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장미
2023년 10월 17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7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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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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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장미》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한 온다 리쿠의 오랜 관심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뱀파이어와 SF 세계관이 섞인 신비로운 서사 구조,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는 소녀의 불안함 거기에 온다 리쿠의 섬세한 문체가 더해져 독자들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온다 리쿠는 한 해 300여 편의 도서를 독파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읽고, 스스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독자들은 《어리석은 장미》를 통해 온다 리쿠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장르에 대한 도전 정신, 오랜 기간 집필에 들인 정성을 선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나치는 멍한 기분으로 그 말을 들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는 신기한 목소리였다.
“난 허주 승선원이 되기 싫어요. 후카시 오빠의 피를 빨고 싶지도 않고요.”
무의식적으로 그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 말은 거의 혼잣말에 가까웠다.
여자는 발밑의 독한 장미를 가리켰다.
“이걸 왜 독한 장미라고 부르는지 아니?”
“아뇨.”
나치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말이지, 원래는 ‘똑똑한 장미’야. 한마디로 이건 현명한 장미.”
여자가 노래하듯 대답했다.
나치는 대조적으로,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럼 ‘썩은 장미’는”
“어리석은 장미지.”
여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왜 어리석은 장미일까?”
여자는 나치의 얼굴을 보며 생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울고 싶어졌다.
“똑똑한 장미는 피어나서, 시들고, 어김없이 져 버리는 꽃이야. 그래서 현명한 거야.”
여자는 천천히 양팔을 벌렸다.
“하지만 어리석은 장미는 시들지 않아. 피어난 채 영원히 지지 않고, 말라 죽지도 않아. 그래서 어리석은 장미라고 하는 거지.”
◾ P. 57~58
(……)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것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폭력적인 충동이었다.
온몸에 뜨거운 무언가가 내달리며 끔찍한 감정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콸콸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몸이 지금의 두 배 정도는 부풀어 오른 듯했다.
큰일 났다.
나치는 패닉에 빠졌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누가 머리를 붙잡고 마구 끌어당겨 일으켜 세우려는 것만 같았다.
눈앞이 깜깜해졌다가, 밝아졌다가, 새빨개졌다.
먹고 싶어/원해.
나치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박거리며 목덜미로 땀을 뻘뻘 흘렸다.
통로를 꽂아, 동그란 핏방울이 새하얀 피부 위로 솟아나는 모습을/
안 돼, 자꾸 생각이 나.
식은땀인지 뜨거운 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추운지 더운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위장 속이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확실했다. 마치 불을 꿀꺽 삼켜, 배 속에 불이 들어 있는 듯했다.
뜨거워.
나치는 손으로 배를 짚었다. 정말로 안에서 열을 내뿜는 듯 뜨거웠다.
땀이 뻘뻘 솟아나 손이 젖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렇게 엄청난 충동이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다니 너무나 두려웠다.
◾ P. 298~299
(……)
어리석은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영원히 지지 않고 계속 피어 있다. 자신의 생명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어리석기 때문에 시들지 않는다.
물론 얼굴을 마주하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가 그 이름을 알고 있다. 허주 승선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주위 사람들도.
시들지 않는 장미. 영원한 장미.
도와의 입술에 냉소가 피어났다.
시들지 않는 장미는 과연 아름다울까. 시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것은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화와 무엇이 다를까.
◾ P. 307~308
(……)
“있잖아, 오빠.”
“왜”
“한참 나중에…… 정말 한참 나중 일이겠지만, 혹시…… 혹시, 같이 외해로 나가자고 하면 오빠는 따라와 줄 거야?”
후카시의 눈동자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외해로 같이? 허주 승선원도 아닌 내가?”
“응, 그런 방법이 발견된다면 말이야.”
이번에는 나치가 시선을 돌렸다.
후카시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갈게. 너랑 함께라면 어디든 갈 거야.”
◾P. 551
‘노스탤지어의 마술사’ 온다 리쿠가 14년만에 완성한 역작!
‘노스탤지어의 마술사’ 온다 리쿠가 《여섯 번째 사요코》(1992년)로 문단에 데뷔한 지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온다 리쿠는 《밤의 피크닉》, 《유지니아》, 《삼월은 붉은 구렁을》,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꿀벌과 천둥》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 왔다.
《어리석은 장미》는 수십 권에 달하는 온다 리쿠의 작품 중 가장 오랫동안 연재된 작품이다. 2006년 SF 전문지 〈SF Japan〉에서 연재가 시작된 이 작품은 2020년 출판사 도쿠마 쇼텐의 문예지 〈요미라쿠〉에서 무려 14년 만에 완결됐다. 온다 리쿠는 연재한 원고를 수차례 개고한 끝에 마침내 《어리석은 장미》를 단행본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온다 리쿠는 여행 에세이를 쓰기 위해 방문한 일본 혼슈 중서부에 위치한 기후현 구조하치만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구조하치만을 바라보며 그곳에 UFO가 내려오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에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뱀파이어라는 존재와 지역 축제 속 풍광을 곁들여, 작품의 주된 배경인 이와쿠라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뱀파이어와 SF 세계관의 신비로운 만남
피를 갈구해야 하는 소녀
《어리석은 장미》는 뱀파이어와 SF 세계관이 어우러진 신비롭고 독특한 서사 구조 위에 자리한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의 소재가 되어 온 ‘뱀파이어’, 어린 시절부터 그 존재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느껴 온 온다 리쿠는 ‘뱀파이어는 인류의 진화에 대한 어떠한 기억이 아닐까?’라고 생각했고, 그 나름의 대답을 《어리석은 장미》 안에 녹여 냈다.
산간 마을 이와쿠라에서는 매년 우주로 떠나는 ‘허주’의 승선원을 선발하는 캠프가 열리고, 열네 살 소녀 다카다 나치는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4년 만에 이와쿠라를 방문한다. 허주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변질’. 변질이 시작되면 본능적으로 타인의 피를 탐하게 된다. 나치는 피를 마시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지만, 캠프의 그 누구보다 빠르게 변질이 시작된다. 점점 피를 갈구하는 스스로를 발견한 나치는 그 거부감과 열망 사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혼란을 느낀다.
변질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와쿠라 너머 우주로 향하는 허주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 장르에 대한 도전 정신, 매혹적인 필력이 이뤄 낸 한 정점
온다 리쿠는 특별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를 집필해 왔고, 서점 대상과 나오키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 최고의 대중 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온다 리쿠는 여전히 연간 300여 편에 가까운 많은 이야기를 읽고, 의식적으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등 작가로서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4년 만에 완결한 《어리석은 장미》는 이러한 온다 리쿠의 이야기에 대한 애정과 장르에 대한 도전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일본의 문학 평론가 오모리 노조미는 《어리석은 장미》를 두고 “온다 리쿠의 장르 소설 사랑을 집대성한 대작이다.”라고 평가했다. 또 온다 리쿠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이자, 《어리석은 장미》의 일본 초판 한정 표지를 담당한 ‘순정 만화의 신’ 하기오 모토는, 《어리석은 장미》를 인류의 미래를 다룬 걸작 SF 《유년기의 끝》에 비교하며,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이 작품은 21세기 《유년기의 끝》이다.”
작품 출간을 앞두고, 온다 리쿠는 “뱀파이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쓸 수 있었다.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라며 큰 만족감을 표했으며, “많은 분량이지만 이 세계에 빠져서 단숨에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라며 독자에게 솔직한 바람을 밝혔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 다양한 장르에 대한 도전 정신, 매혹적인 필력이 한데 모인 《어리석은 장미》는 624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힌다. 책장을 여는 순간, 독자는 14년 동안 공들여 빚은 작가의 서사를 만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줄거리
14세 소녀 다카다 나치는
우주를 항해하는 배, ‘허주’에 오르는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어머니의 고향인 이와쿠라 마을에 방문한다.
허주의 승선원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변질’.
변질이 시작되면 반드시, 타인의 피를 탐하게 된다.
누구보다 빠르게 변질이 시작된 나치는
타인의 피를 탐하는 욕망을 강하게 거부하지만,
점점 피에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와 더불어 이와쿠라 지역과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비밀,
그리고 허주의 수수께끼에 휘말리게 되는데…….
작가정보
(恩田陸)
1964년 일본 미야기현 출생, 와세다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1992년 발표한 《여섯 번째 사요코》가 일본 판타지 노벨 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2005년 《밤의 피크닉》으로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과 제2회 일본 서점 대상을 수상했고, 2006년 《유지니아》로 제59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2007년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로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다. 2016년 출간한 《꿀벌과 천둥》은 2017년 제156회 나오키상과 제14회 서점 대상을 연달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데뷔 후 지금까지 SF,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로맨스, 청춘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작품을 발표해 온 온다 리쿠는 ‘노스탤지어의 마술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한일 양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데뷔 30주년을 앞둔 2021년 겨울에 출간된 《어리석은 장미》는 2006년 잡지 〈SF Japan〉에서 연재를 시작해, 잡지 〈요미라쿠〉에서 무려 14년 만에 완결한 역작으로, 뱀파이어와 SF 세계관이 결합된 장편소설이다. 출간 직후, 온다 리쿠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이라며 만족감을 밝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부 영어통번역학을 전공. 옮긴 책으로 ‘약사의 혼잣말 시리즈’, ‘탐정 히구라시 타비토 시리즈’, ‘르부아 시리즈’, 《미국 총 미스터리》, 《스페인 곶 미스터리》, 《노파가 있었다》, 《아름다운 수수께끼》, ‘샘 호손 박사 시리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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