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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여자

위픽 시리즈
최현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3년 09월 19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9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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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9.90MB)
ISBN 979116812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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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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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상으로 걸어 들어온 여자를 나는 찾고 있다.”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소설가 최현숙의 소설 《창신동 여자》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창신동 여자》는 요양보호사 및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했고, 가난하고 ‘집’(갈 곳) 없는 사람, 특히 여성 홈리스의 생을 ‘듣고 적어온’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반빈곤 활동가인 최현숙의 주제가 응축된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두려움 없는’ 서사가 더럽고 폭력적이고 열악하고 혐오스러워 직시하기 어려웠던 빈곤의 민낯 앞으로 독자들을 밀어붙인다. 《창신동 여자》는 독자의 발을 땅에 붙이는 작품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최현숙 소설에서 바랄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 책은 목차가 없습니다.

첫날부터 여자의 눈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던 거다. 돌이켜볼수록 그랬다. 나중에 여자 눈이 신경 쓰일 일이 자꾸 생기면서, 첫날 이미 걸리적거리는 눈길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과 그중 최고가 대문을 나서면서였다는 게 점점 더 확실해졌다. 대문에서는 당황하기까지 했는데, 그 눈을 길게 생각하기에는 그날 만남 전체가 워낙 강렬했고 대문을 나선 이후 바빴다. (5~6쪽)

출발하기 전 과장은 얼굴을 찡그리고 혀를 차며 ‘열악함’이라는 단어를 서너 번 사용하면서 그래도 하겠느냐고 거듭 물었고, 열악한 건 상관없다는 것이 내 일관된 답이었다. 열악해서 확인해대는 사람에게 열악하다니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설명하기 귀찮아, “네”라고만 답했다. (6쪽)

“저는 어르신을 돌봐드리라고 나라에서 보내주는 요양보호사예요. 돌봐드리는 걸 서비스라고 해요.”
“아니 그걸 왜 써비스라고 해?”
여자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사회복지 쪽에서는 사람 돌보는 일에 서비스라는 말을 써요.”
“돌봐줄 거 없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하는데 뭘.” (19쪽)

통곡하는 여자를 안고 노인을 노려보았다. 흑갈색의 넙데데한 면상 위로 칼자국과 편평 사마귀들과 갖은 얼룩과 점들, 천진과 포악이 엉겨 희번덕거리는 누런 눈알 두 개와 눈물로 질펀해진 눈곱, 실룩거리는 입술 사이로 하얗게 말라붙은 침과 질질거리는 침. 명치에서 피어오르는 혐오감을 들킬까 싶어 눈을 감았다. (24쪽)

근무 시작 2021년 6월 9일, 시급 8720원, 1일 세 시간 주 5일 근무, 계약 기간은 12월 31일까지. 내년에는 새로운 최저시급이 적용되므로 그때 가서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자는 게 과장의 말이었고, 가능하면 계약 기간을 짧게 해서 퇴직금과 연차휴가나 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인 걸 알지만 우선은 똑똑한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31~32쪽)

돌봄 대상자는 노인이었지만, 내겐 일찌감치 ‘그 여자네 집’이 되었다. 처음부터 여자가 더 신경 쓰였고 여자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초기에는 여자가 왜 이 남자 옆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늠이 됐다. 여성 홈리스나 성매매 여성들 중에는 더 큰 위험을 피하느라 그 바닥 센 남자의 여자로 있는 경우가 많고, 폭력이나 경제적 갈취를 당하면서도 외로움을 피해 동거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의료보험증은 고사하고 주민등록 자체가 말소되어 있었다. 같이 사는 동안은 그렇다 치고 남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게 될 지연을 생각해,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잘하면 기초수급자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48~49쪽)

더 겪으면서 보니, 둘은 생애 내력이나 심리적으로 서로 얽히고설킨 채 엉겨 붙은 덕에 피차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었고, 따로 떨어지면 금세 각각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서로 징그럽게 얽힌 분리불안 증상은 상대적으로 지연이 더 심했다. 노인과 내가 병원이나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 가고 없으면 자꾸 전화를 해댔고, 늦게 온다는 핑계로 술을 먹었다. 그러다가 돌아오면 “저건 나 없으면 죽어!” “니가 나 없으면 죽지!”라는 말을 서로 퍼부으며 싸웠고, 내겐 모두 “나는 저거 없으면 죽어!”라는 소리로 들렸다. (54~55쪽)

이 여자는 남의 돈을 자기 돈으로 아는 걸까. 돈을 더 빌려주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틀려먹은 거라고 확신하는 걸까. 돈에 관한 여자의 생각이 그토록 정의롭고 소신에 찬 것이란 말인가.
“대학 나온 사람이 돈 5만 원이 없어! 식군 줄 알았는데 아니네!”
난데없는 대학 소리에 웃음이 나올 뻔했고, 눌렀다. 이런 대목에서 웃어버리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아직 끝낼 마음은 없다. (81쪽)

결국 모멸감과 신경질 때문에 셋 사이에 그럭저럭 이어지던 법 바깥 관계를 단숨에 깨버리고 제도 속으로 회피한 거다. 쌍욕은 참았지만 여자의 약점을 정확히 골라 찔렀다. 하등의 공적 권리가 없는 여자, 너 따위가 고마워하기는커녕 싸우자고 달려드는 꼴을 더는 참아주지 않겠다며 패악질로 되갚은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83쪽)

“일어나요. 집에 가야지.”
눈이 마주쳤다. 감정과 시선을 단속하며 무덤덤하게 내려다보았다.
“냅둬! 니년이 뭔 참견이야.”
같이 나자빠져 뒹굴면 여자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는 절대 길바닥에 나가떨어지지 못하는 여자다. 잠깐 같이 나자빠져 있는 건 쓸데없는 연민임을 여자도 나도 안다. 기껏해야 몸을 만지거나 안는 건데, 그것도 여자는 싫어할 거다. 입장과 처지는 생애를 털어 만들어지는 위치와 경로다. 옆에 쪼그려 앉아 눈을 감았다. (90~91쪽)

독자들을 추악한 현실 앞으로 밀어붙이는 두려움 없는 서사
“같이 나자빠져 뒹굴면 여자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소설가 최현숙의 소설 《창신동 여자》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최현숙은 저서 《할배의 탄생》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등 돌봄·빈곤·페미니즘을 넘나드는 왕성한 저작을 펼쳐온 생애구술사 작가이자, 지난해 첫 장편소설 《황 노인 실종사건》을 발표한 ‘신인’ 소설가이다. 《창신동 여자》는 요양보호사 및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했고, 가난하고 ‘집’(갈 곳) 없는 사람, 특히 여성 홈리스의 생을 ‘듣고 적어온’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반빈곤 활동가인 최현숙의 주제가 고스란히 응축된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두려움 없는’ 서사가, ‘눈곱’ ‘눈물’ ‘콧물’ ‘침’ ‘똥오줌’이 흐르는, 더럽고 폭력적이고 열악하고 혐오스러워 직시하기 힘든 빈곤의 민낯 앞으로 독자들을 밀어붙인다.
요양보호사 ‘정희’는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명수’의 집을 처음 방문한 날부터 명수의 동거인인 ‘지연’의 걸리적거리는 ‘시선’을 느낀다. “뇌경색으로 두 차례 쓰러져서 오른쪽 편마비. 고혈압, 당뇨병, 곧 투석으로 이어질 신부전증, 전립선 비대증, 뇌출혈성 치매 초기. 국민기초수급자, 의료보호 1종, 지체장애 중증, 노인장기요양 2등급. 방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5만 원. 재개발 철거 예정 지역. 도시가스와 냉방 시설 없음. 난방은 프로판가스, 취사는 휴대용 가스버너. 부엌과 욕실 없음. 마당 귀퉁이에 공용 재래식 화장실”(13쪽)로 파악되는 명수의 여건에 비해, 지연은 “의료보험증은 고사하고 주민등록 자체가 말소되어”(48쪽) 주부습진 약 하나 의사에게 처방받기 어려운 미등록 상태. 정희는 클라이언트인 명수보다도 “하등의 공적 권리가 없는 여자”(83쪽) 지연의 시선을 수시로 의식하며 그의 마음을 사보려고 노력한다. “처음부터 여자가 더 신경 쓰였고 여자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돌봄 대상자는 노인이었지만, 내겐 일찌감치 ‘그 여자네 집’이 되었다”(48쪽). 그러나 엇갈리는 시선만큼이나 좀체 좁혀지지 않는 두 여자의 거리. “같이 나자빠져 뒹굴면 여자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는 절대 길바닥에 나가떨어지지 못하는 여자다. 잠깐 같이 나자빠져 있는 건 쓸데없는 연민임을 여자도 나도 안다”(90~91쪽). 어느 날 명수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뒤 지연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미등록 상태의, “하등의 공적 권리가 없는 여자” 지연은 어디로 갔을까.
몇 해 전 한 북토크에서 최현숙은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맨날 떠오르는 게 내 인생이라, 계속 내 얘길 쓴다”고 말한 바 있다. 노년 연구자 김영옥과의 인터뷰에서는 남의 인생을 듣고 그걸 해석하는 과정이 자기 해명의 과정이 되었다며, 이제 소설로 넘어가 팩트 중심의 이야기를 비틀거나 틈을 내면서 의제들을 꺼내고 싶다고 밝혔다(《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이 작품에 붙인 ‘작가의 말’에는 “빈곤 판에서야말로 사회적 위치니 교양 나부랭이 때문에 덮어두고 절대 꺼내지 않는 내 속 혐오와 역겨워함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빈곤 판으로 들어갈수록 … 내 속 지옥도 더 확인한다”(110쪽)고 남겼다. 《창신동 여자》는 남의 생을 들여다보며 누구보다 ‘내 안의 지옥’을 치열하게 ‘확인’ 해온 작가가, 생의 엄연한 위계 차이와 결코 ‘마음을 살 수 없는’ 관계의 거리, 그리고 쉬이 해결되지 않는 자기 안의 숙제에 관해 쓴 작품이다.
얼마 전 한 여성 홈리스의 비극적 부고가 뒤늦게 알려졌다. 그의 생사는 그가 여성이고 홈리스이고 직계 및 방계 가족과 연결이 끊긴 무연고자로 여겨졌기에 방치됐고, 제대로 해명되지 못했다. 미등록 상태로 사라져버린 ‘지연’이 스친다. 《창신동 여자》는 독자의 발을 땅에 붙이는 작품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최현숙 소설에서 바랄 것은 바로 이 점이다.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50권의 책으로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위픽’을 통해 공개된다.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시작으로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한다. 3월 8일 첫 5종을 시작으로, 이후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출간하며 1년 동안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또한 책 속에는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다. 소설 한 편 전체를 한 장의 포스터에 담은 부록 ‘한 장의 소설’이다. 한 장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소설가. 2000년부터 약 10년간 진보 정치에 몸담았다. 이후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노인 돌봄 노동을 하며 개인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하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해왔다. 2020년부터는 홈리스 현장에서 활동하며 주로 늙음과 죽음, 빈곤에 대해 관찰하고 느낀 바를 글로 써오고 있다. 구술생애사 저서로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할배의 탄생》 《할매의 탄생》 《억척의 기원》, 산문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작별 일기》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소설 《황 노인 실종사건》을 펴냈다. 공저 《이번 생은 망원시장》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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