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협력사회
2023년 11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10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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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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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문화진화론적 분석을 통해 이것의 답을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갈등,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전쟁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고대국가를 만든 것도, 그것을 무너뜨려 더 좋고 더 평등한 사회로 대치한 것도 전쟁이었다. 한마디로 전쟁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하는 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초사회성의 진화를 추진하는 것이 폭력, 즉 서로 전쟁을 하는 사회이고 궁극적으로 폭력을 줄이는 것 역시 초사회성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어떤 집단이 등장해서 융성, 쇠락, 소멸하는 과정은 개체들 간의 경쟁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그 간극을 집단 간의 경쟁에 대한 분석이 메워줄 수 있다고 보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라고 강조한다. 국가는 전쟁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했고, 협력의 규모가 커진 국가를 결속하는 힘은 제도와 문화 양쪽에서 ‘공진화’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에 빗대어 전쟁을 ‘파괴적 창조’의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협력의 진화, 전쟁의 파괴적인 면과 창조적인 면, 평등이 진화해온 궤적 등을 풀어내고자 한다.
1장 초사회성의 퍼즐
- 괴베클리 테페부터 국제우주정거장까지
2장 파괴적 창조
- 문화진화는 어떻게 크고 평화롭고 부유한 초협력사회를 만들어냈을까
3장 협력자의 딜레마
- 이기적인 유전자, ‘탐욕은 좋은 것’ 그리고 엔론 사태
4장 경쟁하려면 협력하라
- 팀 스포츠에서 배우는 협력의 비밀
5장 신은 인간을 만들었지만 샘 콜트는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 초기 인간은 어떻게 알파 메일을 제압했는가
6장 인간의 전쟁 방식
- 파괴적 창조의 힘으로서의 전쟁
7장 신격화된 왕의 탄생
- 알파 메일의 반격
8장 과두제의 철칙
- 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는가
9장 역사의 축
- 차축시대의 영적 각성
10장 인간 진화의 지그재그
- 그리고 역사의 과학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인간사회의 진화는 급선회를 반복하며 놀랍고 심지어 기괴한 궤적을 이어갔다. 왜 그랬을까? 철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은 많은 설명을 제시하지만 아직 수긍이 가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문화진화론이라는 새로운 학문 덕택에 우리는 그 답의 윤곽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답은 놀랍다. 작은 수렵채집 무리에서 거대한 국민국가로 바뀌게 만든 동력은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갈등이었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해, 처음에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고
대국가를 만든 것도 전쟁이고 그것을 무너뜨려 더 좋고 더 평등한 사회로 대치한 것도 전쟁이었다. 전쟁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한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창조적 파괴의 힘이다. 사실 이 말은 강조가 잘못되었다. 전쟁은 파괴적 창조의 힘으로, 놀라운 목적을 위한 가공할 수단이다. 그리고 그 힘이 스스로를 파괴하여 전쟁이 없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_ 초사회성의 퍼즐, 45쪽
혈연선택론은 유전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유전자 중심 관점은 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전우를 구하기 위해 수류탄에 몸을 던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거대한 인간사회가 협력해가며 진화를 거듭했는지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여러 면에서 대단한 책이다. 그러나 한 가지를 설명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협력하는 인간 능력의 진화다.
_협력자의 딜레마, 103쪽
경쟁의 형태가 다르면 협력에서도 아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같은 팀에 있는 개인 간의 경쟁이든 팀 간의 경쟁이든 협력은 전적으로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다수준 선택론에서 얻은 지혜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즉, 집단 내부의 경쟁은 협력하는 분위기를 파괴하지만 집단들끼리의 경쟁은 협력정신을 높인다.
_경쟁하려면 협력하라, 118쪽
어떤 형태의 집단이든 협력을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집합적 규모에서의 경쟁이다. 우리는 경쟁하기 위해 협력한다.
이로부터 나오는 또하나의 부수적 명제는 팀 간의 경쟁은 협력하도록 만들지만, 팀 안에서 선수들 간의 경쟁은 협력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공하기 위해 협력하는 집단은 내부의 경쟁을 억제해야 한다. 따라서 집단의 평등은 집단의 단결과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_경쟁하려면 협력하라, 145쪽
살상무기의 힘을 빌려 공격적이고 신체적으로 강력한 남자를 억제하고 제압할 수 있었던 우리의 집단적 능력 덕택에 인간은 평등주의를 진화시켰다. 남자들끼리 경쟁을 하는 데 필요한 대단한 근육이 필요 없어지면서 두뇌로 통하는 자원이 추가로 해방되었다. 또한 발사식 무기는 더 큰 두뇌에 대한 선택압을 증가시켰다. 첫째, 조준을 정확하고 능숙하게 하려면 신경회로가 더 정교해져야 했다. 둘째는 더 중요한 것으로, 연대를 이루고 유지하고 또 치밀한 집단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처리하려면 커다란 두뇌가 필요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큰 두뇌와 놀라운 인지능력은 협력의 진화에 다양한 결과를 낳았다.
_신은 인간을 만들었지만 샘 콜트는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164~65쪽
농부 집단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심지어 만성적 질병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수적인 우세만으로 건강하고 키가 큰 수렵채집인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진화적 의미로나 신체 조건의 일상적 의미로 봤을 때 개체의 적합성은 감퇴되었지만 진화적 집단의 적합성은 높아졌고 그런 적합성이 전반적인 과정을 추진했다.
따라서 내 설명의 논리는 이렇다. 만연한 전쟁은 더 큰 사회적 규모를 위한 강렬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_과두체의 철칙, 257쪽
계몽사상은 더 위대한 평등을 향한 박애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이를 심화시켰지만, 거시사적 추세의 뿌리는 차축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리고 이런 추세를 밀고 나간 동력은 이성이 아니라 신앙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종교를 치명적인 망상일 뿐이라고 여기는 새로운 무신론자들은 이런 결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_역사의 축, 300쪽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면 실패한 국가와 실패한 경제를 바로잡고 다시 시작할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살펴본 대로 핵심은 협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는 사회는 강한 국가를 만들고 번영하는 경제를 만든다. 협력하지 못하면 국가도 경제도 실패한다. 초협력사회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 즉 거대한 익명의 사회에서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진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_인간 진화의 지그재그, 331쪽
협력은 강력하다!
인간사회의 역사에 관한 일반이론의 탄생
인간사회의 진화를 추적하는 시간여행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7만~3만 년 전의 인지혁명과 함께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했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지혁명 이후에도 사피엔스의 진화는 지속되었다. 특히 협력하는 인간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진화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인류는 위대한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진보를 이루어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15개국이 합작하여 이뤄낸 프로젝트로, 인류가 협력에 놀라울 정도로 소질이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떻게 이처럼 협력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왔을까? 인간의 행위를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유한 인간 개체들의 이해타산과 경쟁 그리고 갈등의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일반적인 진화론에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수십 명 정도의 사람들로 구성된 수렵채집사회로부터 거의 완전히 남남인 수백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현대사회까지, 인간은 어떤 진화의 과정을 겪어왔을까? 이 책은 초사회성(ultrasociality), 즉 큰 무리를 지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 이유를 밝혀냄으로써 인간사회의 역사를 설명하고자 한다.
‘파괴적 창조’로서의 전쟁, 인간의 협력을 이끌다
침팬지나 고릴라 무리가 우두머리 중심의 위계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진 현생 인류는 진화 여정의 초기에 알파 메일(지배자 수컷)을 제거했다. 침팬지나 고릴라 집단에서는 싸우는 능력만으로 지배 위계가 결정되었지만, 인간 남자는 힘이 세고 공격적이라고 해서 멋대로 약한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했다. 무리 속의 다른 이들이 돌이나 활과 같은 발사식 무기로 횡포를 부리려는 신흥강자를 추방하거나 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소년 다윗이 정확한 돌팔매질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 결과 수렵채집사회의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협력적이고 평등한 사회에서 살 수 있었고, 완력보다는 연합이나 제휴를 위한 사회적 지능, 즉 협력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농업이 도입된 이후 불과 수천 년 사이에 인간은 과거의 평등주의를 포기하고 전제주의를 받아들였다. 정착지를 기반으로 부족 간의 전쟁은 더욱 격렬해졌고, 전쟁에서 지면 살육당하거나 살아남더라도 정착지를 떠나 생존하기가 어려웠다. 참담한 패배를 면하기 위해 부족과 마을은 더 큰 규모의 사회로 결합해야 했다. 이런 결합은 동맹 관계나 좀 더 중앙집권적인 군장사회로, 나아가 대규모 국가로 발전했다. 고대국가에서 통치자는 신격화된 반면, 노예제는 예사였고 인신공양도 일상적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학자는 『총, 균, 쇠』에서 최초로 농사를 지을 지역을 결정한 것은 지형이었고 그것이 이후 인간 역사를 엮어갔다고 주장한다. 즉, 농업의 시작이야말로 문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터친은 농업이 복잡사회로 진화하는 데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역사적 실례를 들어 반박한다. 국가를 기능하게 하는 관료제나 조직화된 종교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려면 커다란 비용이 든다. 그런 비용에도 불구하고 제도들이 생겨난 것은 올바른 제도를 갖추지 못한 사회는 경쟁력이 떨어졌고 소멸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쟁이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났다. 만연한 전쟁은 더 큰 사회를 선택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흥미롭게도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를 가능하게 한 것도 전쟁, 또 이 전제군주를 몰아내고 더 평등한 사회로 다시 한 번 방향을 전환하게 한 것 또한 전쟁이었다. 이것이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1200년 사이 차축시대에 나타난 획기적인 전환이다.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교와 도교 등 보편적 평등윤리를 주장하는 차축종교가 발생하고 이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거대 제국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거대 제국은 기원전 1000년경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나타난 혁신적인 군사기술, 즉 기마술이 추동력이 되어 발생했다. 이로써 기원전 500년을 전후로 몇 백 년 동안 군사혁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이 급증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또 전쟁의 결과로 출현한 이처럼 전례 없는 규모의 제국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이 복합집단을 묶어주는 접착제가 필요했다. 이제 국가는 생존하기 위해 백성을 탄압할 여유가 없었다. 국가의 생존이 평민을 무장시켜 대군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접착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차축종교로, 이들 종교의 등장과 함께 평등주의 윤리 또한 출현한다.
인간사회의 평등은 Z형으로 진화했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대로 인간사회의 폭력과 불평등은 선형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평등한 사회를 이루며 살던 인간들은 극도의 불평등한 시기를 거쳤고, 이는 또 한 번의 대전환을 겪어 노예제는 불법화되고 귀족들은 특권을 박탈당하는 등 다시 평등한 시대를 열게 되었다. 즉, 평등은 Z자 형태로, 지그재그로 진화해왔다.
흔히들 ‘이성의 시대’로 알려진 17~18세기부터 인권의 개념이 대두되었고 그 이전의 인간 역사는 ‘전제주의의 시대’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극심한 형태의 불평등과 전제주의는 이미 차축시대부터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증거는 그리스 철학자부터 구약의 선지자나 인도의 포기자와 중국의 현인에 이르기까지 차축시대 여러 사상가들의 저술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고대국가를 만든 것도, 그것을 무너뜨려 더 좋고 더 평등한 사회로 대치한 것도 전쟁이었다. 한마디로 전쟁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하는 힘이다. 터친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에 빗대어 전쟁을 ‘파괴적 창조’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초사회성의 진화를 추진하는 것이 폭력, 즉 서로 전쟁을 하는 사회이고 궁극적으로 폭력을 줄이는 것 역시 초사회성이라는 것이다.
터친은 흔히 집단선택론이라고 알려진 다수준 선택론과 문화진화론에 의거해 전쟁이 협력의 진화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1970년대부터 진화론은 하나의 유기체만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 연구에 접목되어 변이와 무작이적 부동, 선택 같은 생물학적 진화의 핵심 개념이 사회 분석에도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과정에 대한 수학이론인 문화진화론으로 발전했다. 문화진화론은 제각각인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하부조직의 집합체가 아니라 서로 연접된 통합체로서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다. 터친은 이 책에서 이런 문화진화론적 분석을 통해 협력과 전쟁이 소규모 사회에서 대규모 사회로 이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설파한다.
조직 내의 경쟁이 중요한가 협력이 중요한가 ? 엔론 사태의 교훈
2001년 12월, 세상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흔히 회계 부정으로 몰락한 것으로 알려진 엔론이 파산한 것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엔론의 파산에 대해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문도 없었다. 그것은 제프 스킬링”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프 스킬링은 1997년에 엔론의 사장 겸 CFO가 되고, 2001년에 CEO가 된 사람이다.
스킬링은 엔론에 ‘실적평가위원회’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엔론 직원들은 이를 ‘등수 매겨 내쫓기’라고 불렀다. 실적 중심으로 내부 경쟁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직원들 간의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화장실에 갈 때도 컴퓨터를 끄거나 암호를 걸었고, 옆자리 동료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의 분위기는 비윤리적인 행위와 재정적 부정으로 이어졌고, 결국 엔론의 붕괴를 초래했다.
공동의 목표를 이루려는 집단이나 사회가 능력을 갖추려 할 때 그 토대가 되는 것은 협력이다. 이것은 국가 같은 정치조직뿐 아니라 기업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스킬링이 엔론에서 한 일은 집단 내의 경쟁을 극대화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동료의 뒤통수를 치고 상호불신을 조장하는 행위였다. 다른 말로, 스킬링은 직원들끼리 협력하고 상사에 협조하고 회사에 도움을 주려는 분위기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런 그들에게 어찌 보면 붕괴는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역사에 관한 일반이론의 탄생
터친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인간사회의 역학을 문화진화라는 틀로서 바라보고 그것을 수학적 모형으로 분석하며 데이터로 검증해낸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터친은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개진한 주장을 비판한다. 핑커는 『선한 천사』에서 역사적으로 인간사회에서 폭력이 엄청난 폭으로, 선형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쓴다. 그리고 이 폭력의 감소는 인간 역사에서 거의 우연적인, 핑커 자신의 표현을 따르면 ‘외인성’의 발전이 수없이 누적되어 이뤄진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를 설명해주는 단 하나의 통합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통합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터친이 하고 있는 작업이다. 특정한 하나의 제국이 무엇 때문에 생성, 쇠퇴, 소멸되었는가가 아니라 제국 일반은 무엇 때문에 생성되고 쇠퇴하며 멸망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핑커는 방대한 자료를 제시하며 역사상 폭력의 행위들을 실증하지만 정작 폭력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을 뿐이며, 폭력이 감소한 이유를 결국 인간 개인의 심리 상태에서 찾는다. 그에게 문화적, 물질적 환경 변화는 이런 환경이 개인의 심리 상태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만 중요할 뿐이다. 반면 터친은 어떤 집단이 등장해서 융성, 쇠락, 소멸하는 과정은 개체들 간의 경쟁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그 간극을 집단 간의 경쟁에 대한 분석이 메워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국가는 전쟁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했고, 협력의 규모가 커진 국가를 결속하는 힘은 제도와 문화 양쪽에서 ‘공진화’했다.
역사에 관한 일반이론을 세우기에는 수학이 제격이다. 역사에서 ‘그냥 그렇게 된 것’이라고 눙치고 넘어가는 부분을 양적으로 입증 가능한 설명, 즉 과학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터친을 위시한 학자들의 노력은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열고 있다. 역사의 여신 클리오(Clio)와 변화를 다루는 학문인 동역학(dynamics)의 조어인 역사동역학은 역사거시사회학과 경제사와 문화진화론 같은 다양한 분야의 성과를 종합해 역사적 동역학의 모형을 만들고 실험한다. 그리고 이런 모형을 체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 학자들이 구축하고 있는 세샤트-지구사 데이터뱅크(http://seshatdatabank.info/)다. 고대 이집트의 필사와 기록의 여신에서 이름을 따온 세샤트는 수많은 역사가들과 고고학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과거 인간사회에 관한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을 모으고 체계적으로 조직화한 문화진화론의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베이스로, 이를 통해 인간사회의 진화에 관한 여러 경쟁 이론들이 엄밀하게 실증적으로 검토될 전망이다.
협력의 진화, 전쟁의 종말
터친이 전쟁으로 인간사회의 진화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지지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사회의 진화가 흘러온 방향에서 전쟁의 역할을 엄밀하게 지적하고 분석할 뿐이다. 사실 전쟁과 협력은 언뜻 매우 배치되는 단어 같지만 서로 뗄 수 없는 역동적 관계를 맺고 있어서, 전쟁이 협력의 규모를 키웠고 그렇게 커진 사회의 규모로 인해 폭력이 줄어들었다. 결국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도 전 세계적인 규모의 협력이 필요하다. 터친은 평화가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며 능동적인 수완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대사회는 경쟁에 있어서도 질적인 변화를 겪은 듯하다. 경쟁의 수단이 전쟁보다 오히려 경제로 옮겨갔다고도 볼 수 있다. 여전히 세계는 전쟁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부를 기반으로 한 경쟁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에서 터친의 주장을 간략하고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인간의 탁월한 협력 능력은 전쟁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것이다. 터친은 농업시대부터 차축시대까지 인간사회의 궤적을 추적하여 전쟁이 협력하는 인간사회의 진화를 이끌어냈고 그렇게 규모가 커진 인간사회가 궁극적으로 전쟁을 줄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까지 내놓는다. 협력의 진화, 전쟁의 파괴적인 면과 창조적인 면, 평등이 진화해온 궤적 등을 풀어냄으로써 ‘협력의 과학’을 이용해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수단까지 개발하는 것이 터친의 야심찬 포부다.
[책속으로 추가]
이런 종교는 부족이나 인종적 기반을 넘어서서 보편적이며 이민족의 개종을 적극적으로 권장했으므로, 다양한 민족적 배경과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거대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다. 보편종교는 협력사회를 확장했다.
작가정보
195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나 1977년 소련에서 추방된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듀크 대학교에서 동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코네티컷 대학교의 생태 및 진화생물학부, 인류학과, 수학과의 교수이며, 옥스퍼드 대학교 인류학과의 연구교수다.
터친은 이론생물학자로서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의 학문적 성과는 주로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라는 역사에 관한 사회과학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역사동역학은 복잡계 과학과 문화진화를 이용하여 역사상의 제국들과 근대 민족국가의 역할을 연구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주로 ‘역사상 제국의 멸망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규모 국가와 제국이 애초에 어떻게 발달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해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집단을 한데 모으는 사회적 힘은 무엇이며 이는 어떤 조건에서 실패하게 되는가라는 이러한 질문에 터친은 다수준 문화선택론이라는 이론적 틀을 사용하여 답하고 있다.
『네이처』, 『사이언스』 등의 저널에 2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04년에는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저서로 『전쟁과 평화 그리고 전쟁(War And Peace And War)』(2005), 『장기 순환주기(Secular Cycles)』(2009), 『불화의 시대(Ages of Discord)』(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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