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모
2023년 10월 31일 출간
종이책 : 2022년 11월 30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30.97MB)
- ISBN 9791192183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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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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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내였다면 어땠을까?’ 몰락한 양반의 딸로 혼자 살아야 하는 걸 걱정하던 오라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선은 나무 호패가 부러질 듯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내가 할게, 오라버니. 과거를 보고 벼슬도 하고 가문도 일으킬게. 조정에 나가 오라버니가 알아보려던 일도 내가 할게. 내가…… 방관주가 될게.”
-본문 44쪽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이 마음이 선은 미칠 듯 소중하면서도 끔찍이 두려웠다. “마음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잖아. 서로 연정을 느끼는 여인들이 소설 속에만 있겠어?” 혜빙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순간 선의 머릿속을 차지한 것은 단 하나였다. 차라리 내가 사내였다면! 같은 여인에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함께 있는 게 좋은 걸 넘어 심장이 뛴다거나, 얼굴을 만지고 싶다거나, 입을 맞추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선은 도의 길을 벗어나려 하는 제 마음을 꾸짖고 또 꾸짖었다. 세상과 윤리 안에서 있을 수 없는 감정은 마음속 깊은 창고에 꼭꼭 가두어야만 했다.-본문 114쪽
“저도 여기서만큼은 속엣말을 맘껏 할 수 있어 좋아요. 이제는 세상이 그러니까 하고, 그냥 받아들여 견디기 싫어요.” 혜빙의 가슴이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자신의 글에서 비롯된 작은 불씨 하나가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고, 사람들 마음의 불길로 번져 나간다. 말과 글의 힘은 강하다. 견고한 모순투성이 세상에 작은 균열 하나라도 낼 수 있다. 던져진 돌 하나로 일렁인 물결은 더 깊이 더 넓게 퍼질 수 있다. 물론 도중에 가로막히거나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씩 나아간다.-본문 148쪽
“상인인 제 눈에 사람은 피하려는 자와 맞서는 자로 갈립니다. 잘못된 것에 맞서려는 이들에 의해 세상은 발전해 가는 거지요. 그런 이들을 돕는 건 내 기쁨이고, 보람이고, 상인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아란의 마음은 혜빙에게로 넘쳐흘렀다.-본문 195쪽
앞장서 달리는 자는 가장 많은 화살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 어쩌면 이 여인도, 영혜빙도 앞서 나가다 보니 이리될 수밖에 없는 걸까. 그것이 운명인 걸까. 그래도 염은 이제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영혜빙 그리고 눈앞의 방선은 자신이 아는 이들 중 가장 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이 땅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만났다면 남녀를 떠나 멋진 동료로, 좋은 벗으로 함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본문 208쪽
앞장서 달리는 자는 화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유와 사랑을 지키는 아름답고 당당한 여성 서사!
『우리, 연모』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읽다 보면 여성이라는 구별이 지워진다. 그저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랑과 자유를 위해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앞에 보일 뿐이다. 자유든, 사랑이든, 꿈이든 현실의 눈치를 보는 우리들에게 현실에 맞서는 선과 혜빙은 가슴 뭉클하면서도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걸음에 설렘과 힘을 실어 준다.
혜빙과 선은 각자가 바라는 삶을 위해서 동성혼이라는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계약을 한다. 이러한 낯선 설정에서 시작되어 풀어져 나오는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여성 서사에서 만나는 문학적 즐거움이 가득하다. 혜빙과 선이 세상의 윤리와 법을 거스르는 동성혼을 선택한 건 ‘온전한 나’를 잃지 않기 위함이었고, ‘자유와 권리’ 때문이었다. 각자의 삶을 위해서 계약을 맺었지만 서로에게 닿는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이 되어 버렸다. 휘몰아치는 사회의 억압과 두려움 앞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용감한 혜빙, 자신이 선택한 삶을 기꺼이 책임지는 강직한 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혜빙과 선은 조선 시대와 남녀라는 벽을 허물고 ‘삶에 대한 사랑과 자세’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생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변화해 나가는 사람’의 모습이 참 고귀하고도 아름다워 주인공들이 삶을 응원하게 된다.
혜빙과 선 앞의 세상은 편 가르고, 차별하고, 프레임을 씌우는 모순된 세상이었고, 주인공들은 이 세상에 굴복하지 않아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작품에서처럼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모순된 세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참신하고 매력적인 여주인공들은 모순된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게 하고, 삶에 최우선은 사랑이라고 나직하고도 분명하게 말한다.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는 ‘사랑’이야 말로 다양한 정체성, 다양한 목소리들을 짓밟지 않고,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귀하디귀한 삶의 가치임을 보여 준다.
그래도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씩 나아간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연대의 마음이 깃드는 소설
『우리, 연모』는 나, 네가 손을 맞잡아 우리가 되는 연대의 마음이 견고하고 영롱하게 내비쳐지는 작품이다. 아마도 아기 새가 날갯짓을 하듯 약자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손에 손을 잡고 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시대의 여인인 백 행수, 오수다 회원, 유모는 화살을 날리거나, 책을 필사하거나, 비밀을 지키는 등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과 혜빙을 돕는다. 왕과 염도 죽음을 목전에 둔 선과 혜빙을 연민하고 돕는다. 이들이 연대하는 이유는 주인공들의 인간다운 면모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고, 윤리와 법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어느 마음 하나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사랑해서 용감하고, 용감해서 더 깊이 사랑하는 멋진 사람들이다.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싶은 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또 앞으로 나아간다. 두려워도 그 길을 가는 용감한 이들의 사랑의 힘을 딛고. 그래서 세상은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작가의 말처럼 연대의 시발점은 사랑이다.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는 따스한 눈길과 공감은 외로움과 절망에 놓인 타인을 구하고, 함께하는 발걸음만으로도 삶에 큰 힘이 되어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돌 하나 던진다고 강물이 메워지지는 않을 테지만 일렁이게 할 수는 있잖아요?’라는 작품 속의 대사처럼, 문학은 당장 현실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에 사랑과 연대의 씨앗을 뿌려 함께 사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더 나은 삶과 사회로 향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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