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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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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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김승옥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취지
-심사 경위 및 심사평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슴벌레식 문답」은 지방에서 올라와 같은 하숙집에 살면서 의기투합하게 된 네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큰언니 같은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모임의 리더 격이었던 부영, 상냥하고 조심성이 많은 정원, 인내심이 강하고 예의가 발랐던 경애, 그리고 술을 좋아하며 즉흥적이었던 화자 준희까지. 서로 달랐기 때문에 알맞게 짜일 수 있었고, 서로와 같은 조각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필사적이었던 이들은 그러나 정원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경애의 배신으로 어긋나게 된다. 등을 돌린 친구들을 향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곰곰이 생각하던 준희의 시선은 오래전 떠난 강촌 여행으로 향한다. 어떻게 방안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사슴벌레에 대한 질문에 숙소 주인이 말한 “어디로든 들어와”가 그 해답이다. 이 ‘사슴벌레식 문답’은 인생의 매 분기점에서 솟아나 어떤 결정도 긍정함으로써, 어떤 운명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을 압도하는 운명 앞에서 시간을 거슬러올라 끝끝내 기원을 발굴해내는 시시포스의 자유의지는 오리무중인 인생에 동반하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같은 삶의 결을 지닌 이로 하여금 응어리를 온전히 쏟아내는 울음을 울게 하면서.
★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시대와 사람에 대한 당부가 가득하다. 열여섯 살 이봄, 아홉살 이여름의 시선으로 기후 위기를 목전에 둔 세계를 바라보는 「썸머의 마술과학」(최진영)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위선이라고 야유하는 시선에 정면으로 맞선다. 무기력과 자조에 젖어들기보다 불가능을 이겨내는 ‘마술과학’과도 같이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한 실천을 연습하는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토요일 아침의 로건」(서유미)은 미국 지사 발령을 위해 영어 회화를 배우던 한 중년 남성에게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 소식으로 시작된다. 4년간 매주 토요일을 함께했던 선생님에게 마지막을 고하기 위한 4주간의 고요한 노력은 인연에 대한 잊기 쉬운 소중함을 특유의 단정하고 정직한 서사를 통해 차분히 역설한다.
낯선 사람에게 좀처럼 애정과 믿음을 갖기 어려운 시대에 「그곳」(최은미)이 도착했다. 여름철 폭염 대피소로 지정된 체육관 안에 사람들이 있다. 갑작스러운 곰의 출현으로 발이 묶인데다가 엎친 데 덥친 격으로 정전이 찾아와 사람들은 공황에 빠진다. 그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저지해오던 ‘이 구역의 최다 민원인’의 눈에 사람들의 도움이 번져가는 것이 보인다.
「그곳」이 막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인류애를 다루고 있다면 「있을 법한 모든 것」(구병모)은 막다른 난점을 우직하게 뚫어내는 소설이다. 소설가인 화자는 얼굴을 모르는 호텔 하우스키퍼에게 호감을 느낀 남성이 그녀를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 로맨스를 쓰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은 저임금 비숙련 여성 노동자를 향한 젠더화된 관성, 그리고 그 기만과 통념을 강화할 뿐인 로맨스라는 장르의 맹점이다. 그러나 소설은 그럼에도 끊기지 않는 진정성이 있다면 그에 화답하는 결말을 보여줄 용의를 속에 품고 있다.
「끝없는 밤」(손보미) 또한 사람의 내면을 찬찬히 뜯어보는 데에 “다층적인 암시와 풍부한 상징,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장면과 이미지”(편혜영)로 손을 보탠다. 하룻밤 요트 여행을 떠난 부부가 있다. 여자는 그들을 여행에 초대한 대학 선배와의 미묘한 관계를 떠올리며 샅굴부위의 통증을 견디고 있다. 통증의 원인을 거슬러올라가던 그녀는 어느 수의사와 함께했던 시간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때 요트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빛이 다가올 때」(백수린)는 한 시절의 인연이 스스로에게 남긴 흔적을 직면하며 자신과 타인의 이해에 가까스로 이르는 이야기다. 소설은 시력을 잃어가는 이모의 바람을 대신 이뤄주느라 자신의 욕망은 뒷전이었던 언니가 스스로의 삶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되짚는다. 당시엔 생경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언니의 욕망은, 화자가 언니의 나이가 되어 반추했을 때 다른 빛깔을 띠고 다가온다. 담백하고 차분하기에 더욱 치열하게 파고드는 문장은 겪어본 적 없던 풍경마저도 읽는 이의 내면에 분명히 아로새긴다.
권여선 「사슴벌레식 문답」 김승옥은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한 대화를 소개했다.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그러자 ‘안’은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이 기묘한 문답법은 1960년대식 실존과 절망, 환멸과 위악, 그리고 운명과 자유의지를 되새기게 했다. 권여선은 이제, 저 여성들의 목소리로 사슴벌레식 문답을 소개한다.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든 들어와.” 저 사슴벌레는 죽음의 향기 가득한 이곳으로 꿈틀거리며 기어들어와, 우리에게 기억과 운명, 비극과 자유의지에 대해 묻는다. 매번 다른 ‘뉘앙스’로. _양윤의(문학평론가)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수상.
최진영 「썸머의 마술과학」 이봄의 말처럼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 하지만 위선보다는, 이봄 자신이 썸머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해버리는 것이 낫다. 이봄의 그것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것을 하나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는 결론도 그것으로부터 겨우 자라나온 것이니까. _권희철(문학평론가)
“나는 말없이 썸머의 선택을 기다렸다. 썸머는 마술사도 과학자도 될 수 있다. 꿈이 바뀐다면 바뀌는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리고 썸머는 백이십 살이 넘도록 살 것이다. 썸머의 세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고민하는 썸머를 숨죽인 채 지켜보며 생각했다. 난 지금 엄마 아빠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엄마 아빠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리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고.”
■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팽이」가 당선되어 등단. 한겨레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백신애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서유미 「토요일 아침의 로건」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 났을 때, 이야기가 완결되었다는 느낌 대신 오히려 뭔가 다시 새롭게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 있다. 「토요일 아침의 로건」이 그러하다. 단순 명료한 이야기 같은데 뭔가 복잡함과 모호함을 남겨둔 것도 같고, 투명한 구조 아래 뭔가를 교묘히 감춰놓은 것도 같은 이야기. 이 소설이 비교적 익숙한 이야기임에도 정작 어딘가 조금은 낯설고 특별한 느낌을 안겨주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_임철우(소설가)
“그는 강 쪽으로 걸어가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물과 멀리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과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오리배들을 보았다. 오리배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가볍게 흔들렸다. 묶고 있는 줄을 풀면 오리배들은 어디로 떠내려갈까. 영어 수업을 그만두게 되면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는 알 수 없었다.”
■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문학수첩작가상을, 『쿨하게 한걸음』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최은미 「그곳」 타인에 대한 배려와 타인을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 내재해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 (…) 지금 이곳에서는 그 신뢰가 흐릿해지고 있고, 그 신뢰는 흐릿해진 다음에서야 우리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슬픔의 ‘이곳’에서 「그곳」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_이지은(문학평론가)
“내가 밀폐된 공간에 있다는 자각이 그제야 한꺼번에 밀려오며 갑자기 호흡을 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린 비상 상황이 되자 나는 내게 또렷하게 새겨진 그 감각을, 계곡물 소리가 주던 두려움을, 내가 움켜쥐었다 놓친 로프의 감촉을, 순식간에 다시 나를 감아올리던 누군가의 안간힘을 그대로 다시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 2008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 「울고 간다」가 당선되어 등단.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2014년, 2015년, 2017년 젊은작가상 등 수상.
구병모 「있을 법한 모든 것」 비대면 시대의 인간관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비대면의 형식으로 제공된 노동 뒤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결코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려는 젠더화된 관성이기도 하다는 것. 비대면이라는 관계 형식을 물신화하지 않고, 희망과 절망의 이분법을 과감하게 가로지른 이의 대답이다. _오혜진(문학평론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음은 물론 전화 통화도 해본 적 없는 랜선 너머 타인과 일상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공유하는 동안 잘도 사랑에 빠지는데, 마케팅이나 사회학 연구나 어떤 목적이든 간에 이미 대중의 인식에 생성되어버린 사람과 꿈속에서만 만나 대화한다고 해서, 그걸 상호작용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찰나를 초월한 이미지, 유사성의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린 기억의 파편, 무시로 변용되고 변주되며 변모하므로 언제까지고 파악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존재가 아니라고 단정짓는 일의 오만에 대하여.”
■ 2008년 장편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오늘의작가상, 김유정문학상 등 수상.
손보미 「끝없는 밤」 손보미는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단일한 의미와 상징을 거부하고 다층적인 암시와 풍부한 상징,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장면과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고통을 정확히 포착하려 애쓴다. 손보미에게 있어서 정확히 쓴다는 것은 플로베르의 일물일어一物一語와 같이 대상에 꼭 맞는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고통의 인과를 단정하지 않고 주저하고 머뭇거리다 끝내 진실에 직면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기술하려는 노력에 가깝다. _편혜영(소설가)
“죽은 대상을 영원히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이득을 얻는 건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죽은 대상이 기필코 행복하게 남아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게 그저 속임수에 불과한 걸까? 손실뿐인 속임수인 걸까? 손실뿐인 속임수라는 게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하는 걸까?”
■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침묵」이,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되어 등단.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2013년, 2014년, 2015년 젊은작가상,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등 수상.
백수린 「빛이 다가올 때」이 소설은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늦게 찾아온 두 가지 ‘첫사랑’인 동시에 ‘짝사랑’이 서로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의 이야기다. 낯설 정도로 삶의 방식이 변한 오늘날에도 아직 첫사랑의 설렘과 “황홀한 감정”이 소설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증명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서사적 역량이다. _김화영(불문학자·문학평론가)
“온 세상을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처럼 형형색색으로 반짝이게 만드는.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들은 한 번도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본 적 없던 언니가 그때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걸 내게 마침내 깨닫게 했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어 등단.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2015년, 2017년, 2019년 젊은작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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