없다는 감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이분법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어디에나 있는 어느 부치의 어디에도 없는 섹스 로봇 사용기.
집쥐로 보이기 시작한 그 늦은 오후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었으므로.
- 안윤 「핀홀 pinhole」
오랜 시간 연인으로 함께해온 ‘승원’의 휴대폰에서 ‘보라’는 집요하게 연락이 걸려오는 낯선 이름 ‘경진’을 발견한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단란하고 온전하게만 보였던 ‘승원’의 가족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된 진실을 대면하게 되고.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보라’는 결코 이전의 자신으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떠나간 후에야 보라 앞에 선명하게 나타난” 한 사람의 형상은 과연 바늘로 천을 꿰뚫듯 잇대어질 수 있을까. “배제하는 방식으로만 펼쳐 보일 수 있는 온전함의 세계란 얼마나 불온전”(작품 해설 중에서)한지 되묻게 하는 파편들의 기록. 완결되지 않은 삶이 여기에서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기다렸어. 너희의 시간으로 사십억 년이 넘도록
여기에서 단지 너만을 기다렸어.
- 이유리 「달리는 무릎」
매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새벽마다 불안을 견디지 못해 천변을 달리던 ‘나(희수)’는 어느 날 크게 넘어져 무릎뼈가 보일 만큼 다치고 만다. 급한 대로 꿰매 놓은 흉터 안쪽에서 별안간 들리는 목소리. “나는 너를 기다렸어.” 공동체에서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해 빅뱅으로 산산이 쪼개졌다는 무릎 속 ‘외계인’은 다시 돌아가기 위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운동 에너지를 흡수할 테니 ‘나’는 “지금처럼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 조금씩 속도를 붙여나가며. 아주 조금씩 몇 초 전의 나로부터 내뻗어가는 일. 멈추지 않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는 일. “온몸의 감각이 열려 있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존재들의 이어달리기.
몸을 떠난 것이 유령일까 떠나온 몸이 유령일까.
자신이 품에 안고 있는, 진주가 떠나온
텅 빈 호구 껍데기를 바라본다. - 최추영 「무심과 영원」
마룻바닥에 몸을 일직선으로 밀착했다가 천천히 뜯어내며,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감각을 느끼곤 했던 어린 시절의 ‘진주’. 이제는 그 “마룻바닥이 좋아서” 검도장 바닥을 딛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호구라는 껍데기를 착용하고 벗으며 형상을 나타내고 지우거나, 숨을 들이마시고 기합을 토해내며 신체를 비우고 채우는”(작품 해설 중에서) 검도를 수련하며 ‘진주’는 어느새 곁에서 사라진 ‘영원’에 대한 기억이 순간순간 교차하는 한여름을 통과해나간다. “슬려가는 것, 버티지 않는 것, 다만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와 몸을 떠나가는 유령처럼 힘을 풀고 오롯이 서로를 감각하는”(작품 해설 중에서) 몸으로. 응답 없이도 우리가 이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작은 흐름의 이행이다.
그다음은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일곱 편의 이야기는 “어제는 뛰었고 오늘은 절뚝이며 내일은 날아갈 몸. 한껏 구부러지는 몸. 비늘과 이파리를 송송 틔워내는 몸. 이리저리 홰치며 새벽을 알리는 몸. 마룻바닥 장판의 얼룩으로 배어든 몸. 파도의 변형, 때로는 나무뿌리의 변종, 빛살처럼 사방으로 방사되는 몸……”(작품 해설 중에서)들의 현현이다. 한 권의 소설집 안에서 이들을 경험한 우리의 몸 역시 이전과는 다른 몸일 것이다.
민가경 문학평론가가 들뢰즈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건네듯이.
‘사이’와 ‘너머’의 존재들을 마주쳤으니 이제 “그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작가정보
소설가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 산문집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소설집 『로드킬』, 장편소설 『너라는 이름의 숲』이 있다. 창작과 번역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학적인 담화를 만들고 확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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