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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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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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현장에서 발굴한, 때로는 형태가 온전치 않은 유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신중히 귀를 기울여 고대인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복원함으로써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인류 역사의 여백을 차츰차츰 메워가는 학문이다. 이와 같은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연구 덕분에 옛사람들의 삶과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의 삶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은 그것을 처음 만들거나 발견해서 사용한 누군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누리는 사물, 문화의 기원과 내력을 발굴 현장의 최전선을 누벼온 고고학자의 시선에서 쉽고 흥미롭게 전달한다. 술과 음식과 같은 의식주에서부터 놀이와 여행 등 유희의 역사, 황금과 실크 등 진귀한 물건들을 탐하고 영생을 꿈꿨던 인간의 욕망에 이르기까지 ‘기원’에 대한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을 마주한 독자들은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번영과 몰락의 경계를 종횡무진하며 희로애락의 인간사를 이해하는 지적인 여정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I. 잔치(Party): 요리하고 먹고 마시다
[막걸리] 막걸리와 맥주는 사실 같은 술이었다?
[소주] 신이 내린 자연의 선물, ‘더 맑게’ 진화하다
[김치] 북반구를 따라 이어지는 ‘푸드 로드’
[삼겹살] 녹진한 돼지비계 속에 담긴 민초들의 애환
[소고기] 편견을 딛고 이어진 우리의 별미
[닭] 신라는 닭의 나라였다
[상어 고기] 2,000년을 이어온 우리의 제사 음식
[해장국] 숙취를 해결하며 화합을 도모하다
Ⅱ. 놀이(Play): 놀고 즐기며 유희하다
[놀이] 인류의 진화를 이끈 즐거운 유희
[고인돌]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의 기원
[씨름] 업어 치고 메어치는 가운데 하나가 되다
[축구] 데스 매치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여행] 인류의 DNA에 새겨진 방랑 본능
[낙서] 뇌를 쉬게 하고 싶다면 낙서를 하라
[개] 야생 늑대, 인간의 반려동물이 되다
[고양이] 인간을 매혹한 작지만 도도한 맹수
Ⅲ. 명품(Prestige): 부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석기] 고대인들의 환경 적응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실크] 인류 역사를 움직인 치명적인 유혹
[황금] 6,500년 전, 인류 최초의 플렉스
[신라 금관] 화려한 외양 뒤에 숨은 반만년의 한국사
[인삼] 세계 역사를 뒤바꾼 명약
[기후와 유물] 지구온난화 그리고 사라지는 문화유산들
[도굴] 목숨을 건 음침한 도박
[모방] 창조는 복제에서 시작된다
Ⅳ. 영원(Permanence): 영원한 삶을 욕망하다
[벽화] 1,500년 전 고구려인들이 구현한 메타버스
[추모] 구리참새의 언덕 그리고 현충원
[미라] 불로장생을 꿈꾸는 인간의 부질없는 바람
[발굴 괴담] 투탕카멘 미라의 저주, 그 진실은?
[마스크] 꽁꽁 감춰진 얼굴 뒤에 숨은 세계사
[문신] 고통과 바꾼 영원한 아름다움
[점복] 불안을 잠재워주고 미래를 꿈꾸게 하다
[메신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에필로그_새로운 과거를 찾아가는 고고학
참고 문헌
이처럼 사람들은 약 1만 년 전부터 자신이 사는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춰 저마다 독특한 발효 음식을 발명하고 보급해왔다. 인류가 발효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증거는 고고학의 발달로 전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고학 연구 자료가 쌓이면 쌓일수록 김치 같은 발효 음식과 그것의 역사는 더 오래된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음식 문화를 설명할 때 중요한 것은 기원이 아니라 그 음식이 변화하는 환경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며 만들어져왔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치 같은 발효 음식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의미 없는 논쟁이다.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햄버거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여담일 뿐 햄버거의 본질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김치: 북반구를 따라 이어지는 ‘푸드 로드’〉 중에서)
인간에게 죽음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통해 남은 자들의 삶을 결속했다. 라틴어 격언 중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이 격언은 역설적으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제사는 인류가 메멘토 모리의 교훈을 실천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우리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애도하고 그 영혼의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유지했다. 제사는 죽은 이들에게 산 자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의식이자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축제였다. (〈상어 고기: 2,000년을 이어온 우리의 제사 음식〉 중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놀이는 그 자체로 즐거운 유희다. 더불어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의 규칙을 습득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4~5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부터 고구려 벽화에 이르기까지 벽화에 그려진 그림들은 고대인들이 사물을 모방하고 학습하는 교재 역할을 했다. 가령, 고대의 아이들은 벽화에 그려진 야생 소를 사냥하는 그림을 보고 야생 소의 모습은 어떠한지, 야생 소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을 것이다. 고대 유목 민족의 아이들은 말타기, 활쏘기, 씨름과 같은 놀이를 통해 기마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쌓아나갔다. 2,000년 전 중국 북방을 호령했던 흉노족에 대해 기록한 중국 역사서에는 흉노족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양을 타고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놀이를 하며 기마술을 익힌다고 적혀 있다. 유목 민족 아이들은 걷기도 전부터 기마 놀이를 하며 말 타는 법을 익힌 셈이다. (〈놀이: 인류의 진화를 이끈 즐거운 유희〉 중에서)
노브고로드는 우리나라의 경주나 일본의 나라 같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다. 특히 노브고로드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을 종이로 삼아 쓰인 문서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어 슬라브어의 기원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가히 러시아의 ‘훈민정음’ 급에 해당하는 국보들 사이에서 엉뚱하게도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유물은 ‘온핌’이라 불리는 한 아이가 쓰던 필기 뭉치였다. 필기 뭉치의 내용에 성경 구절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온핌은 동네의 교회 학교에서 글을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온핌의 필기 뭉치 곳곳에는 흥미로운 그림과 낙서가 남아 있다. 가령, 말을 타고 동물에게 화살을 쏘는 신나는 장면에는 ‘나는 짐승이다(한판 붙자)’라고 쓰여 있고,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그린 그림에는 ‘아, 벌써 6시인데…(공부하기 싫다)’라는 낙서가 쓰여 있다. 온핌은 이 필기 뭉치를 수업을 다녀오던 길에 하수구에라도 빠뜨렸던 것일까? 온핌의 필기 뭉치는 800년 후 통째로 후대 러시안인들에 의해 발견되고,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물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중이다. (〈낙서: 뇌를 쉬게 하고 싶다면 낙서를 하라〉 중에서)
최근 ‘플렉스(flex)’라는 말이 유행 중이다. 본래 ‘구부리다’, ‘준비운동 등을 하며 몸을 풀다’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인데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자신의 부를 뽐내던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용된 의미가 한국으로도 건너와 일상적인 용어로 널리 퍼졌다. 고고학 공부를 하다 보면 옛사람들의 ‘플렉스’ 흔적들을 만나곤 한다. 찬란한 보석과 황금으로 치장된 무덤이 대표적이다. 두터운 시간의 벽을 뚫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려함을 뽐내는 이 유물들은 부와 명예를 드러내고 과시하고자 했던 인류의 본능적인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황금: 6,500년 전, 인류 최초의 플렉스〉 중에서)
기후 위기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지구온난화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녹아내리는 것은 극지방의 빙하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몽골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악 초원 지역인 알타이의 옛 무덤들과 그곳에 안장된 미라, 황금 유물들도 조용히 사라지는 중이다. (…) 부패를 방지해주던 얼음이 녹아버리면 무덤 속 미라, 펠트, 나무로 만든 도구 등이 빠른 속도로 썩어버린다. 황금 유물도 훼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금은 주로 박 형태로 가공되어 쓰였는데, 금박을 붙였던 유물이 썩어버리면 금박 역시 구겨지거나 찢기는 등 기존의 형태를 잃게 된다.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알타이 지역 일대 땅속에 묻힌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기후와 유물: 지구온난화 그리고 사라지는 문화유산들〉 중에서)
고구려인들은 고분 천장을 입체적으로 만든 후 그 사이사이에 별자리와 해당 별자리와 관련된 신화 속 인물들도 새겨 넣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이미지 중 널리 알려진 삼족오(태양 속에서 산다는 세 발을 가진 까마귀)도 모줄임천장에 그려진 것이다. 보통 죽은 사람의 몸은 하늘을 보고 뉘인 형태로 안치된다. 어쩌면 무덤을 만든 이들은 무덤 주인이 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감상하고, 신화 속 인물들과 조우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모줄임천장은 고구려인들이 발명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천장을 마치 천체투영관처럼 입체적이고 높게 쌓아 올리는 방식은 중앙아시아 초원에 사는 유목 민족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몽골 초원에서 밤을 지내본 사람이라면 그곳 하늘에서 벌어지는 쏟아질 듯한 별들의 향연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늘을 이불 삼아 사는 유목민들에게 별자리는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벽화: 1,500년 전 고구려인들이 구현한 메타버스〉 중에서)
그렇다면 정말 고고학 유물의 저주는 없는 것일까?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가령, 고대의 유물에 남아 있는 (지금은 사라진) 세균이 고고학자를 비롯해 발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특히 극지방에서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북극권의 영구동결대에는 과거 탄저병이나 페스트 등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나 극지방을 탐험하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얕은 땅속에 묻혀 있다. 극지방의 경우 땅을 조금만 파내려가도 얼음이 나오기 때문에 무덤을 깊게 팔 수 없다. 따라서 시신 위에 흙을 살짝 덮고 돌을 덮는 정도로 매장을 한다. 워낙 추운 지방이다 보니 그렇게 묻은 시신이라도 그대로 보존이 가능하다. 이런 무덤들을 발굴하다 보면 자칫 고대의 세균에 노출될 수도 있다. (〈발굴 괴담: 투탕카멘 미라의 저주, 그 진실은?〉 중에서)
한 조각의 유물이 고고학자의 지식과 학문적 상상력을 만나
살아 숨 쉬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되다
한국 고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강인욱 교수가 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문화나 물건들의 연원과 내력을 고고학자의 시선으로 쉽고 알차게 풀어냈다. 무심코 먹은 김치는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고된 하루 일과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소주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 코로나19로 흔한 풍경이 되어버린 마스크를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언제일까?
기원을 밝히는 일은 모든 학문에서 공통적으로 몰두하는 주제 중 하나다. 가령, 천체물리학자는 우주의 시작을, 생물학자는 생명의 탄생을, 언어학자는 인간 언어의 근간을 더 정교하고 명확하게 밝혀내고자 한다. 그런데 고고학자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다. 죽어 있는 유물로부터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게 유의미한 살아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은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과정이 바로 고고학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물건이나 흔적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고학은 과거의 유물을 바탕으로 문헌으로는 남아 있지 않은 옛사람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복원하고 추적한다. 그리고 고고학자는 유물 위에 쌓인 시간의 먼지를 신중히 털어내고 그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 뒤, 자신의 전문 지식과 학문적 상상력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더해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고고학 유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그 유물의 진면목을 알아차리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고조선을 증명하는 유물인 비파형동검을 생각해볼까요? 전시실에 진열된 비파형동검의 모습은 그다지 멋들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시퍼렇게 청동 녹이 슬었기에 볼품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양만 봐서는 이 유물이 어떤 점 때문에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증명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의 전문가적 지식과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낡고 녹슨 이 비파형동검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의 벽을 뚫고 세상에 나온 유물은 고고학자를 통해 여러 겹의 이야기를 새로 지어 입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역사의 구멍 난 부분을 메워주는 퍼즐 조각,
옛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
빛바랜 유물 속에 담긴 희로애락의 인간사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32개의 유물 이야기’를 ‘잔치(Party)’, ‘놀이(Play)’, ‘명품(Prestige)’, ‘영원(Permanence)’이라는 네 가지의 키워드로 나누어 살핀다. 각각의 키워드는 인간 삶의 핵심적인 축인 ‘먹고’, ‘즐기고’, ‘욕망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은 그것을 처음 만들거나 발견해서 사용한 누군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유물은 인류가 미처 기록해두지 못한 역사의 구멍 난 부분을 메워주는 퍼즐 조각이자 옛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인 것이다. 고고학자는 깨진 항아리 파편, 온전치 않은 인골, 토기에 묻은 작은 흔적들로부터도 단서를 얻어 미지의 역사를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탐정과도 같다.
강인욱 교수는 다년간 세계 각지의 발굴 현장을 누비며 쌓아온 고고학자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고대인들의 의식주에서부터 놀이와 여행과 같은 유희의 역사, 황금과 실크 등 진귀한 물건들을 탐하고 영생을 꿈꿨던 인간의 욕망까지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번영과 몰락의 경계를 종횡무진하며 희로애락의 인간사를 들려준다.
1부 ‘잔치: 요리하고 먹고 마시다’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류는 자연물을 채집하고 수렵해서 먹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 대신 발효나 염장 등 식재료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식량을 얻기 어려운 곤궁한 시기를 극복하여 생존 가능성을 높여왔다. 이와 같은 가공법은 생존 가능성만 높여준 것이 아니라 미식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저장 토기나 소줏고리 유물, 고분에서 출토된 동물이나 생선의 뼈 등을 통해 오래전 사람들이 먹고 마시던 음식과 술의 맛은 어땠을지 상상해보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2부 ‘놀이: 놀고 즐기며 유희하다’에서는 동굴벽화나 고인돌 등 고대인들이 남긴 유희와 협동의 흔적을 통해 협력하고 공생할 줄 아는 인간의 기원을 찾아 나선다. 고대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양이 또는 강아지의 뼈나 이들의 모습이 새겨진 유물들을 통해서는 자연을 숭배하는 한편, 자연을 인간에게 유리하게 길들이며 문명을 구축해갔던 인류의 지혜와 응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3부 ‘명품: 부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다’에서는 황금 유물로 치장되거나 비단옷을 두른 미라와 고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황금 부장품 등을 통해 오늘날과 그리 다르지 않은, 아름다움과 부를 갈망하고 탐닉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본다. 예나 지금이나 고대의 무덤에 매장된 값나가고 진귀한 유물들은 도굴꾼들의 단골 표적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두 차례나 일어났던 복제품 신라 금관 도난 사건을 비롯해 살아생전 ‘도굴왕’으로 유명했던 조조의 무덤이 도굴꾼들에 의해 발견되는 이야기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유물들의 수난기이자 인생의 무상함을 알려주는 한 편의 우화 같기도 하다. 유물들이 겪는 수난은 도굴 때문만은 아니다. 고대 문화유산들 역시 기후 위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영구동결대의 얼음이 녹아버리면서 보존 상태가 좋았던 유라시아의 고대 유산들이 훼손되고 사라지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4부 ‘영원: 영원한 삶을 욕망하다’에서는 무덤에 그려진 벽화, 인골이나 미라에 덧씌워진 마스크, 그리고 그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 등을 토대로 고대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맞이했는지, 망자를 어떻게 배웅하고 추모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하여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영생을 염원했던 인류의 기원을 추적한다.
가장 오래된 것을 다루지만 가장 미래 지향적인 학문, 고고학.
당신의 일상에 의미와 재미를 더해줄 ‘감성 지식 교양서’의 탄생!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이나 경험 중인 문화를 색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환기해주는 한편,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매력에도 눈뜨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고고학이야말로 가장 미래 지향적인 학문’이다.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새로운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될 때마다 인류의 역사는 새롭게 쓰이고 갱신될 수밖에 없다. 가령, 1970년대 이전까지는 그때까지 발굴된 석기의 형태로 추정해볼 때 동양의 구석기 문화가 서양의 구석기 문화보다 덜 발달되었다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 인근 전곡리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됨으로써 세계 고고학계에 정설처럼 널리 퍼진 편견이 깨지게 된다. 사실 과거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우리가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모를 뿐이다. 하지만 새롭게 발굴된 유물 한 점으로 인해 과거를 해석하는 우리의 시선은 지금까지의 통념과 완연히 달라질 수 있다. ‘고고학은 가장 오래된 것을 다루지만 가장 미래 지향적인 학문’이란 말의 참뜻은 바로 이것이다.
또한, 고고학자가 발굴해낸 과거의 유물은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고 모은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무덤을 예로 들어보자. 세계 고고학 자료의 절반 이상은 무덤과 관련된 것들이다. 고고학자에게 무덤은 옛사람들의 삶을 복원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의 보고다. 그런데 무덤에서 출토된 인골이나 유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밀한 마음까지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1만 4,000년 전의 무덤에서 발견된 남녀의 인골 가운데에서 어린 강아지의 뼈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 뼈를 조사해보니 죽기 몇 주 전까지 인간의 보살핌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아닌 작은 생명체를 향한 측은지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고대부터 인류의 마음속에 자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고고학자의 시선으로 내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책에 담긴 32개의 유물 이야기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의 기원을 탐구하는 내용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또한, 책 곳곳에는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고고학적인 지식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의 내면에 내재된 욕망과 생존 본능이 고대인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고고학자 특유의 통찰과 사색이 담긴 구절들도 적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에는 수천, 수백만 년 전의 유물 한 조각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서 아파하고, 슬퍼하고, 간절히 소망하고, 미래를 희망하는 인간의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들이 가득하다. 그 내용들을 읽어가다 보면 고고학이 어떤 대상의 기원을 밝혀내는 과정은 곧 우리 자신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역사의 동물입니다.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이죠.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 주가의 등락을 근거로 앞날을 예측합니다. 판사는 판결을 내릴 때 반드시 이전 판례를 참고하고 현재 상황을 고려합니다. 의사도 진찰과 치료를 할 때 이전의 임상을 토대로 삼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미래를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우리가 지나온 과거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와 미래를 단절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 않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이어지고, 현재는 다시 미래로 이어집니다. 또한 미래는 다시 과거의 반복일 때도 있습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죠. 이 책에서 풀어낸 서른두 개의 유물 이야기는 옛이야기인 동시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일상과 옛사람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를 바라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작가정보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고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살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소장이다. 유라시아와 고조선의 고고학을 주로 연구하며 우리의 과거를 좁은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서 넓게 보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테라 인코그니타》, 《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 다수가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에 출연하고, 「한겨레」,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고고학의 진정한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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