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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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1부 종소리
자신을 위한 시 11
개 15
물에 젖은 시집 18
날개 22
산그늘 26
어둠의 장막 속으로 31
돌과 떡 33
오이와 사다리차 38
활화산 40
하나 44
아내의 엽서 48
방학동 은행나무 51
인간에 관하여 54
뭐랄까 57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쓰다 보면 덧없이는 덧없이를 잃고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기차는 먼 곳을 향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창밖을 내다보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흔들리고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날아오르고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반짝여라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역에 내려 덧없이 거니네 62
흑백 기계류 68
정말 먼 곳 72
거제도 75
2부 종을 떠난 종소리
가정이 있는 삶 83
한 사람에 대한 나뭇잎 86
사람의 시 90
아이콘 111
사람이 되어 가는 건 왜 이렇게 조용할까 114
회개하는 얼굴로 죄를 짓고 죄를 짓는 얼굴로 회개하고 122
러브 포엠 읽기 126
앙팡 테리블 134
쉽게 쓴 시 141
드론이 시에 미친 영향에 관하여 서술하시오 144
실물 인간 148
말띠 여자 152
그날 저녁 연옥은 158
물의 호흡으로 162
슬픔의 굿판 167
간다 172
느끼한 시를 쓰지 않기로 한 한 시인에 관하여 177
고귀한 흰 빛 181
3부 종과 소리
손발 189
섬 190
심장 192
윤곽 194
via air mail 196
숨 200
비가 오면 205
웃는 상 208
짧은 시 213
아내의 마음 216
잃어버린, 219
티니 타이니 222
큐알 코드 225
겨울바람 228
당신은 늘 이 부분에서 눈을 감는다 233
그 슬픔 236
일요일 밤에 우리는 240
피에타 243
추천의 글-안희연(시인) 249
최현우(시인) 252
아내가 먹고 신다고 해서
산 귤
가만히 보면 귤은 언제나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걸 자꾸 끄는 사람은 바로 나고
아내는 귤에 원하는 것 같다
아내를 위한 시를 쓰면
아내는 아내를 위한 시를 읽고
그것이 자신을 위한 시는 아니라고
믿을 것이다
-「자신을 위한 시」에서
자기야, 붙잡은 거 같지?
하며 슬쩍 웃어 주면
그 어떤 삶도 통쾌해지고
바라보게 된다 지그시 누르면서 어디
명치 아래 깊은
곳, 곳간 같은
곳간에서 혼자 울어 본 사람은 알지
아무도 없다
-「슬픔의 굿판」에서
아내는 울 때 우는 소리를 낸다
그건 웃을 때와는 다른 소리다
마땅하게도 그 소리는 혼자 듣고 싶은 소리다
아내는 그럴 수 없다 해도
무엇일까
무엇으로부터일까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 소리는
그런 방식으로 소리는 흐른다
-「윤곽」에서
증오보다는 사랑을
이토록 구체적이지 않은 말이실체를 갖게 되는 세상이란, 불길이다
불타오른다, 지구의 잎이
걷다가 돌아와, 꼭
사무실에 앉아
입 속에 주먹을 우겨놓고
참을 만큼 참았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피에타」에서
■인간의 낯이 설어질 때
희망을 품지 못하였을 때를 기억해 보자. 『장송행진곡』에는 그런 순간이 유독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경악하고 절망했던 순간. 같은 인간이라고 하기에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 하기에 참담해 말문이 막히던 순간 같은 것이 있다. 시집 안에서 우리는 이 낯선 인간의 말을 다시 본다. 혹은 너무 만연해서 이제는 놀랍지 않아진 말들을. 이 혐오는 익숙하고 증오는 가속되며 맞서는 분노는 뜨겁다. 인간이 인간과 낯을 붉히고 몸을 부딪혀야 해서 열이 오른다. 이쪽과 저쪽에서 서로 맞서 들끓던 것들이 펄펄 끓고, 불은 자꾸만 붙는다. 붙이 붙은 채 우리는 낯선 인간과 대치하고 있지만 실은 모두 같은 한 덩어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젖는다. 그렇게 모두 타 버리면, 하얀 연기와 까만 재로 남은 자리에서 김현은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한다. “매번 데이면서도/ 매번 물집이 잡히면서도” 그 자리에서 비껴 서지 않으며, 고백한다. “인간들이 참 더럽다 그래도 나는 그 눈동자를 사랑하지”. 이 사랑은 역시, 이러나저러나 인간인 우리들을 향한다. 시인은 울면서 웃는 얼굴로, “물집이 터져 쓰라린 줄도 모르고/ 터진 자리를 또 데일 거라는 것 알면서도/ 손을 내밀고/ 다시 내민다”.(「방학동 은행나무」)
■잡아요 끝까지
끝까지 인간으로 잘 죽기 위해 김현이 믿는 것은 끝까지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시든 손이든 놓지 않는 것. 시를 붙들면 떠나간 누군가를 위한 장송행진곡을 쓸 수 있고 내 손을 붙들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다른 손을 붙들면 “혼자 울려고 나왔다가”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게 된다.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며”.(「가정이 있는 삶」 ) 그러므로 시인에게 놓지 않는다는 것, 붙든다는 것은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일이다. 시와 손이 우리를 걷게 한다. 못다 슬퍼한 것들을 헤아려 가며, 시시각각 태어나는 슬픔을 쫓아가게 한다. 붙드는 것은 외면하지 않는 것이고 외면하지 않는 것은 자꾸만 말하는 것이어서, 시인은 어떤 죽음들을 거듭 말한다. “선 채로/ 누운 채로” 죽어 간 사람들. “끼고 깔리고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 “4월 16일”과 “10월 29일”을.(「사람의 시」) 그리고, 어떤 삶 역시 거듭 말한다. 누군가는 “또 그 성 소수자 얘기?”라고 반문할 법한 삶과,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러브 포엠 읽기」) 얘기를. 우리는 김현이 붙든 것을 붙든다. 김현이 우리에게 건네는 시에는 악력이 있어서, 혼자서 무심히 터덜터덜 걷고 있던 우리를 긴장케 한다. 다시 한번 우리가 걷는 길을 잘 보라고, 그의 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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