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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을 향하여

생각의힘

2023년 11월 03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2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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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30.21MB)
ISBN 979119316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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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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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늦게나마 알아야 할 이름들이 가득 담긴 책이 출간되었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자이니치 투쟁사와 각각의 현장을 뜨겁고 날카롭게 증언하는 《공생을 향하여》다. 일본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 다나카 히로시가 걸어온 궤적 자체가 차별과 편견을 깨부수는 투쟁의 역사였고, 그 중심에 자이니치가 있었다.
총 16장으로 구성된 책은 ‘배제’와의 오랜 투쟁을 구석구석 꼼꼼히 돌아본다. 피폭 치료를 위해 일본에 밀항한 뒤 치료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일본 사회를 상대로 법정 투쟁에 나선 손진두의 싸움을 시작으로, 자이니치 권리 신장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박종석의 히타치 취업 차별 재판, 한국 국적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일본인에게만 입소를 허용했던 사법연수소의 문을 열어젖힌 김경득, 1980년대 일본 사회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지문날인 거부운동, 전후 보상 운동, 공무원·교사 임용의 국적 조항 철폐 투쟁, 외국인 참정권 운동, 민족학교에의 탄압에 맞선 움직임 등 굵직굵직한 싸움의 역사가 다나카 히로시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씨로 종횡무진 이어진다. 그와 함께 지금보다 엄혹했던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우뚝 서 투쟁해왔던 자이니치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또렷이 살아 한국 사회를 찾는다.
여러 투쟁기가 펼쳐지지만, 모두 하나의 거대한 질문 아래 모인다. 책은 “국적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관절 국적이란 무어길래 “일본 국적을 갖지 않은 자”라는 열 글자에 그토록 무시무시한 힘을 부여하는지, 차별을 합리화하는 마법의 장치가 되어 배제와 감시를 정당화하는지 책은 묻는다.
한국 독자들에게
머리말

1장 ‘원점’이 된 ‘아시아문화회관’
2장 한국인 피폭자, 손진두의 넋
3장 ‘국적’이라는 차별 장치
4장 ‘히타치’에서 ‘민투련’으로
5장 ‘헌법 파수꾼’의 인권 감각을 쏘다
6장 자이니치 한국인 변호사 제1호, 김경득이 남긴 것들
7장 지문날인 거부: 일본의 공민권 운동
8장 지문날인 거부 2
9장 ‘잊혀진 황군’들의 절규
10장 전후 보상 재판에서 조위금법으로
11장 ‘당연한 법리’란 무엇인가
12장 외국인 참정권이라는 ‘출발점’
13장 조선학교의 대학수험 자격 문제
14장 ‘시작’으로서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
15장 21세기의 4·24, 고교무상화 배제와의 싸움
16장 무상화 재판의 새 단계: 종축을 통해 본다는 것

보론 일본인의 전쟁관· 아시아관에 대한 사적 단상-다나카 히로시
서간 이번 조선고교 무상화 문제에 부쳐-권순화

맺음말
역자 후기
참고문헌

패전을 겪고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이 국가의 식민주의에 처절히 패배하면서도, 낙담의 바닥에서 목소리를 쥐어짜내 차별에 대한 분노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사회 다수자에게 끊임없이 전해온 이들. 그 투쟁의 궤적을 되돌아보면서, 내 마음도 다시 크게 요동침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기를 얻게 된 것은 그들이 어떤 [승리에 대한 명확한]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투쟁을 결행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투쟁했기 때문에 비로소 ‘전망’이 열린 것이었다.
_15쪽, 〈머리말〉

도쿄대에 유학하고 있던 베트남인이 나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데, 도쿄대생들은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얘길 했습니다. 도쿄대생들이 그를 어학의 연습 상대로 삼은 것입니다. “왜 우리가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지,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그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도쿄대는 일본의 일류 엘리트들이 배우는 곳이죠? 다나카 씨, 일본의 장래는 위험하네요.” 그리고 또 생각나는 것은 「아카하타」에 실린 ‘프랑스어 강좌’ 광고(1973년 10월 31일 자)를 가져왔던 일입니다. 캐치프레이즈는 “인도차이나 3국에 보급되어 있는 프랑스어를 배워, 인도차이나 인민과 우호를”이었습니다. 아직 신문 1면에 베트남의 전황이 보도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도 같은 광고가 나왔습니다. [일본공산당원들인] 독자도, 당 간부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죠. 유학생이 “다나카 씨, 일본의 좌익도 추락할 데까지 추락했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공산당 욕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주간신초週刊新潮」 같은 데서 “공산당, 땅에 떨어지다!”라는 비판 기사를 쓰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좌도 우도 화제로 올리지도 않는 이 뿌리 깊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_32~33쪽, 1장 〈‘원점’이 된 ‘아시아문화회관’〉

아시다시피 일본 정부는 그 이후, 재한 피폭자가 일본을 방문해 치료받을 수 있게 합니다. 일본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일본에 와서 원폭병원에 입원하면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고, 그 사이에 건강관리수당도 나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 귀국하면 건강관리수당은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일본 땅을 떠나면 피폭자 건강수첩의 효력이 없어진다는 게 정부의 견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법률을 통해 취한 조처가 아닙니다. 1974년에 나온 이른바 ‘402호 통달’입니다. 그 문제로 다시 재판을 해 그 통달 자체가 위법이라는 형태로 뒤집혀서 지금은 이미 폐지되었습니다. 이 또한 재한 피폭자의 법정 투쟁이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됐지만,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일본인도 많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른바 ‘재한 피폭자 문제’라고 말했었지만, 그 뒤에는 ‘재외 피폭자 문제’로 확장되었으니까요. 피폭자 중에는 전후 미국이나 브라질로 이주한 이들도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병에 걸리기도 했다고 해요. 나카지마 다쓰미 씨에게 듣고 매우 인상에 남았던 얘기는 피폭자에게는 금이 생겨버린 그릇 같은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깨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일이 생기거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장애가 드러나게 된다고요. 정말 그렇겠구나, 생각했습니다.
_52~53쪽, 2장 〈한국인 피폭자, 손진두의 넋〉

1910년 병합 이후에 태어난 것이죠. 그래서 편지를 읽어보니 취지는 이렇습니다. “나는 태어났을 때 일본인이었는데 내게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 국적을 없애더니, 어느 날 갑자기 외국인으로 만든 뒤 이러쿵저러쿵하고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1947년에 일본으로 돌아왔으니, 전후에 입국한 셈입니다. 그러니 이른바 옛 식민지 출신자들에게 부여되는 재류 자격도 인정받지 못하고, 일반 외국인과 똑같이 정기적으로 재류 기간을 갱신하지 않으면 재류 자격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다지 살기 좋은 곳이 아닐지 모르지만 부디 와 주십시오’ 정도의 인사는 있어야 할 텐데, 비자를 연장한다는 둥 연장하지 않는다는 둥 지문을 찍으라는 둥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들어야 한다니 납득할 수 없다. 그래서 일본국을 상대로 내 일본 국적을 확인하는 소송을 하고 있다. 그러하니 여러 가지로 협력해줬으면 좋겠다”라고요.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얘기와 논리였기 때문이죠.
식민지 지배로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삼고, 말과 이름도 빼앗고, 마지막에는 전쟁에까지 끌어냈으면서, 전후에는 표변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는 것과 동시에 일본 국적을 상실시켰습니다. 일본의 국적법에는 본인의 의사 확인 없이 국적을 없앤다는 내용은 없는데도 국적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이니치 조선인은 지금도 일본 국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송 씨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성립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만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_60~61쪽, 3장 〈‘국적’이라는 차별 장치〉

나는 박 씨와는 그다지 얘기해본 적이 없지만, 그는 1951년생입니다. 김경득 씨(일본의 외국 국적 변호사 제1호)는 1949년에 태어났죠(2005년 사망). 양쪽 모두 1952년의 ‘일본 국적’ 박탈 이전에 태어났습니다. 일본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공부했는데,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하게 되니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이란 현실과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무엇인가, [일본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단 말인가, 이런 사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그런 세대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경득 씨 이전에도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자이니치가 12명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귀화’를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가 [귀화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렀다는 것도 세대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향균 씨(국적 조항에 의해 관리직 수험을 치지 못하게 한 문제를 소송을 통해 추궁했다)도 1950년에 태어났습니다(2019년 사망).
_73쪽, 4장 〈‘히타치’에서 ‘민투련’으로〉

1976년 10월입니다. 아시아학생문화협회에서 아이치현립대로 옮기고 몇 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전 직장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줘난성卓南生이라는 싱가포르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내 친구 중에 김용권金容權(저작가·번역가, 1947~ )이란 자이니치가 있다. 그 사람의 후배가 이번에 고생을 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귀화’하지 않으면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 후배는 변호사는 자유업이니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자이니치의 신분을 유지한 채로] 변호사가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개척하고 싶다고 하는데, 이래저래 힘든 것 같다. 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겠나?” 하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만나러 가게 되었습니다.
_91쪽, 5장 〈‘헌법 파수꾼’의 인권 감각을 쏘다〉

그러니까 정말로 엉망진창입니다. 법치국가가 아닌 것이지요.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지적하니까 “아,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것 같지요.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만 [사법연수소 입소를] 한정한다고 처음에 결정한 것을 뒤집는 터무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법의 지배’고 나발이고 없는 것입니다. 최고재판소가 자기들 좋을 대로 한 거죠. 그런 사람들이 ‘헌법 파수꾼’이라며 재판소의 제일 높은 곳에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니 무서운 일이죠. 이 나라가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라는 것에서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적을 실마리 삼아 보게 되면, 완전히 너덜너덜한 그런 것들이 나옵니다. 이런 것들 중에 가장 으뜸가는 예가 최고재판소가 보여준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_116쪽, 6장 〈자이니치 한국인 변호사 제1호, 김경득이 남긴 것들〉

한 씨와 몇 번인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중에 지금도 기억하는 얘기는요. “우리는 대단한 것을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남겨줄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손가락을 까맣게 해서 지문을 채취당하는 것, 이것 정도는 이제 좀 없애고 싶다. 이런 것을 더는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시키고 싶지 않다…”라고요. 그래서 한 씨는 결심을 하고 도쿄 신주쿠 구청에서 [외국인]등록증을 갱신할 때 지문날인을 거부했습니다. 1980년 9월의 일이었습니다. 지문을 찍지 않으면 새 외국인 등록증을 교부받을 수 없고, 그러면 등록증을 미소지하게 되어 자칫하면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잡히고, 최악의 경우엔 오무라 수용소에 보내져 한국으로 강제 송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 들을 생각하니] 불안했지만 그래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_131~132쪽, 7장 〈지문날인 거부: 일본의 공민권 운동〉

일본인과 외국인을 나누는 발상은 지문날인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테러 대책이라는 게 앞에 내세운 명분이지만, 일본인에겐 테러리스트가 없고 외국인에겐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옴진리교 등은 뭡니까. 굳이 말하자면 특별영주권자는 제외했지만요. 그렇게 되면 쉬취전 씨 같은 중국인 일반영주자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이니치와 같은데, ‘왜 나만?’이라는 식으로요. 영주권자는 입국관리국이 정기적으로 재류 상황을 심사할 필요가 없다고 한 사람들입니다. 정기적으로 입국관리국에 출두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특별영주와 나누는 것은 이상한 일이죠. 지문날인도 먼저 ‘특별영주’와 ‘일반영주’는 동시에 폐지했습니다. 더 ‘국민에 가까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요. 그리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일정 조건을 만들어 ‘일반영주’를 ‘특별영주’에 통합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10년이나 20년 동안 ‘일반영주’한 이들은 자동으로 ‘특별영주’로 인정한다든가 해서요. 일본의 국적법이 속지주의가 아니라 혈통주의를 취하고 있는 이상 이런 궁리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염두에 두고 처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최근엔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_165쪽, 8장 〈지문날인 거부 2〉

이렇게 이례적인 전쟁 희생자 원호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앞서 말한 가야 오키노리 시대였습니다. 당시부터 나오는 말이었지만 ‘금전적 급부’와 ‘정신적 위로’는 차의 두 바퀴입니다. 금전 면으로는 이제 대체로 충분히 보상을 했으니, ‘정신적 위로’라는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야스쿠니靖国’입니다. 전전에는 야스쿠니에 신으로 모셔졌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집에 가면 ‘유족의 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어서 모두에게 존경을 받게 됩니다. 국가를 위해서 아드님이 희생을 했다고 말이죠.
이 지점에서 ‘야스쿠니신사 국가 호지護持’[야스쿠니신사를 국가가 보호하고 지켜가라는 의미]라는 게 부상합니다. 야스쿠니신사 법안이 제출되지만, 어떻게 해도 헌법 제20조 정교분리8와 관계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우익 쪽에서 ‘자, 그러면 공식 참배를 하라’며 소란을 일으켜, 이번에는 총리대신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가 쟁점화됩니다.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씨(재임 기간 1974~1976)가 1975년에 ‘사적 참배’를 하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씨(재임 기간 1982~1987)가 1985년에 ‘공식 참배’까지 밀고 갑니다. 총리대신이 야스쿠니신사에 가느냐 마느냐는 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되어 오래도록 영향이 남아 있잖습니까. 지금 말한 흐름과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후의 중요한 문제란 것은 자이니치 처우를 둘러싼 쟁점으로 부터 보면, 정말로 훤히 드러나 보입니다. 일본의 전후, 평화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들의 속이 텅 빈 모습이 떡하니 드러난다 할 수 있습니다.
_181~182쪽, 9장 〈‘잊혀진 황군’들의 절규〉

나는 얘기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법률을 심의할 때엔 부디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말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박해받은 일본계 미국인의 보상법을 만들 때 각지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당사자인 일본계 미국인들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 생각을 밝힐 수 있었다. 일본에서도 꼭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말해도 안 된다고 하니까 [당사자가 아닌] 내가 발언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의견조차 말할 수 없었던 강 씨를 생각하면, 참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_196쪽, 10장 〈전후 보상 재판에서 조위금법으로〉

미에현에서 ‘자이니치’가 교원 채용에 합격했다는 기사가 나왔었죠. 그래서 물어보니, 아이치현과 나고야시에서는 시험조차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당시 나는 아이치현립대에 있었습니다. 대학에 현의 교육위원회와 얘기가 통하는 선생님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니, 전에도 우리 대학에 교원을 희망하는 자이니치 학생이 있어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교육위원회에 교섭을 해보았지만 퇴짜맞은 적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에현에서는 괜찮은데 [바로 옆에 있는] 아이치현에서는 안 된다니 이상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이뤄졌습니다. 앞서 말한 민투련 운동이 점점 확산되는 시기였잖아요. 차별이 이뤄지는 것들을 일람표로 작성해서 ‘다음엔 이것이다’라면서 부숴가는 시대였습니다. “우리도 아이치에서 운동을 통해 길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했지요.
_209~210쪽, 11장 〈‘당연한 법리’란 무엇인가〉

모처럼이니 사람을 나눠서 한국의 국회의원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나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최좌익 정당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의원이 다섯 명 정도였던가요. 그래서 “꼭 한국에서도 지방 참정권을 허용해달라”고 얘기했더니, 그 젊은 의원이 “이 나라는 오랫동안 화교를 엄청나게 차별하고 냉대해왔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면 외국인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 참정권의 개방은 하나의 상징적인 정책이니까 꼭 실현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대단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_240쪽, 12장 〈외국인 참정권이라는 ‘출발점’〉

조선학교 부수기에 열심인 사람들은 공화국과 연관성을 특히 끄집어내 ‘사상 교육’이나 ‘반일 교육’을 문제 삼으면서 여러 말을 합니다. 그 인식 자체가 엉망진창인 것은 접어두고, 애초에 논리적으로 볼 때 그들의 눈엔 교육에 있어 국가와 민족, 정체성의 형성이란 문제와 관련해 국가나 민족이 갖는 중요한 역할이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자이니치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마이너리티로서 소외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를 튕겨낼 수 있는 용수철로서 그런 것들이 [아이들의 정체성 형성 등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조선인이라는 게 나쁜 거야?”라는 아이의 물음에 [부모와 주변 어른들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공화국과의 관계’나 ‘수령님 운운’하면서 [조선학교를 겨냥해]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알지 못합니다. 조선학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내는 기관지 같은 것을 보면 조선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조선학교를 비판하는 글도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조선학교가] 괘씸하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조선학교 시절이 자신에게 있어 매우 귀중했다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방금 말한 것과 관계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_263~264쪽, 13장 〈조선학교의 대학수험 자격 문제〉

키워드는 ‘원상회복주의’입니다. 옛 식민지 출신자의 일본 국적을 박탈할 때 일본 정부의 논리는 “만약 일한병합이 없었다면 조선인이었을 사람은 조선인으로 취급한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언어를 빼앗긴 상태를 원래대로 돌이키는 것도 ‘원상회복 의무’입니다. 거기서부터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보호, 나아가 ‘민족 교육의 보장’이라는 논리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그 의견서의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그때까지 명확히 쓴 적이 없었지만, 이 사건과 만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죠. 하나하나 개별적 사건 가운데에서 문제를 풀어갈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 내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_279쪽, 14장 〈‘시작’으로서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

어쩐지 북한과 얽히면, 또 ‘납치’라고 하면 나가타초[국회]에서도 가스미가세키[정부]에서도 무조건 ‘사고 정지’가 일어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요. 그렇지만 아이들의 교육에 관계되는 문제, 자라나는 차세대의 문제잖아요. 왜 일부의 반발을 어떻게든 해서 극복하지 못하는지. 왜죠? 이것을 실현하면 후세에 남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교육

자이니치 권리 투쟁의 산증인,
다나카 히로시가 반세기에 걸친 역사를 말하다

일본 도쿄도 기타구에는 조선학교 중 하나인 도쿄조선중고급학교가 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통학로 아카바네역에서 어떤 낙서를 발견한다. ‘조선인을 죽이는 모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2022년 9월 9일에 벌어진 일이다. 사건이 일본 언론에 보도된 것은 그로부터 3주가 지난 그달 30일이었다. 오래전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 멈칫하게 되는 점은 조선학교나 자이니치를 향한 증오 범죄가 일본 사회 내에서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 독자에게도 익숙한 극우 민족주의 단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존재와 그 거리낌 없는 행보를 봐도 알 수 있듯, 일본의 인권 의식은 후퇴하고 역사수정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여기, 늦게나마 알아야 할 이름들이 가득 담긴 책이 출간되었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자이니치 투쟁사와 각각의 현장을 뜨겁고 날카롭게 증언하는 《공생을 향하여》이다. 무엇보다 먼저 붙잡아야 할 이름은 저자 다나카 히로시다. 한국 사회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경제학자이자 현재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그의 전문 분야는 일본-아시아 관계사, 포스트 식민지 문제, 재일 외국인 문제, 일본의 전후 보상 문제 등이다. 그가 걸어온 궤적 자체가 차별과 편견을 깨부수는 투쟁의 역사였고, 그 중심에는 자이니치가 있었다. 손진두, 송두회, 박종석, 최창화, 김경득, 강부중, 정향균 등 수많은 자이니치가 그와 함께 걸었다. 다나카 히로시는 주로 자이니치 2세 이후 세대가 짊어진 대부분의 권리 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함께 달려왔다. 문자 그대로 자이니치 인권 투쟁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그 숱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책의 또 다른 저자인 나카무라 일성이 함께했다. 그들은 2016년을 시작으로 오래고 긴 인터뷰를 거듭하며 ‘투쟁의 철칙’을 묻고, ‘양보할 수 없는 선’을 말하며, 이다음을 살아가는 데 기준이 될 반석을 지면에 적었다. 이후 잡지 연재를 거쳐 추가 인터뷰를 더한 단행본이 2019년 일본 사회에 출간되었고, 2023년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진정으로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 분노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던 여러 목소리를 담은 이 값진 작업물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은 〈한겨레〉 길윤형 기자가 맡았다.

“내가 만나고 겪은 자이니치들은 『파친코』의 등장인물들과 닮았으면서도 크게 달랐다. 이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과 편견 속에서 시름하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필요한 경우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따금 앞뒤가 꽉 막힌 것처럼 보였던 절망 속에서 값진 승리를 얻어냈다. (중략) 지금도 수많은 자이니치가 일본 사회 내에서 크고 작은 차별과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다. 이들이 택한 것은 차별과 편견에 분노와 증오로 맞서는 폭력의 길이 아니었다.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면서도 일본 사회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평범하고 안온하게 살려는 ‘공생’의 길이었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천 엔 지폐, 잊혀진 황군, 대동아전쟁 긍정론
1960년대 일본은 어떤 시대였는가

다나카 히로시가 제도화된 인종주의를 상대로 투쟁의 삶을 결의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유학생들과의 만남이 계기였다. 당시 일본 사회는 안보 투쟁이 한창이었다. 변혁의 움직임과 여러 혼란으로 이글대던 시기였다. 그와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허구와 기만의 얼굴을 하고 ‘전후사’를 써나가기 시작하는데, 저자들은 바로 이 대목에 주목한다. 그들은 1960년대 일본 사회를 두고 “‘역사 인식’과 ‘반차별’이라는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반을 확립하는 데 완전히 실패해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15쪽)고 평가한다. 다나카 히로시는 특히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이 시기를 바라본다. ‘천 엔 지폐’, ‘잊혀진 황군’, ‘대동아전쟁 긍정론’이 그것이다(51쪽).
먼저 ‘천 엔 지폐’ 사건은 이렇다. 1963년 11월 다나카 히로시는 ‘아시아문화회관’에서 근무하며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과 관련한 일에 몸을 담고 있었다. 어느 날 도쿄에 유학을 와 있던 동남아시아 화교 유학생이 그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다나카 씨, 일본인은 역사를 어떻게 배우고 있는 거냐. 전쟁 전의 일본이라면 모르겠지만, 전후에 새로 태어난 일본에서 왜 굳이 이토 히로부미를 지폐에 끄집어내나. 이토는 조선 민족에게 원한을 사 하얼빈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아닌가. 일본에 가장 많이 사는 외국인인 조선인도 같은 천 엔짜리 지폐로 매일 물건을 사야 하는데 몹시 잔혹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매일같이 정부를 비판하는 문화인· 지식인이 그렇게 많아도 누구 하나 이토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비판하지 않는다. 1억 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쩐지 섬뜩하다.”(335쪽) 당시는 천 엔 지폐의 인물이 쇼토쿠 태자에서 이토 히로부미로 바뀐 시점이었다. ‘진주만에서 시작해 원자폭탄으로 끝나는’ 역사적 사실 안에 있던 다나카 히로시에게 이 일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잊혀진 황군’은 마찬가지로 1963년에 방영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식민지 시대 일본군으로서 출정해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입었지만,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보상받지 못한 자이니치 상이군인들의 모습을 추적한 작품이다. 일본 보훈제도부터 살펴보자면 전상병자 전몰자 등 지원법안이 1952년 국회에 제출된다. 전몰자 유족 단체인 일본유족회의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전몰자 유족에 대한 원호가 강화되던 시기가 바로 1960년대다. 그리고 이때 ‘국적 조항’이 발목을 잡으며 옛 식민지 출신자를 대상으로 철저한 배제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 문제는 20여 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논의가 시작되고, 다나카 히로시는 1988년 10월 ‘자이니치 옛 식민지 출신자에 관한 전후 보상 및 인권보장법’ 초안을 발표한다. 법정에서 다큐멘터리 〈잊혀진 황군〉을 상영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사법 투쟁에서는 끝내 패소하고 만다. 그러나 이후 정치와 시민이 움직이며 ‘잊혀진 황군’들은 일본을 상대로 각지에서 전후 보상 재판을 일으키는데, 다나카 히로시는 이 싸움에도 연대했다.
마지막으로 ‘대동아전쟁 긍정론’은 작가이자 평론가인 하야시 후사오가 1963년 9월부터 1965년 6월까지 〈주오코론〉에 연재한 원고 제목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 일본이 대항해 아시아의 독립을 지키려던 싸움이었지만 그 이념이 왜곡된 비극이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 도쿄재판을 전면 부정하는 글이다. 연재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일본은 100년 동안 아시아를 위해 싸워왔기 때문에 조금 쉬는 게 좋다”는 주장도 적혀 있다. 자극적인 ‘긍정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우익 잡지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주오코론〉에 연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위기감을 건네기에 충분했다. 베트남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고 히비야 공원에서는 ‘베트남 반전 운동’(베헤련)이 매일같이 벌어지던 때였다. 이렇듯 1960년대에 다른 아시아인들과 어긋난 감각을 경험한 일이 다나카 히로시의 원점이 되어 이후 투쟁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책은 그로테스크한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나라’의 성립과 현상 그리고 향후의 과제를 논하는 데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히타치 취업 차별 재판부터
고교무상화 재판에 이르기까지

총 16장으로 구성된 책은 ‘배제’와의 오랜 투쟁을 구석구석 꼼꼼히 돌아본다. 피폭 치료를 위해 일본에 밀항한 뒤 치료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일본 사회를 상대로 법정 투쟁에 나선 손진두의 싸움을 시작으로, 자이니치 권리 신장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박종석의 히타치 취업 차별 재판, 한국 국적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일본인에게만 입소를 허용했던 사법연수소의 문을 열어젖힌 김경득, 1980년대 일본 사회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지문날인 거부운동, ‘잊혀진 황군’이라 알려진 자이니치들의 전후 보상 운동, 제도적 인종주의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공무원·교사 임용의 국적 조항 철폐 투쟁, 외국인 참정권 운동, 나아가 식민지 지배로 인해 빼앗긴 언어와 문화와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민족학교에의 탄압에 맞선 움직임 등 굵직굵직한 싸움의 역사가 다나카 히로시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씨로 종횡무진 이어진다. 그와 함께 지금보다 엄혹했던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우뚝 서 투쟁해왔던 자이니치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또렷이 살아 한국 사회를 찾는다.
시대가 낳은 투쟁, 히타치 취업 차별 재판의 원고인 1951년생 박종석의 이야기는 이렇다. 1970년 히타치제작소 입사 이력서에 ‘통명’(자이니치가 본명인 조선 이름 대신 사용하는 일본식 이름)을 써서 합격하는데,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입사 결정이 취소된다. 박종석은 그해 12월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그는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 재판에 이기든 지든 자신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히타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77쪽)라는 발언을 남긴다. 차별에 맞닥뜨리고 대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것이고, 이는 이후 많은 자이니치에게도 뒤따르는 순간이었다. 거대 기업 히타치와의 싸움에서 본명을 공개하는 결단을 내리며 긴 여정을 이어간 재판은 승소를 거머쥐는데, 이 역사적 승리로 불붙은 반차별·권리 획득 운동의 물결은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인권 투쟁으로 발전한다.
또 하나의 획기적인 투쟁의 주역, 1949년생 김경득은 1976년 외국 국적을 가진 채로 변호사가 되겠다면서 일본 최고재판소에 임용을 요구한다. 최고재판소는 연수소 입소 자격에 국적 조항을 두고 외국 국적자를 배제해왔다. 신청 단계에서 ‘귀화’를 약속하면 가입소가 인정되기에, 김경득 이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자이니치 열두 명은 모두 귀화를 선택한 바 있었다. 김경득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사실과 논리로 일관했고, 최고재판소는 ‘맥없이’ 문호를 개방한다. 이토록 근거 없는 국적 조항이 오랜 시간 사람들을 배제해온 것이다. 자이니치 한국인 변호사 제1호 김경득은 이 일을 계기로 여러 권리 투쟁에 함께하며 힘을 싣는다. 다나카 히로시는 그가 개척한 길을 대신하여 열거하며 그 의미를 전한다.
책의 중반부를 지나면, 에다가와 재판(도쿄조선제2초급학교)이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를 둘러싼 법정 투쟁 등 2000년대의 움직임이 언급된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자이니치 집단 거주 지역인 도쿄도 고토구 에다가와. 이곳에는 1945년에 설립된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있다. 2003년 12월 도쿄도가 재판으로 ‘퇴거’를 압박해온다. 도쿄도와 임대계약이 끝난 땅에서 조선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불법 점거’라고 주장하는 구민들이 주민 감사를 청구한 게 계기였다. 다나카 히로시는 “식민지 지배로 조선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빼앗은 일본은 이를 회복하기 위한 장소, 즉 조선학교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주장으로 맞선다.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투쟁을 이어가던 중 조선학교 지원단체인 ‘몽당연필’의 사무총장으로 당시 홋카이도의 조선학교를 촬영 중이었던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가 2006년 한국에서 개봉되면서 연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에다가와 재판은 2009년 도쿄간이재판소에서 ‘즉결 화해’가 성립되며 실질적 승소를 거둔다. 에다가와에서 함께했던 자이니치 변호사들은 이후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인 2013년 일본 정부가 고교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고교무상화 재판의 대리인이 되는데, 다나카 히로시는 이 연대의 계승을 목소리 높여 강조한다.
한편 고교무상화 재판은 2013년 1월 아이치와 오사카를 시작으로 도쿄, 후쿠오카, 히로시마 등 다섯 개 지역에서 민사소송이 시작되는데 오랜 공방 끝에 2021년 7월에 이르러 다섯 건 모두 원고 패소로 종결한다. 이에 대항하는 집회 ‘금요행동’이 여전히 도쿄 문부과학성 앞에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연구 제1인자라 할 수 있는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이제 식민지는 없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식민지가 사라졌어도 이렇듯 문제는 남아 있다. 다나카 히로시는 ‘부정적인 역사’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관해 고민한다. 그리고 지난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단계에서, 조선학교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일본 사회에 귀중한 자산이라고 제안한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조선학교는 솔직히 말해 자이니치들에게 보물이지만, 동시에 일본 사회에도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322쪽)

공생으로 가는 길을 향해
한국 사회에 도착한 메시지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운동에 참여한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경험에서 빚어낸 구체적인 언어로 지난 역사를 회고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각 투쟁이 진행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핵심 쟁점, 운동에 함께한 이들의 생각, 일본 사회와 이후 운동에 끼친 영향 등이 일목요연하면서도 생생하게 활개를 치며 독자를 향해 달려든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인권 투쟁의 역사를 듣는 매우 행복한 시간을 홀로 독점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한 나카무라 일성의 결심이 빛이 발하는 대목이다.
여러 투쟁기가 펼쳐지지만, 모두 하나의 거대한 질문 아래 모인다. 책은 “국적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관절 국적이란 무어길래 “일본 국적을 갖지 않은 자”라는 열 글자에 그토록 무시무시한 힘을 부여하는지, 차별을 합리화하는 마법의 장치가 되어 배제와 감시를 정당화하는지 책은 묻는다. 국적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이 모든 행위는 차별임이 명확해진다. 그런데도 ‘국적 조항’이나 ‘국적에 의한 차별’은 재판에서 이긴 적이 없다. 법 아래 평등에 반한다는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사안인데도 사법은 절대 구제하지 않는다. 다나카 히로시의 표현에 따르면, “정말로 엉망진창”이고, “법치국가가 아닌 것”이며, “이 나라가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라는 것에서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 알 수 있”다(116쪽). 그러나 앞서 세상을 살아간 이들의 투쟁은 “법을 부수고 악법을 저격하는 투쟁”이었다. 운동으로 길을 열어젖힐 수 있고, 권리를 신장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가능했던 일이다. 도쿄에서 보건사로 일하던 정향균(1950년생)은 외국 국적을 이유로 관리직 시험을 거부당한 후 진행한 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별에 지고 싶지 않다. 굴복하고 싶지 않다. 문제에 부딪힌 인간이 거기에서 멈칫하면, 또 다음 사람이 같은 일을 당한다. 역시 처음 부딪힌 인간이 결심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을 굳히게 됐다.”(215쪽) 자신의 존엄을 위해, 다음 세대를 짊어지게 될 동포들이 같은 차별을 맛보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차별 가운데 살아갔던 앞선 이들에게 정의를 되돌려주기 위해 그들은 투쟁했다.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현장을 지키는 실천적 지식인 그리고 자이니치 투쟁사에 뜨거운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자이니치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 우리 사회에 묻는다. ‘공생’이란 진정 무엇이냐고 묻는다.

작가정보

田中宏
1937년생. 아시아학생문화협회 근무, 아이치현립대학 교수, 히토츠바시대학 교수, 류고쿠대학 특임교수 등을 거쳐 현재 히토츠바시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전문 분야는 일본-아시아 관계사, 포스트 식민지 문제, 재일 외국인 문제, 일본의 전후보상문제다. 저서로는 『일본 안의 아시아: 유학생·재일조선인·‘난민’日本のなかのアジア-留学生ㆍ在日朝鮮人ㆍ「難民」』(1980), 『허망의 국제국가·일본虚妄の国際国家ㆍ日本』(1990), 『전후 60년을 생각한다: 보상재판·국적차별·역사인식戦後60年を考える-補償裁判ㆍ国籍差別ㆍ歴史認識』(2005), 『재일외국인: 법의 벽, 마음의 골在日外国人-法の壁,心の溝』(1991 재판, 1995 재판, 2013) 등이 있다.

中村一成
1969년생. 「마이니치신문」 기자를 거쳐, 지금은 프리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자이니치 조선인과 이주노동자, 난민을 둘러싼 문제나 사형이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는 『목소리를 새기다: 자이니치 무연금 소송을 둘러싼 사람들声を刻む-在日無年金訴訟をめぐる人々』(2005), 『르포 교토조선학교 습격사건: ‘증오범죄’에 맞서ルポ 京都朝鮮学校襲撃事件-〈ヘイトクライム〉に抗して』(2014), 『르포 사상으로서의 조선적ルポ 思想としての朝鮮籍』(2017) 등이 있다.

1977년 서울 출생.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2001년 11월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국제부 등을 거치고, 2013년 9월부터 3년 반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재직했다. 귀국 후 「한겨레21」 편집장과 「한겨레」 국제뉴스팀장, 통일외교팀장을 맡았고 현재는 국제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베 정권 이후 본격화된 반동의 흐름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미일 동맹 강화를 비롯한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 등에 관한 여러 기사를 썼다.
지은 책으로는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아베는 누구인가』 『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같은 삶』 『26일 동안의 광복』 『신냉전 한일전』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 『아베 삼대』가 있다. 힘닿는 데까지 계속 무언가를 써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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