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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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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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
비극과 죽음의 끝에서 만나는 것들!
2018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한 김지연은 2021년과 2022년 〈젊은작가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한국 소설 문단의 기대주가 되었다. ‘2022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교보문고 선정) 2위에 랭크는 등, 단순한 기대주가 아닌, 지금, 현재 한국 문학의 가장 뜨거운 소설가가 된 작가의 이번 작품은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 장편소설 『빨간 모자』에 이어 세 번째로 발표하는 첫 중편 소설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못마땅한 점을 짐작과는 다르게, 넘치지 않게, 그러므로 충분하게 채워”(최진영)주는 김지연은 이번 신작을 통해서도 주변부의 삶을 사는 인물들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며 등단 이후 5년 동안 더 단단해진 그만의 문학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지연의 이번 소설은 코로나 시대라는, 모두가 처음 겪는 펜데믹 상황이 소설의 배경이다. 2020년 전 세계를 혼돈에 빠트린 코로나 바이러스는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살게 만들었다.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인류는 공포에 빠지고 서로를 반목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K는 연인 P와 여행을 앞두고 코로나에 감염된다. 동선까지 공개되던 초기에 걸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하필 여행을 앞두고 감염된 자신이 지독히 ‘운’이 없다 생각한 K는 여행을 미루려 하나 P의 뜻을 꺾지 못하고 따라 나선다. 그러나 막상 떠난 여행지의 상황은 녹록치 않고,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만난 한 아이에게 그곳 주변에서 일어난, ‘운’이 없어 벌어진 비극들에 대해 듣게 된다.
여행지에서 눈을 뜬 다음 날 아침, K는 자신의 후각에 문제가 생긴 걸 알게 된다. 곧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던 K의 후각은 그러나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후각이 맡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악취뿐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악취를 P는 유령 냄새라고 지칭하고, K는 악취의 진원을 사고로 그들 곁을 갑자기 떠난 S로 한정한다. 그 이후 악취는 K에게 더는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런 기억과 감정을 반복해 불러오고 결국 이 모든 파국을 불러온 것이 자신의 운 없음이 아닌, 자기 자신이며 언젠가는 스스로의 냄새도 악취가 되리라 예상하게 된다.
“K의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산 사람은 자신만의 냄새를 갖게 마련이라고. 아니다. 날 때부터 누구나 냄새를 갖지만 살다 보면 점점 더 자신에게 꼭 맞는 냄새를 갖게 된다고 했었다. 그러다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으면 슬슬 그 냄새를 풍기게 된다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밖에 없을 만큼 아주 풀풀.”(19쪽)
작품해설 / 114
작가의 말 / 125
어쩔 수 없이 악취가 되어버린,
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의 불가해한 삶을 이해하기
『태초의 냄새』는 후각이라는 감각을 경유해 기억과 상실, 계급과 혐오, 이해와 몰이해, 직면과 회피의 순간들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과장하거나 억지 부리지 않는 구체적인 일상의 장면들은 그 자체로도 읽는 즐거움을 주지만, 누적되는 장면들을 겹쳐 읽다 보면 끝에서 발견하게 될 한 편의 소설이라는 건축물의 세밀한 설계도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또한 김지연의 소설은 매번 그 기대를 배반한다. 끝에 이르러 보게 되는 것은 반듯한 설계도가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추상화다. 가장 일상적이며 구체적인 장면들로 축조된 이 기묘한 추상의 세계 앞에서는 대상의 의미보다 대상을 해석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점검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이 독자가 김지연의 소설에 감정적으로 오래 붙들리는 이유가 아닐까.
-천희란, 「작품해설」 중에서
* K의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산 사람은 자신만의 냄새를 갖게 마련이라고. 아니다. 날 때부터 누구나 냄새를 갖지만 살다 보면 점점 더 자신에게 꼭 맞는 냄새를 갖게 된다고 했었다. 그러다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으면 슬슬 그 냄새를 풍기게 된다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밖에 없을 만큼 아주 풀풀.
-19쪽
* “근데 여기 왜 망했을까? 완공됐으면 제법 멋진 아파트였을 것 같아. 평수도 넓고 경치도 좋고……. 이런 데서 살고들 싶어 할 텐데.”
“운이 나빴겠지.”
“넌 맨날 운 때문이라고 하더라.”
“운칠기삼 몰라? 사람은 운이 거의 전부야.”
-48쪽
* “나 냄새가 안 나.”
“정말? 다행일지도 몰라. 나 하루 제대로 못 씻었더니 머리 냄새 장난 아니거든. 너한테서는 별로 안 나는 것 같은데.”
“냄새가 아예 안 맡아진다니까. 이거 코로나 후유증 아냐?”
그건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코로나의 후유증이긴 했다. 코로나가 유행일 때 유명한 캔들 제품의 리뷰에 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항의가 무척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83쪽
* K는 차를 마실 때마다 그간 향으로 마셔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적응해갔다. 냄새가 사라진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가끔 무언가가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는 했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는 가스불을 떠나지 않았고 방 안에서 향초를 피우던 취미도 그만두었다. 하수구 냄새나 뭔가가 썩어가는 것 같은 악취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맘이 편해지기도 했다. 혹시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지는 않을지, 그런 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뭐 어쩔 것인가. K는 이제 냄새에 관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89-90쪽
* 후각을 잃은 지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 그래도 여전히 곧 냄새를 맡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때 영상통화를 하다가 P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냄새가 그렇게 중요한가? 두 사람은 다른 모든 감각에 비하면 냄새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치? 냄새는 몇 위쯤 될까? 꼴등이려나? 좋아,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죽었어. 근데 유품 두 가지 중에 딱 하나만 골라서 가져갈 수 있대. 내 비밀 일기가 든 메모리카드랑 내가 자주 입어서 내 냄새가 밴 셔츠. 넌 뭘 가져갈래?”
-104쪽
* 태초에 냄새가 있었다면 그다음엔 뭐가 있었는데? 그날 꿈에는 할머니가 나왔다. 아주 옛날에 K가 할머니에게 했던 질문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다음엔 작은 바람이, 입김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바람이 있었지. 오물오물한 입을 동글게 말아 태초의 다음 순간을 흉내 내는 할머니의 숨이 방 안에 퍼졌다. 할머니의 싸구려 담배 냄새, 동생의 안전화 냄새, 무당벌레가 싸우는 냄새, 투명한 냇가의 물비린내, 반려견의 냄새, 들개의 냄새, 미처 떠나지 못한 냄새 들이 K의 삶 곳곳에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뒤섞여버리면 어쩔 수 없이 악취가 되어버리는 그 냄새를 꿈속에서 맡고 또 맡았다.
-111쪽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마흔아홉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격월 25일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오세열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오세열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학고재 상하이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을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프레데릭 R. 와이즈만 예술재단(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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