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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
한겨레출판사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3년 11월 09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9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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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8.07MB)
ISBN 979116040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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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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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명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매일같이 누군가 끼여서 죽고,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고, 질식해 죽고, 감전돼 죽는다. 그렇게 매년 800여 명이 일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지만, 많은 사고가 공장 담을 넘지 못하고 은폐된다. 기껏 알려진 사고들도 대개 몇 줄짜리 단신 보도에 그쳐 사고의 근본 원인을 전하는 데 실패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죽는가’ ‘왜 이 죽음들이 이토록 당연한 일이 됐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한겨레》 기자로 크고 작은 재난 현장을 취재하던 저자는 노동 분야를 맡으면서 일터에서도 매일 재난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누구도 일하다가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김용균, 이선호, 구의역 김군, 김다운 등 대표적인 사고들을 통해 ‘일터의 죽음’을 낳는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이 죽음들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곧 떠난 이들을 함께 애도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일하다가 무참히 죽는 사람에 관한 기사를 더는 받아쓰고 싶지 않은 한 기자가 뒤늦게 마감한 긴 부고”(르포 작가 은유)이자 반복되는 죽음들을 무심히 넘기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제안하는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이기도 하다.
프롤로그‐일터에서 사람이 죽는 이유

1. 부둣가에서 스러진 ‘삶의 희망’: 평택항 이선호 씨 사고
지가 내를 용서는 해 줄란지
‘자는 듯이 엎드린’ 아들의 모습
내가 사랑했던 동생
아들 잃은 아버지, 외치다
보름, 죽음이 알려지는 데 필요했던 시간
이선호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들
아쉬운 판결 뒤에 남은 가능성

2. 위험이 재난이 되는 순간: 산재의 구조적 원인들
산재는 누군가의 ‘실수’가 아니다
유형 1-작업방식이 안전수칙과 충돌할 때
유형 2-위험에 관한 소통이 부족할 때
유형 3-돈과 시간이 부족할 때
유형 4-안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 때
유형 5-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할 때
‘노동자 과실’이라는 말
부록-“어이없는 죽음이 전쟁터처럼 만들어진다”: 김미숙 씨 의견서(김용균 씨 사고)

3. 은폐하거나 외면받거나 혹은 실패하거나: 산재를 둘러싼 소통의 부재
산재 위험은 왜 숨겨지나
기업, 속속들이 알고 싶지 않은
정부 기관, 예방과 처벌이 혼재된
노조,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언론, 깊이 탐색하기보다 단신 보도에 바빴던
눈물로 진실을 밝힌 사람들
부록-‘남편, 살아만 있어 줘’…이루어지지 않은 부탁: 김영희 씨 의견서(정순규 씨 사고)

4. 공장 안 사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 산재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
처벌을 넘어 사회적 기억으로
산재는 서사의 싸움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녹인 빙하
산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1: 재해조사의견서
산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2: 법원 판결문
‘사람 많이 죽는 기업’ 공개합시다
어두운 소통 구조는 누구에게 유리한가
더 많은 ‘왜’를 물어야 한다

에필로그‐이름 없는 죽음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찾아보기(이 책에 언급된 산재사건)
주석

안전을 경영의 중심에 놓아본 적 없는 기업이 생산효율을 최우선으로 추구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노동자가 죽는다. … 뒤집으면 기업이 안전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자본 축적이 최우선 순위인 일터에서 자본 축적과 무관하고 때로는 자본 축적에 역행하는 선택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택한다는 것은 시중에 널린 값싼 유해물질 대신 비싸고 무해한 물질을 부러 찾아 나서는 것이다. 하청업체들끼리 알아서 소통하길 기대하지 않고 총괄 소통 담당자를 따로 뽑는 것이다. 생산과 안전이 대립할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책을 찾고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도 감수하는 것이다._6~8쪽

그 시각, 아버지 재훈 씨는 그날 일을 마치고 현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직원들이 집에 갈 기미가 안 보이자 ‘오늘 일 참 심하게 시키네’ 하며 현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먼발치의 FR 컨테이너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재훈 씨는 가까이 다가갔다. 눈앞에 보이는 컨테이너가 바닥 가까이 기울어 있었고 그 밑엔 “자는 듯이 엎드린 아들 모습”이 보였다. 재훈 씨는 잠시 ‘아들이 뭘 줍고 있나’ 생각했다. 곧 그런 모습으로 물건을 줍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려던 그가 말했다. “이거 뭐고. 죽은 기가. 죽었나.” 재훈 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_29쪽

국내 항만이 운영하는 여러 포털 홈페이지를 보면 컨테이너가 목적지까지 탈 없이 도착하도록 관리하는 체계는 빈틈없이 갖춰져 있다. 컨테이너의 무게와 물건의 종류,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전자 조회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포워딩 기업(물류관리기업)들도 컨테이너가 문제없이 출하되도록 수시로 확인한다. 그러나 그 컨테이너가 안전점검을 제대로 통과한 제품인지, 이를 취급하는 노동자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컨테이너가 무사히 계약에 맞게 목적지에 당도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모두에게 중요했지만 그것을 취급하는 항만 노동자의 안전에 관한 정보는 컨테이너 제작사와 운영사, 위탁관리사 등 누구에게도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던 것이다._56~57쪽

노동자의 몸과 목숨은 소중하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하며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치열한 협상과 양보가 필요한 일인지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사고가 났을 때 ‘안전이 중요하다’는 말은 도리어 노동자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스스로 지켰어야 하는 안전을 손쉽게 내버린 사람이라고 말이다. … 정말로 안전을 생산보다 우선순위에 놓고자 한다면 기업 조직 전체가 그 목표에 투자하고 도달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안전은 노동자나 안전관리자 한두 사람의 의식 변화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여야 한다._68~69쪽

많은 산재사고가 겉으로 보기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선택한 듯한’ 사고처럼 보인다. 기계의 날카로운 입구에 직접 손을 넣어 물건을 꺼내고, 추락 방지용 안전난간을 스스로 해체하고, 일을 더 빨리하려고 안전장치 전원을 꺼 버렸다가 죽음에 이르는 사고들 말이다. 이런 사고는 일견 노동자가 작업 효율을 위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측은 그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고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선택이라고만 말할 순 없다. 그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일할 선택지는 있지만 그러지 않을 선택지는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_79쪽

“원청 노동자들한텐 매일 주는 마스크를 우리한텐 일주일에 한두 개 주고 빨아 쓰라고 하고요. 일하다 위험한 일이 생겨도 건의하면 들어주질 않아요. 아무리 말해도요. 그러다가 결국은 사고가 나는 거예요. 제 동료도 그렇게 해서 산재로 잃었고요.”
거기까지 듣고 나는 받아쓰기를 멈추었고 M도 말을 멈추었다. 우리 사이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떤 말로 그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M은 감정을 다스리는 듯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그리곤 아까처럼 조리 있게 말을 이으려다 결국은 왈칵 울었다. … 어제까지 함께 밥 먹던 동료가 함께 일하던 공간에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 동료가 떠난 자리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 무력감과 분노, 슬픔, 두려움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오랜 인터뷰 뒤에 내 머릿속에 오래 남은 것은 그의 눈물이었다._109~110쪽

리즌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생산과 안전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생산과 안전은 본질적으로 서로 충돌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선 통상 생산이 안전보다 우위에 있다. 게다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이윤 증대를 위해 생산량을 늘리기도 하고 공장 터를 넓히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생산 활동에 내재한 위험도 함께 증대된다. 그때 안전조치가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함께 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재해에 취약해진다. 고의로 안전을 희생시키려 하지 않더라도, 그저 다양한 경영상 결정을 하면서 안전을 잊어버리는 것만으로도 재해의 위험이 증대된다고 리즌은 경고한다._185쪽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대가로는 너무 가벼웠으므로, 그는 스스로 이들의 ‘가중 형벌’이 되기로 했다. “어차피 실형도 안 나온 마당에 차라리 내가 기자회견 때마다 회사 이름 거론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눈엣가시가 돼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 석채 씨의 사례는 한 노동자의 사고를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유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자기 생업을 포기한 채 사고 관련 자료를 찾아내고 기자회견을 열어 산재의 위험성을 알리는 유가족의 일상에 다른 삶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의 죽음이 쉬이 잊히고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비극이 일어날까 두려워한다. 석채 씨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족의 이름과 사진을 기꺼이 공개하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다._235~236쪽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이 동요할 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체제 유지를 위해 사고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노동자의 죽음이 회사의 관리 부실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유가족과 동료 노동자들이 동요하며 강하게 반발할 수 있으니 재해조사를 가급적 축소하려는 유인이 커지는 것이다. 자연히 재해를 분석할 때도 구조적 원인과는 무관한 개인적 실수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면에서 한 기업이 재난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는 서사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개별 산재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느냐가 유족에겐 망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다. 반대로 회사 입장에선 회사 책임자가 문책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개별 산재사고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냐, 한두 사람의 단순한 과실이냐를 두고 양쪽이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기억의 전쟁터’인 셈이다._258쪽

산재사고에 서사를 부여하는 일은 수많은 산재사고로 한데 뭉뚱그려진 죽음들에 저마다의 고유한 얼굴과 이름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사고 개요가 담긴 짧은 기사는 독자에게 사고 소식만 전한다. 하지만 거기에 ‘왜’와 ‘어떻게’가 더해지면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사고’가 노동자 한 사람의 귀한 목숨이 스러진 중대한 ‘사건’이 된다. 전주희 연구원은 이 과정을 “뒤늦은 부고장 쓰는 일”에 비유했다. 연구진이 끼임, 맞음, 추락 등으로 사고들을 유형화하지 않고 최대한 각 사고의 고유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담기로 한 이유다._291쪽

재해를 안다는 것은 그 진상을 규명해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떠나간 이들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음 깊이 추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터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온몸을 쭈뼛 세워 받아들이고 아파하는 것이다. … 몇 줄의 속보로만 전해지던 이름 없는 죽음들이 저마다 맥락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그들을 추모할 수 있다._293~294쪽

부둣가에서 스러진 ‘삶의 희망’…위험은 언제 사고가 되는가

이야기는 2021년 평택항에서 숨진 이선호 씨로부터 시작한다. 유난히 애교 많은 막내이자 장애가 있는 누나를 보호자처럼 챙기던 듬직한 동생, 아버지에게 ‘삶의 희망’이었던 아들은 작업 도중 갑작스럽게 쓰러진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함께 평택항에서 일하던 아버지, 아들과 “친구처럼 같이 아침밥 먹고 차 타고 다닐 수 있어서” 기뻤다는 재훈 씨는 사고를 당해 “자는 듯이 엎드린 아들 모습”을 본 뒤, 아들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투사가 됐다.
유족과 노동조합(노조)이 밝혀낸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청 직원은 경험이 없는 하청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오래된 장비를 썼다. 선호 씨는 원래 자신이 맡지 않던 일에 투입됐지만, 업무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 이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은 ‘누구도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중심에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산업재해(산재)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친 2부 〈위험이 재난이 되는 순간〉이 강조하는 지점도 같다. 저자는 원인에 따라 산재를 크게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모든 유형의 사고가 ‘생산과 효율이 안전을 압도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을 증명한다.
2022년 SPL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소스 만드는 기계의 회전 날개에 끼여 사망하자, 회사는 ‘날개에 끼지 않도록 덮개를 덮고 일하는 게 규정’이라며 사망자를 탓했다. 하지만 규정대로 일하려면 각 재료를 넣을 때마다 덮개를 열고 닫아야 해 일의 효율이 너무 떨어졌고, 생산해야 할 물량은 너무 많았다.
이럴 때, 노동자는 대개 안전 대신 생산을 택한다. “하루의 생산량을 맞추지 못하면 저성과자로 낙인찍히지만, 안전수칙을 포기하고 생산량을 맞추면 문제없이 퇴근할 수 있”(78쪽)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회사가 할 일은 노동자를 탓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개량하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지만, 회사는 그러지 않았다(유형 1-작업방식이 안전수칙과 충돌할 때).
2018년 사망한 김용균 씨 사고도 비슷했다. 그는 컨베이어의 고장 여부를 확인하려 문을 열고 몸을 직접 집어넣었다가 기계에 몸이 끼였다. 조사 결과, 기계 결함 때문에 몸을 집어넣지 않고는 기계를 점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용균 씨 동료들이 사고 지점을 포함한 작업 환경 개선을 28차례나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 또한 밝혀졌다. 원청(한국서부발전)과 김용균 씨가 속한 하청(한국발전기술)이 작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탓에 이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유형 2-위험에 관한 소통이 부족할 때).
모든 유형의 사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고를 ‘노동자 과실’로 돌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며 그 너머에 있는 구조적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재활동가로 수많은 노동자의 산재 신청을 도왔던 ‘상담부장’ 남현섭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사고를 두고, 이 책은 “개인의 ‘안전 인식’이 아무리 투철한들 그것만으로 산재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160쪽)임을 아프게 지적한다.

산재라는 ‘기억의 전쟁터’에서 벌이는 서사의 싸움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터의 위험이 어떻게 사고로 이어지는지, 사고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책임자인 기업은 일터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를 언급하는 일이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 여겨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자 과실’로 몰거나 은폐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2021년 굴착기 전복으로 사망한 노치목 씨 사고에서는 회사가 119에 신고하면서 굴착기 전복이나 공사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경찰에게는 ‘치목 씨가 산책하다 굴렀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또 다른 주체인 정부는 처벌에만 집중해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법 위반 행위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사고에서도 ‘법에 맞춘’ 똑같은 원인과 대책이 나오곤 한다. 노조나 언론도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이 묻히는 것을 그저 방관하지 않은 이들, “눈물로 진실을 밝힌 사람들”이 있었다. 김용균 씨 사고의 진상이 밝혀지는 데는 동료들의 역할이 컸다. 이태성 씨는 “이제 더는 내 옆에서 죽는 동료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하며 작업 현장의 위험을 낱낱이 고발했다. 이인구 씨는 동료들의 상경 투쟁에 동참해 용균 씨 빈소를 지키고 상주를 지냈으며, 군산터미널 인근에 산재 사망자 추모 공간을 만들어 지금까지 그 공간을 가꾸고 있다. SPL 사고에서는 노조 위원장이 실명으로 회사 주장을 반박하며 작업 과정의 문제를 알렸고, 사고 직후에도 공장이 계속 돌아가는 영상을 공개해 사망자 과실로 결론 날 뻔한 여론을 뒤집었다.
그리고, 유족들이 있었다. 아버지 정순규 씨가 세상을 떠난 그날 이후, 정석채 씨는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다른 산재 유가족과 연대하는 데 온 삶을 쏟고 있다. 큰 사고가 일어난 날이면 어김없이 석채 씨가 쓴 메일이 기자 메일함으로 날아든다.

자기 생업을 포기한 채 사고 관련 자료를 찾아내고 기자회견을 열어 산재의 위험성을 알리는 유가족의 일상에 다른 삶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의 죽음이 쉬이 잊히고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비극이 일어날까 두려워한다. 석채 씨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족의 이름과 사진을 기꺼이 공개하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다._235~236쪽

이렇듯 산재는 다양한 관계자들이 벌이는 서사의 싸움이다. 기업은 회사 책임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유족과 동료는 떠난 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산재라는 ‘기억의 전쟁터’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그간 무시됐던 위험한 노동 환경이 드러나기도 하고, 개인의 부주의로 치부됐던 사고를 조직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재해조사의견서, 법원 판결문 등 산재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료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로 개별 사업장의 산재에 대한 핵심 자료를 모은 보고서를 펴낸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산재를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일을 “뒤늦은 부고장 쓰는 일”에 비유한다. 개요만 담긴 몇 줄의 짧은 기사는 사고 소식을 전할 뿐이지만, ‘왜’와 ‘어떻게’가 더해지는 순간 무심히 스쳐 지나갈 뻔한 ‘사고’가 노동자 한 사람의 목숨이 스러진 중대한 ‘사건’이 된다. 그래서 산재의 서사를 복원하는 일은 “수많은 산재사고로 한데 뭉뚱그려진 죽음들에 저마다의 고유한 얼굴과 이름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291쪽)

공장 안 사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

산재를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떠나간 이들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음 깊이 추모”(293쪽)하는 일이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심히 넘기지 않고, 온몸으로 아파하면서 그 죽음을 이해하려는 일이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자녀의 오디션 합격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한 아버지이자 애인과 여행을 약속한 젊은이였고 딸을 더 풍족하게 키워보려 일터에 발을 디딘 어머니였음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들이 품은 꿈이 어떻게 허망하게 사라졌는지, 그가 사라진 후 남겨진 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헤아리는 일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일터의 이름 없는 죽음들을 제대로 애도하고,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산재 조사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부고장인 동시에 또 다른 죽음을 막겠다는 산 자의 다짐”(292쪽)이다. 그리고 이 일은 유족, 동료, 기업 등 일부 관계자들만의 일은 아니다. 산재가 시민들이 함께 기억하고 조사하는 사회적 서사가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러운’ 일이 된 일터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남겨두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오늘도 되풀이되는 일터의 죽음을 몇몇 사람만의 몫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 모두의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기 위한 긴 여정의 첫걸음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신다은

사회적 참사와 재난, 안전할 권리 등을 주제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한국 사회의 열악한 안전 실태에 처음 눈떴다. 이후 한 명의 시민으로, 사회부 기자로 크고 작은 재난 현장을 찾아갔다. 재난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과 대안을 알고 싶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진 못했다.
《한겨레》에서 노동 분야를 담당하며 일터에서도 매일 재난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됐다. 산재사고를 접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어 자꾸만 헤맸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애초부터 안전에는 또렷하고 쉬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쉬운 길을 찾고픈 유혹을 버리고 그 난해한 문제 풀이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기 삶을 깎아 그 일을 먼저 시작한 유가족과 활동가, 연구자들이 있다. 이 책은 그들이 발견한 진실의 조각들을 모으고 기록한 것이다. 사회 곳곳이 안전해지는 여정에 앞으로도 기록자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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