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03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0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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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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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의 아이콘이자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온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집 《밤, 네온》이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제13권으로 출간됐다. 오츠는 장편소설, 단편소설을 비롯하여 시, 에세이, 비평 등 문학 전 분야에 걸친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미국 사회의 모습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 인종차별, 여성 혐오 등의 갈등을 다양한 형식으로 다뤄왔다. 《밤, 네온》은 그러한 작가의 정수를 담은 작품 아홉 편을 모은 소설집으로, 미국 사회의 위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 충격적인 결과를 맞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모아놓은 태피스트리다. 일상적 요구가 어떻게 존재를 그 한계까지 밀어붙이는가에 대한 이 이야기들은 미국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고 정직하게 탐구한다.
악몽 꾸는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서늘하고 사적인 아홉 편의 수수께끼
커커스리뷰는 《밤, 네온》에 대해 “어떤 이야기보다도 '악몽'이라는 말이 어울린다”라고 썼다. 평범하게 시작되어 한순간에 끔찍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악몽처럼,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도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장면으로 시작해 서서히 괴이하고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귀가하는 길에 우회 표지판을 만나 길을 따라가다가 사고가 난 후,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낯선 집에 불쑥 들어가게 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우회하시오〉와 친구 병문안을 위해 오래전에 살던 도시로 돌아왔다가 어딘가 익숙하지만 낯선 남자를 따라 홀린 듯 그의 작업실로 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원한다는 것〉과 같은 작품이 특히 그렇다. 지극히 평범한 것 같았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표면에 생긴 사소한 균열이 서서히 벌어지며 그 아래에 있던 어둡고 섬뜩한 밑바닥을 드러낸다.
그러나 일상에서 비일상으로의 이 이동은 실제 비현실적 또는 초현실적 세계로의 이동이 아니라 형식에 의해 생기는 비현실감에 따른 것이다. 늘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맞는 이상적인 목소리와 형식을 찾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는 작가는 화자의 의식 속을 넘나드는 독특한 서술 기법으로 매력적인 악몽들을 만들어낸다. 기이한 상황을 맞닥뜨린,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한 인물들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의식의 흐름은 때로 초현실적인 곳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차의 시간’에 그런 상념들이 떠오른다. 낮과 밤 사이에. 이 시간에는 더러운 감방에 갇혀 있지 않고 스트라우츠밀 로드를 따라 자유롭게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는 픽업트럭을 몰고 있지 않다. 축축한 풀밭에 엎드려 있다. 포획자들을 따돌렸으며, 그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뱀의 교활함은 여성적 교활함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것이 되었다. _296쪽, 〈고행〉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인물의 내면 묘사는 타인의 악몽 속보다도 한층 더 은밀하고 사적인 곳, 악몽을 꾸는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된 재소자가 가석방을 신청하여 열린 공청회에서 청중을 향해 말을 거는 듯한 형식으로 쓰인 〈가석방 공청회〉나, 마찬가지로 범죄를 저지른 재소자가 감옥 내에서 매일 스스로에게 매질을 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고행〉과 같은 작품에서 이러한 독특함이 두드러진다.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상태는 독자를 유사(流砂)처럼 괴이한 이야기들 속으로 끌어당긴다.
“실제 삶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픽션은 없다
우리를 습격해오는 우리 평범한 삶의 공포 말이다.”
그러나 비현실감을 자아내는 형식에 담긴 공포의 본질은 전혀 초현실적이지 않고, 심지어 별나거나 특이하지도 않다.
본질적인 공포는 삶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픽션은 삶의 거울이다. 실제 삶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픽션은 없다. 전쟁이나 폭력을 겪는 삶뿐만 아니라, 우리를 습격해오는 우리 평범한 삶의 공포 말이다. _《나이트메어매거진》 인터뷰 중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길을 잃는 것, 성적 끌림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면서 낯선 남자와 대화하는 것, 혼자 사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것, 가족을 두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대신하여 열다섯의 나이에 아픈 어머니의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하는 것,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버릇과 관계를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 등, 삶에서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일들이 한 존재를 한계까지 밀어붙였을 때 예상치 못한 형태로 새로이 생겨나는 공포가 《밤, 네온》의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 젠더, 인종, 계급 등으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 위계 속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한 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어느 순간 일상과 상식의 선을 넘어 끔찍한 결과를 맞는 것이다. 이에 더해 평범해 보였던 꿈이 기이한 악몽으로 바뀌는 그 과정을 지켜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 전환의 순간에 명백한 것 같았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순식간에 뒤바뀌기도 하고, 애초에 가해와 피해의 경계 자체가 흐린 경우도 있는데, 이처럼 폭력이 향하는 방향과 폭력의 행위자가 불분명하다는 점 또한 아홉 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공포의 속성이다.
당장이라도 우리 삶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라는 점과, 마주한 순간에도 그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이 이야기들에 섬뜩함을 더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 편 한 편의 작품이 강렬하고 오래 남는 이유는, 그 공포의 근원이 매일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우리의 불안과 트라우마, 혼란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악몽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허구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 잊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불명료한 공포는 우리에게 아찔한 현기증, 기이한 비현실감과 함께 미묘한 슬픔과 연민을 남긴다.
작가정보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캐럴 오츠는 현대 미국 문단의 대표 작가이자 고딕 호러의 대가이다. 1938년 미국 뉴욕주 록포트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처음 문학을 접했고, 이후 브론테 자매, 포크너, 헤밍웨이, 소로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열네 살 때 할머니에게 타자기를 선물 받으면서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러큐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열아홉 살에 「구세계에서」로 대학생 단편소설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4년 첫 장편소설 『아찔한 추락』을 시발점으로 이후 지금껏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 걸친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 찬 20세기 후반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해왔다. 1967년 「얼음의 나라에서」, 1973년 「사자The Dead」로 오헨리상을 받았고, 1969년 『그들』로 전미도서상, 1995년 『좀비』, 2011년 『악몽』, 2012년 『검은 달리아와 하얀 장미』로 브램스토커상, 2005년 『폭포』로 페미나상 외국문학상을 받았으며,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무려 다섯 차례나 올랐다. 1978년부터 미국학술원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2003년 문학 부문의 업적으로 커먼웰스상과 케니언리뷰상을 수상했다. 2006년 시카고트리뷴문학상, 2019년 예루살렘상을 받았다. 현재 프린스턴대학교 로저 S. 벌린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멀베이니 가족』 『블론드』 『사토장이의 딸』 『소녀 수집하는 노인』 『카시지』 등이 있다./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문학과 미술의 비교로 석사를 받았다. 편집자, 기자, 전시기획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역사서 『밴디트: 의적의 역사』, 경영서 『프라이탁: 가방을 넘어서』, 실용서 『너덜너덜 기진맥진 지친 당신을 위한 마음챙김 안내서』, 여행기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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