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
2023년 09월 19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9월 0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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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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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리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이 책은 시진핑의 위험한 꿈 중국몽이 100년 전 새롭게 ‘발명된 중국’에 기초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 빌 헤이턴은 1995년부터 TV와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1998년부터 BBC 뉴스에 몸담았다. 2006~2007년 BBC 특파원으로 베트남에 파견되면서 동남아시아 관련 보도를 줄곧 맡았다. 저자는 방대하고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중국이라는 개념이 100년 전 쑨원 등 혁명가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한족과 중화 민족, 주권과 영토 등도 100년 전에 새롭게 정의되었음을 말한다. 이러한 중국의 민족주의는 현재 국수주의와 패권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책에서는 ‘중국’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 엘리트들이 생소한 사상들을 어떻게 채택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중국 지식인들이 해외로부터 어떤 핵심 개념을 빌려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하나의 국가이자 민족이라는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그 개념을 어떻게 각색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엘리트들이 어쩌다가 근대화 비전을 받아들였는지, 그 안에 어떤 미래의 문제들이 내재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남중국해, 대만, 티베트,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홍콩에 얽힌 문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오늘날 중국 자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100년 전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이 내린 선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문
제1장 외부인의 시선에서 탄생한 이름, 중국
제2장 중국의 주권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제3장 황제 헌원의 자손들이라는 신화, 한족
제4장 역사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역사 만들기
제5장 단일한 중화 민족이라는 꿈과 균열
제6장 민족주의자들을 위한 하나의 국어
제7장 왜 청 조정과 혁명가들은 대만을 무시했는가?
제8장 중국이 남중국해를 가지게 된 이유
맺는 글- 중국몽
등장인물
미주
추천 문헌
이 책은 ‘중국의 발명’을 다루긴 하지만, 중국을 저격하여 특별히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모든 근대 국가는 표면상으로 일관성 있고 통일된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과거의 면모를 선별하여 기억하고 잊는 ‘발명’의 과정을 거쳤다. 나는 지금 브렉시트 문제가 들끓고 있는 영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정치체제의 ‘정통성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과 유럽 대륙 또는 아일랜드섬과의 관계, 또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연합의 측면들을 선별적으로 기억하거나 잊으려는 정치인들과 논평가들을 매일 본다. 주권과 정체성, 통합을 둘러싸고 억눌러 왔던 문제들이 터지면서 이는 감정과 대립이 나오는 새로운 근원이 되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홍콩은 화염에 휩싸였고, 적어도 100만 명의 투르크계 회족이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맥락과 결과는 대단히 다르지만, 그 원인은 비슷하다. 민족국가가 만들어 낸 주권, 정체성, 통합 간에는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문〉 14~15p 중에서
그러나 시진핑이 이러한 사건들에 투영하는 중국에 대한 관점은 정치적인 주작이다. 이 장에서 나는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국이 스스로 창조한 사상이 아닌 유럽인들이 가진 중국의 이미지를 아주 많이 차용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실크로드’는 본래 유럽에서 기원하여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역사에 상상 속의 질서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중국’이라는 바로 그 이름은 서양인들에 의해 채택되었고, 동아시아로 돌아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수 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은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보낸 글에서 정보를 모아 ‘중국’이라 불리는 장소의 비전을 창조했다. 그 후 작가와 동양학자들은 이 비전을 확장했다.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중국’은 동아시아 대륙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고대 국가이자 독립 국가, 과거부터 연속적으로 존재해 왔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그 당시 ‘중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1644년부터 1912년까지 ‘중국’은 사실상 내륙 아시아의 한 제국, 즉 대청국의 식민지였다. 청은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중국 본토’-패배한 명조의 15개 성省-는 청에 속하는 한 부분에 불과했다. 청나라 이전의 명나라는 약 3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했지만, 중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다. 명나라 이전, 이 영토는 지중해까지 뻗어 있던 몽골 대국의 일부였다. 동아시아는 몽골 대국 영토 한 부분에 불과했다.
-〈제1장 외부인의 시선에서 탄생한 이름, 중국〉 25~26p 중에서
반 브라암은 기회를 엿보아 스스로 임무를 계획했다. 그는 1795년이 건륭제 등극 60주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광저우의 인맥을 이용해 반 브라암은 기념식에 초청받았다. 그래서 어느 겨울날, 사절단과 마차와 가마를 타고 2000킬로미터의 여정을 떠났다. 베이징에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47일이 걸렸다. 반 브라암은 춘절(중국의 음력 설 - 옮긴이)에 맞춰 도착했다. 영국과는 달리 선물을 제대로 포장하지 않았고 반 브라암의 말을 빌리자면 “성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또 영국과 달랐던 점은 황제가 원하는 만큼 고두의 예를 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국제 사기를 저지른 것이다. 이 일화는 역사학자 리처드 스미스에 의해 검토되었는데, 그는 어떻게 반 브라암이 기가 막히게 아부하는 네덜란드 국왕의 서신을 건륭제에게 보여 주었는지 설명한다. ‘(우리 외국인들은)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였습니다.’ 글이 술술 읽힌다. ‘역사를 통틀어 건륭제 같은 고고한 평판을 가진 군주는 없었습니다, 고귀한 황제시여.’ 이에 대한 답변으로 건륭제는 ‘충성과 진심으로 맺어진 유대를 강화하고, 왕국을 건실하게 보존하기를 희망합니다. 국왕님께서는 저의 영원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 이 외교 교류의 유일한 문제는 네덜란드 왕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795년은 네덜란드는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반 브라암은 근대적인 통치 제도로는 왕에게 감명을 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청나라가 원하는 조공을 바칠 수 있는 군주를 발명했다.
-〈제2장 중국의 주권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79~80p 중에서
동화의 힘에 관한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량치차오가 창조한 또 다른 주요 역사 신화는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훗날 한족 문화가 우세하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 ‘그들은 완전히 중국에 동화되었다’라고 말하며 만주족을 미리 처리했다. 도시에서 만주족과 한족이 사는 구역은 한족이 사는 구역이 아직 나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명백히 틀렸다. 만주족과 한족 간의 결혼 금지령은 1902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고, 두 민족은 대체로 분리된 채 살았다. 그런데도 량치차오는 정치적 편법을 고수했다. 또 만주족(1644~1912년)뿐만 아니라 전에 중국을 침략했던 민족들-탁발씨(拓拔氏, 386~535년), 거란(907~1125년), 여진족의 금나라(1115~1234년)-도 우월한 문화로 전향했다고 설파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더 과거까지 투영했다. 하지만 몽골족(1279~1368년)은 변화에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량치차오의 목록은 서기 386년부터 량치차오의 글이 출판된 1903년까지 중반까지, 절반 이상의 중국 본토를 북부 ‘오랑캐’가 통치했다는 걸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 시기 동안 중국은 사실상 비非한족이 통치하는, 제국 내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길게 계속되는 기간(longue durée,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역사를 인간의 기억이나 고고학적 기록만이 아닌 그 이전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생각하는 관점 - 옮긴이)에 대한 량치차오의 민족적인 해석은 사실상 역식민지화를 뜻했다. 모든 외국 통치자들은 우월한 한족 문화에 위압되어 중국 민족의 일부가 되었다. 중국의 정수는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살아남았다.
-〈제4장 역사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역사 만들기〉 204~205p 중에서
천안문 사태 이후 정통 공산주의 이념이 후퇴함에 따라 공산당의 선언에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더 전통적인 용어 ‘인민’과 함께 자주 등장했다. ‘인민’이 사회주의자만을 일컫는다면 공산당의 정의에 따르면 ‘민족’은 모든 계급적 배경을 가진 사람을 포함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말에 집권한 이후 공산당은 줄곧 민족적 단일성을 강조해 왔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체적인 역사관을 강요할수록, 대안적인 역사관을 위한 공간은 줄어든다. 하나의 결과는 소수민족이나 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류의 사람들의 삶이 더 고달파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러티브에 대한 위협이자 현대화를 방해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이에 따른 처우를 받는다.
이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 즉 한 명의 ‘핵심’ 지도자가 주연이고, 민족적 동일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차이를 용납하지 않고, 법률이 아니라 정당이 통치하고, 협동조합주의적 경제 정책을 사용하며, 종족적 배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이데올로기- 국가의 대규모 감시가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중국의 공산당은 오랫동안 ‘중국적 특성이 있는 사회주의’를 건설하자고 이야기해왔다. 시진핑은 이제 ‘중국적 특성이 있는 민족 사회주의’ 건설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맺는 글 - 중국몽〉 427p 중에서
유서가 깊은, 그러나 발명된 이름 중국
중국이라는 표현은 유서가 깊다. 근대에 허난성에서 발견된 ‘갑골문’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 기원은 상나라(기원전 1600년~기원전 100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 세기 후, ‘동주東周라고 불리는 시대-약 2500년 전(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에 중국은 베이징 서쪽과 남쪽에 있는 황하 유역 중원 지역에 세워진 봉건 국가들을 지칭했다. 그 국가들은 통틀어 ‘중심 국가’, 즉 중국이었다. 중국이라는 명칭이 아주 오래전에 사용되었고 오늘날 중국을 그렇게 부른다는 사실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중국이 5000년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연속적인 국가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주었다. 하지만 증거를 신중하게 살펴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버드 대학교 중국어과 피터 볼 교수는 이 용어가 3000년 동안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며, 일관성 있게 발견되는 원칙은 특정한 국가를 지칭하기 위함이 아닌 중국 안팎의 사람들, 즉 내부인과 이적夷狄이라 불리는 오랑캐 간의 문화적 차이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국가의 이름으로 쓰려던 게 아니라 이 용어를 통해 국가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했다. 몇몇 작가들은 이를 ‘중간국Middle kingdom’이라고 번역했지만, 그보다 ‘중심 국가 Central state’나 ‘세계의 중심Centre-of-theworld’으로 번역하는 게 더 적절하다. 내부의 ‘우리’와 외부의 ‘그들’ 사이의 정치적 위계질서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황준헌, 량치차오, 장빙린, 쑨원, 리우스페이 등 개혁가와 혁명가들은 새로운 나라에 어울리는 새로운 국호를 고민했다. 대표적인 후보로는 중국, 중화中華, 화하華夏, 대하大夏, 제하諸夏 등이 있었고 그중 중국과 중화라는 용어가 선택되었다. 이렇듯 중국이라는 명칭은 5000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간헐적으로 쓰이다가 100년 전 중국 개혁가와 혁명가들에 의해 발명된 것이었다.
한족에 충성하기를 바라는 베이징 지도부
한족이라는 개념 역시 100년 전에 발명되었다. 한족 사상의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장빙린을 꼽을 수 있다. 장빙린은 사상적인 난제를 가지고 있었다. 청 조정과 개혁파는 계몽된 문화로부터 정치적 정당성이 나온다는 ‘유교적’인 입장을 공유했다. 그리고 오랑캐라 할지라도 계몽된 문화를 받아들이면 화인華人이 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만주족도 한족만큼 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주족이 문제라고 결론 내렸기에 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주장이 필요했다. 장빙린은 기원전 4세기에 편찬된 역사 해설서 《춘추좌씨전》에서 친족 관계의 유대가 문화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을 발견했다. ‘오랑캐’는 같은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족만큼 충성심을 가질 수 없었다.
성공을 거둔 새로운 정치사상 대부분이 그렇듯이, 장빙린의 인종 민족주의는 기존의 사상-황제 헌원의 신화, 혈통의 중요성, 청 조정에 대한 비호감 등-을 빌려와 이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든 것이었다. 1900년 의화단운동에서 청 조정이 서구 열강 연합군에 저항하는 데 실패하자, 장빙린의 개념이 불과 몇 년 만에 큰 인기를 얻었다. 한족 사상은 혁명가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한족은 식자인 관리와 까막눈인 소작농을 연결하는 개념이었다. 문명화된 화인이 되거나 ‘황인종’의 일원이 된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았다. 황제 헌원의 자손인 한인에게만 변화가 나올 수 있었다. 1900년부터, 장빙린이 이룬 혁신의 결과로, 중국 재외 동포 사회는 스스로를 다르게 지칭하기 시작했다. 1910년 이전에 해외에 정착한 화교의 후손들은 오늘날 스스로를 ‘화인’이라 칭하고 있다. 그에 반해,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대만에 거주하는 사람은 자신을 ‘한인’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크다. 공산당의 통일전선부는 이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게 분명하다. 여러 화교 사회에서 황제 헌원 제사 의식을 홍보하는 건 정체성과 충성심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 전략의 명백한 예다. 베이징 지도부는 화교들이 자신을 황제 헌원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에 구현되어 있는 혈통에 충성하기를 원한다.
대만 영토에 대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
중국이 국경을 우려하는 유일한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국경에 대한 불안감이 국가적인 노이로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국가 지도부의 메시지는 중국인이 애국하는 유일한 방법은 온 힘을 다해 대만을 본토의 통제로 ‘상환’하는 것을 추구하고, 중국이 남중국해의 모든 암석과 암초의 정당한 소유자라고 주장하며,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센카쿠 열도를 넘기라고 일본에 요구하고, 히말라야의 영토를 과격하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일깨운다. 하지만 왜 특정한 영토가 ‘정당하게’ 중국의 영토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다른 영토는 왜 아닌지에 관한 이야기는 설명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20세기 동안, 국가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여겨졌던 외몽골 등 몇몇 지역은 놓아준 한편, 버렸던 부분, 특히 대만의 영토는 다시 중국의 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895년 4월 17일 이홍장이 일본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서명한 조약은 대만과 인근 해역의 펑후 제도를 ‘영구적으로, 완전한 주권을 가진 일본에’ 할양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막 한 달이 지난 후, 대만의 순무사 대행과 본토인, 몇몇 관리 그리고 상인들은 일본에 통치에 굴복하지 않고 ‘타이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긴 독립 투쟁 동안 청 조정은 한때 자국에 속했던 성의 과거 신민들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다. 사실 1895년 5월, 조정은 칙령을 내려 반란을 일으킨 공화국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놀랍게도 혁명 운동도 대만의 운명을 이와 비슷하게 태평하게 바라보았던 듯하다. 쑨얏센(쑨원)과 동지들은 대만을 다시 청의 통제 하에 둬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일본의 통치에 반발심이 커지고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쑨얏센은 이에 저항하는 데 관여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쑨얏센은 일본이 통치하는 대만을 미래의 민국에 편입될 수 있는 영토보다는 청조를 전복하는 기지로서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처럼 중국 국토의 영역 역시 100년 전과 지금이 다르다. 티베트와 대만, 남중국해 등 중국의 국토를 둘러싼 끊이지 않는 분쟁 역시 100년 전 현대 중국이 탄생할 때 잉태된 고통이었다.
이미 균열이 간 중국이라는 신화
20세기 초, 중국의 도시 거주자들은 ‘중국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고민했다. 이전에 자국을 그런 이름(중국)으로 부른 적이 없었고, 그러한 정의에 누가 포함되는가는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의 제국주의 열강은 그들에게 해답을 주었다. 민족주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영토를 침해함으로써 말이다. 진정한 중국인이 되고, 민족에 속한다는 건, 영토 장악에 분노하고 이를 모든 집단 일원의 존엄성을 향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걸 의미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신화에 대해 세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의 행동 동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 맞지만, 역사적 사실의 서술로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올바른 사회 질서 또는 지역적 관계에 대한 지침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이미 받아들여졌다. ‘5000년의 우월한 문명’이나 ‘한족의 단결’에 관해, 이러한 개념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즐겁게 말을 따라 하는 평론가들이 너무 많다. 그 결과 중국 민족주의에 무임승차권을 주었다. 우월한 문명을 가지고, 나머지 인류와는 개별적으로 진화했으며, 제국적 질서 위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는 이웃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위협적으로 보일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이 세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마치 1930년대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 세계를 파멸시킬 뻔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처방이다. 중국몽은 1세기 전,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과거관에 기초하여 만들어지고, 오늘날 유럽에서 대부분 없어진 유럽적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 시진핑의 중국은 행복의 나라가 아니다. 독단적이고, 강압적이며, 불안하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단결이 언제라도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곳이다, 신화는 잠시 중국을 한데 모으겠지만, 중화 민족 내부의 균열은 애초부터 존재했다.
작가정보
1995년부터 TV와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1998년부터 BBC 뉴스에 몸담았다. 2006~2007년 BBC 특파원으로 베트남에 파견되면서 동남아시아 관련 보도를 줄곧 맡았다. 베트남 특파원으로 파견되기 전에는 유럽과 이란, 예멘, 발칸 국가 등 중동에서 활동했다. 「더 타임스The Times」,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더 디플로맷The Diplomat」 등의 잡지에 기고했고, 저서로는 『남중국해: 아시아의 권력투쟁The South China Sea: the struggle for power in asia』과 『베트남: 떠오르는 용Vietnam: rising dragon』이 있다. 이 책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은 저자의 방대하고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지금의 중국이 100년 전에 새롭게 발명되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라는 개념조차 100년 전 쑨원 등 혁명가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한족과 중화 민족, 주권과 영토 등도 100년 전에 새롭게 정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민족주의는 현재 국수주의와 패권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몽으로 대표되는 중국 패권주의의 기원을 보여주고 애초에 중국이라는 신화에 균열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국제통상학·스페인어를 전공하고 동대학 통번역대학원을 거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캐나다 킹스턴대학교에서 영어 연수를 마친 뒤 주한멕시코 대사관에서 통번역사로 근무했다. 이후 독일에 거주하면서 심리학 학사를 취득하고 스페인 AULASIC 의학 번역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코칭과 심리 관련 과정을 다수 수료했다. 현재 출판 번역 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영어, 스페인어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불안을 이기는 철학』, 『솔드 아웃』, 『조셉 머피 시리즈』 전 5권, 『스토아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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