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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계보학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서사들
메두사의 시선 4
나무연필

2023년 11월 03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10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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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8.14MB)
ISBN 979118789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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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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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고 싶다면, 단연 첫 번째 목록에 오를 책이다. 이 책은 신채호부터 김대중까지, 한국의 건국 원리로서 젠더화된 민족주의의 계보를 추적한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 책만큼 설득적으로 분석한 책은 드물 것이다. 글쓰기의 방법론과 관점은 매혹적이고, 내용은 지성과 흥미가 넘친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통찰력이 힘차다. _정희진(〈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여성학 박사)

이 책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서사를 해부하는 것이 왜 남성성 비판이자 가족 로망스 분석일 수밖에 없는지를 예리한 직관으로 논증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그 서사가 남성성 신화의 단순한 반복이기보다 창조적 변용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 한국 사회가 그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 책은 생생한 현재성을 지닌다. _박권일(미디어사회학자,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는 한국 사회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레토릭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인가? 이는 곧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최근 불거진 ‘국가 정통성’ 논란은 이 질문에 대한 익숙한 변주일 터. 반일 대 친일, 진보 대 보수와 같은 통상적 관점에 일말의 의구심을 품었던 이라면, 실라 미요시 야거가 펼쳐 보이는 애국의 계보도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야거는 개화기부터 현대까지의 특정 텍스트를 골라낸 뒤 그것이 어떤 서사로 구축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새롭게 한국 근현대사의 내적 논리를 읽어낸다. 그녀는 이 작업을 위한 방법론으로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채택한다. “수수께끼 같은 형식을 활용하여 충격을 주고 이를 통해 생각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림 퍼즐”이라 할 수 있는 몽타주처럼, 여러 텍스트들을 찾아내 그것들을 병치함으로써 그들 간의 연관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작은 개별적 순간의 분석 속에서 전체 사건의 결정체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통 역사학과는 사뭇 다른 방법론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강렬한 통찰을 이끌어낸다.
야거는 흔히 적대적 이분법으로 나뉘었던 관점들의 내적 논리가 기실 얼마나 유사한지를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젠더’라는 필터로 한국사를 바라볼 때 새로이 조명할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가령 대표적인 항일 인사 중 한 사람인 신채호가 바라 마지않으며 구축하려 했던 것은 한껏 ‘무력’을 갖춘 국가였으며 그가 되살리려 했던 전통은 영웅들이 강하게 칼을 들던 과거였다. 일제강점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야거는 이순신을 강력하게 내세운 박정희가 바로 신채호의 계승자임을 넌지시 지적한 뒤 그의 서사를 되짚어본다. 사상적으로는 대척된 듯 보이지만 이들의 서사가 닮은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은 여성 또한 빗겨가지 않는다. 야거는 이광수의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열녀’와 ‘효녀’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애국부인’으로 창조적으로 대체되었음을 논증한다. 과거와 견주어보면 마음을 바치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 신여성조차 다시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곤 했던 것이다. 저자의 시선은 1980년대의 운동권,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그리고 김대중에게까지 가닿으면서, 대한민국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주창하며 만들어낸 서사의 논리들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이 독특한 저작은 야거가 샤머니즘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6월항쟁을 목도한 뒤 자신의 연구 방향을 틀면서 태동되었다. ‘외부자’이자 ‘연구자’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볼 때 불거져 나온 질문들을 해명할 기원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녀는 이 저작을 기점으로 인류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한국 전문가로 자리매김한다. 한국에서는 야거가 젊은 시절 버락 오바마의 연인이었던 점이 기사화되면서 처음 알려졌지만, 한국사에 대한 명민한 통찰력을 선보이는 저자로서 다시금 그녀를 소개한다.
한국어판 서문
서론 민족주의와 젠더의 시선으로 본 한국사
1부 근대 정체성
· 1장 남성성의 회복: 신채호
· 2장 감정의 탐구: 이광수
2부 여성
· 3장 국가에 대한 사랑의 기호
· 4장 현모양처, 애국부인
3부 남성
· 5장 박정희와 농업의 역군들
· 6장 학생들, 그리고 역사의 구원
· 7장 기념비적 역사
에필로그 김대중의 승리
감사의 말│옮긴이의 말│참고 문헌│사진 출처│찾아보기

이 책은 한국의 역사, 젠더, 민족주의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부상하고 그와 연동하여 국가가 등장하면서, 한국인이 자신을 젠더적 존재로 인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조명한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더불어 탄생했고, 민족주의의 창조적이고 변혁적인 힘이 곧 새로운 젠더 주체성을 생산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23쪽)

신채호는 박은식, 장지연과 같은 민족주의 학자와 더불어 한국사에서 전쟁 영웅이 담당했던 역할을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군사 영웅을 한국사의 핵심 행위자로 재평가하면서, 조선 시대 문신과 무신의 전통적 관계도 새롭게 해석되었다. 조선 사회에서는 줄곧 문신과 무신 사이에 긴장이 감돌았지만, 신채호는 다른 그 어떤 민족주의 작가보다도 이 긴장을 한층 더 깊이 활용하여 양반을 통렬하게 공격했다. 그에 따르면 양반은 “국혼이 결여된” 존재였다. 다시 말해 영웅 재발견 기획은, 한국의 “노예적 문화 사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군사 국가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작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그는 호전적이고 충성스럽고 용맹한 군사 영웅의 이름으로 약해진 국가를 강건하게 키워, 생존경쟁에서 확실히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고자 했다. (37쪽)

근대 초기의 한국 작가들이 정치적 담론에서 여성의 새로운 범주를 활용하는 방식은 대부분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 서사 구성을 따르는 경향을 보였다. 전통적 여주인공은 남편에 대한 고결한 절개로 존경받았지만, 이제 그 절개는 식민지가 된 국가와 민족을 향한 것으로 옮겨갔다. 한국에서 국가라는 개념이 제기될 때, 한국의 가부장적 친족 내에서 여성이 담당하던 전통적 역할을 포함한 공동체적 상상은 거의 배제되지 않았다. 새로운 문명을 수용하고 과거와 투쟁하는 과정에서도 결코 전통적 절개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절개를 새로운 애정의 대상(국가)을 향해 고스란히 전환하여 적용했다. (90~91쪽)

서구의 사랑 이야기에서 결혼은 대개 어떤 난관을 극복한 데 대한 보상이다. 이때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여자에게 합당한 존재임을 증명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여자 주인공이 덜 고귀한 여자를 제치고 부유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선함과 변치 않는 신실함의 미덕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랑 이야기에서는 사랑의 난관(이렇게 불러도 된다면)이 결혼만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난관은 혼인 서약이 이루어진 후에 시작된다. (125쪽)

식민주의의 담론적 실천과 새마을운동의 담론적 실천 사이에 일종의 모순이 엿보인다. 이 둘은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기법과 전략을 상당수 공유하고 있으며, 양쪽 모두 발전과 근대성에 관해 동일한 원칙을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매우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었다. 일본 식민지배자들이 한국을 부정적으로 재현한 것은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의 일환인 반면, 동일한 재현이라도 박정희 정권이 소환한 한국의 모습은 주로 자기 정당화의 정치적 담론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박정희의 개념적 어휘는 신채호와 같은 민족주의 개혁가가 쓰던 어휘와도 비슷했다. 이들은 둘 다 개혁을 위한 민족주의적 자기비판의 수단으로 무능한 남성성의 표상을 사용했지만, 박정희가 묘사한 한국의 후진성은 주로 군부의 정권 장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163~164쪽)

무능한 한국 남성성의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하여 제시된 것이 아니다. 이는 군대 및 군사화된 대중이 이 사회의 새롭고 정당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수정한 한국사의 버전을 유지시키고, 민주화 세력의 정치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대항 담론으로 제시되었다. (165쪽)

가족사의 순환과 연결되는 특정한 애국 전통의 ‘상속자’로서, (남)학생들은 조상에 대한 제례적 의무를 수행하면서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형성했다. 이들의 유사성은 혈통과 계승,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연결을 강조하는 가족 내 세계의 관심사를 통해 매개된 시간과 사건이 문화적으로 구성되면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세계를 개혁하기 위한 각각의 새로운 투쟁은 과거와의 연결을 끊기는커녕 과거에 대한 극적 서사의 형태로 나타났고, 각각의 인물은 자발적으로 과거의 역할을 수정해 재연할 뿐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서사적 패러다임 속에서 각각의 ‘혁명’은 한국 가족 문화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운동으로 구성되어 (아버지, 아들, 손자 등 부계적) 세대를 거쳐 면면히 이어지는 지속적 재생의 애국 서사가 된다. (178~179쪽)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혁명’이란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신앙심과 애국심은 쉽게 동반된다. 열렬한 혁명가의 이상적 모델은 서구의 경우처럼 부친을 살해하는 아들이 아니라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매우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자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론은 본질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다. 유교 관습에 충실한 효자들이 충실한 애국자가 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180~181쪽)

한국의 전쟁 영웅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는 ‘애국적’ (남성) 전사의 계보를 따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 계보는 국가 기념물이자 국립 박물관으로서 전쟁기념관이 갖는 의의 중에서도 결정적인 핵심이다. 달리 말하면 전쟁기념관의 기념비적 의미는 이 계보의 잠재적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한국의 영웅적 과거사를 단절되지 않은 전사의 전통으로 제시한다. 이때의 역사란 시기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된 국면들이 연결된 하나의 연속체이다. (202쪽)

21세기에 들어선 뒤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오직 이행의 개념으로만 이해하고자 했던 포괄적 역사 이론의 실패한 약속을 반성하면서, 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국민국가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과제가 제시되었다. 그러한 전략의 결과가 차이와 저항의 행동을 통해서든 역사 서사 전체를 회피하는 것을 통해서든 그저 지배 문화를 다시 쓰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진보적 역사에 대한 이전의 비판 전통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벤야민이 말했던 ‘변증법적 이미지’, 즉 그가 감춰지거나 잊혔을 과거와의 연결이 현재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며 밝혀지는 각성의 순간이라 부른 관점을 통해 국가를 개념화했던 방식을 비로소 재고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가의 과제는 텍스트, 사건, 이미지의 병치로 드러나는 여러 겹의 의미의 층위를 벗겨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하고 예상치 못하거나 숨어 있는 연결을 (재)포착하는 것이다. (241쪽)

신채호부터 김대중까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서사를 낱낱이 해부하다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한국사 가운데서 저자가 골라낸 두 인물은 신채호와 이광수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조선’을 딛고 넘어서야만 하는 과제로 인식했다. 조선에 문제가 있었기에 중국과 사대관계를 맺었고 이 땅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에 신채호가 선택한 길은, 조선 시대의 양반을 문약함의 상징으로 규정한 뒤 이들의 존재를 지우면서 한국사 가운데서 강한 무력의 시대와 인물을 조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일환으로 그는 을지문덕, 이순신, 최영 등의 전기를 집필한다.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한 평가와 재해석에 이어 신채호는 동시대의 국민들에게 나약함을 떨쳐내고 강한 군사력을 함양할 것을 요청한다.
반면에 이광수가 나아간 길은, 신채호에 비하면 좀더 다층적이다. 신채호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나약한 양반의 모습은, 이광수의 소설에서 식민지 시대의 나약한 지식인 남성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내면이 갈등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결단하지 못하는 남성들과 달리, 이광수가 그려내는 여성들은 고난으로 멍들지만 ‘개화’하여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는 중심에 서기도 한다. 가령 『무정』의 주인공 형식은 자살하려는 자신의 약혼자 영채를 외면하고서 새로운 여성 선형과의 유학을 꿈꾸는 반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기생으로 살아가던 영채는 주변 여성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 뒤 자기 삶의 의미를 자각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저자는 이를 그저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사적인 삶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으로 편입되는 것을 포착한 것이다. 즉 이광수의 여성 인물들이 보여주는 선택은, 서구의 근대적 개인주의에 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에 대한 투신으로 드러나기에 집단주의적이다. 또한 이렇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통합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은 설득력 있는 서사적 힘을 갖게 된다.
한편 해방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필자의 시선이 머문 곳은 박정희와 운동권 학생들, 그리고 전쟁기념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그 목적은 다를지언정 근대화에 관한 원칙에 있어서는 신채호와 박정희가 서로 닮아 있음을 조명한다. 신채호가 조선의 양반 문화를 의식적으로 폄하했듯이, 박정희 역시 새마을운동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농촌에 내재되어 있던 전통 문화를 지양한다. 그러면서 신채호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이순신이 갖춘 용맹성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이자 박정희에 반하는 민주화 세력에 대항하는 담론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렇다면 군부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대항 담론을 만들어냈던 1980년대의 운동권 학생들은 어떠했을까? 저자는 이들이 이광수의 서사에서 엿보였던 유약한 남성성, 그리고 군부독재의 잘못된 아버지를 넘어서려 했다고 본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주체사상은 급진성을 품고 있는 듯 보임에도 여전히 혈연 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이다. 혁명가의 이상적 모델이 서구에서는 권위적인 부친을 살해하는 아들이라면, 한국에서는 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하는 아들이 된 것이다. 당대의 운동권 학생들이 강인하면서도 자애롭게 묘사되는 김일성에게 왜 끌렸는지, 그러면서도 서구로부터의 ‘오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성들을 이에 저항하는 주체로 만들려 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논리이다. 또한 이들의 서사 속에서 남북 분단은 남녀의 이별로 표현되는바, 이는 북한을 남한의 적으로 묘사해온 오랜 냉전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였으나 이광수의 여성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사적인 사랑을 국가의 문제로 환치한 것이기도 했다.
한편 군부독재가 물러간 시대에 대한민국 정부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집약적으로 엿볼 수 있는 공식 기념물로, 야거는 1994년에 개관한 전쟁기념관을 살펴본다. 전쟁과 애국 전사에 관한 전시에서 그녀는 이 계보의 불안정성을 읽어낸다. 달리 말하면 이 불안정성이 잠재되어 있기에 기념물에서는 더더욱 과거사를 영웅적으로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군대와 국민을 단단히 묶어 설명함으로써 무력의 증대와 국가의 부강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서사로 이어지는데, 약해 보이는 아우는 북한으로, 그러한 아우를 끌어안은 형은 남한으로 묘사한 〈형제의 상〉 조각상을 통해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남한이 영광스러운 ‘남성적’ 과거를 정당하게 계승했음을 드러낸다고 평한다. 이때 야거는 질문한다. “군사력에 대한 기념비는 과거 군사정권의 폭력적 통치를 상기시키는 대상으로 읽힐까, 아니면 민주주의를 향한 평화로운 이행과 포용의 상징으로 보일까?” 그녀는 〈형제의 상〉에서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듯, 화해의 제안조차도 결국 전쟁에 대한 기념을 통해 표현되는 아이러니를 말하고 싶은 듯하다.
이와 같이 한국 근현대사의 국면들을 살펴본 뒤, 에필로그에서는 간략하게 김대중의 남성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 분석은 상당히 독특한데, 야거는 과거 한국의 남성성이 무력을 숭상하는 남성성(신채호)이거나 무력한 남성성(이광수) 등이었다면, 김대중의 남성성은 ‘기독교적 용서’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을 용서하기 위해 몇 번이고 일어나는 김대중의 남성성, 이것은 과거 한국이 경유해온 남성성의 계보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차이는 과거 남성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를 참조하고 변용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분석에서 단적으로 엿보이는 것은, 저자가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오직 이행의 개념으로만 이해하려는 역사 이론에 반기를 든다는 점이다. 즉 역사 진보의 신화를 넘어서, 이에 대한 비판적 전통을 되살림으로써 그녀는 더욱 풍요로우면서도 자유롭게 역사를 해석해낸다. “역사가의 과제는 텍스트, 사건, 이미지의 병치로 드러나는 여러 겹의 의미의 층위를 벗겨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하고 예상치 못하거나 숨어 있는 연결을 (재)포착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실라 미요시 야거는 스스로가 한국어판 서문에 밝혔듯이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 연구하는 존재다. 이 독특한 역사학자의 시선을 책을 통해 만나보자.

작가정보

Sheila Miyoshi Jager
미국 오벌린 대학 동아시아학 교수. 시카고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샤머니즘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6월항쟁을 목도한 뒤 연구의 방향을 틀어 논문을 쓰고 『애국의 계보학』을 출간했다. 이를 계기로 인류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연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역사, 젠더, 민족주의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건설하는 데 바탕이 된 서사들을 탐색한 이 책은 역사적 순간들을 엮어 해석해낸 독창적 몽타주로 주목받았고, 한국학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이후에 지은 책으로는 해방기부터 현대까지의 한반도 역사를 다룬 『형제들의 전쟁: 남북한의 끝나지 않은 갈등』(2013), 급변하는 세계체제의 한가운데 놓인 한국의 여명기를 탐색한 『또 다른 위대한 게임: 한국의 개항과 현대 동아시아의 탄생』(2023)이 있다. 다큐멘터리 〈장진호 전투〉와 〈코리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자문을 맡았으며, 《뉴욕 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등에 칼럼과 서평을 쓰고 있다.

국어국문학을 공부한 뒤 영어와 일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주디스 버틀러』, 『도나 헤러웨이』,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여기부터 성희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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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애국의 계보학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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