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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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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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몰라? 방금 내가 네 여름 먹었잖아.”
가장 눈부시게 찬란할, 우리의 열일곱 번째 여름
나는 지오의 가방을 잡아끌고 말한다. 멀어지지 마, 라는 말 대신,
“같이 가.”
라고. (유찬, 39쪽)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렵지 않고, 다른 사람의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는 이 평범한 순간이 얼마나 놀랍도록 평화로운지 다시금 깨닫는다.
“그럼 뭔데? 나더러 옆에 있어 달라는 사정이라는 게 뭐냐고.”
처음이다. 모든 걸 말하고 싶었던 건. 어쩐지 이 아이 앞에서는 솔직해져도 될 것만 같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들리는 소리가 들려.”
“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속마음이 들린다고.”(유찬, 46쪽)
나는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저 함께 앉아 있어 준다.
언젠가 내가 그랬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래 주길 바랐던 것처럼. (유찬, 58쪽)
가끔은 궁금하다. 그날, 마을 회관에 모였던 사람들이 새별이 형을 딱하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죽은 사람과 남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잘잘못을 따졌더라면, 그랬다면 나도 형을 용서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었을지. (유찬, 125쪽)
톡톡, 바닥으로 떨어져 튕기는 빗방울과 물기를 머금고 푸르게 흔들리는 나뭇잎이, 이 아이를 향해 기울어진 우산이, 쏴아아 요란하게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사진 속 한 장면처럼 하나하나 새겨지더니 비를 몰고 온 먹구름마저 환해진다. 그렇게 하지오, 이 아이는 비 오는 궂은 날마저 나에게 평안이 된다. (유찬, 137쪽)
“찬이는 지한테 소중한 뭔가가 생기면 또 잃어버릴까 봐 무서운 기다. 근데 나는, 잃어버리든 빼앗기든 소중한 게 하나 정도는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 잃어버리면 슬프겠지만 소중한 건 또 생기기 마련이다이가. 소중한 게 평생 딱 하나뿐이겠나.”(하지오, 148쪽)
“그날 온 마을 사람들이 널 지켰던 것처럼 이제 내가 너 지켜 주겠다고. 이 말이 하고 싶었어.”(유찬, 158쪽)
어쩌면 신이 내게 실수를 하고 미안하다는 의미로 저 아이를 보낸 것이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신을 용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유찬, 159쪽)
나는 유찬의 가슴 언저리 위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동그란 공이라도 잡은 듯 손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게 사과라도 된다는 듯 한 입 베어 먹는 시늉을 했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방금 내가 네 여름 먹었잖아.”
“뭐?”
“네 가슴에서 자꾸만 널 괴롭히는 그 못되고 뜨거운 여름을 내가 콱 먹었다고. 이제 안 뜨거울 거야. 괴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거야. 두고 봐.”(하지오, 186쪽)
독자들이 선택한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청소년문학 최고의 페이지터너 이꽃님의 가슴 설레는 이야기
“이 소설은 내가 쓴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로 20만 독자, 『죽이고 싶은 아이』로 10만 독자를 울고 웃게 한 청소년문학 최고의 페이지터너 이꽃님 작가. 청소년 시기에 꼭 알았으면 하는 것들, 쉽게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등극시켜 ‘믿고 보는 이꽃님’이라는 수식을 만들어 낸 그가 이번에는 가슴 설레는 첫사랑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작가 스스로 ‘내가 쓴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한다’고 밝힐 정도로 애정을 가득 담아 쓴 이 소설은, 가족에 관한 아픔이 있는 두 아이가 열일곱 여름 서로를 우연히 발견하고, 굳게 닫았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 가며 이후의 삶으로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한없이 뜨거운 여름날,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것이 시작이었다.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고 이상하게 자꾸 걱정되는 그 아이. 하지오에게는 유찬이, 유찬에게는 하지오가 ‘그 아이’로 명명되며 마음 한편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그 아이의 아픔을 알아보면서, 난생처음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면서, 두 아이는 그동안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직면한다. 알게 모르게 두 아이의 아픔을 지켜봐 온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깨닫게 된 사실은,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잃기도 한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 그 선택으로 인해 아픔을 겪더라도 증오나 냉소가 아닌 다른 태도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랬을 때 내 세상이 정말로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 하지오와 유찬은 자신의 삶과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한 조각을 품고, 뜨겁고 고통스럽기만 할 것이라 예상했던 이번 여름을 마침내 ‘가장 찬란하고 벅찬’ 둘의 여름으로 빚어낸다.
듣고 싶지 않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는 아이, 유찬
스스로 태어나선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 하지오
‘처음이다. 어쩐지 이 아이 앞에서는 솔직해져도 될 것만 같다.’
이야기는 ‘경상북도 정주군 번영읍’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두 아이의 시선에서 번갈아 가며 서술된다. 남들과 조금 다른 아이, 유찬은 이유 모를 화재 사건으로 하루아침 부모님을 잃고, 장례식장에서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듣게 된다. 그날 이후, 듣고 싶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에 시달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공부에만 몰입한다. 그런데 우연히 같은 동네로 전학 온 하지오와 가까이 있기만 하면 고요가 찾아오는 경험을 한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자 작은 희망이었다. 끔찍한 소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는 기대로 하지오를 찾지만, 갈수록 그 이유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속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하지오를 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한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보는 다채로운 감정이 조금은 낯설다.
서울에서 번영으로 전학 온 하지오. 평생 엄마와 둘이 살아온 하지오는 엄마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유도를 시작했을 만큼 엄마를 향한 애정이 각별한 아이지만, 엄마의 병환으로 평생 있는지도 몰랐던 아빠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떠밀리듯 아빠가 산다는 번영으로 왔지만, 여덟 시면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외지인의 인사는 잘 받아 주지도 않고, 당근마켓에 올라온 건 경운기와 엔진 분무기뿐인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끔찍하다. 아빠라는 사람도, 아빠와 함께 사는 아줌마도, 마을 사람들도, 체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유도부도, 기차역에서 마주친 유찬이라는 아이도 불편하기만 하다. 앞길이 캄캄한 와중에 유찬, 이 아이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독심술을 한다고 말하는 이 아이가, 꼭 자신을 살려 달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이 작은 마을에 대단한 일은 언제나 유도부에서 일어났으니까.”
가장 외로운 아이들이 끝내 외롭지 않은 곳, 번영
다소 거칠어 보이는 번영 사람들이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것은 운동, 그중에서도 유도다. 번영 사람들에게 유도는 꿈이고 자랑이다. 이곳엔 조금 수상쩍은 이유로, 혹은 인생을 걸 만큼 절실한 이유로 유도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유도부 하이패스’를 외치며 농땡이와 외상이 일상인 붙임성 만렙 유주. 번영고 유도부 유망주이자 어린 동생들의 유일한 보호자로, 유찬의 비극과 직접적으로 얽힌 새별. 이 유도부원들은 등장만으로 공기를 바꾸며 한 사건에 점점 집중하게 한다. 바로 5년 전 화재 사건과 관련해 번영 사람들이 감춰 온 비밀에 대해.
번영에서 오래 경찰로 일해 온 지오 아빠 남 경사, 진짜 메달리스트인지 의심스러운 유도부 코치, 화마로 자식을 잃고 손주를 돌봐 온 유찬의 할머니 등 마을 어른들의 사연까지 하지오와 유찬의 시선에서 다루어지며, 아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도시 생활이 익숙한,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만이 전부였던 하지오와 비극 이후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유찬이 이 작은 마을에서 만나 서로를 향해, 또 세상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과정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든다. 겉보기와 다르게 정 많은 동네 사람들, 자신만의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아이들, 돌아오는 여름마다 눈부시게 빛날 냇물의 윤슬과 한없이 푸르른 은행나무, 끊이지 않는 매미 소리…… 이꽃님 작가가 그려 낸 번영의 여름은 어쩌면 잊고 살았을지 모를, 나도 모르게 나를 한 뼘 키워 낸 공동체와 공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뜨거운 여름이 청량한 여름이 되기까지
첫사랑으로 인해 새로 쓰이는 계절
큰일이다.
이제 매미 소리도 모자라 저 태양만 봐도 지금이 생각날 테니까. 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이 될 거라는 걸.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리워하게 되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187쪽)
열일곱의 소용돌이치는 감정들과 첫사랑의 두근거림, 강렬한 햇빛에 더 도드라지는 아이들의 결핍과 상처가 여름이라는 계절을 만나 절정에 치닫는다. 한 계절을 통과하는 일이 이토록 치열했음을, 어떤 운명적인 만남은 한 계절뿐 아니라 한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쓰기도 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 준다. 하지오와 유찬의 열일곱 번째 여름을 함께 지나오고 나면, 이 계절의 신비로움과 매력에 대해 한껏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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