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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서 (장애인 접근성 강화)

유령입자의 탄생에서 약력의 발견, 태양의 수수께끼까지, 자신의 정체를 바꾸는 입자, 중성미자 이야기
박인규 지음
계단

2023년 11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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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53.11MB)
ISBN 978899824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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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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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3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사라진 중성미자가 남긴 수수께끼,
중성미자의 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중성미자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 책은 유령입자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중성미자가 원자로의 방사선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작한다. 중성미자가 세상에 존재하게 되면서 별의 탄생과 진화의 동력이 밝혀졌고,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힘들의 정체가 하나씩 드러났다. 있어도 없는 듯한 중성미자를 찾아내고, 알다가도 모를 듯한 중성미자의 성질을 밝혀내는 과정은 수수께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찾아낸 중성미자의 흔적은 새로운 우주를 열어 주었다. 입자를 부수는 약력이 태어났고, 수십억 년을 밝게 빛나는 태양의 원리가 밝혀졌고, 이제 반물질과 암흑물질의 정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성미자에는 여전히 감춰진 비밀이 많다.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은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 거대한 실험 장치를 건설하고 있다. 왜 이렇게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은 돈을 들여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걸까? 무엇을 알고 싶어하고,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찾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글을 시작하며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
| 1부 | 간신히 찾아내다
1장 생일 축하해요, 중성미자!
- 미스터리의 베타붕괴
- 에너지 보존은 잘못된 믿음이었나
- 새로운 입자가 필요하다
- 유령입자의 탄생
2장 세상을 지배하는 네 개의 힘
- 눈에 보이는 세상을 만드는 힘
작은 세상을 만드는 전자기력 | 큰 세상을 만드는 중력
-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
핵자를 묶는 강력 | 입자를 깨는 약력
- 약력의 탄생
페르미 상호작용 | 약력의 현대적 해석 | 입자와 힘, 그리고 표준모형
3장 모습을 드러낸 중성미자
- 스파이로 불렸던 천재
불가능을 꿈꾸었던 과학자 |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 | 그는 정말 스파이였을까
- 기다림의 시작
원자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중성미자 | 중성미자를 찾아낼 기막힌 방법 | 값싼 드라이클리닝 세제를 이용해 보자 | 이제 공은 한가한 신임 연구원에게
- 원자탄을 터트려라
원자탄은 중성미자 폭탄 | 원자탄이냐 원자로냐, 꿩 대신 닭으로 | 역베타붕괴를 찾아서
- 고스트 버스터즈
유령입자 탐험대 | 마침내 유령을 찾아내다
| 2부 | 감쪽같이 사라졌다
4장 중성미자는 태양에서도 나온다
- 태양의 엄청난 에너지
태양은 어떻게 빛을 내는가
- 별이 빛나는 이유
핵융합으로 헬륨을 만들다
- 지구로 날아오는 수많은 태양 중성미자
5장 그 많던 중성미자는 어디로 갔을까
- 집념의 사나이
계속되는 실패 | 그렇다면 태양 중성미자를 찾아 보자
- 태양을 가장 잘 아는 물리학자
지하 광산에 꾸린 실험실 | 이론과 실험이 다를 때, 우리는 문제라고 부른다
- 태양 중성미자의 수수께끼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 | 수수께끼의 실마리
6장 중성미자는 카멜레온
- 기본 입자들
21세기판 신 4원소설 | 또 다른 중성미자의 발견 | 입자와 반입자
- 진동하는 중성미자
여성과 남성의 정의 | 중성미자의 섞임 중성미자의 맥놀이 | 변신하는 중성미자
| 3부 | 정체를 알고 싶다
7장 천문학이 된 중성미자
- 중성미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초신성에서 오는 중성미자 | 대기 중성미자
- 카미오칸데
대통일 이론 | 양성자 붕괴를 찾아라 | 중성미자 검출기로 다시 태어나다
- 400년 만에 찾아온 행운
중성미자 천문학의 탄생 | 행운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 레이 데이비스와 고시바 마사토시 - 2002년 노벨상은 치열한 기다림의 보상
연구소에 출근하는 88세의 노학자 | 고시바의 선견지명
8장 중성미자의 변신을 목격하다
- 슈퍼-카미오칸데
세상에서 가장 큰 물탱크를 만들어라 | 땅속 깊이 들어가야 피할 수 있다 | 노벨상을 결정한 한 장의 그래프 | 땅 속에서 태양을 보다
- 서드베리중성미자관측소
무거운 물 | 중수, 중성미자, 중성흐름의 삼중주 기막힌 협상 | 태양 중성미자의 수수께끼를 풀다
* 도쓰카 요지와 허버트 첸 - 2015년 노벨상의 엇갈린 운명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노벨상 | 거대 실험을 이끈다는 행운 | 공동 연구에서 대표가 된다는 것 | 노벨상은 누구에게, 무엇에 주어지는가
9장 중성미자 전성시대
- 거대한 꿈을 좇는 사람들
하이퍼-카미오칸데 | 듄
- 다중신호 천문학
호수로, 바다로, 남극으로 | 새로운 천문학의 시대를 열다
- 남아 있는 질문들
디랙이냐, 마요라나냐 | 사라진 천재 | 중성미자 없는 베타붕괴 | 오른손잡이 중성미자도 있을까 | 비활성 중성미자를 찾아라
글을 마치며
참고 자료
그림 출처
중성미자 연구 주요 이정표
찾아보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늘 한 이야기는 수박 겉핥기였어.” “중성미자의 역사부터 짚었어야 했는데….” “표준모형에 대한 설명을 너무 대충 했네.” “검출기를 왜 그렇게 크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재미있는 부분인데….” “아뿔싸, 중성미자로 천문학의 새 시대가 열렸다는 중요한 얘기를 빼먹었네….” 이런저런 후회 섞인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서 내릴 때 떠오른 답은 한가지였다. 기자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참에 글로 한번 써 보자는 다짐이었다.
_9~10쪽
독자들은 나에게는 손님이고, 손님은 물건이 맘에 안 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래서 욕심을 버렸다. 손님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이야기만 다루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중성미자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나 지금까지 수행돼 온 수많은 실험 결과들의 백과사전식 나열,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연구될 주제를 빠짐없이 설명하는 것은 되도록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중성미자가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과 발견까지의 과정, 2002년과 2015년 노벨상 수상과 관련된 업적 이야기,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진행될 중요한 실험 몇 가지를 핵심만 뽑아 독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_11~12쪽

전자가 어떨 때는 작은 에너지를 가져 느린 속도로 튀어나오고, 어떨 때는 큰 에너지를 가져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후 1914년 제임스 채드윅이 전자의 에너지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베타선의 운동 에너지가 연속적인 분포를 갖는다는 것을 최종 확인하였다. 이체 문제로 방사선 붕괴를 설명하려던 물리학자들에게 베타입자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물리학자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발표된 실험 결과들을 정리해 보면 베타붕괴에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_35쪽
핵 속에 전자가 들어 있다는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왜냐하면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전자와 같이 가벼운 입자는 핵과 같이 작은 공간에 갇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위치의 불확정도와 운동량의 불확정도의 곱은 항상 플랑크 상수보다 커야 한다. 전자를 핵 속에 가둬 놓는다는 말은 바로 위치의 불확정도를 핵의 크기인 1펨토미터(10-15미터) 정도로 작게 가져가는 것이 되고, 이는 곧 운동량의 불확정도가 매우 커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전자가 1펨토미터로 움직인다고 할 때, 운동량의 불확정도를 바탕으로 전자의 속도를 계산해 보면, 초 속 1.1×1011미터 이상으로 초속 3×108미터의 광속을 넘게 된다. 즉, 전자를 아주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두려고 시도하는 순간, 전자는 빛보다 빠르게 그 위치를 벗어난다는 양자역학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핵 안에는 전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만약 전자가 핵 안에 있다면 매우 큰 운동량을 갖게 되는데, 이는 전자가 핵 안에서 안정적인 상태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따라서 핵 속에는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된 상태가 아니라, 양성자와 질량은 같고 전하가 중성인 새로운 입자가 존재할 것이란 생각이 퍼져 있었다. 그리고 파울리는 베타붕괴 때 전자와 함께 동반하여 발생하는 가상의 중성 입자를 중성자라 불렀던 것이다.
_39쪽
그럼 약력과 강력은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강력은 원자 속에 들어 있는 핵 안에서만 존재하는 힘이니 일상에서 강력을 느낄 방법은 없다. 핵자들이 아주 좁은 공간에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핵자들 사이에 분명 강력한 접착제 같은 힘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약력 역시 매우 짧은 거리에서만 작동하는 힘이라 우리가 약력을 직접 느낄 방법은 없다. 다만 입자들이 약력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해 약력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일상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힘은 중력과 전자기력 딱 두 가지뿐이다. 전자기력은 양성자와 전자를 서로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 원자를 만들고, 그들을 결합시켜 분자를 만들고, 더 나아가 물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중력은 그런 물질을 모아 행성을 만들고, 태양계를 만들고, 은하계를 만든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 자연의 모습은 이 두 가지 힘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_46~47쪽
폰테코르보는 바로 이 식에서 멋진 생각을 떠올린다. 즉, 중성미자가 핵에 부딪치면 베타붕괴처럼 핵종이 바뀔 거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번호 17인 염소-35 원자에 중성미자가 부딪치면, 원자번호가 하나 큰 18번 아르곤-35 원자가 된다.
이는 사실상 베타붕괴와 같은 과정이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아르곤은 비활성 기체라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 않고 쉽게 분리되어 나온다. 따라서 염소만 들어 있는 탱크에서 아르곤 기체가 발생한다면 이는 중성미자가 염소 원자와 반응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그렇다면 중성미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검증한 것이 된다. 문제는 중성미자가 염소 원자의 핵과 반응할 확률이 매우 낮고, 따라서 반응으로 생길 아르곤 원자 역시 몇 개 되지 않을 것이어서 이를 센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_76쪽
예를 들어 일상 생활에 쓰이는 천연가스나 프로판가스, 휘발유 등의 화석 연료 1킬로그램을 태우면 대략 5000만 줄 정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태양의 질량이 2×1030킬로그램 정도이니, 태양이 만약 휘발유로 전부 채워져 있다면 이를 모두 태워 1×1038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계산해 본 바에 따르면 태양 이 초당 4×1026줄을 내놓고 있으니, 태양이 낼 수 있는 총 에너지 를 이로 나누면 태양은 총 2.5×1011초 동안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년 단위로 바꾸면 대략 8000년에 해당한다. 즉 태양이 빛을 낼 수 있는 시간이 8000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물론 화학 에너지에 근거한 이 계산을 근거로 태양의 나이가 8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19세기까지는 태양이 어떻게 빛을 내는지 그 자체가 미스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진짜 미스터리는 아직까지 이 계산을 믿는 신봉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_108쪽
이론값과 실험값의 커다란 차이. 물리학자들은 이를 ‘문제Problem’라고 부른다. 태양 중성미자 문제(Solar Neutrino Problem)는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_136쪽
(고시바 마사토시)는 칠흙같이 어두운 땅속에, 거대한 탱크에 물을 가득 채워 놓고, 그 안에서 빛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물리학자였다. 물 속에서 빛이 나오다니. 일반인들이 보면 정신 나간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물리학자에게는 노벨상을 탈 만한 큰 발견이 나올 수도 있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가득 찬 탱크에서는 그가 원하던 빛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기대도 하지 않았던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천 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하는 일이 물탱크 속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이 물탱크로 일본은 두 번의 노벨상을 거머쥔다.
_187쪽
1998년 국제 중성미자 학회에서 뮤온 중성미자가 진동한다는 슈퍼-카미오칸데 실험 결과를 발표한 사람은 가지타 다카아키였다. 그는 슈퍼-카미오칸데의 대기 중성미자 연구를 이끌고 있었다. 가지타의 발표가 있자 학회에 참석했던 학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노벨상이네!” 뮤온 중성미자의 진동을 확실하게 입 증했으니, 노벨상을 받을 것이냐 못 받을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 노벨상을 받느냐가 문제였다.
_219쪽
중성미자가 디랙 입자라면, 전자 두 개가 튀어나오는 이중베타붕괴 사건은 단순히 베타붕괴 사건 두 개의 합이다. 따라서 중성미자 두 개가 반드시 발생한다. 하지만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두 개의 중성미자를 동반하는 이중베타붕괴 사건이 대부분이겠지만, 아주 가끔 중성미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이중베타붕괴 사건이 발생한다.
그럼 중성미자가 없는 이중베타붕괴 사건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는 매우 간단하다. 중성미자가 없는 경우에는 두 전자의 에너지 합이 정확히 중성자 두 개와 양성자 두 개의 질량 차이가 되므로, 특정한 에너지 값을 갖게 된다. 그래서 두 전자의 에너지를 합쳐서 그래프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붕괴 사건이 실제로 관측된다면, 이는 표준모형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 진짜 획기적인 발견이 될 것이다. 노벨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_275쪽
왼손잡이 중성미자는 그나마 약한 상호작용이라도 하기 때문에, 검출하기가 쉽지 않아 그렇지 검출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른손잡이 중성미자는 약한 상호작용마저도 하지 않기 때문에, 검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검출되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 약한 상호작용마저도 하지 않는 오른손잡이 중성미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입자는 사실상 발견할 방법이 없어 물리학자들은 이 중성미자를 비활성 중성미자(sterile neutrino)라고 부른다.
비활성 중성미자는 마치 수학의 미지수처럼 물리학의 여러 문제들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비활성 중성미자의 질량이 매우 크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그러면 이 무거운 중성미자는 전자기력, 약력, 강력에는 영향을 받지 않지만 중력에는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다른 어떤 상호작용도 하지 않고 중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암흑물질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활성 중성미자는 암흑물질의 매우 유망한 후보 물질이 된다. 다만 이 비활성 중성미자가 보통의 중성미자와 달리 무거워야 한다는 제약이 있을 뿐이다.
_281쪽

하나의 유령이 우주를 떠돌고 있다. 하나이면서 곧 셋인 이들은 ‘트리니티(삼위일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들은 우주 구석구석 어디에나 존재한다. 20세기 초 균형을 맞추려는 인간의 강박적 상상은 절박한 해결책(desperate remedy)을 만들었고, 이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존재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유령에서 입자로,
중성미자를 찾는 사람들
중성미자의 발견은 예언의 실현이었다. 이 책은 중성미자가 세상에 태어난지 60주년을 기념하는 박수 소리에서 시작한다. 중성미자의 탄생에는 반짝이는 영감과 정교한 실험 외에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했다. 아이의 탄생에 열달의 시간이 따라야 하듯, 유령에서 입자가 되는데도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날의 환호는 중성미자의 생일을 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중성미자에 일생을 바친 과학자의 노고를 기리는 것이기도 했다. 책의 처음이기도 한 이 장면은 이 책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 책은 중성미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예언과 탄생, 중성미자의 종잡을 수 없는 특성을 밝히면서 알게된 놀라운 사실을 주로 다루지만, 그만큼 아니 그이상 중성미자라는 존재를 있게 한 많은 과학자의 삶과 죽음, 기발함과 끈질김, 명예와 안타까움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의 앞쪽에 있는 중성미자와 관련된 주요 인물을 보다 보면, 누구나 동의하는 ‘핵물리학의 아버지(어니스트 러더퍼드)’, ‘중성미자의 아버지(볼프강 파울리)’, ‘약력의 아버지(엔리코 페르미)’도 있지만, 우리에게 낯선 사람도 꽤 등장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중성미자 연구의 씨앗을 뿌린 브루노 폰테코르보, 핵심 아이디어를 내놓고 정부와 사회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고 거대한 실험 장치를 구축해 실제 실험을 구현한 도쓰카 요지와 허버트 첸 같은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아마도 이들 역시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누려 우리들의 기억에 남았을 지도 모른다.
중성미자의 발견이 예언과 예언을 실현하려는 모험담이라면, 중성미자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은 애써 만든 이론을 지도 삼아 떠났지만 예상과 다른 실험 결과를 얻은 과학자들이 문제를 풀기 위해 도전하는 추리물이다. 이론이 틀렸는지 실험이 맞았는지 분명히 말할 수 없을 때, 혼란이 시작됐다. 바로 이 혼돈을 질서로 바꾸려는,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뉴스에서 이미지로 가끔 볼 수 있었던 카미오칸데와 서드베리관측소다. 그리고 몇년 후 이들이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내자 세상은 노벨상으로 그 공을 인정해 주었다.
중성미자 연구의 업적 대부분은 노벨상을 받았다. 현재 진행 중인 수많은 중성미자 연구도 결과만 제대로 나오면 교과서를 새로 쓰고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도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 대열에 적극 함께 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 미국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빠르게 세계가 주목하는 실험 결과를 내놓고 있다.
“사라진 중성미자(missing neutrino)”가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니, 진짜 이게 가능하다고",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이걸 찾아 냈지.” 바로 과학책 읽는 진짜 재미의 향연이 여기에 있다.
이름만 무수히 들었던 입자의 표준모형, 물질을 구성하는 쿼크와 렙톤, 각종 입자와 힘을 구분하는 3개의 세대 구분과 같은 기본 지식들도 중성미자를 소개하는데 꼭 필요한 만큼 들어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이 꼭 잘 전달하는 게 아니라는 건 중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안다. ‘어떻게 하면 핵심만 전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 사람만이 정확하고 알기 쉽게 알려줄 수 있다. 바로 노벨상 해설 방송에 저자가 그렇게 자주 초대되는 이유다.

- 죽은 사람을 기억하며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에게 경배를 바칠 것인가? 보통은 죽은 자를 기억하고, 살아 남은 사람에게 술잔을 올린다. 노벨상의 영광은 오직 산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많은 일을 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직전 세상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업적이 대단해서 상이 주어져야 한다면, 그 상은 누가 받아야 할까? 보통은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엄청난 예산과 거대한 실험 장치, 수많은 인력이 들어간 대형 프로젝트가 고려 대상일 경우다. 대개는 이런 실험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안한 사람이 경배를 받을 일순위일 것이다.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거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중성미자 연구는 하나의 주제에서 노벨상이 여럿 나왔고, 여전히 수많은 초대형 프로제트가 국경을 가로질러 지구 전역에서 진행 중이다.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대형 프로제트인 일본의 슈퍼-카미오칸데와 캐나다의 서드베리중성미자곤측소(SNO)는 이들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몇년 전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내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들은 ‘중성미자 진동’으로 알려진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하면서 중성미자의 독특한 성질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허버트 첸과 도쓰카 요지는 각각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고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둘다 세상을 일찍 떠났다.

- 이론과 실험이 다를 때, 우리는 문제라고 한다
1936년 한스 베테는 태양이 빛을 내는 원리를 밝혔다. 바로 ‘양성자-양성자 연쇄 반응’이라는 핵융합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후 이를 실험적으로 입증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났다. 핵융합을 지상에서 구현할 수 없으니 태양에서 나오는 다양한 방사선과 전자기파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만 찾아낸다면 태양이 밝게 빛나는 이유, 아니 태양을 넘어 우주의 모든 별들이 밝게 빛나는 이유와 별들이 어떤 경로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멸하는지 별의 일생과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중성미자가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양 중성미자의 실험값은 표준태양모형이라는 이론값과 잘 맞지 않았다. 이론에 따라 계산한 값보다 실험값이 항상 적었다. 그런데 그게 이상했다. 어떨 때는 많고 어떨 때는 적은 게 아니라 항상 적었고, 거의 근접하거나 아주 없거나 이런 극단적인 경우도 아니었다. 그냥 이론값의 1/3 내지 1/4 정도가 언제나 나왔다. 이건 실험 설계의 허점이든 이론의 오류이든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찾았다고 생각한 중성미자가 이제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잘못 됐는지 알 길도 없었다. 이론값을 확인할 다른 이론도, 실험값을 검증할 다른 실험도 없었다. 중성미자가 사라졌다는 것만 분명할 뿐 다른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혼란의 시작이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폰테코르보에게서 나왔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중간에 정체를 바꾼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중성미자가 ‘닥터 지킬과 미스터 하이드’는 아닐까? 이제 사람들은 중성미자의 변신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땅속에서 그 변신을 목격한다.

- 시베리아의 슈퍼맨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독일 과학자를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 놓았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수많은 과학자가 고향을 버리고 미국과 영국으로 떠났다. 브루노 폰테코르보도 그렇게 이탈리아를 떠났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소련과 미국 사이에 냉전이 시작되었고, 다시 한 번 수많은 과학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쫓겨났다. 있어도 되는 사람과 있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줄이 세워 졌다. 브루노 폰테코르보는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유대인이라 이탈리아에 남을 수 없어 영국과 캐나다로 떠돌았고, 공산주의자라는 낙인 때문에 원자력과 관련된 모든 연구에서 배제되었다.
신념, 생계, 납치, 그중 무엇이 폰테코르보를 소련으로 이끌었는지는 본인밖에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소련에 정착했다. 젊은 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사라지지 않았겠지만, 과학은 생각만으로 완성할 수 없었다. 원자력과 방사선을 이용한 중성미자 검출 실험은 실행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소련으로 망명한 그는 1950년대 미국의 동연배 물리학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업적을 내놓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폰테코르보에게 새롭고 기발한 생각은 많았지만, 정작 그 아이디어를 검증해서 성과로 연결시킨 사람은 모두 미국과 일본의 과학자들이었다. 원자력, 냉전, 빅 사이언스, 엄청난 예산, 기초과학, 이념의 차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과학자들도 결코 그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폰테코르보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또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미국에서 페르미와 함께 연구했다면”과 같은 온갖 가정을 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슈퍼맨이 미국 캔사스가 아니라 소련의 시베리아에 떨어졌다면’과 같은 상상의 결말과 비슷하지 않을까?

작가정보

저자(글) 박인규

프랑스 파리 11대학에서 입자물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다양한 실험에 참여했고, 미국 예일대학교와 로체스터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의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CERN의 CMS(Compact Muon Solenoid) 국제공동연구를 진행 중이고, 서울시립대학교의 자연과학연구소 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물리로 이루어진 세상』, 『일상 속의 물리학』, 『이토록 아름다운 물리학이라니』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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