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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근마켓

아무튼 시리즈 59
이훤 지음
위고

2023년 09월 19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9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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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9.19MB)
ISBN 979116089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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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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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이훤 시인이 당근마켓에서 찾은 오래된 물건과 새로운 우정

‘아무튼’ 시리즈 59번째 책은 시인이자 사진가인 이훤 작가의 『아무튼,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2023년 8월, ‘당근’으로 이름을 바꿨다)은 2023년 8월 기준 누적 가입자 수 3천5백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중고 거래의 대명사가 되었을 만큼 친숙한 플랫폼이다. 이 특별할 것 없는 거래의 장, 일상의 온라인 공간이 어떻게 어떤 한 사람에게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가 되었을까.
이훤 작가는 물건을 좋아한다. 필요한 물건을 잘 고르는 일에도 재미를 느끼지만, 필요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물건을 눈여겨보았다가 큰맘 먹고 들여 애지중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경험과 시간이 제한된 세계”에서 “엎질러진 시절을 다시 통과하게” 해주고 “먼 타인과 나의 생활을 포개어”주는 중고 물건에 매료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쓰던 물건뿐만 아니라 그것을 들이고 내보낸 사람, 그 과정에 담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를 아껴 모은다.
『아무튼, 당근마켓』은 손 안에 전 세계를 쥔 것 같은 광활한 온라인 세상 한편에서, 도보 이동 가능한 반경 안의 ‘동네’ 사람들과 물건을 사고팔고 안부를 전하며 ‘이웃’이 되어가는 공간, 당근마켓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다.
거래의 현장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연락 주세요- 아이폰 11 그린☆★
밀고 당김의 질서
끄트머리와 끄트머리
우리를 우리답게
한 칸씩 밀려나는 과거
이 작은 옷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정릉 커뮤니티의 일들
입에서 입으로
‘올해의 당근인’ 인터뷰
당신의 온도

소개한 네 가지 컵은 주로 1970년대에 만들어졌다. 중고가 아니면 더 이상 구매할 수 없다. 유구하게 양도되어온 거다. 어느 개인의 역사가 만난 적 없는 타인에게로, 어느 테이블의 역사가 다른 테이블로 이어져왔다는 사실이 좋다. 그곳에 담겼을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17면)

경험과 시간이 제한된 세계에서 물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매개가 된다. 엎질러진 시절을 다시 통과하게 되고 먼 타인과 나의 생활이 포개어진다. 아주 작은 물건을 손에 쥐면서.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애호의 역사를 나누며 유대감이 시작되기도 한다. 여러 공동체가 그런 방식으로 태어났다.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 출발했을 전통 같은 데까지 함께 가면서. 재화 가치에 관계없이 유효한 이야기다. (18면)

갖고 싶은 물건은 거의 항상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비싸거나 너무 많이 비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당근마켓이라는 두 번째 거래의 장이 있다. 내향적이라 이틀 동안 집 밖으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사람을 걷게 만들고, 그런 개인과 개인이 만나 느슨한 친구가 되기도 하는 곳.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컵을 쥐며 생경한 대륙의 식탁이 궁금해지는 곳 말이다. 이 교환장에 어찌 매료되지 않을까. 시간은 유한하고 생활의 촉매는 세상에 많고 우리의 욕망은 계속 자란다. (18면)

그의 낭독회는 외진 곳에 자리한 작은 서점에서 예정되었고 모객 기간이 길지 않았다. 정원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두 명이라니. 그의 시집을 아끼고 좋아해 여러 사람에게 선물한 나는 조금 허탈해졌다. 어쩌면 나 스스로를 향하던 어느 날의 번뇌를 거기서 보아버렸는지도. 자신의 세계를 움직여 먼 곳까지 와준 한 사람 한 사람을 환대하는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시장의 수요보다 백 배만큼 내어줄 준비가 된 시인이. 실로 그는 웃으며 낭독회를 잘했을 것이다. 그것은 시장이 기억하지 않을 공급 방식이었다. 이후에도 그날의 대화를 자주 생각한다. 삶 앞에서 꼿꼿한 고개를, 스스로의 일을 존중해주고 자신을 작게 만들지 않는 자세까지 전부. (32면)

시는 나를 위해 시작한 몇 안 되는 행위다. 일일이 설명 안 해도 성립되는 세계를 갖고 싶었다. 이민자로 지내는 동안 언어 앞에서 자꾸 실패하는 기분이었다. 발음되지 않는 것, 들어도 소리 이상의 의미로 들리지 않는 것들 사이로 매일, 찢어진 낙하산처럼 떨어졌다. 그럴수록 모국어와 타국어 사이 틈의 말을 찾아서, 나만 아는 방법으로, 세계를 다르게 경험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33면)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 또한 한 번 더 기회를 얻고 중고 시장에 서 있다. 재고되기 위해. 거기서 마지막으로 새로워질 기회를 얻는다.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 꼭 팔아야 하는 사정과 마침 그걸 찾던 손이 만날 수도 있다. 고맙잖나,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감각은.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36면)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에 대해 그는 빠삭했다. 그 덕분에 퍼즐에 색이 많을수록 맞추기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림 속 대상을 색으로 구분하는 것만으로 자리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도. 의뢰한 퍼즐은 하필 나무랑 잔디밭이 전부 녹색 계열이어서 피스를 일일이 하나씩 다 대봐야 했을 거다. 낯선 골목과 모르는 집 앞을 서성이듯, 퍼즐 조각의 끄트머리와 끄트머리를 일일이 맞대보아야만 확신할 수 있었을 거다. 사람을 찾던 시절에 꼭 맞는 비유다. 나와 어울리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는 돌출된 나와 움푹한 자신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 이후에도 나와 타인은 동시에 탐구되었다. 끄트머리와 끄트머리를 일일이 맞대보는 시간. (44면)

힘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당근마켓은 판매자뿐 아니라 구매자에게도 똑같이 거울을 쥐여준다. 양쪽 다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거울이 비춰온 오래된 풍경을 새로 만나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볼 수 있다. 거기, 매너 온도 밑에 상세한 언어로 우리는 남는다. 지난 태도를 조회할 수 있게 하자 사람들은 친절해졌다. 배려도 했다. 부탁한 적 없는 초콜릿이나 과자를 주기도 하고, 거래 장소로 와주기도 하고, 여분의 물건을 얹어주기도 했다. 쓰지 않는 물건을 무료로 나누기도 했다. 거울은 평판으로 이어졌다. 익명의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매무새를 다듬게 하는 아름다운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닉네임이라는 잠정적 호칭 너머에서도 품위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웹이라는 광활한 도시에서 서로를 자신과 다름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했다. 활자와 이미지로 빼곡한 SNS에서, 중고 거래의 장에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 이름일 동안 당신은 얼마큼 당신인가. (58-59면)

시간은 폐기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 대부분의 물건은 망가지거나 구석에 처박히거나 낡아 버려진다. 당장 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은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는 상태다. 그렇게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사 가는 날 빈집 앞에 덩그러니 남겨지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가. 존재가 망각되는 것은 필요의 감각을 잃는 것. 오래된 물건 대부분은 그렇게 시간에 휩쓸려 가고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65-66면)

나의 동네는 어디까지일까. 무엇이 나와 이웃의 공통의 반경을 만드는 걸까. 당근마켓에는 ‘동네생활’ 이라는 게시판이 있다. 어떤 날은 여기 게시물을 읽다가 하루가 다 가버린다. 처음 둘러볼 땐 1990년대 이웃들이 전부 인터넷으로 공간을 옮겨 거기 사는 줄 알았다. 만난 적 없지만 가까이 거주하는 이들이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를 만날 준비가 된 것처럼, 그렇지만 친구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것처럼, 사람의 선의를 아직 능동적으로 믿는 것처럼. 아직도 이런 데가 있다니. (83-84면)

오랫동안 내가 컵을 애호해온 건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어서다. 사용할 때마다 입에 닿는 물건 아닌가. 우리는 매일 몸으로 우리 아닌 것들을 들인다. 몸에 무언가를 들이는 행위만큼 내밀한 게 있나. 이야기 또한 입에서 시작된다. 입을 떠난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통과하며 새로워지고 생명을 얻거나 시든다. 이야기의 속도와 호흡, 동원되는 단어, 이야기가 멈추는 자리. 이야기 안에서는 우리를 들킬 수밖에 없다. (103면)

_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이훤 작가는 열아홉의 나이에 홀로 먼 나라로 이민을 갔다. 이방인으로서 그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들이는 사이 한국어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는 한국어를 붙들고 싶었다. “모국어와 타국어 사이 틈의 말을 찾아서, 나만 아는 방법으로, 세계를 다르게 경험하고 기록하고 싶”었기에 결국 시인이 되었다. 또 그는 ‘여기’ 아닌 ‘저기’, 외부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더욱 과거에 지냈던 곳이 그리워서 시간에 떠내려가는 장소와 장면들을 붙잡고 싶었고, 그래서 사진가가 되었다.
당근마켓에는 그와 비슷하게 지나간 것, 오래된 것을 붙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반대로 뭔가를 새로 들이기 위해 익숙한 것, 아끼는 것을 내놓는 사람도 많다. 남의 손이 절실한 사정이 있고, 그 사정에 응답하는 손이 있다. 저마다 다른 필요에 의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과 노동의 교환가치는 새로 매겨진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내보내고 또 한쪽에서는 신중히 들이는 동안 수요와 공급이 밀고 당기며 스스로 균형을 이루는 이 자발적인 시장에서 이훤 작가는 중고 마켓의 아름다운 효용을 발견한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 꼭 팔아야 하는 사정과 마침 그걸 찾던 손이 만날 수도 있다. 고맙잖나,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감각은.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_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감각’은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훤 작가가 다양한 중고 마켓 중에서도 유독 당근마켓을 좋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른이 되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동안, 그는 동네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잃어갔다. 대체로 혼자 일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이따금 가벼운 인사와 안부 속에 둘러싸이고 싶은 날이 있었다. 자신의 ‘동네’와 ‘이웃’이 어디까지일지 생각하면 골똘해졌다.
그런데 단순히 중고 거래를 위해 시작한 당근마켓에서 뜻밖에도 ‘나의 동네와 이웃’을 만났다. 어떤 날은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게시판을 보다가 하루가 다 갔다. “만난 적 없지만 가까이 거주하는 이들이 (그 게시판에서)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를 만날 준비가 된 것처럼, 그렇지만 친구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것처럼, 사람의 선의를 아직 능동적으로 믿는 것처럼. 아직도 이런 데가 있다니.” 게다가 당근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익명의 공간, 온라인 채팅으로 물건과 노동을 거래하는 마켓이지만, ‘매너 온도’라는 아름다운 장치 덕분에 판매자와 구매자가 공평한 위치에서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얼굴을 보고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서로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 적절하게 개입하고 긴요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거기서 배웠다. 이훤 작가는 말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식어가는 이 시대에도, 개인과 개인이 만나 물건과 관계와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나눌 수도 있다고. 보여주고 나누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날그날 필요한 유대가 그렇게 일어나고 또 시작될 수 있다고. 당근마켓에서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고.
『아무튼, 당근마켓』의 마지막 장에는 이훤 시인이 3천5백만 ‘당근인’들을 위해 선물한 시 「당신의 온도」를 실었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훤

시인, 사진가.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든다. 시카고예술대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미국, 중국, 캐나다, 스코틀랜드에서 〈Tell Them I Said Hello〉 등의 사진전을 열었다. 2019년에는 큐레이터 메리 스탠리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젊은 사진가에 선정되었다. 『양눈잡이』,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등의 시집과 산문집을 썼고 『끝내주는 인생』, 『벨 자』,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책에 사진으로 참여했다. 정릉에서 사진 스튜디오 겸 교습소 ‘작업실 두 눈’을 운영 중이다. PoetH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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