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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란 무엇인가?

코이네헬라어연구회

2023년 10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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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846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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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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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는 기독교 세계 안에서 뜨거운 논쟁을 계속 일으키고 있다.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신학자 찰스 라이리 박사는 고전적 세대주의 관점에서 이 중대한 문제를 말하고 있다. 그는 언약 신학, 역사적 전천년주의, 점진적 세대주의, 극단적 세대주의 관점에 대하여 정면으로 맞선다.
그의 베스트 셀링 북인 [세대주의란 무엇인가?]는 이미 50 여년 전에 집필하였고, 전세계적으로 수 만명의 신자들을 위하여 이 복잡한 주제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개정 증보판은 당신의 서재에 귀중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머리말
감사의 말씀
제1장 세대주의는 도움이 되느냐, 이단이냐?
제2장 세대(a dispensation)란 무엇인가?
제3장 세대들은 무엇인가?
제4장 세대주의의 기원
제5장 세대주의 성경 해석학
제6장 세대주의에서 구원
제7장 세대주의에서 교회
제8장 세대주의 종말론
제9장 점진적 세대주의
제10장 언약 신학
제11장 극단적 세대주의(Ultra Dispensationalism)
제12장 호소(Plea)
선정된 참고 문헌

“세대주의”라는 말은 대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대주의 성경 학자들의 사역과 글들이 그들에게 주었던 도움과 축복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은 진지하고 깊이 있게 성경을 공부하도록 처음으로 흥미를 일깨워 준 사경회, 예언 모임, 특별 모임, 책들을 회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세대주의는 전염병과 같이 피해야 할 어떤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그들이 그것에 대하여 들었다면 부정적으로 들었을 것이다. 정말 그들은 세대주의 가르침이 이단이라고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자들은 교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오늘날도 계속 진지하게 믿는 자들 가운데 중요한 그룹이 될 것이다.
다른 모든 교리들처럼 세대주의 가르침은 기본적인 교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일생동안 체계화와 발전을 겪어 왔다. 때로 그것은 난폭하게 공격을 받았다. 흔히 풍자 만화들이나 상투적인 문구들이 이 관점을 잘못 제시하거나 조롱한다. 이 책이 1965년 “Dispensationalism Today,” (한국어 번역책은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 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주된 목적은 오해를 바로잡고 그것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전통적 세대주의 가르침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저는 초기 세대주의자들의 진술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것보다 그들의 진술이 더 균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했다.
이 개정판은 규범적이고 전통적인 세대주의의 기본 가르침을 버리거나, 바꾸거나, 희석하거나, 최소화하지 않았다. 여러 세대들을 포함하는 기본적인 체계는 일관성 있고 모순되지 않는 성경 해석의 가장 유용한 도구로 남아 있다. 참고 문헌에는 1965년 이후에 발간된 책들도 포함될 것이고, 최근 발전된 해석학이나 소위 진보적 세대주의가 제안한 중요한 변화들도 언급될 것이다. 그러나 규범적 세대주의를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 개정판의 주요 특징이 될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논의된 많은 견해차는 교리의 다른 중요한 부분에서는 일치하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있는 견해차다. 이러한 견해차는 사실적으로, 공정하게, 분명하게, 유익을 구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기록하였다. 모든 독자들이 그 내용에 대하여 아무리 온화하게 또는 격렬하게 반대하더라도 이 책을 놓기 전에 마지막 장까지 다 읽게 되기를 바란다.

세대주의에 대한 반대
세대주의 가르침에 대한 반대는 도처에서 일어났으며, 그 공격의 강도는 매우 다양했다. 자유주의 신학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세대주의를 반대했다. 왜냐하면 성경의 축자, 완전 영감설에 기초한 알기 쉬운 해석을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세대주의자들이 다른 보수주의자들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른 신조와 가르침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세대주의자들의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성경의 근본 교리들에 대한 견해가 보수적인데, 자유주의자들에게 불쾌한 접근 방법이다.
그러나 어떤 보수주의자들도 세대주의의 가르침에 반대한다. 한편으로 무천년주의자는 세대주의자들은 예외 없이 전천년주의자들인 것을 인식한다. 그것은 그들의 가르침은 생존가능한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가 혼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핑크(Pink)는 세대주의자들이 “조잡함과 괴팍한 언행을 강요하고, 그들의 불쌍한 멍청이들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하였음을 믿도록 한다. 인기가 있는 (많은 가치가 있기에는 너무나 인기가 있는—눅 16:15!) 스코필드 성경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결함투성이인가!” 더 최근에 게르스트너(Gerstner)는 세대주의자들을 “거짓 선생들과 이단자들”이라고 간주하며 “사이비 종교 집단이고 기독교 교회의 분파가 아니라”는 딱지를 붙였다. 다른 한편으로, 극단적 세대주의자들(Ultradispensationalists)라고 불리는 자들은, “규범적 세대주의자들은 그들의 가르침이 충분하지 못하고 그들의 결론은 비성경적이다. 그러므로 배격해야 한다” 고 말한다.
또한 세대주의가 아니면서 전천년주의를 믿고 있는 자들도 반대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환난 후 휴거를 믿는 언약파 전천년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세대주의 전천년주의는 역사적이 아니며, 세대주의를 배제한 전천년주의가 역사적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대주의의 특징들에 공격을 집중한다: “현재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급증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환난 전에 휴거된다는 세대주의 이론을 도전한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것은. . . 일탈이다.”
이러한 공격은 온건한 것부터 극심한 것까지 다양하다. 세대주의 입장을 저버린 전천년주의자 머로(Mauro)는 다음과 같은 신랄한 비난을 했다:

“근본주의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자들 가운데 널리 확산되고 있는 “현대주의”라는 새롭고 교묘한 형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가 충분히 무르익었다. 이는 복음적인 기독교계는 그것이 그 이전의 능력을 드러내고 그 이전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에 “세대주의”라는 누룩을 스스로 정화하여야 한다. “세대주의 가르침”의 전 체계는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주의적”이다.

현대주의로 매도한 머로의 비난보다는 다소 온건한 앨리스(Allis)는 세대주의는 “위험하고 비성경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다니엘 풀러(Daniel Fuller)도 세대주의는 “내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성경 자료와 조화될 수 없다”는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보우만(Bowman)은 스코필드 성경과 그 세대주의 가르침에 사실상 무차별적 공격을 하면서, “이 책은 아마도 현재 기독교계 안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이단 교리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결 정중한 표현으로, “장로교 회보 Presbyterian Journal”의 편집자는 한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세대주의를 “보수적인 이단”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 자신의 말로, “세대주의자에 대하여 당신이 무엇을 말하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가 신학에 있어서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후천년주의자들인 재건주의자들(통치 신학자들 또는 신정론자들로도 알려짐)이 싸움에 합류하였다. 한 사람은 세대주의를 “불신과 이단”이라고 불렀고, 다른 사람은 전천년주의를 “교회의 주변에 있는 이단에 의해 지지를 받는 정통적이 아닌 가르침”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세대주의를 “현대주의,” “비성경적,” 또는 “이단”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 그것에 대한 공격의 전부는 아니다. 어떤 사람은 연좌제를 실시하였다. 예를 들면, 보우만은 세대주의를 히틀러, 국가 사회주의, 로마 가톨릭, 크리스챤 사이언스, 몰몬교 같은 이름들과 연결시킨다. 루이즈빌 장로교 신학대학원의 교수들에 의하여 쓰여진 “사상에 직면한 교회, The Church Faces the Isms” 라는 책은 제7일 안식일 교회와 완전주의(Perfectionism)와 같은 “사상들”과 함께 세대주의를 포함시킨다.
게르스트너(Gerstner)는 (기본적인 차이를 구분하면서도) 어떤 면에서, 세대주의를 여호와의 증인과 몰몬교와 나란히 놓는다. 그리고 게르스트너의 책 서문에서 스프라울(Sproul)은 세대주의자들과 현대 “상황 윤리”의 아버지 조셉 플레처(Joseph Fletcher) 사이의 어떤 유사성을 말한다.
가끔 가르침보다 인격에 초점을 맞추는 인신 공격이 자행되기도 한다. 흔히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가 지목되고, 공격의 초점은 대개 그의 분리주의 원칙들과 관행들이다. 그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임의로 출교시키고 자신의 분리주의 관행들은 전체 세대주의 운동에 좋지 않는 인식을 심어준 플리머스 형제 운동의 수장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공격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여러 개의 채널을 통하여 다비로부터 내려오는 직계 노선이 있다. . . 이 모든 것은 분리주의와 배타주의의 정신으로 특정되어지고 그러한 정신에 기여한다. 이 정신이 전체 그리스도의 몸에 미친 대단히 파괴적인 영향은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때때로 이러한 공격은 교회 분열이 어떤 면으로든지 세대주의 가르침과 연관이 있는 사례들을 지적하는 형태를 취한다. 물론 그러한 사례들의 보고에서 독자는 분열을 일으키는 모든 사실들이 제시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세대주의 가르침이 유일한 원인이 아닐지라도, 주된 원인으로 제시되었다. 세대주의 가르침의 완전성을 실추시키기 위하여 그러한 논증을 사용하는 자들은 종교 개혁의 분파적인 측면에 대한 기본적이고 명백한 사실들을 상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적인” 공격도 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은 그 사람이 양육받은 세대주의 가르침에서 그를 건져내 준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가 없이, 세대주의적 접근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있다. 그러나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공격은 강력한 것이다. 세대주의를 주일학교나 성경학교에서 우연히 배웠을지 모르지만, 지적 성숙을 더 많이 하면 그것을 분명히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역사적인 공격도 있다. 이 문제는 뒤에 (4장에서) 더 상세히 검토될 것이다. 현재의 형태의 세대주의는 분명히 최근의 것이므로 진리일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만약 그것이 진리이면 교회사의 18세기 초에 누군가 그것을 가르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고 이러한 논증을 하는 사람은 역사는 진리의 시험장이지 아니고, 오직 성경만이 그러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접근을 고집하며, 역사가 최종적인 시험장이 아니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 유효한 시험이라는 인상을 남기려고 한다. 데일 무디(Dale Moody)는 “7 세대들과 8 언약들과 환난 전 휴거라는 현대적 형태를 가진 세대주의는 1830년을 넘어서 추적할 수는 없는 일종의 일탈이다”라고 쓰고 있다.
교리를 조롱하는 공격도 있다. 이것은 대개 세대주의 교리의 피상적인 해석이나 부분적인 진술에 근거하고 있다. 세대주의의 어떤 가정된 가르침은 웃음거리로 만들어졌고, 그만큼 더욱 전체 체계는 비난을 받았다. 예를 들면 세대주의 반대자들은 세대주의가 두 가지 (또는 더 많은) 구원의 길을 가르친다고 확신하였다. 그 보다 더 비성경적인 가르침이 있을 수 있느냐 하고 그들은 묻는다. 그러므로 그 체계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대주의는 산상 수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산상 수훈은 분명히 풍성한 기독교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인용하기 거절하는 체계가 잘못되었다는 것보다 무엇이 더 명백하단 말인가?”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보수주의자인 포스터(Foster)는 “세대주의 안에 있는 이단은 산상 수훈을 오늘날 보다 미래 시대에 적용한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난은 적당한 때에 논의될 것이다 (5장을 보라): 여기서는 공격의 방법으로 사용된 사례로 소개되었을 뿐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세대주의를 공격한다: “비세대주의자는 종말론적 요소들을 가장 덜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분명히 세대주의자는 우리 교회 신조들이 부적합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환난 전 휴거나 144,000 명의 정체 같은 문제에 대한 선언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그룹들은 그들의 교리 진술에 환난 전 휴거 조항을 가지는 것이 그들의 사역을 위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144,000 명의 정체를 포함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교리 진술을 본 적이 없다.
(전에는 세대주의자였으나, 지금은 무천년주의자며, 항상 나의 친구인) 월트케(Waltke)는 1991년 행한 강연에서 세대주의는 “체계로서 미래가 없다”고 예언했다. 그는 “만약 새롭고 공인된 신학자가 역사적 세대주의를 변증하기 위하여 일어나지 않으면, 이와 같은 기독교 신학의 일탈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점진적 세대주의는 (9장을 보라), 세대주의 전통 안에서 합법적인 발전인 체하면서, 고전적 세대주의로부터 분명한 변화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것이 “성경적으로 더 정확한 세대주의 구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전적 세대주의가 성경적으로 덜 정확하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가? 한 점진적 세대주의자는 고전적 세대주의를 그가 그 아래 살고 있는 “구름”으로 본다. 그러나 점진적 세대주의는 그 구름을 이마도 몰아낼 것이다.
물론 어떤 교리의 진리의 최종적 시험은 그것이 성경의 계시와 일치하느냐 아니냐 하는 여부에 달려있다. 교회가 1 세기에 무엇을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것을 진리로 만들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교회가 20 세기가 될 때까지 무엇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릇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터툴리안(Tertullian), 안셀름(Anselm), 루터(Luther), 칼빈(Calvin), 다비(Darby), 스코필드(Scofield),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성직자들은 모두 그분의 교회에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들이었으나, 그들 중 누구도 모든 생각이 완전하지 못했다. 사람이 교리를 옳게 또는 틀리게 만들지 못한다. 결함이 있는 삶이 교리를 결코 고양시키지 못하나, 반드시 그것을 잘못되게 하지도 못한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특정한 연구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 줄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로 하여금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오류가 없다거나 다 많은 빛이 필요 없게 만들지는 않는다. 성경 진리에 대한 이해는 정식 교육 과정을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해서 성령님에 의하여 전달될 수 있고, 그것들과 상관없이 전달될 수 있다.
만약 세대주의가 “위험한 친구”에서 “용납할 수 없는 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불리어진다면, 그것을 점검하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 세대주의자들이 그들의 가르침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스스로 말할까?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이단이라는 것에 대하여 어떤 도움이 있을 수 있을까?

세대주의가 준 도움

그것은 성경을 구분할 필요성에 부합한다.
성경에서 기본적인 구분을 할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성경 해석자는 아무도 없다.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기독교의 유대교적 배경을 아무리 많이 말한다고 하여도,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의 생각에 기독교로 옮겨진 유대교의 특징이 다소간, 혹은 많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메세지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의 재료는 신약의 재료와 구별된다.
언약 신학자도 세대주의에 대한 그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고 중요한 구분을 한다. 그러나 그의 세대 구분은, 통합하고 기초가 되는 은혜의 언약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약의 개념 안에서 그는 아주 기본적인 구분을 한다. 벌코프(Berkhof)가 좋은 예를 보여준다. 그는 세대주의 체계의 성경 구분을 거부한 후, 자기 자신의 세대, 또는 경륜의 체계를 열거하면서 구약 세대와 신약 세대 둘로 감소시켰다. 그러나 벌코프는 구약 세대 안에서 네 개의 작은 구분을 열거하고, 비록 그가 그것들을 은혜의 언약의 계시 안에 있는 단계들이라고 부르지만, 따로 열거될 만큼 충분히 구별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면 그는 사실상 이 네 구분에 신약을 더하면 도합 다섯 가지의 하나님의 서로 다른 세대를 발견한 셈이다. 이와 같이 언약 신학자는, 은혜의 언약이 그의 지배 범주이지만, 성경의 구분들이 그의 신학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한다.
세대주의자는 이러한 구분의 필요성에 대한 그의 답을 그의 세대주의적 체계 안에서 발견한다. 세대들은 성경의 도처에 질서있는 계시의 진보 안에서 구분의 필요성을 충족시킨다. 세대주의자가 말하는 세대들은 은혜 언약의 계시 안에 있는 단계들이 아니라, 세상의 일들을 지휘하는데 있어 현저히 구분되는 하나님의 다른 경륜들이다. 이 시점에서 일곱 세대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토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요지는 세대가 구분의 필요성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모든 성경 해석자들은 구분의 필요성을 느낀다. 분명히 이것은 세대주의자들의 구분이 정확한 구분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는 구분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 두 진술에는 어떤 진리가 담겨있다: “짐승의 제물을 가져오는 대신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사람은 세대주의자다.” 그리고 “주중의 일곱째 날을 지키지 않고 첫째 날을 지키는 사람은 세대주의자다.” 그것은 단순히 짐승의 제물을 가져오지 않고, 토요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지키지 않는 사람은 성경 해석에서 구분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자는 그의 체계가 그 필요성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고 느낀다.

그것은 역사 철학의 필요성에 부합한다.
성경 그 자체는 역사 철학이 아니지만, 철학을 담고 있다. 성경이 사상을 다루지만,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이라는 사상을 다룬다는 것을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신학의 과제인데, 문제점이 없지 않는 과제다. 주된 문제는 언약 신학이나 세대주의 신학이 성경에 담겨있는 참된 역사 철학을 제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음 사실 때문에 더 복잡하게 되었다. 즉, 만약 역사 철학을 “역사적 사건들과 계승들이 궁극적인 의미를 향해 통합되고 나아가게 하는 어떤 원리에 부합되게 우주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두 신학 체계는 정의가 요구하는 기본적 요건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두 체계가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세대주의가 더 가치있고 유용한 체계라는 것을 확증해 준다. 그 정의는 다음 세 가지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유의하라:
1. “역사적 사건들과 계승들”에 대한 인식, 또는 역사에서 계시 진보의 올바른 개념.
2. 통일의 원리.
3. 역사의 궁극적인 목표.
그러면 이러한 세 가지 특징과 관련하여 두 체계를 검토해 보자. 역사의 목표에 대하여 세대주의자들은 그것을 지구 위에 천년 왕국을 세우는데서 발견한다. 반면에 언약 신학자들은 그것을 영원 상태로 간주한다. 이것은 규범적인 세대주의자들이 영원 상태의 영광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의 하늘과 땅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역사의 목표가 시간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낙관적이며 정의의 요건에 부합한다.
현재의 선과 악의 싸움은 영원한 왕국의 시작과 더불어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보는 언약의 관점은 분명히 현재의 역사 안에서 어떤 목표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비관적이다. 맥클라인(McClain)은, 언약 신학에 의하면 선과 악은 인간 역사를 통하여 나란히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할 때, 이 대비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참사와 하나님의 심판의 위기는 역사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려는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종말 뒤에 올 것이다. . . 그래서 역사는 영원을 위한 예비 통로가 되어 버린다. . . 그것은 좁고 어두운 복도요, 일종의 대기실에 불과하다. 그것은 역사의 과정 안에서 아무 목적지로도 이끌지 못하고, 결국 다른 행성에서 이상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마침내 버려지기에만 딱 좋을 것이다. 그러한 역사관은 성경적 계시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비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점진적 세대주의자들은 천년 왕국과 영원 상태를 함께 하나의 미래 세대로 결합함으로 역사의 목표의 관점을 둘 다 취한다. 이것은 고전적 세대주의와 언약 신학 사이에 중재하는 입장을 취한다. 대부분의 세대주의 개요는 시간 안에서만 운용되는 세대들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점진적 세대주의와 같이 영원을 세대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올바른 역사 철학의 목표들과 관련하여, 천년 왕국 세대를 내포한 규범적인 세대주의만이 역사의 대단원을 완성하는 만족스러운 체계를 제공한다.
역사 철학의 두번째 요구사항은 올바른 통일의 원리다. 언약 신학에서 그 원리는 은혜의 언약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사람과 맺었고,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제시하셨다고 추정되는 언약이다. 요컨데 은혜의 언약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고, 언약 신학의 통일의 원리는 구원론적이다.
세대주의에서 그 원리는 신학적이고, 종말론적이며,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다른 청지기 직분들 안에서 그분의 인격을 나타내는 바와 같이, 서로 다른 세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른 청지기 직분들은 역사 안에서 천년 왕국의 영광으로 막을 내린다. 이것은 세대주의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구원에 합당한 위치를 부여하기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6장을 보라). 만약 역사의 목표는 천년 왕국이고, 또 만약 하나님의 영광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개인적 임재 안에서 적합한 때에 나타난다면, 세대주의의 통일의 원리는 (만약 우리가 향하여 가는 목표의 관점에서 본다면) 종말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만약 모든 세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학적이고, 또 (만약 하나님의 영광의 전반적인 나타남의 관점에서 본다면)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점진적 세대주의에서 통일의 원리는, 그리스도와 이미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못한 메시아 왕국, 다윗왕국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론적이다.
비록 규범적 세대주의 원리가 훨씬 더 넓고 덜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것이 세대주의가 더 유효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 철학의 정의의 세번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오직 세대주의만이 계시 진보의 올바른 개념을 공정하게 다룬다. 언약 신학은 그 체계 안에 은혜 언약의 경륜의 다른 방식을 포함하고 있고, 비록 이러한 방식은 계시 안에 진보적 개념의 외양은 보여주지만, 실제로 언약 신학 안에는 극도의 경직성이 있다. 그 자신이 언약 신학자인 오르(Orr)는 바로 이점에서 언약 신학 체계를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발전의 진정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실패했으며, 인위적 모형론(typology) 체계와 풍유적 해석으로 사실상 신약 전체를 구약으로 되돌려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언약 신학의 가장 명백한 결함은 언약의 개념을 하나의 완전한 범주(category)로 사용하고, 신학의 모든 재료를 그 속으로 주입시키려고 시도하면서,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개념을 원하는 생각을 쫓아낼 수밖에 없는 인위적인 체계를 창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 신학은, 은혜 언약에 대한 통일의 원리의 경직성 때문에, 그 체계 안에서 올바른 계시 진보를 결코 보여줄 수 없다.
반면에 세대주의는 발전 개념에 적절한 위치를 부여해 줄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다양한 경륜 아래서 다양한 계시가 인간에게 주어졌고, 그 계시는 그 내용의 범위에 있어서 계속 진보해 왔다. 비록 다양한 세대들 안에서 유사성이 존재하지만, 그 유사성은 진정한 발전의 부분이지, 은혜 언약의 통일의 원리를 사용한 결과는 아니다. 각 세대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특별히 나타난 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계시의 진보 속에서 완전하고도 구별된 위치를 부여받고 있다. 세대주의만이 역사적 사건들과 계승들을 그들 자신의 빛 안에서 나타나게 하고, 전체적인 언약의 인위적인 빛 안에서 반사되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올바른 목표와 올바른 통일의 원리와 올바른 진보의 개념이라는 요건을 갖춘 정확한 역사 철학은 세대주의 체계로 가장 잘 만족된다. 성경 구분의 필요와 함께 역사 철학의 올바른 개념은 세대주의로 이끌게 한다.

세대주의는 일관된 해석학을 제공한다.
이 주제는 5장에서 다룰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세대주의는 “문자적인 literal,” “알기 쉬운 plain,” “통상적인 normal,” “역사적-문법적인” 해석을 일관되게 사용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언약 신학자들은 특히 예언을 해석할 때 비문자적 해석을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무천년주의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그러한 해석의 자연적 결과일 뿐이다. 세대주의자가 아닌 전천년주의지들도 그들의 종말론의 어떤 부분에서 통상적인 해석에서 이탈해야 한다. 예를 들면, 라드(Ladd)는 환난 후 재림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계 7장의 144,000 명을 문자적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 또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한다. 게다가 그는 마태복음의 유대적 특성에 대한 세대주의자들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고, 예를 들면 마 10:5-10에 기록된 열두 제자들에게 주신 우리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느 곳에서도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제자들에게 이방인에게 가도록 금지한 이 명령과 이방인들에게 가라는 명령(마 28:19-20)을 알기 쉽게 해석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1) 혼란 중에 포기하든지, (2) 그 구절 중 한 구절을 영해하든지. (3) 세대적인 구분을 인정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알기 쉽고 통상적인 해석이 유일하게 유효한 해석이라면, 또 만약 그러한 해석을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세대주의자가 되게 할 것이다. 통상적인 해석을 기본으로 믿는 사람일수록, 성경 해석에서 그것을 일관되게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그만큼 그는 필연적으로 세대주의자가 될 것이다.

요약
그렇다면 세대주의는 성경 구분의 필요성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만족스러운 역사 철학을 제시하고, 문자적인 해석 원칙을 일관되게 사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본적 영역이다. 만약 세대주의가 그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일관성 있는 성경 해석에서 가장 유용한 도구다. 그렇지 않다면, 세대주의는 최소화되거나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세대주의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들이나 세대주의 신학을 비판하거나 묵살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책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신학과 성경 해석에 대한 라이리 박사의 공헌은 대단하다. 이 책은 필독서다.

작가정보

저자는 Haverford 대학, Dallas 신학대학원, Edinburgh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강해서와 교리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Christian 자유예술 대학의 학장, 유명한 성경대학의 총장, Dallas 신학대학원의 대학원장으로서 그는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의 경력 가운데는 Haverford 대학이 수여한 the Phi Beta Kappa Society (미국 대학 성적 우수자 모임) 회원 자격이 포함되어 있다.

역자는 1970년 노량진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와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Emmaus Bible College에서 성경과 헬라어를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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