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을 찾아서
2023년 11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07월 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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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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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저만치 앞서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들과 달리, 발걸음을 질질 끌며 뒤처져 걷고 있는 아이, 지우는 왠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늘어진 발걸음처럼 길게 늘어진 지우의 그림자엔 무슨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지우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날을 떠올립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날. 왠지 설레고 들떠야만 할 것 같은데, 지우는 들뜨긴커녕 축축 늘어지고 자꾸만 자꾸만 작아집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낯설고 사소한 요소들 하나하나가 지우에겐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여리고 움츠러든 마음에 직격타를 날리는 사건이 또 하나 벌어집니다. 교실에서, 난데없이 지우가 앉아 있던 의자가 앞으로 쑥 밀립니다. 화들짝 놀란 지우가 뒤를 돌아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의자 위에 눕다시피 한 채 앞으로 다리를 쭉 뻗고 있는 아이의 두 눈과 마주치기 전까지는요. 지우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 애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요.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 자리에 앉기 싫다. 그 애 앞에 앉기 싫다.’_본문 8쪽
‘본능’의 울타리 안에서
울타리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시선
그리고 그런 지우의 직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뒷자리의 이상한 아이 ‘시우’는 교실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연달아 보여 줍니다. 수업 중에 갑자기 웃거나 으르렁 소리를 내서 주의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우의 엄마도, 교실의 선생님도,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시우에겐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실 안에서 문제아 시우의 이름이 백 번 불리는 동안, 지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본능으로 시우의 본능을 의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고 있다. 딱 한 명, 장시우만 빼고.’
지우는 시우를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튀는 행동만 보이는 시우가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짜증도 나지만, 왠지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이죠. 그렇게 마음이 가는 자리에서, 지우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시우의 모습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문 입구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고, 다른 친구들의 잘못을 고자질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에겐 망설임 없이 기꺼이 나누어 주는 모습 같은 것들이지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시우의 겉모습 안에 들어 있는 순수하고 예쁜 속내를 벗겨 가던 지우는 어느 날 그 중심에 자리한 시우의 ‘진짜 본능’을 알게 되기에 이릅니다. 그 본능의 이름이 무엇이냐고요? 바로 ‘알로사우루스’입니다.
‘본능! 장시우도 본능을 안다! 게다가 알로사우루스라니!’_본문 44쪽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아도
같은 마음일 수 있어
‘알로사우루스’는 지우가 가장 좋아하는 공룡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아이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꼭 다른 세계에 사는 것만 같았던 시우가 바로 자신과 똑같은 공룡을 좋아하고 있었다니, 지우는 그게 너무 이상한데 묘하게도 반갑습니다. 지우는 그동안 이상하고 시끄럽게만 들렸던 시우의 우렁찬 목소리가, 사실은 공룡을 흉내 낸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남들은 숨기고 사는 공룡의 본능 같은 것을 시우는 다 드러내고 사는 아이라는 것도요. 무언가를 함께 좋아하고 나누면서, 지우는 드러난 모습 안에 숨겨진 속내와 그로부터 드러나는 반짝임을 발견하고 시우에게 전보다 훨씬 더 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어도 세상에서 제일 멀게만 느껴졌던 아이가, 그래서 매일매일 학교에 오는 일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만들었던 아이가 이제는 지우의 마음속에서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깝고 반짝이는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시우는 정말 이상하다. 난 한 번도 시우 같은 친구를 본 적이 없다.’_본문 60쪽
우리에게 숨겨진
또 다른 본능의 이름, ‘우정’
그렇게 모두가 ‘본능적으로’ 시우를 멀리하라고 할 때, 지우는 숨겨져 있는 시우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만 잘못한 친구를 지적하기보다는 먼저 사과하고, 자신보다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해 주는 시우의 행동들은 지우의 가슴속에 자꾸만 작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지우는 스스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본능의 의미를 무너뜨리고 하나씩 재정립해가기 시작하지요. 이제 지우의 본능은 더 이상 나와 다른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본능,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버리는 본능, 그렇게 나와 다른 대상을 나무라고 밀어내는 본능이 아닙니다. 조금 다듬어져 있지 않을지라도 그 안에 진주 같이 반짝거리는 마음을 발견해 내는 시선, 그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손을 내미는 용기, 그 손을 꼭 붙잡은 힘센 우정 같은 것들이 지우가 알고 있던 ‘본능’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알로사우루스’의 두 눈동자가 만나 이 세상에 전에 없던 불꽃놀이가 터지기 시작하지요. 엄마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몰라주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봐 줌으로써 이어진 두 아이들의 우정, 그 우정에서 피어오르는 기쁨과 약속의 불꽃입니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그려 준 알로사우루스를 받아 들었다. 시우가 내 마음을 다 알았을 거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_본문 44쪽
나의 너, 너의 나,
우리는 모두 서로의 우리
‘시우는 칼이 아닌데. 시우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지우의 ‘시우 알기’ 여정은 그렇게 본능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본능의 정의를 스스로 내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원래 알고 있던 본능이 그어 버린 선을 지우고, 금 바깥의 연결점을 슥슥 이어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이죠. 그 그림 속에선 어른들이 안 된다고, 다르다고 그어 버린 선도 훌쩍 넘을 수가 있고, 아이들이 부딪치며 가지게 되는 이런저런 갈등의 허들도 훌쩍 넘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그어져 있던 금들을 지우다 보면, 다른 얼굴 안에서 같은 모양 마음을 마주하고 닮아가게 되는 두 아이들의 말간 계절이 다가옵니다. 누구보다 여린 두 아이, 지우와 시우에게 그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그린 알로사우루스 그림에서, 우리는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영토에 뿌리내린 아이들의 새로운 미래를 봅니다. 조은혜 작가의 투명한 시선이 그려낸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결과 미안 작가가 생생한 상상력으로 색채를 불어 넣은 그 세계는,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아이들의 늘어지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 주고 작아지는 마음에 커다란 숨을 불어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좋아하는 공룡 하나씩 숨겨 두고 있을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줍니다. 그 손을 잡으면 어쩌면 바로 다음 순간, 우리도 지우의 시우를, 시우의 지우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어른 알로사우루스가 되면 우리는 다시 만날 거다. (...) 서로에게 그려 준 알로사우루스 그림을 보면 나는 시우를, 시우는 나를, 단박에 알아볼 수 있겠지.’_본문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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